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의 남자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그 남자들이 아오모리에서 본 것들. | 여행,아오모리

갈색 니트 살바토레 페라가모. 카키색 반바지 YHC. 갈색 니트 살바토레 페라가모. 카키색 반바지 YHC.“저, 왜 여행을 떠나요?”“괴로우니까.”“당신이 (괴롭다는 것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라 전혀 신뢰할 수 없어요.”(중략)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장난치지 마. 너도 조금은 알고 있겠지? 이제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어. 말하면 비위에 거슬려. 어이, 나는 여행을 떠날 거야.”일요일 오전 보잉 737-900의 왼쪽 맨 뒤 창가 자리에서 이 구절을 읽었다. 한국 인천과 일본 아오모리를 오가는 KE 767 안이었다. 여행 기사를 위한 출장길이었다. 저런 구절이 있는 책을 고른 이유 역시 아오모리였다. 저 대화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본편의 첫 문장이다. 쓰가루는 아오모리 현에 속하는 고장의 이름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아오모리가 낳은 최고의 작가다.아오모리까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인천-도쿄 구간과 소요 시간이 비슷하다. 일본에는 20번 가까이 와봤으나 도쿄 동쪽으로는 처음이었다. 처음 가본 아오모리는 도쿄보다 훨씬 북쪽에 있으며 훨씬 조용하고 훨씬 한적하며 무엇보다 훨씬 나무가 많았다. 그러면 여기서 무엇을 할까? 뭐가 좋을까?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 있다.특별한 동행이 있었다. 사진가 조세현과 미남 배우 성훈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 조세현은 아오모리에서도 VIP다. 아오모리를 주제로 한 사진집도 낸 적이 있다. 그는 아오모리에만 30~40번을 왔을 정도로 아오모리에 정통하다. 배우 성훈은 출연 드라마의 연이은 흥행으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다. 조세현은 아오모리의 풍경과 함께 성훈을 담는 화보를 촬영한다. 성훈은 아름다운 아오모리의 풍경을 배경으로 화보 모델이 된다. 나는 그 틈에서 이것저것 보고 듣고 여행 원고를 적는다. 이런 구성이었다.•••착륙 직전 저공에서 본 아오모리는 숲뿐이었다. 공항도 울창한 숲속에 있었다. 국제선 공항 입국 카운터의 사무원은 둘뿐. 도림동 동사무소 민원 담당 인력보다 적었다. 아오모리는 그만큼 수수했다. 우리를 기다리던 버스 역시 숲속을 한참 달렸다. 어디까지 가나 싶을 정도로 깊은 산속이었다. 버스가 돌아나갈 수 있나 싶은 헤어핀 커브가 몇 개 포함된 길을 한 시간쯤 달려 첫 목적지에 도착했다.이번 출장의 숙소인 오이라세 계류 호텔이었다. 일본의 유명 호텔 체인 호시노 그룹에서 만든 고급 숙소였다. 이번 출장에서 느낀 아오모리는 물과 숲이었다. 물소리와 숲의 감촉. 오이라세 계류는 총구간 67km에 이르는 오이라세강의 상류 계곡이다. 강폭이 좁고 유속이 빠르며 작은 폭포가 많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계속 들렸다. 계곡 주위엔 낮에도 햇빛을 가릴 정도로 높은 나무가 빽빽하게 뻗어 있었다. 깨끗하고 차가운 숲과 물이 아오모리만의 감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다만 “나는 도호쿠 지방의 추위를 잊고 있었다”라는 의 구절을 진작 읽고 왔어야 했다. 소설 속의 기후는 5월에도 솜바지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웠다. 6월에도 마찬가지였다. 시내라면 모를까 오이라세 계류가 있는 깊은 숲속은 바람막이를 걸쳐야 할 정도로 서늘했다. 기분 한번 내보겠다고 첫날에만 반바지를 입었다가 돌아갈 때까지 반바지를 꺼내지 않았다.•••아오모리가 속한 일본 혼슈의 동북쪽 지방을 도호쿠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시골에 속한다. 지금도 농수산업의 1차 산업과 여행업 등 3차 산업이 지방의 주 산업이다. 에는 다자이 오사무가 친구 N을 만나 아오모리의 향토사 문헌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문헌에 따르면 1615년부터 1940년까지 아오모리에는 흉작과 대흉작이 60번 찾아왔다. 5년에 한 번 정도는 흉작이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긴 아오모리는 일본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온다. 농사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아오모리 사람들은 사과라는 특산물을 탄생시켰다. 일본인에게 인식된 아오모리의 이미지 역시 사과다. 아오모리 어디서든 사과를 볼 수 있다. 이번 출장에서 먹은 사과 음식은 다음과 같다. 사과 주스, 사과 칩, 생사과, 사과 소스 연어 샐러드, 사과 소스 보통 샐러드, 사과 파이, 사과 캐러멜, 사과술, 사과 쿠키. 수준급의 뷔페를 운영하는 오이라세 계류 호텔의 레스토랑 이름도 아오모리 링고 키친. 링고는 일본어로 사과다. 사과 1500개로 입구를 장식했다고 했다.화려한 반팔 니트 펜디. 흰색 반바지 제이리움. 선글라스 알티에. 화려한 반팔 니트 펜디. 흰색 반바지 제이리움. 선글라스 알티에.