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JEWELRY

시계 덕후도 사고 싶은 '빈티지 롤렉스'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제임스 다울링과 함께 그의 신간 ‘롤렉스 레거시: 120개의 기념비적이고 희귀한 시계를 통해 본 롤렉스의 역사’에 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프로필 by 엄예지 2026.07.18
이미지 출처: Rolex

이미지 출처: Rolex

30년 전 에스콰이어를 읽던 시절, 시계에 대해 알고 싶었다면 여러분은 분명 제임스 다울링의 글을 찾았을 것입니다.


사실 1991년 에스콰이어 UK가 창간되었을 때, 다울링은 이 잡지의 첫 번째 시계 전문 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창간호 2권에서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빈티지 및 현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그리고 롤렉스 쿠션 오이스터와 씨드웰러를 비교 분석했죠.


시계 매체라는 분야가 산업으로 자리 잡기 훨씬 전부터 그는 이미 독보적인 권위자였습니다. 다년간의 연구와 수집을 통해 축적된 전문성을 가진, 진정한 롤렉스 학자였죠.


그의 신간 ‘롤렉스 레거시’는 한스 빌스도르프와 알프레드 데이비스가 로렉스를 설립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일생에 걸친 지식을 우아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담아냈습니다.


책의 이야기는 연대순으로 전개됩니다. 챕터를 10년 단위로 나누어, 가장 초기 모델인 오이스터부터 현대의 데이토나 '르망', 랜드웰러에 이르기까지 시계 그 자체를 통해 역사를 들려주죠.


이 책은 일반적인 참고 서적이 가진 장점은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 단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책입니다.


주의력이 짧은 분들은 ‘롤렉스 레거시’를 크고 아름다운 사진들로 가득 찬, 가볍게 넘겨보기 좋은 커피 테이블 북으로 활용해도 좋습니다. 반면, 학구적인 분들은 그동안 널리 퍼져 있던 롤렉스에 관한 신화들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연구 결과와 반론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도 좋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좋습니다. 다울링은 자신의 지식을 뽐내지 않고 가볍게 풀어내며, 결코 요점을 지루하게 늘어뜨리지 않습니다. 그의 책 부제와 참신한 기획 의도대로, 가장 노련한 롤렉스 덕후들조차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책이죠.


이 책은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시계 책입니다. 권위 있으면서도 재미있고,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죠. 시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 혹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제임스, 당신은 롤렉스 전문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misterrolex죠. 왜 롤렉스였나요?

제가 롤렉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롤렉스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40년 전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마피아나 바티칸, 혹은 그 둘이 합작해 소유했다는 등 온갖 뜬소문이 돌았거든요. 처칠이 크렘린 궁을 '수수께끼로 감싸인 비밀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라고 묘사했듯이, 롤렉스도 항상 그런 존재였습니다. 저는 도전을 즐기는 성격이라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죠. 관심을 갖게 된 순간, 롤렉스는 다른 어떤 시계 회사와도 같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분명 롤렉스 시계 자체도 좋아하겠죠.

제 컬렉션의 절반도 채 되지 않지만, 열 번 중 아홉 번은 롤렉스를 차고 다닙니다.

왼쪽부터 1960 롤렉스 트루비트(Tru-Beat), 1923 롤렉스 간호사 시계 / 이미지 출처: Rolex

왼쪽부터 1960 롤렉스 트루비트(Tru-Beat), 1923 롤렉스 간호사 시계 / 이미지 출처: Rolex

롤렉스를 상징하는 방수 케이스와 자동 와인딩 무브먼트가 사실 외부 기술에서 비롯되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롤렉스 레거시’는 롤렉스가 브랜드 탄생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매달려온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짚어줍니다. 바로 '정확성'이죠.

