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선욱이 "400% 확신한다"고 말한 베토벤의 소나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발표한 신보에는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3곡이 담겼다. 그는 이 곡들이 베토벤이 그린 바로 그 소리일 거라고 확신한다.

BYESQUIRE2021.03.10
 
 

400%의 확신 

 
대체 1월에 공연을 몇 개나 하신 건가요? 힘들지 않았어요?
엄청 좋았어요. 사실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죠.
특히 여러 번 미뤘던 독주회를 드디어 열었는데요.
원래 3월에 하려다가 9월로, 또 9월에서 12월로 미뤄지고, 12월에서 1월로 미뤄졌으니까, 총 세 번 미뤄지고 네 번째로 잡은 날짜였어요.
무대에 서려면 준비가 힘들기는 하지만, 희열이 또 엄청나죠?
중독….
중독이요?
중독이 있어요. 금단현상이 생기거든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행복했던 거군요.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물론 힘든 것도 있죠. 그렇지만 힘든 것 이상으로 관객이라는 대상을 만나는 희열이 있어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B3 콘솔레이션 홀에서 연주 중인 김선욱. 화이트 골드, 오닉스, 에메랄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팬더 드 까르띠에 브로치 까르띠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B3 콘솔레이션 홀에서 연주 중인 김선욱. 화이트 골드, 오닉스, 에메랄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팬더 드 까르띠에 브로치 까르띠에.

이번에는 특히 독주회 끝난 다음 날 바로 KBS 교향악단과 지휘 무대를 꾸몄죠. 심지어 콘체르토는 피아노를 치면서 지휘까지 해냈고요. 체력이 가능한가 싶어요. 연주는 체력 소모가 엄청 큰데.
어… 가능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작년 12월과 올해 1월에 할 프로그램을 쭉 적어본 적이 있어요.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프로그램을 한 거더라고요.
연주나 지휘를 악보 보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독주할 때도, 지휘할 때도 안 보고 했죠.
한 공연의 레퍼토리를 외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바특하게 공연이 연달아 있는데 그걸 다 외우는 게 정말 신기해요.
근데 사실 연주 자체는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손이 기억하는 거기 때문에 아무래도 라이브에선 까먹을 위험이 있긴 해요. 근데 머릿속에서는 ‘다음 마디가 뭐지? 다음 마디가 뭐지?’라며 정리가 안 되어도 손가락이 돌아가요. 반복해서 연습을 계속 하니까 일종의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가 생긴 거 같아요.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를 때 가끔 나도 모르게 가사를 다 기억하고 부르게 되는 곡이 있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해요.
원래 2020년은 베토벤이 엄청나게 많이 공연됐어야 하는 해였죠. 탄생 250주년이었으니까요. 김선욱의 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자타 공인 한국 최고의 베토벤 덕후니까요. 아쉽지 않았어요?
아니요. 베토벤의 250주년을 음악가들이 많이 기리려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베토벤 음악은 꼭 250주년이 아니라도 마스터피스가 워낙 많아서 지금도 계속 새로 해석을 찾아야 하는 상태거든요. 연주를 못 해서 힘들긴 했죠. 베토벤을 많이 연주하지 못해서 힘든 게 아니라, 그냥 연주 자체를 많이 못 해서 되게 아쉬웠어요.
정상에 오른 뒤에도 꾸준히 연습하는 걸로 유명해요.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 피아노를 친다고 들었어요.
보통은 그래요.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에 들어와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하루에 한 8시간 정도 쳤어요. 할 게 없어서.(웃음) 자가격리를 근처에 아무 것도 없는 경기도 연천의 주택으로 잡았거든요. 항상 숙소는 피아노가 있는 곳을 찾아요. 자가격리를 하니까 일어나서 밥 먹는 거 말고는 연습밖에 할 일이 없었어요. 하루에 8~9시간씩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연습한 덕분에 1월에 그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연 독주회 레퍼토리가 얼마 전 까르띠에, 악센투스와 함께 영상을 만들고 앨범까지 낸 곡들이잖아요. 베토벤이 남긴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 30번(Op. 109), 31번(Op.110), 32번(Op.111), 후기 중에서도 마지막 곡들이죠. 앨범 녹음까지 하고 독주회도 세 번이나 미뤘으니….
그 곡들은 항상 준비되어 있었던 셈이에요. 준비를 한창 하다가 미뤄지고, 그러다 다시 공연 날짜가 잡히면 또 그걸 향해 달려가며 연습을 한창 하다가 또 미뤄지고. 그렇게 세 번을 미뤘으니까요.
아, 대학 때 중간고사 한 번만 미뤄져도 벼락치기 공부가 아까워서 화가 났는데.(웃음)
뭐 그런 거죠.(웃음) 근데 다 지나고 나니 먼 옛날 얘기인 것 같아요.
