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루로 뛰는 여자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여자 국가대표는 좋아서 하는 야구를 한다. | 야구,국가대표,여자 야구,한국야구

01. “여자 야구가 한국 야구의 미래다.”한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 감독 동봉철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여자 야구가 있는지 그 존재조차 몰랐는데 우리나라 야구의 미래라니, 대체 어떻기에 미래라는 거지? 여자 야구 선수가 있기나 한 걸까? 포털 사이트에 ‘한국 여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프로골프협회’, ‘축구연맹’, ‘농구’가 뒤따른다. 10개의 연관 검색어에 ‘야구’는 없다. 프로야구 시즌에는 야구장으로 퇴근한다는 야구 마니아들도 여자 야구 선수는 들은 적이 없단다. 오히려 “그런 게 정말 있냐”고 물었다. 정말 있다. 여자 국가대표 선수도 있다. 혹자는 영화 을 떠올렸고, 혹자는 다큐멘터리 을 그렸고, 혹자는 예능 프로그램 을 이야기했다. “야구한다고 하면 반응은 하나죠, 뭐. ‘여자가 야구를? 리틀 걸이야?’” 한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 선수 중에 이 이야기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다.02. 여자 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매주 주말에만 훈련을 한다.(또는) 해야 한다. (또는) 할 수 있다.국가대표임에도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여자 야구의 경우 엘리트 스포츠가 아니라 선수들이 운동에만 매달릴 수 없다.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자신의 생업을 유지해야 한다. 여자 야구 국가대표는 현실 야구를 한다. 훈련장은 경기도 화성의 화성드림파크 내 여성 야구장. 55년간 미군 폭격장이었던 곳을 개발해 지난해 개장했다. 여성 야구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다. 돔이 설치됐거나, 여자 화장실 개수가 많거나, 여성 전용 휴게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구장 크기도 같다. “여성 친화 구장은 있어도 처음부터 여성 전용 구장을 목적으로 만든 건 이곳이 처음이에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구장이라는 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죠.” 한국여자야구연맹 이수미 사무국장이 말했다. 다를 게 없다고 했지만 특별한 일이다. 여자 야구장이 설립됐다는 건 여자 야구가 알려지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거니까.서울에서 훈련장까지 차로 1시간 30분이 걸린다. 내비게이션 길 안내를 착실히 따르면 7번의 톨게이트를 지난다. 선수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훈련을 하나 싶었다(한국여자야구연맹 김세인 부회장 말이 과천 쪽으로 오면 톨게이트를 두 번만 지나면 된다고 했다). “서울이면 다행이죠. 부산, 익산에서 오는 선수들도 있어요.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와서 일요일에 돌아가요.” 부산에서는 4시간 30분, 익산에서는 2시간이 걸린다. 모두 편도 기준이다. “무더위에서 훈련하는 것보다 이동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부산 카풀 멤버 김혜리 선수가 말했다. 또 다른 멤버 박지영 선수는 부산 선수가 3명인데 셋 모두 운전을 할 줄 알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교대로 할 수 있으니까.훈련장에서 차량으로 25분가량 이동해야 숙소에 도착한다. “힘들어도 좋아서 하는 거고, 국가대표라는 명예를 걸고 하는 거니까 다들 신나해요.” 사무국장이 말을 이어갔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달콤한 전제 조건이 붙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감내하고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좋아하는 마음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참아내야 하는 게 많다. 그날 사무국장과의 대화를 녹취하는데, 계속 시끄러운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야~호 나는 염희라가 좋아. 날려버려, 날려버려, 염희라!” 이날은 처음으로 선수들끼리 청백전을 개최한 날이었다. 관중 한 명 없는 경기장에서 이런 응원가가 지친 기색 없이 울려 퍼진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처럼. 야구가 원래 이렇게 소란스러운 운동이었나? 생수병 반, 선크림 반이 널브러져 있던 더그아웃의 풍경이 떠올랐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못 말리는 야구단이었다.03. 작은 축제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120여 명이 지원했고 40여 명이 상비군으로 선발됐다. 