롤렉스가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크로노미터 인증(시계의 탁월한 정확성을 입증하는 공식 테스트)을 획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롤렉스를 이해하려면 회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알아야 하죠. 다른 모든 시계 브랜드는 시계 제작자가 세웠습니다. 파텍과 필립은 시계 제작자였고, 오메가의 루이 브란트도, 세이코의 핫토리도 시계 수리나 제작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한스 빌스도르프는 달랐습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서명한 모든 문서에 자신의 직업을 '상인(Merchant)', 즉 세일즈맨으로 기재했죠.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겼군요.

그게 바로 한스 빌스도르프였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점은 빌스도르프부터 오늘날까지 롤렉스의 CEO를 맡았던 인물들의 명단을 보면, 은행가 출신이 잠시 3년간 재임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업 경력을 가진 사람들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롤렉스는 그렇게 정확성을 강조하려 했을까요?

당시 롤렉스는 자체 공장을 갖추지 않았습니다. 무브먼트나 케이스를 직접 생산하기보다 전문 스위스 공급업체로부터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죠. 어찌 보면 제조보다 비즈니스에 더 집중할 수 있었죠. 빌스도르프의 영리함은 본사의 위치 선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다른 시계 브랜드들이 모두 스위스에 안주할 때, 그는 대담하게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이는 적재적소의 판단이었죠. 스위스의 뛰어난 시계 제조 기술에 대영제국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명성, 그리고 강력한 마케팅 파워를 결합할 수 있었으니까요. 순수 스위스 브랜드는 결코 누릴 수 없었던, 그야말로 판을 읽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에글러(Aegler)를 무브먼트 공급업체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에글러는 다양한 크기의 단일 무브먼트 설계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 방식에 익숙한 시계 제작자는 어떤 크기든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대량 생산이 쉬워졌죠. 반면 론진이나 IWC 같은 브랜드들은 수십 가지 무브먼트를 다루느라 생산 라인을 계속 바꿔야 했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당시에도 잘 통했나요? 오늘날 시계를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정확성'이 얼마나 중요한 우선순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예전에 시계 쇼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시계를 사는 모습을 옆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파는 사람이 "이 시계는 하루 오차 5초 이내로 정말 정확합니다"라고 판매를 마무리하려 하니,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누군가 시계를 팔면서 정확성부터 운운한다면 그건 다급하다는 증거겠지." 하지만 롤렉스는 지금도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 모두가 원자 시계와 연동된 GPS 위성에 연결된 초정밀 포켓 컴퓨터(스마트폰)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인데도 말이죠.

COSC는 하루 -4/+6초 범위입니다(COSC는 공식 크로노미터 테스트 기관으로, 브랜드들은 이를 강조하며 스위스 공식 기준을 충족함을 증명합니다). 롤렉스는 -2/+2초를 목표로 합니다.

롤렉스는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일까요?

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그들의 광고 어디에서도 정확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롤렉스 웹페이지를 꽤 깊숙이 들어가 봐야 -2/+2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죠. 오늘날 롤렉스의 광고와 제품 사이에는 묘한 괴리가 있습니다. 광고는 '롤렉스를 소유하고 싶지 않으신가요?'라는 질문을 통해 브랜드가 가진 성공의 이미지와 선망에 집중하죠. 하지만 제품 자체는 그 화려한 마케팅보다 훨씬 더 집요하게 '엔지니어링의 정점'이라는 본질을 향해 나아갑니다. 광고가 소유욕이라는 감성을 자극하는 사이, 시계 자체는 여전히 가능한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정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왼쪽부터 1955 롤렉스 오이스터(이스턴 아랍어 다이얼), 1978 오이스터쿼츠 / 이미지 출처: Rolex