처음 독주회 준비할 때랑 이번 독주회의 연주량도 다르겠어요.
계속 바뀌어요. 오히려 더 좋은 점도 있었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이 음악을 소화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숙성된다고 해야 하려나?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었던 거 같기도 해요. 이게 알고 보면 되게 신기해요. 악보에 있는 음표들은 안 바뀌잖아요. 다시 프린트를 한다고 해도, 몇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거든요. 그런데 같은 사람이 쳐도 시기에 따라서 완전 다르게 표현되는 게 신기해요. 같은 영화라도 10년 전에 본 거랑 지금 본 거랑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그런 경험과 비슷하죠. ‘인간이란 참 신기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선욱 씨 인터뷰를 잡고 베토벤을 좀 이해해보려고 일본의 음악학자들이 쓴 책을 하나 사서 봤어요. 소나타 30~32번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지만, 굉장히 구조가 복잡한 건축물 같다는 말을 하더군요. 피아니스트들은 이 곡들을 치면서 뭔가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낀다고요.
맞아요, 맞아요. 그러니까 표현의 범위가 되게 넓어요. 예를 들어 베토벤의 초기 곡들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단순명료하고 지시도 확실해요. 근데 그게 말년으로 가면서 조금 추상적으로 변했어요. 예전의 지시들은 그냥 ‘빠르게’ ‘느리게’, 좀 복잡하면 ‘빠르지만 급하지 않게’ 뭐 이런 식이었어요. 그러다가 말년으로 가면 ‘가슴속에서 노래하는 감정으로’ ‘움직임이 있게’ 등으로 변했죠. 템포 변화도 초기나 중기에 비해 훨씬 더 유연해요.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훨씬 넓어진 셈이죠. 그러니까 연주자의 상상력이 되게 중요하게 된 거죠. 베토벤은 그렇게 길을 열어준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곡가이기도 해요. 베토벤이 열어준 이 길이 19세기 많은 작곡가들의 작곡 방식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어요. 그 넓어진 폭에서 낭만주의가 생겨났고요. 그래서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연결하는 브리지라는 평가를 받아요.
특히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인 32번은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연이 깊은 곡이기도 하죠.
옛날부터 자주 많이 쳤던 곡이에요. 리즈 콩쿠르 때도 쳤었죠.
좀 궁금하네요. 1년에 네 번 독주회가 미뤄지는 동안에도 곡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는데, 리즈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18세 때와는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요?
기본적인 템포나 표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건 저만의 스타일이 이미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뭔가를 다르게 표현해보려고 한다고 해서 그 표현의 근본이 되는 제 사고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바뀐 건 뭐냐 하면… 지금은 음악에 있어서 옛날에 비해 아는 게 훨씬 많아졌고, 그래서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사실이에요. 예전엔 제가 5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지금은 한 20가지 혹은 25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셈이죠. 또 사람마다 겪는 인생의 굴곡을 저 역시 겪으면서 여유도 조금 생겼고요. 더 포괄적, 관조적으로 볼 여지가 15년 전보단 늘었어요. 15년 전과 이렇게 다른데 앞으로 15년, 20년, 30년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이 바뀌겠어요. 그러니까 되게 재밌죠.
부러워요. 이미 김선욱은 20대 때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했잖아요. 그런데도 계속 새로운 걸 발견하며 기뻐하고 있네요. 한 인간으로서 참 부러운 삶이에요. 그런 인생의 주제가 없는 사람이 되게 많아요.
좋으니까 하는 거죠. 그때 32곡의 소나타를 연습하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생각해보면 베토벤이 32번에 다다랐다는 건 그 전에 31개의 소나타를 썼다는 얘기잖아요. 베토벤은 특정 시기에 소나타를 몰아서 쓴 게 아니라 음악 인생 전반에 걸쳐 작곡했어요. 그의 소나타들을 연주하자면 베토벤의 음악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느껴져요. 정말 신기해요. 그가 시도하려던 게 뭔지, 그가 넘어서려던 한계가 뭔지가 느껴져요.
베토벤이 인생에 걸쳐 소나타를 작곡하던 와중에 피아노 건반 옥타브의 수가 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맞아요. 예전에는 61개였던 건반이 말기에는 73개로 늘어났죠.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음이 확장되면서 베토벤의 스펙트럼도 훨씬 더 넓어졌고요. 그래서 가끔 베토벤의 피아노곡을 치다 보면 베토벤이 피아노의 넓어진 음역대를 사용하려는 게 느껴져요. 제일 낮은 옥타브와 제일 높은 옥타브를 사용하려는 의지 같은 거요. 그런 툴이 생겼으니 너무 사용해보고 싶었겠죠.
