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어떻게 주류가 되었는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지금 힙합의 유행은 단순한 겉멋이 아니다. | 음악,힙합,뮤직,랩,랩퍼

최근 몇 년간 힙합은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범위를 한국으로 좁히면 그 극적인 면모는 더욱 두드러진다.연봉 10억원을 돌파하는 래퍼가 늘고 있고, 힙합을 소재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계속 생겨나고 있으며, 자동차나 은행 CF를 이제 래퍼가 찍는다. 아, 한 가지 빠뜨릴 뻔했다. 설현이 사귄 남자는 지코였다.장난하느냐고? 아니, 지금 난 진지하다.당대 가장 주목받는 여성 스타가 사귄 남자가 래퍼였다는 사실이 힙합의 지위 상승과 과연 무관할까. 테디와 한예슬, 최자와 설리, 지코와 설현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서 가십거리 이상의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그러나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힙합의 득세는 사실 유행의 측면도 있다. 모든 현상은 늘 유행의 요소를 일부분 품고 있고, 모든 유행은 언젠가는 다른 유행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즉 지금 힙합이 가지고 있는 힘과 영향력도 언젠가는 거품이 빠질 것이다.하지만 힙합의 유행이 지났다고 힙합이 망할까?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힙합을 좋아하고 힙합으로 밥벌이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힙합이 앞으로 쉽게 망할 것 같지는 않다.이유는 간단하다.현재의 10대가 내면화된 음악이기 때문이다. 록 키드, 메탈 키드가 아니라 랩 키드, 힙합 키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세월이 흐르며 그들이 듣는 힙합 노래의 개수가 줄어들지는 모른다. 하지만 힙합은 음악인 동시에 문화이며 삶의 방식이다. 가치관이고, 태도이고, 취향이기도 하다. 10대 시절 내면화한 것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한편 무언가를 내면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이 자신만의 고유한 멋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힙합의 득세가 유행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유행이 전부도 아니다. 힙합은 유행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성을 분명히 움켜쥐고 있다.지금, 한국에서, 왜 하필 힙합일까. 나는 그 속에 ‘필연’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한마디로 힙합은 지금의 젊은 세대를 가장 강력하게 반영하는 음악이다. 부모님으로 대변되는 세대와는 많이 다른 세대 말이다.부모 세대는 판검사가 곧 인생의 성공이었고, 먼 미래에 잘살기 위해 기꺼이 현재를 희생했으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다르다. 각자의 꿈도 너무나 다양해졌고, 보장받지 못할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을 즐기려고 하며, 할 말은 확실히 하고 싶어 한다.이런 그들에게 힙합은 “한 번뿐인 인생, 현재를 즐기며 너의 꿈을 좇으라”고 말하고, “너를 싫어하는 자들에게는 가운뎃손가락을 내밀라”고 권유한다.래퍼들이 무대 위에서 “내가 최고, 너는 가짜”라고 외칠 때 젊은이들은 래퍼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또 래퍼들이 “밑바닥에서 내 힘으로 정상의 자리까지 왔다”고 웅변할 때 그들은 그 어떤 음악보다 거대한 에너지를 흡수하며 자기 삶의 전의를 다진다.이런 맥락에서 일리네어 레코즈는 매우 중요하고 상징적인 존재다. 도끼, 더 콰이엇, 빈지노는 미국 힙합이 지닌 고유한 태도와 멋을 고수하면서도 한국 엔터테인먼트업계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훗날 한국 힙합 역사를 돌아본다면 일리네어 레코즈의 성공이 거대한 분기점 중 하나가 될 것이 확실하다.단적으로 더 콰이엇의 노래 ‘1 Life 2 Live’를 들어보자. 이 노래의 가사는 힙합이 한국의 젊음을 뒤흔든 이유를 설명할 때 아주 유용한 종합 선물 세트다.힙합은 음악가 자신과 그의 음악이 일치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힙합의 세계에서는 래퍼가 자신의 가사를 직접 쓰지 않으면 ‘가짜’ 취급을 받는다. 노래를 통해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래퍼에 대해 따로 알아보지 않고 노래만 들어도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겪어왔는지 대략 알 수 있다.예를 들어 약물중독으로 몇 년간 활동을 중단했던 에미넴이 컴백 후 부른 노래는 ‘Not Afraid’였다.“난 약물 때문에 삶의 밑바닥으로 추락했었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아. 만약 이 노래를 듣는 네가 지금 삶의 밑바닥에 있다면 나도 이렇게 해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아마 사람들은 힙합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음악은 뭔가 다르다고. 이건 뭔가 ‘진짜’ 같다고.요즘 나는 사회학자 김홍중과 함께 힙합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김홍중은 한국의 청년 세대를 ‘생존주의 세대’로 정의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 청년에게 일상은 곧 서바이벌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고차원의 경쟁 세계가 열린다. 경쟁의 불안과 긴장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기성세대는 흔히 청년 세대를 ‘진정성’과 ‘낭만’에서 괴리된 안타까운 세대로 바라보곤 한다. 다시 말해 청년 세대는 살아남기 바빠 진정성을 고민하지도 못하고 낭만을 즐기지도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힙합처럼 비도덕적이고 허세 가득한 음악이나 즐기는 것이라고.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진정성은 그들 기준에 입각한 것일 뿐이다. 청년 세대에게 생존과 진정성은 별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곧 진정성이다.래퍼들이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드러낼 때, 기성세대에게 이것은 ‘속물주의’지만 청년 세대에게는 생존이자 진정성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속물주의, 혹은 배금주의가 진정성과 만나며 전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힙합이 말한다.“너희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제쳐야 하는 것, 생존하기 위해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어 하는 것, 부끄럽거나 잘못된 게 아니야. 그게 바로 너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너희의 진정성인 거야.”재미있는 점은, 힙합은 탄생 초기부터 늘 이런 태도를 견지해왔다는 사실이다.“이 게토를 탈출하려면 빨리 돈을 벌어야 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할 거야” “모든 것은 경쟁이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지” 등.게토의 흑인으로부터 탄생한 힙합은 지난 몇십 년간 늘 이래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시대 자체가 이렇게 변했다. 한국의 현재를 휘감고 있는 음악이 힙합인, 힙합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