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첨단 기술의 중심을 지키는 전직 군인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그 누구도 첨단 기술의 세계 중심, 실리콘밸리를 폭력적 수단으로 해할 수 없다. 탄탄한 근육의 전직 군인들이 이 거대한 테크 단지를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디언스 오브 실리콘밸리



어떤 대반란 작전이든 그 초석은 시민 대중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안전한 환경 없이는, 영구적인 개혁을 도모할 수도 없고, 번지는 무질서를 막을 수도 없다.
– 〈미 육군 야전교범〉 3-24 ‘대반란전’ 중

실리콘밸리의 건널목에 한 건장한 남자가 서 있다. 그 남자의 일상을 상상해본다. 남자는,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온 걸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쟁의 참상이 드리워진 거칠고 어두운 지역에서 검은 소총을 질끈 동여매고 전투 정찰의 선두 척후병 역할을 하곤 했는데 말이다. 등 뒤에는 오직 무력으로 외교 정책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소대원들을 끌고 다녔고, 몸에 차고 있는 장비의 무게만 30~40kg 정도는 나갔다. 물이 든 수통, 여분의 탄환, 다시는 사용하고 싶지 않은 야전 의료 장비까지. 하지만 그건 다 지난 일이다. 지금은?
“건너가세요.” 지금은 체크 셔츠에 형광색 캔버스 스니커즈를 신은 테키(techie: 컴퓨터 기술 애호가)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가을 하늘이 참 맑다. 신호등이 바뀌고 차가 멈춘다. “건너가세요.”
‘그래, 저 치들은 테키가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타이른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 불러야 바른말이다. 이 엔지니어들이 우리 회사의 고객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나의 손님이다. 신호등 앞에 서서 보행자 안내를 하는 업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직장은 전반적으로 마음에 든다. 돈도 잘 주고, 누구도 속일 필요가 없는 좋은 일이다. 복리 후생도 좋고 근무시간도 칼 같다. 퇴역 장병이 이런 일을 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미국의 고용주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정찰 첨병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그리 높게 사지 않는다. 그 사실을 제대 후에야 깨달았다. 물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멈추세요.”
주차장 게이트를 지나 나를 고용한 회사 ‘빅테크펌’(가명)의 본관 쪽으로 걸어가는 엔지니어들에게 말한다. 신호가 바뀌었다.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동네 회사에 다니는 직원 하나가 얼마 전 버스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내가 이곳에서 통행 안내를 하고 있는 이유다. 고객들을 보호하는 게 나의 의무다. 심지어 그들의 실수까지 막아야 한다. 테크 회사 직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뭔가 다르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한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서인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도통 관심이 없다. 내가 지키고 있는 사람 중 몇몇은 아마 천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중 절반은 땅바닥만 보며 걷고, 다른 절반은 휴대폰 화면에 고개를 처박고 다닌다. 이런 면만 보고 있으니 그중에 천재가 있다는 사실을 믿기는 힘들다. 신호등 불빛이 바뀌고 차들이 멈춘다. 다시 “건너가세요” 외친다.
이 일의 어떤 면은 군 시절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물론 실리콘밸리에서는 소총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휴대폰과 무전기가 전부다. 화상용 드레싱 대신 반창고가 들어 있는 메디컬 키트가 있다. 그러나 업무가 주는 감흥과 조직 구조는 비슷하다. 특히 동지애가 그렇다. 내가 팀이고 팀이 곧 나다. 이 빌어먹을 소속감이 정말 중요하다. 다시 소속감이 생기니 내가 얼마나 그 느낌을 그리워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래도, 세상에 반쪽짜리 군인 같은 건 없다.
시야의 한구석에서 움직임이 포착된다. 짤막한 형체, 한 엔지니어가 태블릿 PC에 고개를 파묻은 채 보도에서 내려서고 있다. 거리는 약 1m 80cm 정도. 소리치기엔 너무 늦었다. 움직이는 수밖에. “으악!” 뒤에 있던 사람이 소리친다. 뒤를 돌아보니 다른 엔지니어 하나가 입이 떡 벌어져서는 내 손을 쳐다보고 있다. 내 손은 짤막한 엔지니어의 셔츠 칼라를 잡아채고 있다. 그의 앞으로 대형 트럭이 지나간다. 귀에 거슬리는 경적 소리를 울리면서. 자칫 큰일이 날 뻔했다. 땅딸보는 뒤돌아 내 얼굴을 바라보며 눈만 껌뻑인다. 그리고 이내 “감사합니다” 하고 웅얼거린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멈춘다. 땅딸보가 길을 건넌다. 수많은 고객들이 다시 횡단보도를 가득 채운다.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 ‘아직 살아 있네’ 하고 생각한다. 깊게 숨을 내쉬고 시간을 확인한다. 점심까지는 아직 3시간이 남았다.
