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카이도'로 지금 당장 떠나야 할 이유
엔저가 다시 찾아온 지금, 홋카이도로 떠날 이유는 충분하다. 서늘한 여름과 광활한 자연, 신선한 우유와 채소까지 여행의 즐거움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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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엔 환율이 100엔당 870원대까지 내려오며 2024년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 환율은 여행지를 선정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 홋카이도에서는 먹는 일이 곧 여행의 목적 그 자체가 된다.
은행 앱의 푸시 알림이 왔다.
흘깃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두 눈을 찌푸리며 머릿속으로 셈을 하기 시작했다. 100엔에 872원. 2024년 7월 이후 거의 최저 수준이다. 숫자를 확인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홋카이도였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늘 근사할 필요는 없다. 날씨나 휴가, 오래 미뤄둔 약속 같은 것들이 이유가 되듯, 어떤 해에는 환율이 여행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인천에서 치토세 공항까지 2시간 40분
비행기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홋카이도로 향하는 날개의 풍경. 인천에서 신치토세 공항까지 약 2시간 40분이면 닿는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홋카이도를 다녀온 것은 2년 전 늦여름이었다. 도쿄, 오사카, 그리고 후쿠오카를 종종 오가다가 처음으로 일본의 북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홋카이도는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가 되었다. 그 이후로 해외 여행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홋카이도를 추천한다. 북해도. 북쪽 바다 섬. 홋카이도. 서늘한 공기와 싱그러움을 머금은 채소, 신선한 우유, 달콤한 디저트. 홋카이도의 매력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수도 없이 많다.
홋카이도 여행의 기억 가운데 가장 선명한 것은 삿포로 시내를 빠져나오던 순간이다. 건물이 사라진 자리를 밭과 목초지가 차지하고, 도로는 시야 끝까지 곧게 뻗었다. 어디를 가겠다는 목적보다 이동하는 시간 자체가 즐거워지는 드문 경우였다. 창밖 풍경은 지나치게 다듬어져 있지 않았다.
거대한 밭, 멀리 능선을 그리는 산,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은 길. 무언가를 보러 가는 여행이라기보다 가는 동안 계속 보게 되는 여행에 가까웠다. 일본 본토의 여름은 청량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람을 정말이지 지치게 만드는 계절이지만, 홋카이도의 여름은 그렇지 않다. 적당히 즐거운 더위, 활력 넘치는 여름이었다.
광활한 홋카이도의 자연
하얀 자작나무가 길게 늘어선 도로와 드넓은 밭이 어우러진 홋카이도의 여름 풍경. 삿포로를 벗어나면 광활한 자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풍경만큼 오래 남은 것은 먹은 것들이다. 홋카이도에서는 우유부터 다르다. 과장을 조금만 보태자면 편의점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집어 든 우유 한 병이 서울에서 마시던 것과 다른 맛을 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치토세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북해도 곳곳의 관광지마다 있어서 처음에는 상술처럼 보였는데, 몇 번 사 먹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홋카이도청 자료를 찾아보니 2024년 이 지역의 우유 생산량은 일본 전체의 57.5퍼센트였다. 일본에서 나는 우유의 절반 이상이 이 섬에서 나온다. 목장과 유제품 공방이 지척인 동네에서 홋카이도산 생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은, 여행자의 의지가 약해서 반복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유지방이 높은 우유는 혀에 닿는 순간의 무게부터 달랐다. 삼키고 나서도 단맛이 한 박자 늦게 올라왔다.
홋카이도산 라벤더 아이스크림
선명한 보랏빛이 눈에 띄는 홋카이도산 라벤더 소프트 아이스크림. 신선한 유제품을 여행지 곳곳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정작 오래 기억에 남은 쪽은 유제품이 아니었다. 감자와 옥수수였다.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채소들이다. 버터를 얹은 감자 하나, 노점에서 구워 파는 옥수수 한 개가 이상할 정도로 맛있었다. 옥수수는 알이 굵고 단단해서 이로 끊을 때 소리가 났다. 여행지의 기분 탓인가 싶어 나중에 숫자를 찾아봤다.
2024년 홋카이도의 경지면적은 약 113만8천 헥타르로 일본 전체의 26.6퍼센트, 농업 생산액은 13.7퍼센트를 차지한다. 같은 해 일본에서 생산된 감자의 81.5퍼센트, 양파의 66.8퍼센트가 이곳에서 났다. 밀과 콩, 단호박도 마찬가지다. 재료가 좋은 데에는 대체로 이유가 있고, 이 섬의 이유는 땅이었다. 감자와 옥수수가 전부가 아니다. 곁들임 반찬으로 나오는 샐러드는 그야말로 아삭아삭 탄성이 절로 나오는 채소들의 향연이었다.
우유, 멜론 그리고 감자
홋카이도에서 맛본 신선한 우유와 달콤한 멜론, 버터를 곁들인 감자. 좋은 식재료를 직접 맛보는 일도 홋카이도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홋카이도 여행의 시작은 당연히 삿포로이다. 그러나 삿포로를 벗어나야만 홋카이도의 진정한 매력이 펼쳐진다. 특히 광활한 자연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홋카이도의 중심부 나아가 동쪽은 교통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여행할 가치가 분명히 있는 곳이다. 만약 일정이 짧아 홋카이도 동쪽까지 나아가기 어렵다면, 삿포로 근교로 눈을 돌려보자.
유리 공예, 운하 등으로 유명한 오타루, 아름다운 항구 도시 하코다테, 온천으로 유명한 노보리베츠 모두 나름의 개성과 매력을 보유한 여행지이다.
아침에 우유를 마시고 낮에 옥수수를 먹고 저녁에 카이센동을 시키는 하루가, 홋카이도 여행에서는 특별히 욕심낸 일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그 지역에서 나는 것을 순서대로 먹었을 뿐이다. 여행의 만족도가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무엇을 먹었는가에 오래 좌우된다는 것을 북해도를 가로지르며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홋카이도의 대표 관광지, 청의 호수
선명한 청록빛 물과 울창한 나무가 어우러진 홋카이도의 대표 명소 ‘청의 호수’. 자연이 만들어낸 독특한 색감이 신비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환율은 다시 오를 것이다. 872원이라는 숫자도 언젠가 지나간 이야기가 된다. 다만 넓은 밭 앞에 차를 세웠던 몇 분이나, 우유 한 잔이 왜 이렇게 다른지 일행과 한참 떠들던 저녁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미뤄둔 해외여행이 있다면, 올여름의 홋카이도 여행은 꽤 쓸 만한 핑곗거리가 되어준다. 핑계로 떠난 여행이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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