다자이 오사무는 ‘아오모리 하면 사과’라는 세간의 인식에 한마디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원래 작가란 한마디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뭐든 한마디 하는 사람이다. 에 따르면 아오모리에 처음 사과를 심은 때는 19세기다. 미국인에게 종자를 받고 프랑스 선교사에게 프랑스식 전지법을 배워 수확량이 늘어났다. 아오모리 특산물로 전국에 알려진 건 20세기 초반 다이쇼 시대부터다. 여기서 한마디 붙인 아오모리 토박이 다자이 오사무가 꼽는 이곳의 진짜 특산물은 노송나무다. 17세기부터 일본의 모범적인 임업 제도로 꼽힐 정도로 품질 좋은 노송나무 숲이 있다고 한다. 사과든 노송이든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 나무다. 서핑용 파도처럼 여행자가 당장 즐길 수 있는 종류의 특징이 아니다.그러니 아오모리에서는 깨끗한 자연을 배경 삼아 꿈 같은 시간을 보내면 된다. 예를 들어 카누. 오이라세강의 수원지인 도와다호에서는 카누를 타고 호수를 구경할 수 있다. 도와다호는 아오모리에서도 산속 깊숙이 들어가야 나오는 호수다. 면적이 60km2에 가까울 정도로 넓다.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라고 한다. 게다가 산속에 있으니 굉장히 깨끗하다. 민물의 깨끗함을 가늠할 때는 투명도라는 단위를 쓴다. 도와다호의 투명도는 9m다. 수심 9m까지는 바닥이 보인다는 뜻이다. 맑은 날이라면 투명도가 20m까지 올라간다. 그만큼 깨끗한 물은 컵 속처럼 잔잔하다. 거기서 사방을 둘러싼 나무를 바라보며 천천히 노를 저어 나아갈 수 있다. 기분 좋은 일이다.도와다호의 카누 체험을 돕는 노스 빌리지에는 야스라는 남자가 있었다. 카누와 현지 자연 전문가다. 카누를 함께 타거나 나란히 카누를 타고 도와다호의 자연을 설명해주는 일을 한다. “시골 사람입니다만” 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지만 야스는 꽤 세련된 느낌으로 입고 있었다. 파타고니아 재킷에 아웃도어 타이츠 위로 입은 반바지, 말하자면 산악 쿠튀르 같은 룩이다.카키색 헨리넥 티셔츠 코스. 회색 바지 조르지오 아르마니. 로퍼 어그. 카키색 헨리넥 티셔츠 코스. 회색 바지 조르지오 아르마니. 로퍼 어그.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야스가 반색했다. 거기 친구가 있다고 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서울 어딘가에서 국숫집을 한다고 했다. 친구 이름은 와카코, 가게 이름은 오비야. 야스는 페이스북으로 오비야의 위치를 찾아주었다. 홍대 수노래방 근처에 있는 유명 음식점이었다. 나는 감탄했다. 아시아가 이렇게 가깝게 이어져 있구나. 세상의 끝 같은 호수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해 오랜 친구의 안부를 알 수 있구나. 그리고 사랑은 대단한 거구나. 세상의 끝 같은 호수에서 서울시 마포구의 번화가로 나와 메밀국수를 뽑는 일도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거구나. 야스에게 “서울에 돌아가면 오비야에 가볼게요”라고 말했다. 그는 기뻐하며 “와카코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도와다호의 야스에게서”라고 말했다. 도와다호의 야스라,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설정이다.여기서 성훈이 카누 타는 장면을 촬영했다. 성훈은 좋은 배우이자 완성된 인간처럼 보였다. 늘 친절하고 사람들을 잘 챙겼다. 촬영할 때도 무척 열심이었다. 카누를 들고 나가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야스가 카누를 들어 올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성훈은 처음에는 조금 휘청거렸지만 금세 요령을 익혔다. 그는 금방 멋있게 카누를 쓱쓱 들어 올렸다. 둘이 촬영하는 동안 나도 한번 들어 올려보려다 허리가 나갈 뻔했다. 어린 나무처럼 홀쭉한 야스도 잘 들어 올렸는데, 그건 굉장한 요령의 결과였다. 배우는 대단한 직업이었다.오이라세 계류 호텔 안에는 조용한 온천이 있었다. 촬영 현장을 오가며 틈틈이 온천에 몸을 담갔다. 온천 역시 계곡 바로 옆에 있었다. 예의 그 물소리가 들렸다. 도와다호를 출발해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오이라세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건 두말할 나위 없는 호사였다. 사람이 없을 때는 책을 가져가서 좀 읽기도 했다. 역시 다자이 오사무였다.식재줄무늬 반팔 니트 제이리움. 흰색 바지 시리즈. 스니커즈 에코. 식재줄무늬 반팔 니트 제이리움. 흰색 바지 시리즈. 스니커즈 에코.•••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짧고 복잡했다. 그는 아오모리현 기타쓰기루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편만큼 타고난 머리도 좋았던 모양인지 아오모리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도쿄 대학 불문과에 입학했다. 시골 귀족 출신의 엘리트 소년이었던 셈이다. 거기 더해 다자이는 예민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글을 써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예민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다자이는 20대 초반부터 자살을 시도했다. 