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가호'를 기다리며 읽어볼 책 10
데뷔작부터 가장 최근 장편까지. 소설과 에세이로 다시 만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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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노르웨이의 숲: 하루키의 출발점부터 사랑과 상실을 그린 대표작까지.
- 해변의 카프카·댄스 댄스 댄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하루키 특유의 기묘한 세계.
- 여자 없는 남자들·일인칭 단수: 짧은 이야기로 만나는 사랑과 기억, 음악과 환상.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달리기부터 글쓰기까지 엿보는 소설가의 생활과 직업관.
- 무라카미 T·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티셔츠에 담긴 사적인 취향부터 수십 년 만에 다시 완성한 소설까지.
3년 만의 새 장편소설 '가호'로 돌아오는 무라카미 하루키. /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의 새 장편소설 '가호'로 한국 독자를 만납니다. 일본에서는 지난 7월 출간됐고, 한국어판은 오는 10월 문학동네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제목의 가호는 그림책 작가인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여성을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죠. 하루키 특유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에서, 가호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기대됩니다.
그에 앞서 하루키의 지난 책들을 펼쳐볼까요? 맥주를 마시며 여름을 보내는 청년부터 고양이와 대화하는 노인까지,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나는 사이사이 작가의 생활도 들여다볼 수 있죠. 달리기와 음악, 여행지에서 사 모은 티셔츠가 어떻게 글쓰기와 이어지는지 발견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각 책에 적힌 연도는 국내에 처음 출간된 해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91)
하루키의 문학 세계가 시작된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이미지 출처: 예스24
하루키의 소설은 야구장 외야석에서 시작됐습니다. 1978년, 도쿄 진구구장에서 데이브 힐턴의 2루타를 지켜보던 그는 자신도 소설을 써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재즈바를 운영하던 하루키는 그렇게 첫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이듬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죠. 한국에는 1991년 번역 소개됐습니다.
소설의 무대는 1970년 여름, 바닷가의 한 도시입니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친구 '쥐'와 맥주를 마시고, 한 여자를 만나고, 지나간 일을 떠올립니다. 큰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지는 않아요. 대신 짧게 끊긴 장면들 사이로 음악과 농담,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스며듭니다. 무심하게 주고받는 대화와 사소한 일상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앞으로 그의 소설에 오래 머물게 될 정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루키의 출발점이 궁금하다면 가장 먼저 펼쳐볼 책입니다.
노르웨이의 숲 (1988)
사랑과 상실을 지나 청춘의 기억을 되짚는 '노르웨이의 숲'. / 이미지 출처: 예스24
노래 한 곡이 잊고 지낸 사람의 얼굴을 데려오기도 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그런 순간에서 시작되는 소설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비틀스의 노래를 연주한 음악을 듣던 서른일곱 살의 '나'가 젊은 날의 기억으로 돌아가죠. 친구 기즈키의 죽음, 그의 연인이었던 나오코, 그리고 미도리와의 만남이 와타나베의 청춘을 가로지릅니다. 국내에는 1988년 처음 소개됐고, 이듬해 나온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도 널리 읽혔습니다.
이 책의 여운은 누가 누구를 사랑했는지에만 있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그의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누군가를 잃은 뒤에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죠. 처음에는 인물들의 연애에 눈길이 갔다면, 다시 읽을 때는 그들이 슬픔을 견디는 방식이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읽는 시기에 따라 마음이 머무는 인물이 달라지는 책이에요.
해변의 카프카 (2003)
집을 떠난 열다섯 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의 여정을 따라가는 '해변의 카프카' 상권. / 이미지 출처: 예스24
고양이와 대화하는 노인 나카타의 기묘한 이야기가 교차하는 '해변의 카프카' 하권. / 이미지 출처: 예스24
집을 떠난 열다섯 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와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는 노인 나카타가 각자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소년의 가출을 따라가다가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사람이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죠. 두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지면서 독자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게 됩니다. 기묘한 사건이 이어질수록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점차 흐려집니다.