 
까르띠에와 악센투스가 공동 제작한 김선욱의 공연 영상 촬영 장면. 아직 공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까르띠에와 악센투스가 공동 제작한 김선욱의 공연 영상 촬영 장면. 아직 공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옥타브뿐 아니라 피아노 음량과도 관계가 깊죠?
연주자들이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죠. 베토벤이 청각장애가 있었잖아요. 작은 소리는 더 안 들렸을 테고, 큰 소리도 성에 안 찼을 거란 말이죠. 그 상태의 베토벤이 상상했던 음량은 뭘까? 연주할 때 이런 생각을 하면 훨씬 더 직접적으로 베토벤의 음악이 제게 다가오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들으려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하는 작곡가가 베토벤이라고 생각해요.
평생 베토벤을 알아간다는 건 귀도 잘 안 들리는 그가 상상했던 음악에 점점 정교하게 다가가는 일이군요. 레이어를 쌓아가며 그려보고 렌더링도 돌려보는 일러스트 작업 과정이 생각나네요. 레이어가 쌓일수록 정교해져서 마지막에는 선명하게 드러나는 과정이요.
그렇죠. 그러니까 재밌어요. 평생 알아도 알 수 없을 거 같은 뭔가가 있어요. 아까 얘기하셨지만, 참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됐고, 직업이 되고 나서도 계속 레이어를 쌓아가는 게 재밌거든요. 후회 없이 살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베토벤 소나타는 총 8곡을 녹음했죠?
그렇죠. 기존에 다섯 곡이 있었고 이번에 세 곡이 추가됐어요.
먼저 녹음한 다섯 곡은 애칭이 있는 소나타들이었잖아요. ‘비창’ ‘월광’ ‘열정’ ‘발트슈타인’ ‘함머클라비어’였죠. 이번에는 애칭이 없는 거로 고른 이유가 따로 있나요?
사실 애칭이 없는 소나타가 애칭 있는 것보다 훨씬 많아요. 음… 제가 아직 만으로 32세니까 나이에 걸맞은 넘버를 선택했다고 우겨보고 싶지만 그건 아니고요.(웃음) 녹음은 확신이 들어야 할 수 있어요. 내가 이 곡을 완전히 체화했다는 확신이요. 이번에 한 녹음에서 스스로 뿌듯한 게 한 가지 있다면 어느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들이 녹음한 이 곡의 어떤 해석도 비슷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름 뿌듯했어요.
저도 그래서 너무 좋았어요. 김선욱이 치는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가요.
클래식 연주자들이 그렇잖아요. 우리는 작곡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베토벤이라면 이런 연주를 원했을 것 같아’라는 해석을 가지고 연주를 해요. 저도 그래요.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들으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베토벤이라면 자신의 음악이 이렇게 들리기를 원할 것이다’라는 확신이 300~400% 정도 있어요.
낭만적이네요. 200년에 전에 베토벤이 끄적이던 스케치에서 시작된 음악이잖아요. 그 스케치들이 모여서 하나의 곡이 되고, 그 곡이 악보의 형태로 전해지다가 김선욱의 머릿속에서 재조합되어 다시 ‘베토벤이라면 이렇게 들리기를 원했을 것이다’라는 해석을 거쳐 소리로 재탄생하는 과정이에요.
그게 클래식 음악이 주는 매력인 거 같아요. 작곡가들은 죽고 없지만 악보는 남았어요. 그리고 그 악보는 연주자가 없으면 들리지 않아요.
보통 위대한 작곡가들은 그들만의 영역이 있죠. 베토벤이라고 하면 교향곡과 현악4중주 그리고 역시나 ‘피아노 소나타’죠. 베토벤의 소나타를 보통은 ‘신약 성서’나 ‘거대한 산맥’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그 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앨범에 담긴 3곡은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베토벤 음악의 특징은 빈 공간이 없이 음의 질량으로 꽉 찬 순도 100%의 음악이라는 점이거든요. 쓸데없는 음이 없어요.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서 완벽을 기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베토벤이 말년으로 가면서 변화가 생겼어요. 이 순도는 유지하면서 비워내는 작업을 한 거죠. 예를 들면 100개의 노트로 표현할 걸 1개의 노트로 줄여나가는 식이죠. 에센스를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드러나는 스타일은 ‘무념무상’이랄까?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느낌을 줘요. 이 시기의 현악 4중주나 교향곡 9번 역시 마찬가지죠. 그래서 이걸 해석하려고 집중해 듣다 보면 갑자기 그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현실을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되게 많아요. 다 듣고 나면 ‘내가 뭘 들은 거지?’라고 되묻게 돼요.
뭔가 갑작스러운 종교적 경험을 뜻하는 ‘에피파니’(epiphany)와 비슷한 점이 있네요.