2018년 4월 3일 캘리포니아의 조용한 도시 샌브루노에 있는 유튜브 본사에 38세의 여성 나심 아그담이 침입했다. 그녀는 9mm 구경의 스미스 앤 웨슨 권총을 탄창이 다 비워질 때까지 갈긴 후 마지막 한 발을 자신의 가슴에 쏴 목숨을 끊었다. 희생자 수로만 따진다면, 이 사건은 20세기에 벌어진 다른 총격 사건들에 비해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 3명이 총상을 입었고 1명은 도망가다가 다쳤다. 사망자는 없었다. 종종 실리콘밸리를 인류의 희망이라고 포장하는 몇몇 ‘테크노-유토피언’들은 이 사건이 총기 규제나 정신 건강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테크 산업에서 가속화된 건 프로 스포츠나 카지노 그리고 월 스트리트처럼 부유한 여타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어떤 경향이다. 바로, 보안 산업의 전문화 혹은 군사화다.
내가 취재를 위해 빅테크펌 본사를 방문한 건 사건 18개월 후, 이미 보안 전문화가 진행된 후였다. 자랑스러운 텍사스 남부에서 태어난 34세의 마이크 리오스는 미 육군 보병 출신의 참전 군인으로 순찰을 돌며 팀원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는 거리를 오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세일즈 매니저, 공급자들 모두를 아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리오스를 알아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뭐라고 해야 할까.” 리오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죠(Winning hearts and minds).”
리오스는 ‘물리적 위협 관리 회사’(라 쓰고 ‘보안업체’라 읽는다)인 ‘슈어폭스 컨설팅’ 소속이다. 슈어폭스는 여러 겹으로 구성된 빅테크펌 보안 체계의 일부를 담당한다. 빅테크펌의 보안 조직은 빅테크펌 자체의 보안업체를 비롯해 여러 사설 보안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매우 복잡하게 이뤄져 있다. 각자가 맡은 역할과 책임에는 차이가 있다. 다윈식의 초경쟁과 대량 계약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이런 복잡한 조직과 비용은 일종의 과태료라고 볼 수 있다. 이 중 슈어폭스 컨설팅이 맡은 역할은 위급 상황 대응이다.
슈어폭스의 영업 전략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상근 및 비상근 인력 총 271명 중 90%가 제대 군인이다. 슈어폭스는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제대 군인들의 높은 자살률과 실업률이 이슈가 되었을 때, 혼란을 숭배하는 제대 군인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끌었다. 참고로 빅테크펌은 이 기사에 실제 사명을 드러내기를 거부했다. 내가 슈어폭스의 영업 활동을 취재할 수 있었던 건 이 회사 영업이사와 2008년 이라크에서 같은 보병 대대에 근무했기 때문이다. 마이크 리오스 역시 이 대대 소속이었다.
텍사스주에서 2016년에 설립한 슈어폭스는 고래가 가득한 바다에서 헤엄치는 날렵한 청상아리 같은 신생 그룹이다. 보안 산업의 중심축 중 하나인 ‘시큐리티 인더스트리 스페셜리스트’는 실리콘밸리에서 수년째 영업 중이다. 또 다른 대형 업체인 ‘AS 솔루션’은 최근 샌타클래라 카운티 보안관의 재선 선거 자금을 대주고 총기 소지 허가증을 받아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AS 솔루션은 페이스북의 보안업체 중 하나로 유명하다. AS 솔루션은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건에 대해 내사에 착수하는 한편 검찰 조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아이디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테크노 유토피언들은 슈어폭스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보안업체를 포함, 타 업체들도 베테랑을 고용하고 그들을 재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했으나, 90%가 넘는 ‘제대 군인 중심’의 영업 전략은 아직 아무도 점령하지 않은 영역이었다. ‘사설 보안업체’라는 표현에서 누군가는 2007년 이라크 시민들을 살상한 혐의로 시끄러웠던 용병 기업 ‘블랙워터’나 예멘 내전에 참전 중인 업체들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슈어폭스는 그런 종류의 업체는 아니다. 36세의 조시 조트 대표와 42세의 브라이언 스웨이가트는 16년 전인 2003년 이라크에 파병된 제10 기갑 연대 제4 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사이다. 두 사람 다 파병지에서 용맹을 떨쳤으며, 특히 조트는 티크리트 인근에서 펼친 매복 작전으로 은성훈장까지 받았다. 이 회사는 2017년 오스틴의 뮤직 페스티벌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의 보안 관리를 담당했다가 실리콘밸리로 진출할 기회를 잡았다. 몇몇 테크업체로부터 계약을 따냈고 이듬해에는 아예 본사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예전 직장과 달리 리오스는 빅테크펌에서 무기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와 그의 동료들은 테크 회사 직원들 틈새에서 꽤나 눈에 띈다. 서 있는 자세와 귀에 꽂은 이어피스 탓이다. 슈어폭스 직원들은 경쟁사들에 비해 단정한 복장을 하는 편이다. 셔츠는 바지 안에 넣고 문신은 가린다. 고정된 위치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든 순찰을 도는 사람이든, 리오스의 팀은 종종 이곳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과 마주친다. 시위대, 분노한 전 직원, 혹은 부랑자. 보안 요원들은 대부분의 근무시간을 신분증을 확인하거나 방문객에게 길을 가르쳐주며 보낸다. 관타나모 베이의 군 교정 시설 경비병으로 두 번 파병 나갔던 한 예비역에게 빅테크펌에서 경비를 서는 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는 웃으며 ‘괜찮은 편’이라고 답했다.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을 생각하면 말이죠.”