솔직히 40여 명만 지원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선수들도, 연맹 관계자들도 지원자 수에 놀랐다고 했다. 문득 우리나라 여자 야구 선수는 몇 명이나 될지 궁금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등록된 2018 단체 현황을 보면 전국에 있는 여자 야구팀은 44팀, 여자 야구 선수는 790여 명이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만 14세 이상의 선수가 최소 15명이 있어야 팀으로 인정한다. 선수를 선발할 때는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과반수를 거른다. 선수들이 출전한 전국 대회, 리그만 봐도 기량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서류 전형으로 거르지 않고 지원한 모든 사람에게 테스트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동봉철 감독의 소신이었다. “그래도 고심 끝에 지원했을 텐데 우리부터 그들의 가능성을 차단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테스트를 통해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가늠할 수 있잖아요. 여자 야구 선수들끼리 모이기도 힘들고. 이번에 여자 야구의 세를 확인하면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도 될 테니까요. 한국여자야구연맹의 작은 축제라고 생각했어요.” 선발된 40여 명의 상비군은 2주간 주말 훈련을 치렀고, 그렇게 최종 엔트리 20명이 결정됐다.04. 이런저런 이유로어떤 계기로 야구 선수가 됐을까, 아니 어떻게 야구를 시작할 생각을 했을까? 스포츠 선수인 가족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부모님이 근무하는 회사가 LG전자여서 LG 트윈스 경기를 챙겨 보다가 야구에 빠졌거나, 응원하던 야구팀의 경기를 보다가 속이 터져 직접 나선 경우도 있다. 별의별 이유가 다 있고, 없기도 하다. 그중 이빛나 선수의 사연이 가장 빛난다. “좋아하는 배우가 야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배우 김동욱이에요. 야구 시작하기 전에 팬미팅에 가서 ‘국가대표 될 이빛나’라고 쓴 티셔츠를 선물했는데, 그 뒤로는 한 번도 못 봤어요. 야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팀 내 출석률 90%를 자랑하는 성실의 아이콘 조명희 선수는 올림픽 구기 종목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감동받아 야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여기에 모였다.05. “동봉철 감독을 알아요?”부회장이 물었다. 왕년에 야구 좀 봤다는 사람들은 ‘추억의 야구 스타’, ‘삼성 레전드’, ‘삼성 얼짱의 계보는 동봉철, 강동우, 구자욱으로 이어진다’라는 말로 동봉철 감독을 기억한다. 부회장이 동 감독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감독직을 제안했어요. 언젠가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몇 차례 훈련장과 대회장을 찾았고, 선수들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눈치였어요. 평생을 잘하는 야구, 학교 야구, 프로야구를 해온 자신은 여자 선수들이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대요. 여자 선수들과의 훈련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게 보여요. 우리 집행부는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마찰은 절차와 관례를 고집하는 데서 생긴다. “기존 스포츠 단체보다 협조나 지원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아요. 재능 기부 수준으로 도와주고 있는데, 우리는 단체랍시고 어쭙잖은 내부 규정을 들이대니 엇박자가 날 때가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걸 요구하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니까. 감독님 마음 백번 이해해요.”06. 주급 30만원“이거 하면 얼마나 받아요?” 부천중학교에서 시합이 있던 날, 나를 한국여자야구연맹 관계자로 오해한 누군가가 물었다. 상대 야구팀의 관계자일 수도 있고, 지나가는 행인일 수도 있다. 쭈뼛쭈뼛하자 “그냥 국가대표 관리하면 얼마나 받는지 궁금해서요”라고 했다. 그 질문을 연맹에 되물었다. “감독님 월급 없어요.” 감독과 코치에게는 월급이 아닌 10만~15만원이 일당으로 지급된다고 했다. 엘리트 스포츠팀 감독의 경우 대부분 겸직을 하고, 실업팀 감독 또는 프로팀 감독으로 소속 팀에서 급여를 받는다. “어떻게 보면 주급 30만원짜리 감독이지. 한국여자야구연맹에서는 급여를 받는 지도자가 없어요. 문체부 규정에 따르면 한 달에 15일 이상 지도자로 활동해야 월급을 주는데, 알다시피 우리 선수들은 평일에 운동을 못 하니 월급을 달라고 주장할 명분도 없는 거죠.” 운영비 지원도 못 받는다. 식대도 선수들 식대만 나온다.