맞아요. 딱 그런 매력이죠. 이 사람 음악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되는구나. 특히 그의 말년의 음악들은 이해하려 하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하나의 멜로디를 한없이 길게 늘어뜨려 놓곤 하는데 그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깊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그 깊은 바다에서 그가 자신의 음악으로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연주가가 이 정도로 한 작곡가를 사랑하는 건 정말 타고난 성정이고 그 성정은 재능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 전에 이동진 평론가가 자신의 방대한 수집품을 정리해둔 개인 공간에 인터뷰를 하러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가 그러더라고요. 수집벽을 포함해 마지막까지 밀어붙이는 성정은 재능에 가깝다고요. 돈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고요.
인간은 하나하나가 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머리 회전이 빠른 것도 재능이고, 밀어붙이는 것도 재능이죠.
이번에 까르띠에, 악센투스와 녹음한 앨범은 수록곡을 연주하는 영상도 함께 공개했잖아요? 그 영상을 보니까 제작 과정도 궁금하더라고요.
사실 영상 작업이라 좀 어려운 면도 있었어요. 저는 녹음을 굉장히 빨리하고 에디팅 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거든요. 어떤 뮤지션들은 음반 하나 만들기 위해 5일을 투자하는 사람도 있어요. 예를 들면 10분짜리 곡을 하루 종일 치는 거죠. 그래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에디팅 하는 거예요.
맞아요. 잘된 테이크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고르죠.
근데 전 그렇게 하지 않고 보통 (이 정도의 레퍼토리는) 이틀에서 사흘 안에 끝내는 편이죠. 하루에 한 곡을 4~5시간 정도 녹음하면 끝나요. 그런데 이번 녹음은 하루에 3곡을 다 해야 했어요.
헉….
그렇게 하루에 음원 녹음을 다 하고 둘째 날 영상 촬영에 들어갔어요. 그날은 연주는 하지만 음원은 따지 않고 근접 카메라를 포함한 다양한 각도의 영상만 땄어요. 셋째 날은 근접 카메라를 다 치우고 크레인 카메라니 뭐 그런 멀리서 찍는 카메라들의 영상을 녹화했어요. 그렇게 사흘 안에 녹음해서 촬영까지 끝낸 거죠.
와… 그건 정말 대단한 속도네요.
음악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중요하고 녹음은 그 순간을 박제하는 거니까요. 짜깁기를 너무 하면 그거야말로 성형한 얼굴 같아진다고 생각해요.
요새는 다시 편집이 힘든 릴 테이프 시대의 아날로그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있대요.
맞아요. 저도 한 음반사에서 ‘다이렉트 투 디스크’를 하자는 제의를 받았어요. 연주를 말 그대로 바이닐에 바로 녹음하는 거죠. 그건 한 번 하면 에디팅도 할 수 없는 진짜 라이브인 거죠. 40분짜리 곡을 녹음하는데, 한 30분대에서 큰 실수를 하나 했다? 되돌릴 수 없는 거죠. 그냥 가는 거예요.(웃음) 악센투스에서도 이 방식을 최근에 시작했어요. 이 방식이 비용도 더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것 같아요. 콘솔 장비를 전부 아날로그로 써야 하잖아요. 저 갑자기 생각났는데, 예전에 대한음악사에서 악보 훔친 적이 있다는 얘기는 뭔가요?(웃음)
아유…아주 어릴 때 용돈은 한정적인데 악보가 너무 갖고 싶어서 기행을 한 적이 있어요.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끌려가서, 엄마가 돈을 다 내고 사과한 적이 있죠. 제가 어릴 때 수집을 많이 했거든요. 음반이나 악보나 심지어 지하철 티켓도요.
지하철 티켓을 모았어요?
네. 예전에 2호선 티켓은 색깔이 무척 많았거든요. 일반은 노란색이고, 어린이용은 분홍색이고, 노인권은 하얀색인 식이었죠. 각 색깔별로 구간별로 다 모아야 됐어요. 같은 색이라도 1구간이 200원 2구간이 250원 이런 식으로 적혀 있는 가격이 달랐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나이가 어리니까 노인권은 못 모으잖아요. 그래서 창구에 가서 ‘아유, 저희 할아버지가 지금 계단을 걸어오시고 있는데 좀 오래 걸리세요. 티켓이 필요하시대요’라며 노인용 티켓을 샀죠.
재능이네.(웃음) 그렇게 모으는 힘이 바로 재능이네요. 혹시 녹음도 32곡을 다 할 계획인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럴 계획도 없어요. 근데 나중에 20~30년 지나서 녹음했던 곡을 한 번 더 녹음해보고는 싶어요. 글렌 굴드가 첫 음반을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냈잖아요. 그러고는 33년 뒤에 같은 곡으로 다시 음반을 냈던 것처럼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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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성룡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