하루키는 과거 인터뷰에서 자신의 문학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해변의 카프카'를 꼽았습니다. 독자가 소설 속 비현실을 현실의 일부처럼 느끼길 바란다고도 했죠. 이 기묘한 세계가 태어난 장소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하와이 카우아이섬과 도쿄에서 각각 약 3개월씩 초고를 썼다고 밝혔는데요. 하와이의 여러 섬 중에서도 카우아이를 가장 좋아하며, 조용하고 평화로워 글쓰기에 집중하기 좋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쓴 초고를 다듬는 데에는 다시 1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009)
달리기를 통해 글쓰기와 삶을 돌아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이미지 출처: 예스24
하루키에게 운동화는 키보드만큼 중요한 작업 도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업작가가 된 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난 그는 체력 관리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1982년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죠. 이 책은 달리기를 축으로 자신의 생활과 글쓰기를 돌아보는 회고록입니다. 마라톤과 철인3종경기, 훈련과 체력의 변화가 한 작가의 직업적 고민과 나란히 놓입니다.
여기서 달리기는 소설을 쓰는 몸과 생활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됩니다. 오랜 시간 책상 앞에 머물며 이야기를 완성하는 일에도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니까요. 제목은 그가 사랑한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가져왔습니다. 러닝에 관심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루키가 어떻게 몸을 단련하고 하루의 리듬을 만들며 소설을 써왔는지, 그 일상의 뒷면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여자 없는 남자들 (2014)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자 없는 남자들'. / 이미지 출처: 예스24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여자 없는 남자들'은 연인이나 아내의 부재를 저마다 다르게 겪는 인물들의 사연을 담은 단편집입니다. 한국어판에는 책과 제목이 같은 표제작을 포함해 일곱 편이 실려 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배우 가후쿠가 운전기사 미사키와 대화를 나누며 죽은 아내에 관한 기억과 풀리지 않는 의문을 꺼냅니다. '예스터데이'는 비틀스의 노래와 함께 대학 시절의 우정과 연애를 불러오고, '독립기관'에서는 능숙하게 연애해온 중년의 의사가 뜻밖의 사랑 앞에서 무너져갑니다. 가까운 사이였다고 해서 서로를 온전히 알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각기 다른 이야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죠.
판본에 얽힌 읽을거리도 있습니다. 일본 초판은 여섯 편이지만, 한국어판에는 '사랑하는 잠자'가 추가됐습니다. 카프카의 '변신'을 뒤집어 그레고르 잠자가 인간으로 깨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익숙한 고전의 출발점을 바꿔놓은 이 작품까지 읽으면, 한 단편집 안에서 하루키의 서로 다른 이야기 방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라카미 T (2021)
티셔츠 108장에 얽힌 하루키의 취향과 기억을 담은 '무라카미 T'. / 이미지 출처: 예스24
이번에는 책장 대신 옷장을 열어봅니다. '무라카미 T'는 하루키가 소장한 티셔츠 가운데 108장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18편의 에피소드를 담은 책입니다. 잡지 'POPEYE'에 연재했던 글을 묶었는데요. 록 음악과 맥주, 마라톤처럼 그의 취향을 짐작하게 하는 티셔츠들이 등장합니다. 옷 한 장을 꺼낼 때마다 여행지와 사람, 뜻밖의 기억이 따라 나오죠.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1달러에 산 'TONY TAKITANI' 티셔츠입니다. 이 이름은 훗날 단편 '토니 타키타니'의 영감이 됐다고 해요.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헌 티셔츠가 소설의 씨앗이 된 겁니다. 이쯤 되면 옷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조금은 희망적인 이야기죠. 작가의 취향을 구경하다가 사소한 물건에서 이야기를 발견하는 그의 시선까지 엿보게 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016)
소설가로 살아온 시간과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풀어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이미지 출처: 예스24
소설을 읽다가 그 이야기를 만든 사람의 작업실이 궁금해졌다면 이 책을 펼칠 차례입니다. 하루키는 데뷔하던 시절부터 독창성, 문학상, 등장인물, 독자와 해외 번역에 이르기까지 소설가라는 직업을 둘러싼 이야기를 열두 장에 걸쳐 풀어놓습니다. 말투도 강연을 듣는 듯 편안해서, 책상 맞은편에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느낌이 듭니다.