왼쪽부터 1955 롤렉스 오이스터(이스턴 아랍어 다이얼), 1978 오이스터쿼츠 / 이미지 출처: Rolex

1927년 영국 해협을 최초로 횡단한 영국인 여성 메르세데스 글라이츠가 방수 롤렉스 오이스터를 착용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브랜드 역사상 첫 번째 위대한 내구성 테스트이자 홍보의 승리였죠. 당신의 책은 당시 롤렉스가 수많은 비행사와 모험가들에게 시계를 제공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저는 40년 넘게 롤렉스 관련 자료를 수집해 왔습니다. 오래된 브로셔들로 가득 찬 캐비닛도 있죠. 예전에는 증언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광고 하단에 "말콤 캠벨 경은 본 광고에 대해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았음"이라는 문구를 넣곤 했던 게 저는 항상 좋았습니다. 당시 장거리 비행사들은 오늘날의 우주비행사와 같았죠. 두려움 없이 정기적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브랜드의 독특한 모델들은 일찍부터 시작되었죠. 1915년형의 야생적인 캘린더 시계도 있고요.

초창기부터 롤렉스는 기묘했습니다. 캘린더 시계는 흔했지만, 달력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시계라니요? 전 그 점이 정말 좋습니다.

1920년대에는 간호사를 위한 시계도 만들기 시작했죠.

그건 상인으로서의 빌스도르프가 시장의 틈새를 정확히 본 고전적인 사례죠. 그는 사람들이 여성용 손목시계의 스트랩을 제거하고 안전핀으로 유니폼에 고정해 사용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손목에 차면 피나 오물 등으로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죠. 당시에는 시계가 방수가 되지 않았으니, 유니폼에 고정하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였죠.

책에 소개된 시계 중 가장 수집 가치가 높은 시계는 무엇인가요?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실패했던 '프리-데이토나(ref. 6234 등)'들입니다. 케이스, 무브먼트, 다이얼, 핸즈를 모두 다른 공급업체에서 가져와 롤렉스는 그저 조립만 했을 뿐이죠. 케이스백 나사를 제외하면 롤렉스다운 구석은 전혀 없는, 가장 '롤렉스답지 않은 롤렉스'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데이토나이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것이 아니라, 한때 실패작이었기에 생산량이 적어 귀해진 것이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1930년대면 브라이틀링이나 론진 같은 브랜드들이 크로노그래프로 성공을 거두던 시절인데, 롤렉스는 고전했군요.

빌스도르프는 크로노그래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시계란 방수가 되고 자동이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런 크로노그래프를 만들 수 없었거든요. 분명 수요는 있었고, 마케터로서 그는 그 수요를 외면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크로노그래프에 큰 에너지를 쏟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이토나 크로노그래프는 오늘날 가장 찾기 힘들고 비싼 모델이 되었고, 대기자 명단도 가장 깁니다.

하지만 그것이 데이토나이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것이 아니라, 한때 실패작이었기 때문에 귀해진 것입니다. 생산량이 적었으니 빈티지 모델은 희소해졌고 가치가 높아진 것이죠. 약 30년 전 제가 첫 롤렉스인 GMT-마스터를 샀을 때였습니다. 본드 스트리트에 있는 매장(현재는 파텍 필립 쇼룸)에 갔죠. 점원이 제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더군요. 마음에 들어서 당시 유일한 신용카드였던 바클레이카드를 꺼내려다 잠시 멈칫하고 물었습니다. "현금이나 수표로 내면 할인받을 수 있나요?" 그가 웃으며 대답하더군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스포츠 모델은 할인하지 않습니다. 아, 물론 데이토나를 원하신다면 20% 할인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전 들어본 적 없는 트루비트(Tru-Beat)라는 시계가 있더군요. 쿼츠 시계처럼 초침이 1초에 한 번씩 '똑딱'거리는 1950년대 시계라면서요?

그 역시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 같은 시계였습니다. 의사가 맥박을 잴 때 초침이 부드럽게 흐르면 정확히 몇 초인지 알기 어렵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죠. 15번의 맥박만 재야 한다면 1초의 오차도 큰 차이를 만드니까요. 그래서 롤렉스는 '메뚜기(Grasshopper)'라고 불리는 무브먼트를 개발했습니다. 초침이 1초 단위로 점프하는 방식이었죠.

