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로부터 온 집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스위스 하우스가 보여주는 스위스의 국가 브랜드 전략.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이미지가 명확한 국가 중 하나다.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것을 생각해보자. 눈, 알프스, 초콜릿, 시계, 스위스 칼, 치즈, 퐁뒤, <사운드 오브 뮤직>, 독재자의 비밀 계좌 등등이 떠오른다. 그럼 이제 유명한 스위스 사람을 생각해보자. 셋을 세는 동안 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을 거라는 데 스위스 초콜릿 하나쯤은 걸 수 있다. 셋, 둘, 하나. 아마 잘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도 알 법한 이름은 로저 페더러 정도다.

이 사실은 스위스의 중요한 특징과 연결된다. 스위스는 스위스라는 국가 자체가 여느 개인보다 유명하다. 따지고 보면 다 국가가 개인보다 유명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스위스는 조금 다르다. 보통 이미지가 확실한 국가는 그 국가의 유명인과 어느 정도 이미지가 배분된다. 자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윈스턴 처칠이나 데이비드 베컴은 그 자체로 영국이다. 카를라 브루니는 프랑스, 앙겔라 메르켈과 미하엘 슈마허는 독일이다. 반면 스위스를 유명하게 만든 건 이 나라의 환경 혹은 산물이다. 산, 눈, 자연, 금융, 정밀기계 같은.

스위스는 실체가 없는 국가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굉장히 주력한다. 국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프레젠스 스위철란드’라는 정부 부처를 만들어서 활동한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에스콰이어> 등의 한국 매체를 초청해 스위스의 새로운 국가 이미지를 보여준다. 산, 자연, 눈, 치즈 말고도 스위스의 다른 매력이 많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미지가 중요한 고가 사치품 브랜드에서 할 법한 일을 국가가 하고 있다.

물론 높은 생활수준에 오른 국가들은 모두 스위스처럼 국가가 스스로 이미지를 만든다. 각국의 관청에는 모두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위스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스위스처럼 앞뒤 맥락이 확실하면서도 깔끔하게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국가는 없다. 맥락이 확실하고 이미지에 빈틈이 없다는 면에서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는 이들이 파는 물건과도 비슷하다. 초콜릿, 정밀기계, 금융 상품….

융프라우요흐-톱 오브 유럽 해발 3454m까지 올라갈 수 있는 스위스의 관광 열차.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스키, 관광, 숙박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특히 유명한데, 실제로 한국이 이 열차의 세계 1위 시장이다. 매점에서는 신라면을 판다.

스위스가 만들어서 세계로 판매하는 물건엔 공통점이 있다. 고급 인력과 생산 기술이라는 무형의 요소가 작용해 높은 마진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2000만원쯤 하는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 기본 모델은 100%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다. 이 시계를 구성하는 스테인리스스틸의 원가는 얼마일까? 1만원 정도 할까?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다. 스위스의 사금융 시스템, 아프리카에서 온 카카오 열매와 신선한 스위스 우유로 만드는 스위스 초콜릿은 모두 숙련공의 노동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근거 삼아 비싼 가격을 주장할 수 있다. 비싼 가격은 시장에 대한 도전이다. 다른 물건보다 비싼 이유를 납득시켜야 한다. 스위스라는 국가 이미지는 이 물건의 비싼 가격을 납득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정부는 훌륭한 이미지를 만든다. 기업은 그 이미지를 기반으로 사업을 번창시킨다. 좋은 복식조다.

올림픽이나 엑스포는 국가 이미지라는 그림을 펼치기에 최적화된 행사다. 이건 말 그대로의 국가 대항전(올림픽) 혹은 국가별 장기 자랑(엑스포)이다. 국가 이미지를 만드는 정부 부처가 있는 나라에서 이 중요한 행사에 가만있을 리가 없다. “스위스는 하우스를 모든 이들에게 개방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스위스 외교부 홈페이지에도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이를 통해 스위스 특유의 오픈 마인드와 따뜻한 환대 정신,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표출하고자 합니다”라는 말이 이어진다.