모든 게 예전 같을 순 없다. 리오스는 “여기 오려면 우두머리 수컷처럼 구는 태도를 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리치거나 욕하는 걸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무슨 이야기든 해도 좋지만 종교와 정치에 관한 건 안 된다는 불문율도 있다. “신입이 들어오면 가르쳐주는 부분이죠.” 리오스는 그걸 ‘군대와 디즈니랜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법’이라고 표현했다.
빗질이라곤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듯 떡진 머리카락과 구겨질 대로 구겨진 티셔츠. 빅테크펌 직원 대부분은 아침 수업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대학생처럼 보인다. 슈어폭스사 직원들은 이들 고객에 대해 대부분은 긍정적인 어조로 말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선명한 계급 차이를 무시할 순 없다. 일반적으로 테크의 생태계에서는 대부분이 특정 계층 학교 출신으로 다들 비슷한 과목을 공부했고, 진보적 가치와 자유주의적 이상론이 섞인 특정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엔지니어든, ‘비엔지니어’라는 반쯤 경멸적인 표현으로 불리곤 하는 다른 직원들이든. 국가 안보의 문제로 확장하면, 이들은 첨단 기술이나 거시적 질문, 예를 들면 ‘공격용 드론이나 로봇 병사를 활용하는 게 도덕적인가’ 같은 문제에 관심을 둔다. 다시 말해 빅테크펌 직원들은 전직 보병대원 출신 보안 요원들의 직업적 어려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나와 리오스가 빅테크펌의 부지를 걷는 동안 리오스의 부하 직원 중 하나가 의료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고해왔다. “남자 직원 하나가 박스를 열다가 손가락이 베었습니다. 출혈은 쉽게 잡힌 상태예요.” 수신이 끝나자 리오스는 내 얼굴을 바라봤다. “여기 사람들은 가끔 당신과 나 같은 사람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도 법석을 떨어요.” 해군 전역자인 41세의 경비원 도니 텡코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연기는 많이 나는데, 불이 난 경우는 거의 없어요.” 큰일난 줄 알아서 가보면 별일 아닌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리오스가 처음 ‘마음을 얻는다(winning hearts and minds)’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게 그저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똑같은 표현을 슈어폭스의 다른 직원 두 사람에게서 들었다. 그러다 나는 이들이 대회에 약어를 많이 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볼로(BOLO)’라든지 ‘POI’라든지 ‘SOP’라든지 ‘TTP’ 같은 약어들. 이걸 다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건 취재가 며칠이나 지나서였다. 이들은 약어 쓰기를 즐기는 자신의 고객과 하나가 되어, 그들 진영의 지형을 파악하고 고객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과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두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슈어폭스는 실리콘밸리에서 〈미 육군 야전교범〉에 나오는 ‘대반란전' 전술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약 10년 전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장군(CIA 국장을 지내기도 한 전 4성 장군)이 미군에 재도입한 대반란전 전략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식할 마법의 해결책처럼 여겨졌다. 대반란전은 ‘공동의 적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해 적인 반란군을 무찌른다’는 아이디어를 기본으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이 2003년에 발발해 26일 만에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반군은 미군이 전면 철수한 2011년까지 일부 주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갔다. 알카에다의 해체를 목적으로 발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미군은 결국 이 두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작전’을 펼쳤는데, 이게 바로 대반란전의 골자다. 주둔 연합군의 수뇌부는 현지 마을 행사에 참석하고 부대원들은 문화와 풍습을 연구해 현지 주민들의 환심을 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반란전 전략은 실패했다. 이라크에서는 이라크 경기를 큰 폭으로 부양시키고 수니파 지도자들과의 화해를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기에 이 전략은 한동안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10억 달러가 걸려 있던 문제의 요점은 이 전략이 가져온 안정성이 과연 미군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니 않은 상황에서도 유지될지의 여부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전략은 이라크에서도 실패했다. 대반란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병력과 재원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아무리 미군이라도 가능할 리 없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걸 실리콘밸리에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주들은 미국 대중처럼 ‘미국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돈을 쏟아붓고 병사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세계에서 인구 대비 억만장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이 지역에서는 돈을 만들어내는 요체, 회사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자금이든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대반란전은 전장에서 죽었으나 실리콘밸리에서 ‘고객 서비스’로 부활했다.