1960년대로 넘어오면 화려한 '스페셜 커미션'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하죠. 좋은 것들요!

60년대부터 롤렉스는 로열 패밀리, 경영진의 지인, VIP들을 위해 단 하나뿐인 시계를 만드는 부서를 운영했습니다. 다이얼에 새겨진 작은 심볼부터 감히 누가 찰 수 있을까 싶은 디자인까지 다양하죠. 제네바의 주얼리 세팅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래층은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가득하고 위층은 18세기 공예 그대로였습니다. 보석들은 여전히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시대와 거의 동일한 도구를 사용하여 손으로 직접 세팅됩니다. 현대의 화려한 보석 세팅 제품들은 미학적으로는 제 취향이 아니지만, 루페(아주 작은 확대경)를 통해 보면 그 솜씨는 정말 경이롭습니다.

또 하나 생소했던 건 1955년 클루아조네(Cloisonné)였습니다.

보석 공예에만 사용되던 에나멜 기법의 이름을 딴 시계입니다. 경이로운 수공예 시계였죠. 그 다이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4명 정도뿐이었고, 그들은 다이얼 뒷면에 서명을 남겼습니다. 엄청나게 비쌌고 카탈로그에도 실리지 않은, "아는 사람만 아는" 시계였습니다. 구하기도 쉽지 않았죠. 제 생각에 그것이야말로 롤렉스 제조의 정점입니다.

다양한 직사각형 프린스(Prince) 모델들도 놀랍습니다.

1980년대에 롤렉스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프린스는 가장 갖고 싶은 모델이었습니다. 당시 '폴 뉴먼' 데이토나 두 개 가격으로 프린스 하나를 살 수 있었죠. 지금은 40년 전보다 더 쌉니다. 당시 12,000파운드(약 2,124만 원 )였는데 지금은 9,000파운드(약 1,593만 원 )니까요. 참고로 당시 '폴 뉴먼' 데이토나는 6,000파운드(약 1,062만 원)였습니다.

왼쪽부터 2000 롤렉스 오이스터쿼츠 프로토타입, 1980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프로토타입. 다이얼의 기묘한 구멍은 와인딩 파워 인디케이터를 보여주기 위한 것 / 이미지 출처: Rolex

왼쪽부터 2000 롤렉스 오이스터쿼츠 프로토타입, 1980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프로토타입. 다이얼의 기묘한 구멍은 와인딩 파워 인디케이터를 보여주기 위한 것 / 이미지 출처: Rolex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계가 있나요?

1992년 롤렉스의 3대 CEO였던 패트릭 하이니거를 위해 제작된 ‘요트-마스터’입니다. 겉보기엔 절제된 듯하면서도, 실물을 마주하는 순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죠. 이 시계는 단순히 스틸 모델에 플래티넘 베젤을 얹은 수준이 아닙니다. 시계 전체가 통 플래티넘 소재로 제작되었거든요. 화이트 골드 인덱스에는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정교하게 세팅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이얼과 무브먼트에 새겨진 ‘1,000만 번째 크로노미터(10,000,000th Chronometer)’라는 각인은 이 시계가 가진 역사적 무게를 증명하죠. 말 그대로 경이로운 피스입니다.

사실 이 시계는 2023년 모나코 경매에서 182만 유로(한화 약 27억 원)에 낙찰되면서 업계를 뒤흔들었습니다. 하이니거의 개인 소장품이었던 이 시계가 왜, 그리고 어떻게 경매 시장에 나오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롤렉스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한스 빌스도르프뿐만 아니라 롤렉스 이야기의 핵심적인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데도 탁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점이 종종 간과됩니다. 패트릭 하이니거 같은 인물들은 부당하게 폄하되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롤렉스의 공장을 26개에서 4개로 줄이고, 비엘에서 무브먼트를 직접 생산하도록 만들었으며, 회사의 근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떠날 때의 회사는 그가 시작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업체였습니다. 현 CEO 장 프레데릭 뒤푸르는 CPO(인증 중고) 프로그램, 부커러 인수(세계 최대 럭셔리 시계 소매업체 인수), 지속적인 프리미엄화 등 그 비전을 이어받아 롤렉스를 서서히 재편하고 있죠.