세련된 홍보 문구가 으레 그러하듯 이 안에도 허용 가능한 정도의 과장적 수사가 있다. 스위스는 모든 사람에게 하우스를 개방하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이민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나라 중 하나다. 스위스 사람들이 모르는 이들도 따뜻하게 환대하는 것 역시 확실하다. 동시에 스위스 사람들과 깊은 친구가 되기란 스위스에 이민 오는 것만큼 어렵다. <스위스 워칭>을 쓴 디콘 뷰스는 스위스 사람들을 일러 코코넛 같다고 했다. 속에는 향기를 내는 액체 같은 것이 있지만 딱딱한 껍질에 싸여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저 말이 거짓말일까? 전혀. 오히려 스위스는 늘 한결같은 메시지를 건넨다. “저희 규칙을 지키는 손님께 우리는 비싼 고급품을 드립니다. 그게 비밀 계좌든 퍼페추얼 캘린더 시계든 말이죠. 스위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TH 대학을 브랜드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스위스에는 좋은 대학이 많다. 취리히의 ETH는 그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공과대학으로 꼽힌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여기 출신이다. 지금 이들은 드론과 4족 보행 로봇을 함께 운용하는 연구실을 차리고 있다. 둘이 함께 지형 정보를 탐색한다.

평창의 스위스 하우스는 그 세련된 국가 이미지의 최신형 전시장이다. 최신형이라는 말에서 자하 하디드의 건축 같은 느낌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스위스 하우스는 나무와 유리로 만든 간소한 건물이다. 간소하되 우아해 보이는 이 느낌이야말로 스위스 스타일의 이미지다. 건축은 상징이 될 수 있으며 스위스가 건축의 상징성을 모를 리 없다. 이 건물은 국가라는 이미지의 신전이면서도 크기를 거대하게 키우기보다는 아름다운 비례에 주력했다. 장식을 주렁주렁 달기보다는 소재 자체의 멋을 살렸다. 한 번의 대박보다는 지속 가능성을 생각했다. 실제로 이 건물은 분해 가능하게 지어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를 보여줄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현지에서 조립한다고 한다. 국가 이미지의 전진기지 같은 셈이다.

카브 드 라 코테 이쪽 지역은 400여 곳의 농장주가 하나의 와인 공장에서 포도주를 만든다. 덕분에 여기에만 가도 특징이 다양한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와도 비슷한, 맑고 깨끗한 맛이 난다.

스위스 하우스의 일관적인 이미지는 건물 안쪽 곳곳으로 이어진다. 건물을 채운 유·무형의 설비도 메이드 인 스위스다. 하다못해 의자도. 이 의자는 스위스의 호르겐글라루스(Horgenglarus)에서 만들었다. 1880년부터 의자를 만든 스위스의 가구 명가다. 여기서 제공하는 와인 역시 스위스에서 들여왔다.

호르겐글라루스 1880년부터 지금까지 나무 의자와 테이블을 만드는 스위스의 가구 전문 기업이다. 나무를 굽혀서 만든 의자가 유명하다. 수십 년은 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 스위스의 좋은 식당이나 학교에서는 여기 의자를 쓴다.

이 건물에서는 올림픽에서 국가가 해야 할 모든 일이 벌어진다. 이들 스스로가 홈페이지에서 밝힌 내용은 이러하다. “경제 플랫폼, 홍보관, 접견장이자 네트워킹 공간입니다. 또한 파트너, 스폰서, 스포츠, 경제, 정치, 문화계 VIP들을 위한 기자회견장 역할도 할 것입니다. 스위스 텔레비전 및 라디오 스튜디오도 이곳에 마련될 것입니다.” 집 한 채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한다.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스위스식 효율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VIP나 스폰서가 아니어도 스위스 하우스는 예의 그 환대로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스위스 전통 음식점, 2개의 매장, 스위스 특산품 시장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스키를 타고 나서 따뜻한 와인인 뱅쇼로 몸을 데운다. 당신도 스위스 하우스에 간다면 그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스위스 하우스는 2월 7일부터 25일까지 운영한다. 용평리조트 스키 슬로프 아래 산악 스포츠 경기장 바로 옆에 자리한다. 빨간 바탕에 흰 십자가로만 스위스를 알고 있다면, 아니면 롤렉스나 초콜릿이나 김정은이 어릴 때 유학한 나라라고만 알고 있다면, 스위스 하우스에 한번 가보는 건 어떨까. 그게 뭐든, 스위스엔 분명 뭔가 더 있다. 

스위스 하우스가 보여주는 스위스의 국가 브랜드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