젊은 베토벤과 완숙한 쇼팽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김선욱의 베토벤은 후련하도록 젊고,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쇼팽에는 세월이 묻어 있다. | 음악,클래식,음반,뮤직,연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김선욱, 아첸투스김선욱은 오랫동안 완벽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였다. 그의 연습 혹은 해석의 과정에 관해 전해 들을 때마다 존경심 반, 숨막힘 반이었다. 김선욱이 베토벤을 만날 때 집요함은 배가되는 듯했다.베토벤의 위대한 건축 앞에서 김선욱은 늘 견고했다. 그래서인지 마음을 툭 놓고 김선욱의 음악을 만난 적이 없었다. 이제 곧 펼쳐질 완벽의 세계, 아니 ‘완벽을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준비 태세가 필요했다.이번 앨범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이 수록돼 있다.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된 작품이다.첫 트랙 ‘비창’ 1악장은 느릿한 호흡의 서주로 시작된다. 단순한 느림이 아니다. 음과 음, 프레이즈와 프레이즈 사이의 정갈한 호흡이 그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느림이다. 사실 이 서주를 들을 때만 해도 김선욱의 파격을 기대했지만 별다름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음반은 베토벤의 이성과 김선욱의 견고함이 만난 또 하나의 교과서인가?김선욱의 이번 베토벤 신보는 분명 교과서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재미있다. 단 한 음도 놓치지 않기 위해 듣는 이의 귀가 바쁘게 움직인다. 알맞은 타이밍에, 아주 알맞은 음색으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채워지는 음의 행렬 덕분이다.슬쩍 지나칠 수 있는 왼손의 단출한 스케일, 펼침화음의 한 음 한 음까지 생생히 살아나 머릿속까지 들어와 박힌다. 전체적으로 영롱함을 유지하는 음색은 김선욱의 치밀함을 기분 좋은 무언가로 치환시키는 데 한몫한다.음반을 듣는 내내 질문이 커져갔다. 김선욱은 여전히 완벽을 추구하는 듯하다. 그런데 무엇이 달라진 걸까? 무엇 때문에 듣는 이의 마음이 이토록 후련하고 가벼워지는 걸까?글_박용완(국립극장 홍보팀장)CHOPIN:LATE WORKS마우리치오 폴리니, 도이치 그라모폰묘하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교과서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 때 살던 이층집 LP 진열장에 있던 이름 같기도 했다. 그 앨범을 몇 번인가 턴테이블에 올리던 오후도 생각났다. 그때 그 흑백사진의 마우리치오 폴리니와 지금 이 앨범의 흑백사진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진지한 소년처럼 웃는 얼굴로, 폴리니는 여전히 경이롭다.1960년 제6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폴리니는 19세였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기교적으로는 여기 있는 심사위원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지금 조성진이 그런 것처럼 그때도 쇼팽 콩쿠르 우승자는 전 세계적인 스타였다. 하지만 폴리니는 우승 이후에도 조용했다. 이후 8년간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을 사사했다.연주 생활을 다시 시작한 건 1968년이었다. 1972년에는 그 유명한 쇼팽 에튀드 음반을 출시했다. 올해로 75세, 이번 앨범에는 쇼팽의 후기 작품이 수록돼 있다. 1845년부터 1846년 사이 출판한 작품 번호 59번 이후의 곡. 뱃노래와 환상곡, 애상곡, 왈츠, 마주르카가 고루 실려 있다.어떤 순간에는 끝도 없이 부드럽고 어떤 땐 영롱하고 순수하다. 그럴 때도 음 하나하나에 실려 있는 힘은 완고하고 단단하다. 어떤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면 이런 소리가 날까? 이 사람은 늘 봄이었던 걸까?음반을 듣다 보면 그리 생각하게 된다. 그가 피아노에 매진해온 약 70년의 모든 계절이 모두 완벽했다고 믿고 싶어진다. 기본과 기교, 균형과 아름다움, 패기와 완숙함....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며 ‘나는 조금 더 늙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봄이 더 깊어졌고, 시간이 두렵지 않았다.글_정우성모차르트 &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CD+DVD그리고리 소콜로프그리고리 소콜로프는 오로지 피아노에만 집중하기 위해 모든 협주곡 연주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니 전 세계에 동시 발매한 모차르트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의 실황 앨범이야말로 소장할 만하지 않나?게다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당시 영상과 다큐멘터리 DVD까지 수록돼 있다. 이 DVD를 틀어놓은 채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맞이하는 봄밤은 또 얼마나 좋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