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주말 무료 봉사 중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겉으로는 허술해 보일지 모르는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고마운 사람들이 모인 거예요.”감독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라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제가 돈을 많이 받는 줄 알더라고요. 금액을 이야기하면 ‘대체 왜 해?’ 하고 물어요. 여자 야구 특유의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어요. 자체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선수들의 열정과 프로야구를 찾는 여성 관중의 수가 느는 걸 보면 한국 여자 야구는 발전할 수밖에 없어요.” 감독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내가 드라마, 영화 보고 한 번도 운 적 없는데, 우리 선수들이 경기하는 걸 보고 울컥한 적이 있어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07. “우리도 딜레마예요.”대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이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인지 묻자 부회장이 답했다. 자신들에게도 사연이 많다고 했다. 13년 전 한국여자야구연맹 체제가 생겼고, 이때 부회장은 연맹 결성의 발기인이었다. 그게 시발점이 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다. 지난해 뜻하지 않은 이슈로 한국여자야구연맹의 임원직과 실무진 모두 선수 출신이 맡게 됐다. 원년 멤버들에게 여자 야구는 남다르다.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나 방법,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만으로 애틋한 첫사랑 같다. “이제 만 10년이 지났으니까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죠. 뜻하든 그렇지 않든 여자 야구 덩어리가 이만큼 커졌는데 우리 대에 와서 망하면 안 되잖아요. 다음 세대에 넘겨줄 때까지 우리가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어요.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혜택을 받았으니, 향후 10년은 후배들에게 온전히 갚아줘야 한다는 마음이오.” 부회장 입에서 ‘혜택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의아했다. 혜택을 받았다면 적어도 사람들이 이 정도까지 여자 야구의 존재를 모르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여자 야구 불모지’라는 말은 듣지 않았겠지.사무국장과 부회장은 여자 야구 1대 멤버다. 당시 사무국장은 25세, 부회장은 37세, 그때 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나 학교 다닐 때 고교 야구 류중일, 박노준 모르면 간첩이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야간 자습 안 하고 문구사 가서 야구 보는 그런 야구광이었어요. 서른일곱 살 때 레스토랑에서 생맥주 마시는데 여대생 무리가 야구복을 입고 지나가는 거예요. 로열패밀리였지. 야구하는 여자를 처음 봐서 다짜고짜 물었더니 ‘마이티’라는 팀이래요.” 부회장은 한껏 들떠 보였다.“우리나라 첫 번째 여자 야구팀이 비밀리에, 두 번째가 빈, 세 번째가 나인 빅스, 네 번째가 마이티이래 뵈도 우리 전국구예요.” 그때는 구장도 없었고, 만나서 시합을 할 수도 없었다. 인터넷도 안 될 때다 보니 어디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어디에 여자 야구단이 있다더라는 ‘카더라’ 소식으로 알음알음 아는 정도였다. “그 시절에는 같이 야구한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동질감을 느꼈어요. 지방 야구 선수 중 누가 서울에 왔다고 하면 얼굴도 모르는데 뛰어가 밥 사주고 했어요. 의리가 어마어마했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땡전 한 푼 없어도 석 달을 전국 일주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요. 지역별로 밥 사주고 재워줄 수 있는 야구팀이 있으니까.” 의기양양한 부회장의 말에서 여자 야구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야구를 했는지 전해졌다.만나서 같이 야구 이야기하고 게임하자고 논의하는 것만으로 기쁨이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모든 소식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못 할 이야기다. 여자 야구단이어서 나눌 수 있는 끈끈함의 시작. “우리는 힘들게 운동했어요. 연맹이 만들어지고, 전국 대회가 처음 생기고, 전국에 있는 팀이 한자리에 모여서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이게 우리가 받은 혜택이에요. 