눈여겨볼 점은 출판사의 의뢰로 쓰기 시작한 원고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써두었던 글들이 책으로 이어졌어요. 그래서인지 남에게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자신이 어떻게 일해왔는지 설명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집니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소설가의 자질과 창작 과정에, 독자라면 좋아했던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에 눈길이 갈 겁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글쓰기와 생활을 연결하는 하루키의 직업관도 더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일인칭 단수 (2020)
음악과 야구, 기억과 환상을 오가는 여덟 편의 단편을 담은 '일인칭 단수'. / 이미지 출처: 예스24
분명 상상해서 쓴 음반 리뷰인데, 어느 날 그 음반이 중고 레코드 가게에 나타납니다. '일인칭 단수'에 실린 단편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의 이야기입니다. 화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재즈 음악가 찰리 파커가 살아서 보사노바 음반을 녹음했다는 설정으로 가상의 리뷰를 쓰는데요. 훗날 존재할 리 없는 그 음반을 발견하면서, 장난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느닷없이 수수께끼가 됩니다.
이 책에는 음악과 야구, 오래전 만난 사람들에 관한 여덟 편의 단편이 담겨 있습니다. 일인칭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적인 추억담처럼 읽혀요. 작가의 실제 경험인지 궁금해질 만큼 친숙하다가도, 어느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죠. 방금까지 평범했던 이야기가 언제부터 이상해졌는지 되짚게 되거든요. 긴 장편에 들어가기 전, 짧은 이야기로 하루키의 세계를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도 어울립니다.
댄스 댄스 댄스 (1989)
사라진 사람들을 좇아 다시 기묘한 세계로 들어가는 '댄스 댄스 댄스'. / 이미지 출처: 예스24
제목의 경쾌함과 달리, 이 소설에는 사라진 사람들과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가득합니다. '나'는 과거에 머물렀던 호텔을 찾아 삿포로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낡았던 호텔은 거대한 고급 호텔로 바뀌어 있죠. 그곳에서 다시 기묘한 사건들이 시작됩니다. 양 사나이와 소녀, 영화배우가 등장하고, 이야기는 도쿄에서 하와이 호놀룰루까지 뻗어나갑니다. '양을 쫓는 모험' 이후 화자 '나'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춤'이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이해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도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계속 움직이는 몸짓처럼 읽히죠. 세상은 매끈하고 편리해졌는데 정작 자신이 설 자리는 찾기 어려운 기분. 그런 감각을 아는 독자라면 이 오래된 소설이 뜻밖에 지금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건의 행방을 좇는 동안, 주인공이 누구와 관계를 맺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지도 지켜보게 됩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2023)
젊은 시절 시작한 이야기를 수십 년 뒤 장편으로 완성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이미지 출처: 예스24
하루키가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데뷔 이듬해인 1980년 발표한 중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인데요. 70대에 접어든 그는 2020년 3월부터 거의 3년에 걸쳐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일본에서는 2023년 4월, 한국에서는 같은 해 9월 출간됐죠. 신작 '가호'에 앞서 발표한 장편입니다.
이야기는 열일곱 살 소년과 열여섯 살 소녀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소녀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진짜 자신이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그림자 없이 살아가고, 도서관에는 오래된 꿈이 보관돼 있죠. 소년은 소녀의 말을 따라 그 도시를 마음속에 그려갑니다. 구체적인 풍경이 하나씩 쌓일수록, 독자 역시 그곳이 소녀가 지어낸 세계인지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소인지 궁금해집니다. 젊은 작가가 처음 그렸던 도시가 수십 년 뒤 어떤 모습으로 완성됐는지, 그 벽 안으로 들어가볼 차례입니다.
하루키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익숙한 것들이 자꾸 다시 나타납니다. 음악과 달리기, 고양이와 사라진 사람들, 현실과 그 너머의 세계까지. 매번 다른 이야기인데도 어딘가 하루키답게 느껴지는 이유일 겁니다. 오는 10월, ‘가호’에서는 또 어떤 익숙하고 낯선 세계를 만나게 될까요.
Credit
- Editor 김나혜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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