1967년 스포츠 에이전트 마크 맥코맥이 롤렉스를 현대적인 스폰서십으로 이끈 부분도 강조했더군요. 그 덕분에 브랜드의 글로벌 이미지가 변화했죠.

그와 광고 대행사 ‘J. 월터 톰슨’은 롤렉스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위상으로 끌어올린 주역들입니다. 빌스도르프 시절의 롤렉스는 철저하게 ‘기능과 성능’ 중심이었습니다. 세계 기록을 경신하고, 영국 해협을 횡단하는 등 극한의 환경에서 시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데 몰두했죠.

하지만 그 이후, 빌스도르프와 J. 월터 톰슨, 그리고 맥코맥은 브랜드의 얼굴을 완전히 바꿨죠. 단순히 '튼튼한 시계'에서 누구나 닮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으로 브랜딩의 방향을 재정의한 것입니다. 재키 스튜어트(F1 레이서), 아놀드 파머(골퍼), 키리 테 카나와(오페라 가수) 같은 인물들을 내세운 것이 바로 그 전략의 핵심이었죠. 당시 중산층이 꿈꾸던 우아하고 품격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이들을 통해, 롤렉스는 비로소 사람들이 '동경하는 삶'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롤렉스 라인업은 흠잡을 데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책을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첼리니, 프린스, 밀가우스처럼 반짝했다 사라지거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나는 라인들도 있더군요.

그 지점이 제게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과학자들을 위해 강한 자기장 속에서도 정확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1세대 밀가우스(ref. 6541)를 볼까요? 지금이야 억대 가격을 호가하는 진귀한 수집품이 되었지만, 출시 당시에는 사실상 재고가 쌓여 처치 곤란이었죠.

당시 50년대는 자기장 방지 시계에 대한 수요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습니다. 오메가의 레일마스터, IWC의 인제니어, 파텍 필립의 아마그네틱까지 모든 브랜드가 그 틈새를 노리고 달려들었으니까요. 좁은 시장에 경쟁자들만 너무 많았던 셈입니다. 흔히 그렇듯, 롤렉스는 가장 높은 곳을 지향하며 야심 차게 내놓았지만, 당시 구매자들은 결국 파텍 필립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선택했던 겁니다.

선생님의 책에서는 롤렉스를 둘러싼 몇 가지 신화를 거침없이 깨더군요. 영화 ‘007 살인번호(Dr. No)’에서 숀 코너리가 롤렉스를 찬 것이 제작자 '커비' 브로콜리의 제안이었다는 설처럼요.

제 생각엔 감독인 테렌스 영의 공이 더 컸을 겁니다. 우리가 아는 초기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는 사실 테렌스 영이 조각해 낸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거든요. 그는 숀 코너리를 자신의 단골 양복점과 클럽, 레스토랑으로 데려다니며 본드라는 인물의 세련미를 밑바닥부터 빚어냈으니까요. 무엇보다 영은 진정한 시계 애호가였습니다. 그가 까르띠에 탱크 노말을 즐겨 착용했다는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죠. 그의 배경이나 군 이력을 고려했을 때, 당시 촬영장에서 당대의 서브마리너를 소유하고 있었을 유일한 인물은 아마 그였을 겁니다.

익스플로러 II가 동굴 탐험가를 위해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정설처럼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 역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신화라고 지적하시더군요.

맞습니다. 사실 1971년 당시 롤렉스는 그해에 무엇인가 새로운 모델을 출시해야 했고,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내놓은 결과물이 바로 익스플로러 II였습니다. 실상은 GMT-마스터에서 몇 가지 기능을 덜어내고 뚝딱 만들어낸, 말하자면 '퀵 앤 더티(quick and dirty)' 버전이었죠.