야구가 선수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구장 문제도 있고, 돈 문제도 있고, 그런 것들을 우리가 갖춘다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걸 직시할 때 연맹이란 게 생긴 거예요.” 10년 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만나서 경기를 하는 게 기적이라 했고, 지금 세계 경기를 위해 미국 플로리다로 떠나는 선수들을 두고는 발전이라고 한다.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게 이들이다. “이 아이들로 세대교체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여자도 야구를 하는 시대가 됐어요. 즐거움을 떠나 일본, 미국, 대만과 실력 차를 줄일 때가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김)라경, (이)지혜 같은 학생들이 정말 소중한 거죠. 우리가 따라잡지 못한 세계 수준의 격차를 저 아이들이 줄여줄 수 있으니까요. 쟤들이 답이거든요. 진일보했고, 이제는 격차를 줄이는 게 목표가 됐어요.”08.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어떤 놈이 우리 선수들 나온 기사에 이렇게 댓글을 남겨놨더라고.” 기어코 로그인을 해 신고 버튼을 눌렀다고 부회장이 씩씩거렸다. 댓글을 남긴 사람은 살림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모르긴 몰라도 선수들은 그 이상의 책임감을 갖고 야구를 한다. 매주 금요일 또는 토요일, 화성에 발을 딛고 유니폼을 입음과 동시에 마법에 걸리고, 일요일 오후 운동을 마치고 유니폼을 벗음과 동시에 마법에서 풀려나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단해도 깨기 싫은 마법이다. 이들은 매주 극심한 월요병을 겪는다고 했다. 온몸에 땀과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해도 기다려지는 건 토요일이고, 걸음이 무거워지는 건 일요일 밤이다. 학생, 교사, 은행원, 기업가선수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국가대표 선수임에도 본래의 직업이 축구 선수가 아니라 이슈가 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떠올랐다. 그렇게 의아했던 일이 우리 곁에도 있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됐다.이 선수들이 운동을 하는 데에서 나이, 성별, 신장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직업 선수가 아니라는 데 있다. “작년에 선수들에게 같이 대표팀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 선수가 ‘전 못 해요’ 하는 거예요. 국제 경기에 참가하려면 2~3주는 시간을 내야 하는데 그러면 자신의 생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그래서 대표팀에 들어갈 수가 없대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어요.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어 전혀 몰랐던 거예요.” 동 감독은 어쩔수 없이 거절했지만 내심 간절히 원하는 선수의 눈빛을 보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09. 19억여자 야구단을 지원하겠다는 엄청난 재력가가 나타났다고 가정해보자고 하니, 부회장은 듣기만 해도 신이 난다 했다. “전국에 있는 여자 야구팀에 전문 코치를 파견해달라고 할 거예요. 단 6개월만이라도 선수들을 단체에 소속시켜 합숙 훈련을 받게하고, 급여도 주는 거예요. 실업 팀 선수처럼. 그래서 다른 거 신경 쓰지 않고 매일 야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부회장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월급 준다고 하면 회사 뛰쳐나올 친구들도 많을 거예요.” 사무국장이 거들었다. 상상만 한 게 아니다.한국 여자 야구에 애정도 있고, 명성도 있고, 재력도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건의도 해봤다. 하나의 팀을 운영하는 데 연 19억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수 연봉을 3000만원으로 가정했을 때의 금액이다. “경비는 다 세금 처리될 텐데 돈 많은 사람들이 왜 선뜻 나서지 않는지 이해가 안 돼요.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단체의 책임자여서가 아니라 애정이 있는 선배이기에 가능한 마음이다. 직접 운동을 했기에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선행자이기에 아깝지 않은 거다. 지금의 우리가 여기서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건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들이 최선을 다해 만들어놓은 혜택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거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받은 혜택은 곧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부회장이 ‘짜잔’ 하는 추임새와 함께 커다란 봉지에서 파란색 옷가지를 꺼내 들었다. 