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건축의 지향점, 그리고 오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교회와 건물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종교 건축의 지향점은 무엇이며, 오늘날에도 그것은 과거와 동일한가? 건축가 이정훈이 말하는 종교 건축의 역사, 그리고 오늘.

제단의 건축학


ⓒ Helene Binet 브라더 클라우스 교회 내부에서 올려다본 천장 형태. 나무를 원뿔형으로 쌓아 거푸집을 만들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쌓은 후 내부의 나무를 태우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 Helene Binet 브라더 클라우스 교회 내부에서 올려다본 천장 형태. 나무를 원뿔형으로 쌓아 거푸집을 만들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쌓은 후 내부의 나무를 태우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만약 당신에게 신을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라는 사명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상상하겠는가? 건축의 본질은 르코르뷔지에의 말처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shelter)’겠으나 그 대상이 종교 건축이라면 출발점부터 달라진다. 초월자와의 관계성을 건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능 바깥의 맥락이니까.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일반 논리를 넘어 그들이 믿는 가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부터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거주와 보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더없이 비생산적인 공간으로 보이겠으나, 종교적 가치를 재현하고 구축하는 자의 관점에서는 공간 자체가 교리가 된다. 즉 종교 건축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궁극의 관념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해당 종교의 가르침을 어떠한 공간 구축 방식으로 재현할 것인가 하는 질문, 공간을 찾는 이들이 일상 공간에서 겪을 수 없는 초월적 어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그 본질이다.
빛은 영적인 공간을 생성하기에 가장 유용한 재료였다. 빛은 공간의 외부와 내부를 구분 짓고 공간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주거의 틀에서 만나는 빛과는 다른 차원의, 극적인 공간감으로 내부화한 빛은 그 무엇보다도 신성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의 이념이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가톨릭 교회의 이론적 기초를 다진 철학자)에 큰 영향을 끼쳤듯 종교 건축의 이념은 당대 종교 철학의 교리와 더불어 성장했다. 교회당 내부의 빛은 신의 재현이자 가르침을 상징하는 요소였고, 그걸 전달하는 유리의 패턴과 이미지는 스토리로 형상화되었다. 순수 기하학으로 구성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두꺼운 벽은 둔탁하지만 깊이 있는 빛으로 신의 가르침을 전달했다. 반면 고딕 양식은 첨두 아치와 플라잉 버트레스 등 진일보한 건축 기술로 높고 얇은 벽을 세워 좀 더 양적으로 풍요로운 빛을 구현할 수 있었다. 빛의 성격에서 큰 차이가 났을뿐더러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채로운 스토리로 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빛은 공간에 따라 한없이 자애롭거나 때로는 어머니의 품처럼 온화했고, 또 어딘가에서는 매서운 가르침이 되었다. 교리의 효과적 전달을 위한 건축의 시작점이 되었던 것이다.

ⓒ Helene Binet 독일 메헤르니히의 브라더 클라우스 교회 전경. 자신의 밀밭에 기도실을 세우고 싶다는 한 농부의 말에 페터 춤토어는 설계비도 받지 않고 21세기 종교 건축의 최고 걸작을 만들었다.

ⓒ Helene Binet 독일 메헤르니히의 브라더 클라우스 교회 전경. 자신의 밀밭에 기도실을 세우고 싶다는 한 농부의 말에 페터 춤토어는 설계비도 받지 않고 21세기 종교 건축의 최고 걸작을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빛의 이런 입지는 건축 기술의 진화를 위한 모태가 되기도 했다. 더 높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더 얇게 조직된 기하학적 조합이 필요했고,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재료의 새로운 해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결국 로마네스크 시대와 고딕 시대의 종교 건축은 건축 일반의 혁신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새로운 공간과 물성에 대한 혁신을 실험하는 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실험은 추후 근대건축 태동의 결정적인 모티프가 되었고, 그 후에도 시대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했다.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종교 건축은 장엄한 구조와 공간을 압도하는 빛 대신 인간의 인체 스케일에 맞춰진 새로운 공간미를 추구하게 된다. 사상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교회가 지녀야 하는 종교성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거듭하며 진화한 것이다. 그들이 내놓은 답은 좀 더 온화하고 깊이 있는 공간이었다. 가령 보로미니가 건축한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은 기존 고딕 양식에서 변모한, 그러나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을 보여준다.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진 벽과 지붕, 타원과 육각형 등 다양한 기하학의 조합으로 배열된 공간. 예술과 일체화된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타원형으로 생성된 돔과 이를 통해 전해오는 빛은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종교적인 빛으로 치환한다.

ⓒ Simone Bossi 건물 전체를 가로지르는 일직선의 틈이 특징인 이탈리아 볼로냐의 회개한 도둑의 교회. 건축 과정에 교도소 수형자들이 참여했다.