동굴 속에서 며칠씩 머무는 사람들을 위해 전용 시계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기괴하지 않나요? 이건 마치 '물총새만 관찰하는 조류 애호가'를 위해 전용 시계를 만들겠다는 것만큼이나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마케팅적으로는 그럴듯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은 그저 시기적절하게 탄생한 변종 모델일 뿐이었죠.

왼쪽부터 1933 롤렉스 프린스, 2001 롤렉스 크라운 컬렉션 / 이미지 출처: Rolex

왼쪽부터 1933 롤렉스 프린스, 2001 롤렉스 크라운 컬렉션 / 이미지 출처: Rolex

1970년대, 전 세계 시계 산업이 쿼츠(전자식) 열풍에 휩쓸려 기계식 시계를 포기하던 시절 롤렉스의 대응은 어땠나요?

롤렉스는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냈지만, 동시에 기계식 시계만큼이나 정교한 쿼츠 시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 당시 선보인 5035 오이스터쿼츠 무브먼트는 동시대의 기계식 칼리버인 3035보다 더 완성도가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이트에 스트라이프(코트 드 제네브) 장식과 앙글라주(모서리 면치기) 마감을 적용한 최초의 롤렉스 칼리버였고, 모듈식으로 설계되어 마감까지 완벽했으니까요.

당시 시장을 장악하던 저렴하고 소모적인 쿼츠 시계들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습니다. 롤렉스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쿼츠 무브먼트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겁니다. 저 역시 거의 매일 화이트 골드 소재의 5055 데이-데이트를 착용합니다. 마지막 점검 이후 오차는 고작 1초에 불과했으니까요..

그토록 완벽한 쿼츠 시계를 만들 수 있었는데, 왜 롤렉스는 그 분야를 더 깊게 파고들지 않았나요?

제네바 본사와 무브먼트 생산지인 비엘(Biel) 사이의 긴장감이 있었죠. 비엘은 쿼츠의 잠재력을 믿었지만, 제네바는 전통을 고수하길 원했습니다. 결국 롤렉스는 눈앞의 기술적 유행보다 브랜드의 본질인 '내구성'과 '지속성'에 집중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롤렉스는 늘 그렇듯, 아주 천천히 진화하는 브랜드니까요.

하지만 롤렉스가 결단을 내렸을 무렵, 쿼츠는 이미 기름 5리터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디지털 시계에나 들어가는 싸구려 부품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쿼츠가 곧 '저렴함'을 상징하게 되자, 롤렉스는 미련 없이 그 시장에서 발을 뺐습니다. 유행을 좇는 대신, 자신들만의 기준과 속도로 한계를 밀어붙이는 길을 택한 것이죠.

지금까지 그토록 기계식 시계의 가치를 설파해온 브랜드가 갑자기 ‘우리의 최상위 모델은 쿼츠입니다’라고 선언했다면, 소비자들도 분명 이질감을 느꼈을 것 같네요.

정확합니다. 롤렉스는 시장의 흐름을 맹목적으로 좇지 않죠. 그들은 늘 자신들만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무모하게 시장에 뛰어드는 대신, 5100이나 이후의 5035 오이스터쿼츠 모델을 통해 신중하게 시장의 반응을 살폈죠. 물론 기술 개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비록 생산 단계에 이르지 못한 5355 같은 사례도 있지만, 롤렉스는 반 다스가 넘는 다양한 쿼츠 무브먼트를 꾸준히 실험했으니까요. 그중에는 시침과 분침 대신 LED 바가 회전하며 시간을 표시하는 파격적인 시제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네요.