태극 마크가 박힌 것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작년에 처음 운영진을 맡았는데 준비가 미흡했어요. 나는 예산이 되는지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고, 선수들은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고. 그래서 올해는 내 마음대로 해주고 싶은 거 다 해주자고 마음먹었어요. 이번 여자 야구 월드컵에 출전하는 팀이 모두 강팀이라 애들이 기가 많이 죽을 거예요. 그래서 보고 힘내라고 온통 태극 마크를 박았어요. 같은 야구 선수이고, 딸 같기도 하고, 진짜 우리 후배들이잖아요. 남자 기성 야구인이 그냥 야구 대표팀 후배들 보는 것과는 달라요.”10. 박살이 났다.7월 7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남자 야구부와시범 경기를 가졌다. 현재 여자 야구 선수들의 체격과 야구 실력은 중학교 2학년 남자 야구부 선수들과 견줄 만하다. 그렇다고 야유를 보낼 게 아니다. 중학교 2학년이면 2차 성징이 끝났고, 어느 정도 체력과 기본기를 갖춘 상태니까. 해외 여자 야구 선수들도 비슷한 실력이냐고 국장에게 물었다.“여자 야구 강대국 수준은 상당히 높아요. 부동의 1위 일본은 남고 중상위 팀 수준이에요. 공 스피드도 120km 이상 나오고.” 우리 선수들은 평균 100km 초반 정도 던진다고 했다. 일본 대표팀은 소프트볼을 했거나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던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선수들은 직업 야구 선수다. 실업 팀도 잘돼 있다. 인기 있는 선수들은 대외적으로 인지도도 높고, 모델 활동도 활발하다고 했다. 알다시피 한국 여자들이 구기 종목에 강한 편이라 짧은 시간에 빠르게 이만큼 치고 올라온 거라고 덧붙였다. 가만 보면 얼음장 같은 사무국장도 기승전 ‘한국 여자 야구팀 최고’다.오전 9시, 부천중학교 선수들이 모이자 잔뜩 짐을 지고 온 한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표팀 막내 이지혜(17세) 선수 어머니다. 선수들에게 직접 만들어 온 미숫가루를 건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리틀 선수단으로 야구를 시작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이지혜 선수는 익산 어메이징 소속이다. 재미있는 건 이지혜의 어머니가 익산 어메이징 창립 멤버라는 것. 익산에서 여자 야구 대회가 열리는데 여자 야구팀이 없으면 면이 서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급히 팀이 만들어졌다. 당시 리틀 야구단 학부모 회장이었던 터라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소속 회원이 되니 운동도 허투루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하다 하다 2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는 21세기 맹모삼천지교의 에피소드가 있다.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오후 경기는 박살이 났다. 하루에 두 번 치르는 경기이기도 하고, 부천에서 목동으로 이동 거리도 있으니 힘에 부쳤을 거다. 취재를 하다가 오늘은 그만 돌아가야 하나 몇 번을 고민했다. 감독이 있는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혼자 얼음 땡 놀이를 했다. 시원한 타격으로 이 분위기를 깨부셔 제발 나를 좀 꺼내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후 7시 43분, 선수 자리에서 바라본 경기장 뒤로 노을 지는 풍광이 꽤 근사했다. 문득 이 맛에 야구를 하나 싶었다.11. “악착같이, 악착같이.”목동경기장이 시끌시끌하다. 야구는 조용한 경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구장을 가고, 어떤 선수를 만나, 어떤 경기를 펼치든 여자 야구팀은 파이팅이 넘친다. 더그아웃에 매달려 팀원을 향해 소리치던 주장 곽대이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들어와 혼잣말로 이야기하며 지나갔다. “무지막지하다. 꼭 일본전 치르는 거 같네.” 곽대이 선수는 1회 때부터 국가대표를 해왔다. “이제 정말 힘을 많이 내야 할 것 같아” 곽대이 선수가 한풀 꺾인 목소리였지만 녹초가 된 팀원들을 독려했다.6회, 김라경 선수가 마운드에 서자 팀 분위기가 바뀌었다. “역시 라경이!” “어떻게 저렇게 잘하지?” 자긍심 반 부러움 반 섞인 여자 선수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정작 김라경 선수는 듣지 못했다고 했지만. “라경이가 그래요? 안 들렸다고? 아직 여유가 없네. 아무리 관중이 많아도 다 들려요. 들리는데 안 들리는 척하는 거죠. 친근하게 ‘봉철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 지인인 줄 알고 돌아보면 이렇게 감자를 매겨요. 