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로 마블을 잡는다 '데드풀2'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잡기 위해 많은 한국 영화들이 뛰어들었지만 어벤져스를 잡은 영화는 결국 또 다른 마블의 ‘데드풀2’였다. | 마블,DC코믹스,데드풀,데드풀1,데드풀2

‘데드풀2’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작년말, 데드풀의 제작사인 21세기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미키마우스의 깜짝 출연은 아니더라도 청불영화, 구강액션으로 대변됐던 데드풀 시리즈는 이제 끝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5일 개봉 첫날에만 35만5000명을 동원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하 ‘어벤져스3’)를 가볍게 눌렀고 23일 현재 누적 관객수 257만명을 기록 중이다. 마블 영화가 마블 영화를 잡았지만 마블 스튜디오 입장에선 전혀 언짢은 기색 없이 입이 귀에 걸릴 상황. 4월 25일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5주간 독주를 기록하면서 누적 관객수 1천만을 가볍게 넘은 가운데, ‘데드풀2’가 바로 1위를 기록했으니 한국 영화 시장은 6주 연속 마블이 잡았기 때문이다.‘데드풀2’가 한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1편보다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데드풀은 B급 영화를 표방하는 19금 액션 히어로물이다. 하지만 1편만 하더라도 전형적인 히어로물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히어로물은 거대 자본이 투입돼,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블록버스터여야 한다. 등급 역시 전 연령까지는 아니라도 12세 관람가 등급은 받아야 많은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히어로물로 완성된다. 그런데 ‘데드풀1’은 총 제작비 6000만달러(한화 약 650억원)수준의 초저예산 영화였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참고로 ‘어벤져스3’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영화 출연료가 약 8천만달러~1억달러 수준이다.) 한 마디로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이 되기엔 낙제점에 가까웠다.실제로 데드풀의 주인공이자 작품 기획 및 각본 작업 단계부터 함께한 라이언 레놀즈는 “2004년부터 계획했는데 투자 등 상황이 여의치 않아 11년이 지난 2015년이 되어서야 크랭크인 할 수 있었다”고 말할 바 있다. 이렇게 갖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데드풀1’은 관객들에게 데드풀이 어떤 영화인지 설명하는 일에 많은 러닝타임을 할애해야만 했다. 왜 주인공이 데드풀이 됐는지, 슈퍼파워가 생겼는데도 왜 삐딱하게 구는지, 그리고 왜 B급 영화로 구분 짓고 구강액션을 펼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했다. 영화 중간 중간에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지금이야 이 영화의 시그니처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한 콘셉트로서 일정 부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장치’라 볼 수 있다.그러나 ‘데드풀2’는 이런 장치가 필요 없었다.1편에서 충분히 공을 들여놨기 때문에 관객과의 친밀도가 쌓였고 큰 부연 설명없이 원 줄거리 대로 시원시원하게 전개할 수 있었던 것.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데드풀이 시간 여행이 가능한 용병 케이블을 만나고, 그후 사고치는 뮤턴트들을 개과천선 시킨다는 내용은 다소 단조롭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데드풀2’를 보고 있자니 116분의 비교적 긴 러닝타임 역시 지루할 틈이 없다.‘데드풀1’의 총 제작비는 앞서 말했듯 약 6000만달러 수준이었다면 ‘데드풀2‘는 최소 1억1천만달러로(한화 약 1200억원)로 약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1편에선 액션 장면에서 히어로물임에도 ‘일발 필중’, 즉, 주인공이 한 대 때리면 빌런들이 그냥 넘어가곤 했다. 실제로 ‘데드풀1’에서 “예산 때문에 그 많은 엑스맨들을 놔두고 겨우 이들 둘뿐”이라며 데드풀이 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작 현실을 반영한 자기성찰에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데드풀2’에선 보다 촘촘하고 끈끈한 액션을 보여준다. 최소한 빌런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지 않고 전투신들을 이어 나간다.‘데드풀2’에선 데드풀 이외에도 콜로서스, 네가소닉 틴에이지, 도미노, 케이블, 러셀, 그리고 그 밖의 숨겨진 뮤턴트까지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 역시도 충분한 예산이 없었다면 이렇게 판을 짜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것. 여담이지만 마블에선 1편이 ‘러브스토리’였다면 2편은 ‘가족영화’라고 주장한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각자의 슈퍼파워를 통해 존재감을 뿜어내고 이들이 하나의 패밀리로 뭉쳐 활약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행운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미노는 이전 히어로물에서도 볼 수 없는 캐릭터라 단연 눈에 띌 것.‘데드풀2’의 재미 요소는 또 있다. 바로 제작진이 숨겨 놓은 패러디와 ‘이스터에그(Easter Egg)’가 약 100여개가 된다는 사실. 이스터에그란 부활절 달걀이 담긴 바구니를 숨겨 놓는다는 부활절 풍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게임 또는 영화 제작자들이 작품 안에 재미로 숨겨놓은 메시지 등을 말한다. ‘쿨러닝’ ‘로보캅’ ‘뱀파이어와 인터뷰’등 영화 속 장면과 대사를 인용하는 것은 물론, 매튜 맥커너히, 커스틴 던스트, 톰 크루즈, 샤론 스톤 등을 패러디하기도 한다. ‘케이블’을 연기한 조슈 브롤린의 과거 출연작을 빗대어 ‘어벤져스 3’의 타노스 ‘구니스’의 애꾸눈 윌리를 부르는 것 역시 ‘데드풀2’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이스터에그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을 비롯해 경쟁사인 DC 코믹스의 작품들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이외에도 라이언 레놀즈의 나라인 캐나다를 ‘겨울왕국’에 비유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자레드 쿠시너를 풍자하는 것 또한 왜 ‘데드풀2’가 구강액션의 정수인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봐도 뭐가 뭔지 모를 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잘 모르더라도 영화계를 비롯한 세상만사에 대해 친절하게 까주기 때문에 보고 듣고 즐길 수 있을 것. 물론 한번 보고 나서 각종 SNS에 노출된 ‘이스터에그’를 학습 후 다시 보러 가는 재 관람 관객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조금 다른 얘기지만 ‘데드풀2’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큰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한국 기대작들이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챔피언(5월 1일 개봉)’을 비롯해 ‘레슬러(5월 9일 개봉)’ ‘버닝(5월 17일 개봉)’등이 개봉했지만 그나마 챔피언 정도가 누적 관객수 112만명을 기록했을 뿐 나머지 두 작품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넘기도 힘들어 보인다. 마동석, 유해진, 이창동(감독), 유아인이라는 브랜드 파워에 비해 꽤 아쉬운 스코어임이 틀림없다. 22일 ‘독전’이 개봉과 동시에 누적 관객수 37만명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이미 관람한 관객들을 비롯한 입소문이 썩 훌륭한 편이 아니라 흥행에 있어 의문부호가 따라붙은 상황. 아마도 1편보다 완벽한 ‘데드풀2’가 재역전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