ⓒ Simone Bossi 건물 전체를 가로지르는 일직선의 틈이 특징인 이탈리아 볼로냐의 회개한 도둑의 교회. 건축 과정에 교도소 수형자들이 참여했다.

빛의 재해석은 21세기의 종교 건축에서도 이어진다. 올해 이탈리아 볼로냐에 지은 ‘회개한 도둑의 교회(The Church of the Penitent Thief)’는 빛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건축물을 통째로 가로지르는 가는 틈새는 내부에 전통 교회의 넓고 깊은 빛과는 다른, 다소 매섭고 강렬한 빛을 선사한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건물은 교도소 수형자들이 회개하는 공간으로 지었다. 하늘과 땅은 분절되어 있으나 신의 가르침처럼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연결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내년 경기도 화성에 완공 예정인 남양성모성지 성당은 좀 더 지형의 맥락을 기반으로 한다. 기존 대지의 지형학적 맥락을 두 개의 탑으로 형상화하고, 그에 따라 공간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사선 형태로 구축된 내부의 목재 루버 유닛들은 자애롭고 온화한 빛으로 내부를 압도한다. 거장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디테일은 빛을 이리저리 굴절시키며 새로운 공간의 조합을 만들어내고,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빛의 감성을 구현한다. 지형의 해석에서 출발한 건축 형태는 다시 건축가의 감성으로 재해석되고, 이내 종교적 가르침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최근 완공된 광화문 새문안교회 역시 입지적 맥락과의 조응 측면에서 종교 건축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모태의 품으로 형상화된 외부의 곡면 볼륨이 대형화된 한국 교회 건축의 원형에 대한, 그리고 도시적 맥락 안에서의 교회 구축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대형화와 도시화라는 한국적 특수성 속에서 교회 공간이 어떻게 확장하고 진화해야 하는지 그 해결책을 제안한 건축물이라 할 만하다.

ⓒ Adjaye Associates 아브라함 가족의 집을 구성하는 세 건물의 내부 설계안. 기독교 교회(church), 이슬람 사원(mosque), 유대교회당(synagogue)이 하나의 단지를 이루는 형태다.

ⓒ Adjaye Associates 아브라함 가족의 집을 구성하는 세 건물의 내부 설계안. 기독교 교회(church), 이슬람 사원(mosque), 유대교회당(synagogue)이 하나의 단지를 이루는 형태다.

아부다비에 들어설 예정인 데이비드 아자예(David Adjaye)의 ‘아브라함 가족의 집(Abrahamic Family House)’은 빛과 기하학을 종교적으로 활용한 눈여겨볼 만한 사례다. 건축가는 세 개의 인접한 동일 형태 건물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이념을 기하학적 상징으로 구현했다. 세 종교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드러내며 오늘날 종교 갈등과 대립에 대한 건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각 종교를 기하학적으로 체계화한 외벽은 기호로써 외부와 소통하며, 동시에 빛을 다채롭게 투과하며 내부 공간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성성을 선사한다.
빛과 기하학에 대한 종교 건축의 다채로운 시도 중에서도 최고 걸작 하나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건축가가 페터 춤토어의 ‘브라더 클라우스 교회(Brother Klaus Field Church)’를 꼽을 것이다. 나도 그중 하나다. 이 교회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종교 건축물에 속하겠으나 그 속에 깃든 과정과 의미, 이를 해석하는 건축가의 관념은 그 어떤 거대 프로젝트보다 감동적이다. 내부의 거친 패턴은 거푸집으로 사용한 원목을 태워 만든 것으로, 상부에서 떨어지는 빛과 어우러져 내부에 강렬한 질감을 만든다. 비록 그 정체는 그을음과 구멍으로 쏟아지는 소박한 햇빛이지만 다른 어떤 공간보다도 강렬하게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교회 사방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농촌의 일상적인 풍광은 농부들이 쌓아 올린 교회의 콘크리트 켜로 인해 한층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모든 것을 비워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지극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종교 건축은 시대 이념의 변화에 맞춰 적극적으로 진화해왔다. 때로는 건축 구조의 혁신을 이끌어왔으며, 때로는 이상적 관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빛과 기하학이라는 물리적 수단을 통해 지극한 교리를 공간으로 구현해온 것이다. 특히 21세기의 종교 건축은 하나의 양식으로 묶이기보다 각 지역적 특성과 이념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축되는 특징이 있다. 종교 건축이 기술적 진화의 첨병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건축 기술이 구현한 다양한 공간성이 교리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성과 인간을 연결 짓는 공간에 대한 고민. 어쩌면 건축은 여기서 시작되어 여기서 끝나는 건지도 모른다.

교회와 건물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종교 건축의 지향점은 무엇이며, 오늘날에도 그것은 과거와 동일한가? 건축가 이정훈이 말하는 종교 건축의 역사, 그리고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