그렇게 몇 번을 당했어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는 게 집중력이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마운드에서는 그런 거 다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해요.” 감독에게 괜한 말을 전했나 싶었다. “리틀 야구단 출신이라 확실히 달라요. 기본기를 다지고 왔기 때문에. 그런 선수가 많아질 때 팀에 경쟁력이 생기죠.”김라경은 여자 야구 선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는 한국 여자 야구의 가능성이라 불린다. 백넘버 29는 현직 야구 선수인 오빠의 등번호이기도 하다. 촉망받는 이 선수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다. 어깨가 유독 무거워 보였는데, 기말고사를 마치고 온 직후라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김라경 선수는 리틀 야구단 출신의 첫 여자 국가대표다. 취미로 습득해온 다른 여자 선수들과 달리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선수라는 이야기다.“리틀 야구단만 봐도 여자 야구 선수가 많아졌는데, 그 아이들만큼은 저와 같은 고초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여자 야구 선수에게서도 성공 사례가 나와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거고, 그래야 운동 여건도 나아질 테니까요. 제가 그런 사례가 되어야 한다는 데 책임감을 느껴서 공부도 더 악착같이 하는 거예요. 좋은 표본이 돼야 하니까. 이제 야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능성이 되고 싶어요.” 김라경 선수는 마인드 위에서건 아래에서건 믿음직스럽다.“오늘 경기는 숙제로 남는 거야.” 감독의 마지막 말로 긴 하루가 끝났다.12. 20 대 1어제의 경기 결과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점수판도 없었다. 참혹하다고 할 수 있는 경기 결과는 감독님이 그린 그림이다. “일부러 중학교 팀에 실력 좋은 투수 위주로 배치해달라고 했어요. 우리 수준에 맞췄으면 좀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월드컵에서는 우리보다 잘하는 팀들과 경기하니까, 이번에 한번 제대로 망가져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감독은 야구 선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인내라고 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잖아요. 살다 보니 기복 없이 꾸준히 가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사극에도 이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일희일비하지 마시게.’” 운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중학생 선수들이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닥치니까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경기 내내 목청껏 응원한 김희진 선수가 말했다. 올해 나이 45세라 45번 백넘버를 단 팀의 맏언니다(최근 실력이 급부상한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회춘했다’고 했다). 응원이 한결같이 우렁차서 기분이 나빴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 제가 캐처 출신이라 목소리가 커요. 캐처는 홈 플레이트에서 외야까지 들리도록 소리 질러야 하는 상황이 많거든요.” 이번 경기는 투수로 나서는 첫 시합이라 새로운 도전이라고 했다. 사회인 야구의 경우 선수들의 포지션은 유동적이다. 팀에서 필요로 하면 내야도 갔다가 외야도 가고, 캐처도 하고 투수도 해야 한다. 자신의 포지션을 고집할 수 없다. 팀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멀티플레이어가 된다.13. 선수 바보명실상부 여자 국가대표팀의 팬 1호, 2호, 3호는 감독과 코치진이다. 현역이었던 이들도 대표팀을 만나기 전까지 여자 야구단의 존재를 몰랐다고 했다. “보고 있으면 저걸 못하나 화도 나는데 엘리트 출신 선수들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저렇게 하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 감독은 겉은 강해 보여도 속은 한없이 다정다감하다. 평일에도 사비 들여 레슨장 가고 연습장 가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을 달리 먹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도 선수들에게 녹아드는 건가 싶다고.다급할 때도 “두리 씨!”라며 ‘씨’ 자를 빼먹지 않고 호칭하는 임동필 코치는 지난해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선수들에게 받은 좋은 영향 덕이라고 했다. “제가 선수 생활을 할 때도, 다른 야구단 지도자를 할 때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주말밖에 못 모이니까 모든 걸 쏟아붓고 싶어요. 그게 매주 제 목표예요. 선수들과 훈련하는 시간이 재미있어요.”