맞습니다. 연구개발(R&D) 부서에서 일한다는 건 그런 의미겠죠. 그들은 수많은 특허를 출원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그중 실제로 세상의 빛을 보는 건 극히 일부니까요. 제 주변에는 저를 위해 롤렉스의 특허들을 면밀히 조사해 주는 친구들이 있는데, 가끔 그 내용을 보면 ‘와, 정말 대단한 기술이다’ 싶다가도 결국 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롤렉스라면 지금처럼 “이미 잘하고 있으니 이대로만 가자”며 안주해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그러지 않죠. 늘 자신들의 한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며 다음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롤렉스가 오늘날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롤렉스는 지금도 쿼츠를 연구하고 있다고요.

네, 맞습니다. 롤렉스는 최근 과학 연구용 초정밀 시계를 제작하는 '롤렉스 퀀텀(Rolex Quantum)'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펨토초(femtosecond, 1,000조 분의 1초) 단위를 측정하는 장치를 만드는 곳이죠. 오늘날 가장 정확하다고 알려진 시계는 4억 년에 1초의 오차만 발생하는 '세슘 분수형 모델(caesium fountain models)'입니다. 롤렉스는 현재 이 시계들보다 10배 더 정확한 정밀도를 구현할 기술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시계들은 킹사이즈 침대만한 크기에, 가격은 수십만 달러, 혹은 수백만 달러에 달할 것입니다.

2023년 롤렉스가 ‘퍼즐’과 ‘셀레브레이션’ 다이얼을 공개했을 때, 오랫동안 다소 평범하다고 여겨졌던 브랜드에서 그런 장난기를 보여준 것에 많은 사람이 놀랐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책을 보면, 롤렉스에게는 사실 파격적인 디자인의 오랜 역사가 있더군요. 전체가 금으로 된 비대칭 모델인 ‘킹 마이더스’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롤렉스가 가진 특징은 사람들이 이 시계를 찾는 이유가 시계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상징성을 가지려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흔해야 하죠. 누구나 메르세데스를 알아보고, 또 누구나 롤렉스를 알아봅니다. 롤렉스처럼 생기지 않은 모델들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가끔 그들은 가장 롤렉스답지 않은 롤렉스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사람들은 롤렉스가 유행을 초월한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때로는 트렌드를 따르기도 했습니다. 80년대의 대담하고 지위를 상징하는 ‘크라운 컬렉션’이 그랬고, 그보다 앞서서는 밝은 색상의 ‘스텔라’ 다이얼이 있었죠. 선생님께서는 이를 당시 유행하던 색상으로 911을 선보였던 포르쉐의 전략에 비유하셨더군요.

제 책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 중 하나는 롤렉스가 특정 시점에 어떻게 주변 사회를 반영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롤렉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단순히 롤렉스가 "이거 좋은 생각인데"라고 결정해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죠. 롤렉스는 사회적 수요를 읽고 있는 것입니다.

롤렉스가 바로 지난달에 점핑 데이트-먼스 캘린더 메커니즘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조만간 이 기술을 적용한 모델을 볼 수 있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특허가 항상 실제 제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분명한 점은 롤렉스가 스카이-드웰러나 새로운 이스케이프먼트(2025년 랜드-드웰러 모델에 적용된) 같은 모델들을 통해 꾸준히 상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롤렉스는 현재 ‘생산량 제한’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강한 브랜드로 남기 위해서는 무브먼트 하나당 수익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즉,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틸 모델은 줄이고 귀금속이나 투톤 케이스 모델을 늘리는 전략이죠. 2023년에 그들은 스틸 시계를 단 하나만 출시했고 나머지는 모두 골드나 투톤이었습니다. 5,000파운드짜리 오이스터 퍼페추얼을 파는 것보다 14,000파운드짜리 스카이-드웰러를 파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합리적이니까요. 앞으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봅니다.

‘롤렉스 레거시: 120개의 기념비적이고 희귀한 시계를 통해 본 롤렉스의 역사’, 제임스 다울링 저.



*Esquire UK 기사를 리프트 하여 작성 되었습니다. 원문 보러 가기

관련기사

Credit

  • Editor Johnny Davis
  • Photo Rolex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