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냐라는 역사로 재건한 숲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자연과 윤리와 비즈니스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했다. | 여행,패션,브랜드,제냐,트래블

20년, 3000만 평, 50만 그루오아시 제냐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재단이 20년 동안 3000만 평의 산에 나무 50만 그루를 심어 만든 공공 생태 공원이다.창업자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1930년부터 이탈리아 북부 비엘라 지역 트리베로에 설립한 제냐 울 공장 부근의 숲을 재건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오아시 제냐는 그런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산물이다. 비용과 노동력을 들여 만든 인위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야생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오아시스가 이런 모습일까. 그곳은 마치 멸종된 동물들이 모여 살 것 같은 유토피아적 평화가 존재한다. 시간이 쌓은 자연의 생생함도 있다. 불현듯 비현실적이기도 했다. 공원을 굽이굽이 휘감은 26킬로미터 길이의 ‘파노라믹 제냐’를 따라 이동했다.눈앞에 펼쳐진 비엘라알프스의 능선이 절경이었다. 숲속 곳곳엔 젊은 예술가들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아름다운 공원에 극적인 순간을 부여하는 것만 같았다. 오아시 제냐에서 가장 높은 비엘몬테 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차를 타고도 30분은 족히 걸렸다. 엄청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거리다.산 정상에는 통나무 산장처럼 소담한 호텔이 있다. 벽난로를 피운 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주 잘 숙성된 프로슈토를 먹는 것은 오아시 제냐의 풍광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경험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는 제냐의 신념이 이런 감정의 연속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로세코 한 잔에 취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과거, 현재, 문화오아시 제냐의 바로 아래에는 까사 제냐가 있다. 제냐 울 공장과 한 울타리를 공유하며 제냐의 모든 순간을 보존한 일종의 뮤지엄이다.1930년대에는 제냐 가문의 저택이었다. 밖으로 난 창마다 보이는 경치는 출중하게 아름답고, 작은 경첩과 사소한 손잡이마저 고급스럽다. 하지만 과시적으로 보이진 않았다.전시 공간에선 문화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이어서 100년 역사를 요약한 순간들을 단숨에 탐험했다. 2층에 오르면 19세기부터 이어진 원단 샘플 책, 그동안의 광고 이미지와 기사를 수집한 책 등 온갖 책으로 가득 채운 방이 나온다. 몇 권만 들춰봐도 그 세밀한 기록에 놀라게 된다.최고급, 장인 정신, 엄격함‘제냐 원단’은 최고급품의 대명사다. 까사 제냐 옆, 제냐 울 공장 ‘라니피시오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는 장인 정신으로 엄격하게 만든 제냐 원단이 매일같이 탄생한다.이 공장에서는 눈으로 식별하기 힘든 가녀린 양 털 한 올이 실 한 가닥이 되고, 이 실이 원단으로 짜이는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다. 제냐의 핵심이 담긴 곳인 만큼 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성역이다.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생산하는 최고급 원단은 다른 브랜드와 제냐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까다롭게 선별한 천연 섬유만 공수해 고유의 기술로 다듬고 매만진다. 개발 단계뿐 아니라 완성한 원단의 품질 검사 공정에도 장인 정신을 그대로 반영한다.미세한 흠을 수정하는 과정은 놀랍게도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실과 바늘, 눈과 감각으로. 수작업 과정 중에서도 더욱 특별했던 건 캐시미어 원단을 가공하는 작업이다. 100년 전 방식 그대로 가시가 돋친 말린 식물로 빗질하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광택이 생겨난다.물론 더 미세한 작업을 위해 최첨단 기계가 가세한다. 전통과 첨단의 조화가 제냐 원단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족, 자연, 공헌오아시 제냐와 까사 제냐, 라니피시오 제냐가 있는 트리베로 지역은 ‘제냐 마을’이다. 각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기초 생활환경이 잘 갖춰져 있었다. 이는 창립자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가치관을 이어가는 부분이기도 하다.대부분의 이탈리아 회사가 그렇듯 제냐도 가족 회사다. 1910년 이 마을에서 창립 이후 현재까지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제냐 가문은 끈끈한 가족애가 기업 경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그들이 가족애 못지않게 강조하는 것이 공익이다. 창립자는 브랜드 설립 초기부터 공익사업에 적극적이었다. 늘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평생 목표였다. 2000년 제냐 재단을 만든 이후 사회 공헌 활동에 시간과 비용을 더욱 아끼지 않는다.결정적 순간에르메네질도 제냐에게 자연과 윤리와 비즈니스는 본질적으로 같았다. 창립자의 머릿속에서 세 가치가 하나로 완전해지는 순간. 창립자의 비전을 따른 후손들의 충실한 시간들. 작은 원단 공장에서 시작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한나절 제냐 마을을 둘러보며 그런 가치를 읽어내는 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제냐의 결정적 순간들은 트리베로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