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리아나, 15년간의 기록

지금 플레이, 리아나

BYESQUIRE2019.11.05
 
이 책은 12.4kg 무게에 504쪽, 1050장의 사진이 담긴 화보집이지만 여느 전기 작가의 회고록 못지않은 한 여성의 인생과 성장이 담겨 있다. 미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어린 시절 패륜적인 아버지로 인해 불안에 시달렸으며, 가난을 이유로 군대에 자원할 생각도 했던 10대 소녀가 남아메리카 바베이도스에 휴양 온 음악 프로듀서를 우연히 만난 날로부터 7000억 원의 재산을 가진 거물이 되기까지 15년간의 기록이다. 이름하여 <리아나(Rihanna)>.
리아나가 책을 낸다. 바베이도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전 세계 투어 비하인드 신과 패션 사업가로서의 행보, 가족과 친구들과의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다. 대부분 미공개 사진이다. 콧대 높은 예술 서적 출판사 파이든이 ‘펜티×파이든’(펜티가 먼저 적혔다!)이란 협업 형태로 10월 말 출간한다. 150달러인 기본 버전 외 수익금을 기부할 목적의 고급 버전으로도 출판된다. 며칠 전 책 <리아나>의 공개를 앞두고 리아나가 글로벌 패션 매체인 를 통해 전한 코멘트에 따르면 그녀가 자서전이 아닌 사진집을 낸 이유는 간단하다. 책 쓸 시간이 없어서.
사람이 변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징후는 한날한시에 오지 않는다. 리아나가 다른 이가 만들어준 음악을 하고, 콘셉트에 충실한 스타일링을 전략적인 주기로 선보이고, 소셜 미디어에는 정제된 정보만 올리던 시절이 몇 해 전이다. 지금의 리아나는 다르다. 폭행범 크리스 브라운과의 관계에서 빠져나왔다는 것, 혹은 특정 나이대를 지나왔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변화의 원인을 넘겨짚고 싶지는 않다. 인간은 자신이 겪는 많은 일을 각자의 속도로 소화하고 자신도 모르는 계기를 통해 밖으로 꺼내곤 하니까. 다만 리아나가 겪은 많은 일 중 하나에는 사업도 있다.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취향을 담아낸 코즈메틱 브랜드는 출시하자마자 압도적인 성공을 거뒀다. 핵심은 100종 이상의 기초·색조 제품이다. 리아나는 백인 피부 기준의 정형화된 제품 대신 다양한 인종과 피부를 커버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다음 사업 아이템은 속옷이었다. 역시나 빅토리아 시크릿 사이즈 표에 맞춰 몸을 욱여넣게 만드는 대신 가슴, 엉덩이, 허벅지 사이즈를 폭넓게 했다. 사이즈만 뻥튀기한 듯한 디자인이 아니다. 무게중심을 고려한 기능을 넣고 몸의 굴곡을 해치지 않는 디자인에서는 아름다움이 줄줄 흐른다.  
이 과정에서 리아나는 대충 다양성을 말하는 시늉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그간 안 만들거나 못 만든 일을 해냈다. 이런 행보가 단순히 여성들에게서만 우상처럼 떠받들어지거나 누가 못한 일을 해낸 투사처럼 여겨지는 건 아니다. 특히 리아나의 주 무대인 미국에서는 ‘돈이 너무 많은 톱 스타가 보통 사람은 못하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상황’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래서 남녀를 떠나 ‘쏘 쿨’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올해 시작한 리아나의 세 번째 사업 아이템은 패션이다. 5월 말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레디투웨어 의류 브랜드는 LVMH 그룹과 계약했는데, LVMH 그룹 역사상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파트너십을 맺은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흑인이다.
 
여기까지 소개한 리아나의 성공적인 브랜드들의 이름은 모두 같은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펜티(Fenty)’.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리아나의 패밀리 네임이다. 본명의 미들 네임인 리아나가 일종의 활동명이었다면 브랜드명에는 가족과 연결된 성을 차용했다. 자신의 뿌리와도 같다고, 리아나가 자신의 브랜드에 투영하는 강한 정체성과 자아인 셈이다.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고,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만들더니, 흥행을 이끌어내고, 떳떳하게 번 거액의 재산을 자신의 조부모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고향 바베이도스에 기부한 빈국 출신 이민자 흑인 여성의 자수성가 스토리. 자서전 대신 사진집을 낸 이유로 책 쓸 시간이 없다는 말과 함께 리아나는 이런 이야기도 덧붙였다. “솔직해지자. 지금 내 팬 세대는 더 이상 긴 글로 채운 자서전을 읽지 않는다.”
2016년에 낸 정규 앨범 <안티(Anti)> 이후 새로운 정규 앨범을 발매하지 않은 터라 리아나의 본업인 음악의 성취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다수의 인터뷰에서 리아나가 언급한 정보에 따르면 장르는 레게가 될 것이고 발매는 올해를 넘기지 않을 거라고 한다. 수익과 재산으로는 이미 추월해버린 마돈나와 비욘세처럼 음악적으로도 레전드의 세계에 입성할 수 있을지는 곧 나올 앨범이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을 들불처럼 일으킨 지난 3년 사이, 리아나는 대중의 시선을 바꿨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표현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