공산주의에 빠져 자신의 귀족 계급에 대해 고뇌했다고 한다. 예민한 고민이다. 만나던 여자와 동반 자살 시도도 세 번. 한 번은 여자만 죽고, 한 번은 둘 다 안 죽고, 마지막에서야 둘 다 죽었다. 문재가 출중할 뿐 아니라 문제도 많은 인간이었다.그러거나 말거나. 뛰어난 작가의 가장 큰 특권은 작품으로만 기억될 수 있는 권리다. 에서의 다자이 오사무는 자아의 어두움을 유쾌한 태도로 뛰어넘는다. 는 다자이가 1인칭으로 여행을 가는 시점으로 쓴 소설이다. 여기서 다자이의 시골 귀족 자아는 무척 건강하게 작동한다. 고향을 설명하고, 어떤 부분을 비판하고, 어떤 부분을 억울해하면서 다자이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 애정 표현 방식은 기분 좋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깨끗하다. 도와다호에서 빠져나와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오이라세강의 강물처럼.아오모리의 자연 속에서 를 읽는 건 호사였다. 6월의 아오모리는 어디서든 짙은 초록색을 볼 수 있다. 에서 다자이가 “아오모리는 겨울에도 푸르다”고 말한 대로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를 통해 100년 전의 시골 귀족 출신 작가와 100년 후의 한국 남자는 비슷한 것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것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될 수 있다.이 외에도 아오모리로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는 많다. 아오모리엔 한국 남자들도 좋아할 정도로 훌륭한 골프 코스가 있다. 요금도 별로 안 비싸다. 오이라세 계류 호텔을 비롯해 수준급의 온천 호텔도 있다. 맑고 넓은 호수는 바다보다 훨씬 보기 귀하다. 오이라세 계류 호텔 주변의 하이킹 코스는 ‘아름다운 일본의 걷고 싶은 길 5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음식도 맛있다. 사과가 전부라면 추천하기 곤란하겠지만 아오모리 식재료의 세계는 넓다. 아오모리는 가리비로도 유명하다. 가리비를 낚시해서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다. 아오모리현의 오마에서는 일본 최고의 참치가 잡힌다.여행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아오모리와의 직항편이 있다는 건 아시아가 얼마나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지에 대한 증거다. 한국 여행객은 아오모리 여행 시장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류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오모리시청 홍보과 과장 아라키 씨는 영화배우 남지현의 팬이다. 아오모리 국제공항에서는 인천과 톈진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뜬다. 일주일에 세 번 오가는 대한항공이 항공편을 늘리거나 줄이는 건 아오모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아오모리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시청 공무원이 떠올린 사람은 자국의 사진가가 아니라 한국의 조세현이었다. 조세현은 라인을 통해 도호쿠 지역신문의 도오 일보 뉴스를 매일 받아본다. 아시아의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날까? 뭔가를 찾거나 갖고 싶어서가 아닐까? 괴로울 때 우리는 괴로움을 잊고자 어딘가로 떠나려 한다. 모두 어딘가로 떠나 뭔가를 찾아내고 돌아온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그 전과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 뭐가 달라졌는지 몰라도, 확실한 뭔가를 바로 알 수는 없다고 해도. 그게 여행의 가장 근본적인 효용일지도 모르겠다.아오모리는 뭔가 찾아내기 좋은 여행지다. 울창한 숲과 손대지 않은 자연이 있다. 보통 이런 곳에는 숙소에도 손을 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오모리에는 손대지 않은 자연 속에 굉장히 고급스러운 숙소가 있다. 자연 속의 숙소가 좋으면 숙소 밖에서는 할 게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오모리에서는 할 게 많다. 뜨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 긴 바지를 입고 일본의 아름다운 길 500선에 속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야스와 함께 투명한 호수에서 하염없이 노를 저을 수도 있다. 여름의 아오모리에서는 이 모두를 할 수 있다. 이런 곳이 인천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정도 거리라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의 마지막 문장이 이 원고의 마지막과도 잘 어울릴 듯해 인용한다. “아직 더 쓰고 싶은 것이 이것저것 있지만 쓰가루의 생생한 분위기는 이제 거의 다 이야기한 듯싶다. 나는 허식을 부리지 않았다. 독자를 속이지도 않았다. 독자여 안녕! 살아 있으면 또 훗날. 힘차게 살아가자. 절망하지 마라. 그럼, 이만 실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