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의 2017 시즌 출발은 초라했다. 마무리 투수로서 이닝을 깔끔하게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홈런을 허용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블론 세이브가 늘어났다. 4월 초에는 평균 자책점이 10점대까지 치솟았다.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첫째는 빠른 공의 위력 감소. 공의 속도가 나지 않았다. 오승환의 올 시즌 평균 구속은 140km대 중·후반에 머물렀다.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로서는 불합격점. 그 탓에 좀처럼 투 스트라이크 이후 승부구로 쓰지 못했다. 오승환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 승부구로 빠른 공을 선택한 비율은 한국과 일본 리그에서 한때 80% 이상이었다. 올 시즌 초반에는 50% 아래로 뚝 떨어졌다.
대신 슬라이더의 비중이 확연히 늘어났다. 슬라이더는 지난 시즌 오승환의 좋은 성적을 이끈 일등공신이다. 특별히 크게 꺾이거나 빠르지는 않더라도 꺾이는 시점이 상대적으로 타자에게 가까워 빠른 공과 구별하기 어렵다. 구종이 다양하지 않음에도 슬라이더라는 훌륭한 유인구가 제몫을 다한 덕에 오승환이 메이저리그에서 마무리 투수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 타자들이라고 넋 놓고 당하지만은 않을 터. 구위가 이미 노출된 데다 승부구까지 예측 가능해지면서 타자들에게 통타당하기 일쑤였다.
문제는 5월에 들어서며 시나브로 해결됐다. 빠른 공의 위력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평균 구속이 시속 150km를 넘나든다. 최고 구속이 시속 93~94마일, 150km대 중반을 찍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성기와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시즌 초반과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수치다.
오승환이 던지는 공의 힘은 회전수에서 나온다. 현재 오승환이 던지는 빠른 공의 분당 회전수(rpm)는 2500~2600회. 일반적인 메이저리그 평균이 분당 2300~2400회이니 메이저리그 평균 이상이다. 한때 오승환 공의 회전수는 정상급이었다. 한국에서 한창 활약하던 때는 분당 4000회를 넘기도 했다.
회전수가 높은 공은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공을 던지면 물리 법칙상 조금씩 아래로 떨어지게 마련인데 높은 회전수는 빠른 공이 아래로 떨어지는 걸 막아준다. 그 때문에 맹렬하게 회전하는 빠른 공은 타자에게 실제 속도보다 더 빠르게 느껴진다. 심지어는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라이징 패스트볼(떠오르는 빠른 공)’이라는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용어가 심심찮게 쓰이는 까닭이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 타자들은 오승환의 빠른 공에 속수무책으로 물러나며 (실제로는 시속 95마일을 넘지 않았음에도) 100마일이 넘은 것으로 착각했다. 우리나라 타자들은 ‘공 끝이 두 번 튕긴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 이유가 회전수다.
비결이 뭘까? 전문가들은 손가락과 손목의 힘, 그리고 엄지를 포함해 거의 네 손가락으로 공을 쥐는 독특한 빠른 공 그립이라고 분석한다. 워낙 손아귀 힘이 좋은 데다 네 손가락으로 공을 긁어내리듯 던지기 때문에 회전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 빠른 공의 구위가 전성기와 어찌어찌 비슷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오승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제구력이었다. 거기 더해 빠른 공의 구위까지 살아났다. 한때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가 지금 완벽에 가까운 마무리 솜씨를 보여주는 이유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 오승환의 장점은 제구력, 빠른 공의 위력, 빠른 공과 구별하기 어려운 슬라이더였다. 약점은 던질 수 있는 공의 종류가 적다는 점이었다. 그는 직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 유형 투수다. 컨디션이 저조하거나 볼 배합이 간파되면 여지없이 통타당하곤 했다.
올 시즌 초만 해도 그의 문제점이 가장 좋지 못한 형태로 드러났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직구 구위가 돌아온 후에도 그 문제가 여전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을 극명하게 알려주는 수치가 바로 삼진 비율이다. 오승환의 지난 시즌 삼진 비율은 11%가 넘었다. 이번 시즌에는 5월이 지났음에도 7%를 오르내린다.