충남 당진에서 오는 이웅한 코치도 선수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내가 야구를 했을 때 이만한 열정을 가졌었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했으면 어땠을까, 이 선수들은 이렇게 하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스포츠를 여자 선수들이 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또 잘하는 선수들은 남자 선수처럼 잘한단 말이에요. 그 매력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감독과 코치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선수들을 보면 다시금 지난 열정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고 했다.14. 저마다의 숙제각자의 인생에는 저마다 주어진 숙제가 있다. “거기서 대체 뭐 하고 있냐고 묻는데, 나는 누가 우리 대표팀을 깔보는 게 싫어요. 그래서 정말 잘했으면 좋겠어요. 야구는 남자들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팽배해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그건 여자 야구에 대해 몰랐을 때고, 우리 선수들이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면 달라질 거예요. 모두 야구팬이니까. 선수들의 열정을 알리고 싶어요.” 감독으로서의 숙제고 야구 선배로서의 바람이다. “우리나라도 실업 팀이 있으면 일본 선수들처럼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20년 뒤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이빛나 선수는 야구가 남자만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 야구를 더 알리고 싶다.15. 좋아서여자 야구 국가대표는 좋아서 하는 야구를 한다.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좋아서’다. 모두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들에게는 야구 자체가 즐거움이고, 그렇게 즐거운 야구를 한다. “8년째 야구를 하는데 여전히 즐거워요. 야구복으로 갈아입는 것도, 야구할 생각을 하는 것도, 이렇게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것도 행복이에요.” 이빛나 선수는 야구를 하기 위해 직업도 바꿨다. 2006년에 야구를 시작한 맏언니 김희진 선수도 같은 마음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쉬는 날 없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야구하는 게 쉬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휴식이죠.” “운동 마치고 집으로 갈 때 휴게소에 들러 한 시간씩 자요. 졸음 운전하면 안 되니까.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 11시쯤 되는데,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대전의 유일한 여자 야구 국가대표 선수 김보미가 호탕하게 웃었다. 16. 생애 최고의 순간이번 올림픽의 목표를 물으면 대부분이 슈퍼세이브 진출 혹은 대만전 승리를 이야기했다. 우승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국이 독일을 이긴 것처럼 기적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느냐고 되받아쳤다. “월드컵도 우승하자고 안 하고 16강 가자고 하잖아요. 여자 야구도 마찬가지로 강대국과 수준 차이가 나요. 일본 선수들은 밥 먹고 야구만 하는데,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주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대화 내용을 적어놓고 보니 치기 어린 질문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뛰어보지 않았고 진짜 즐기지 않아서 몰랐던 거다. 즐기는 게 무엇인지 알면 이기고 지는 게 무색해질 때가 온다. 우리 선수들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뉴스에서는 연신 ‘111년 만의 폭염’이라고 보도하는 이번 여름이었다. 모두가 무더운 여름을 보낼 때 이들은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곧 선수들은 플로리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취재가 아니더라도 계속 관심 가져주세요. 좋아서 하더라도 관중이 있어야 흥이 나니까.” 동 감독이 남긴 숙제다. 한국의 여자 국가대표 야구단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현실 야구를 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는 이들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지나는 중이다.유쾌하고 호기로운2018 여자 국가대표 야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