여기에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지표가 있다. 소프트 백분율(SOFT%)이다. 소프트 백분율은 맞은 타구 가운데 약한 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5월까지 오승환의 소프트 백분율은 30%가 넘었다. 지난 시즌 15% 남짓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치솟은 셈이다. 맞은 공 중 약한 타구가 많다는 것은 좋은 신호다. 그러나 달리 보면 지난 시즌까지는 방망이에 대지도 못하던 공에 방망이가 닿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삼진 비율이 낮아지고 소프트 백분율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그 혐의는 더 짙어진다. 빠른 공의 위력이 돌아왔어도 방망이에 맞힐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무리 투수에게는 삼진 능력이 꼭 필요하다. 마무리 투수는 위기에서의 등판이 잦다. 투수가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삼진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삼진으로 타자를 돌려세우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슬아슬한 9회 같은 상황에서 삼진과 땅볼 허용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일단 그라운드로 공이 구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터무니없는 야수의 실수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 가운데는 빠른 공 투수가 기교파(피네스) 투수보다 훨씬 더 많다. 삼진 잡는 능력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무리 투수의 삼진 비율이 낮아진 건 그만큼 중요하다. 오승환의 삼진 비율을 보며 ‘투 피치의 한계가 드러난 것 아닌가?’라는 걱정을 할 만했다. 그런데 6월의 오승환은 그런 걱정을 말끔히 씻어냈다. 제3의 구종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오승환은 이제 체인지업을 쓰기 시작했다. 제3의 구종을 추가해 구종이 단조롭다는 약점을 보완했다. 지난 시즌 오승환의 체인지업 구사 비율은 7% 안팎, 한 자리 숫자였다. 최근 그의 체인지업 비율은 10%를 넘어 두 자리 숫자 대열에 합류했다. 7과 10이라면 숫자상으로는 차이가 3일 뿐이니 적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즌 전체 투구의 비율이라면 이는 매우 큰 차이다. 이제 오승환의 체인지업은 어쩌다 던지는 공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시즌 공 10개를 던졌을 때 직구 6개, 슬라이더 3개, 체인지업은 끼어들까 말까 했다면 올해는 한두 개는 꼭 끼어든다.
평생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지던 투수가 구종 하나를 새로 개발하는 작업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무척 어렵다. 오승환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결과도 바로 드러났다. 헛스윙과 삼진 비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지난 5월 18일까지 오승환의 공에 대한 타자들의 헛스윙 비율은 11.8%. 그런데 최근 5경기에서 17.4%까지 올라갔다. 오승환은 시즌 첫 18경기에서 15개의 삼진만을 잡았다. 그런데 최근 5경기에서 잡은 삼진이 11개다. 경기당 1개가 안 되던 삼진 수치가 두 배 넘게 치솟은 것이다.
새 공을 장착한 덕분에 좌타자에 대한 약점까지 어느 정도 보완됐다. 특히 고무적인 일이다. 오승환은 올 시즌 초반 왼쪽 타자들에게 무척 고전했다. 피안타율이 3할 2푼에 달했다. 그러다 좌타자에게 체인지업을 구사하며 피안타율을 낮췄다. 동시에 평균 자책점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한때 두 자리 수를 넘던 게 2점대까지 떨어졌다.
평생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지던 투수가 구종 하나를 새로 개발하는 작업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무척 어렵다. 오승환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오승환의 약점은 야구 선수가 나이가 들며 마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빠른 공 회전수의 감소, 공의 속도 저하. 그는 구종을 개발하며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 약점을 극복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야구를 사랑한 사람으로서 나는 오승환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달리 없다. 본인뿐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한 바로 그 사건 때문이다. 마크 맥과이어에게 평생 ‘약물’이라는 얼룩이 따라다닐 것처럼, 아마도 오승환은 ‘도박’이라는 그림자를 평생 떼어낼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야구장에 해가 드는 동안에는. 그러나 그 점을 빼면 지금 오승환은 어느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뒤늦게 메이저리그에 합류해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로 신인 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드러난 약점을 하나둘씩 극복해가며 세이브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좀 창피하지만 밝힐 일이 있다. 오승환과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에 건너간 강정호, 김현수, 이대호 등의 선수들 가운데 오승환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낮을 거라 생각했다. 근거는 단조로운 구종이었다. 오승환은 젊은 몸에서 나오는 빠른 공으로 한국과 일본까지는 평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넘은 나이로 빠른 공이 횡행하는 메이저리그에서 마무리 투수로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다. 도박 파문으로 인한 스스로의 정신적 피해도 부진을 부채질할 거라고 봤다.
지금 시점에서 그 판단은 완벽한 잘못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시즌 오승환은 슬라이더의 구사 비율을 높임으로써 연착륙에 성공했다. 이번 시즌 오승환은 체인지업의 구사 비율을 높이고 직구 위력을 되찾음으로써 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다시금 성공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그야말로 놀라운 진화 능력이며 정신력이다.
지난 시즌 오승환이 기록한 세이브는 모두 32개였다. 평균 자책점은 2.13, 이닝당 주자 허용률(WHIP)은 1.03이었다. 마무리 투수로서 더할 나위 없는 수치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세이브는 모두 13개, 평균 자책점은 2.77이며 이닝당 주자 허용률은 1.38이다. 지난 시즌보다 좀 더 높아졌지만 시즌 초반의 참혹한 부진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낮아진 수치다.
오승환이 저지른 한때의 실수는 여전히 가증스럽다. 하지만 그의 노력만큼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야구 선수로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 강점을 더욱 가다듬으려는 노력, 야구에 집중하려는 정신적 노력. 이 세 가지 노력이 계속된다면 오승환은 한국 선수로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놀라운 기록을 세울 게 틀림없다. 내년 시즌에는 100세이브 벽을 넘을 게 거의 확실하다. 참 대단한 오승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