슈어폭스의 군사 문화는 운영 전략 외에도 곳곳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겼다. 예를 들어 슈어폭스의 조직도는 군대 조직도와 무척 닮았다. “우리는 장교와 하사관의 역학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직 구성에 적용했죠.” 스웨이가트가 말했다. 이때 역학이란 큰 그림을 그리는 장교와 이를 수행하는 하사관으로 조직 내 포지션을 나누었다는 뜻이다. “조트가 잘하는 일이 있고 내가 잘하는 일이 있으니까요.” 이들의 군인 정신은 심지어 사명에도 섞여 있다. 조트는 군대에 있을 때 육군 포병 포대에서 사격을 지원하는 ‘13-폭스’ 주특기를 맡았다. 그의 주특기 이름에서 따온 ‘폭스’에 ‘슈어(sure)’를 붙여 슈어폭스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사명에서부터 확실성과 안도감을 전달하려 한 것이다. 잠재적 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회사에 지원할 사람들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조트는 슈어폭스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가 제대 군인을 위한 ‘전후 군사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가끔 직원들에게 ‘내가 다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말을 들어요. 그건 대단한 일이죠.”
슈어폭스의 의료진 중 하나는 해외 파병에서 다른 군대와 일해본 현대 군인들의 경험이 회사에 큰 이득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군인들은 어린 나이에 해외로 파병 가서 다른 문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죠. 다른 점을 얼마나 빨리 파악하고 적응하느냐의 문제인 거예요.” ‘다른 문화에 대한 적응’은 〈미 육군 야전교범〉이 대반란전에서 가장 강조하는 항목이다.
회사 부지 근처의 술집에서 늦은 오후에 만난 빅테크펌 직원들 역시 내가 경험한 대반란전의 양상과 유사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직원들은 슈어폭스 같은 보안업체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선을 지키기를 원했다. 빅테크펌 직원들은 보안 요원들이 적재적소에 있으면서 눈에 띄지는 않기를 원했으며, 활동적이면서 고압적이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2008년 이라크에 있을 때 이라크 시민들이 우리 소대에 표출했던 불만 사항과 일치한다. 참고로 미군은 대반란전의 일환으로 일종의 평화 유지군처럼 이라크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도 했다. 불만을 표출했던 이라크 시민들처럼 이 기사에 등장하는 빅테크펌 직원들 역시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가 뭐 그리 악의적인 것도 아니었고 대부분 표면적인 수준에 그쳤음에도 말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보안 수준은 매우 프로페셔널하다. 엘리트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며칠을 머물다 보면 이런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이 지역의 초등학교는 어떤가? 혹은 은퇴자 주거 단지는? 저 길 건너에 있는 성당은? 이들 시설에는 사실 보안 장치랄 게 거의 없다. 실리콘밸리에는 총기 폭력에 관한 미국 전체의 방향성을 좌지우지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보다 미국의 현 상태를 더 쉽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엄청난 돈과 영향력으로 현실 자체를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테크노-유토피언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여왔다.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다. 미국인 대부분은 할 수도 없는 선택 말이다.

2019년 봄, 에릭 곤잘레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세일즈포스 타워로 파견 근무를 나갔다. 삼성은 새로 내놓은 스마트폰을 홍보하기 위해 보도에 홍보용 제품을 설치했고, 곤잘레스의 임무는 그걸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삼성의 판매원과 과격한 행인들 틈에서 질서를 유지하며 낮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이라크를 떠올렸다.
세일즈포스 타워는 한때 매립지였지만 지금은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과거를 회상케 하는 더러운 흔적들이 아직 남아 있다. 쓰레기가 흩뿌려져 있는가 하면 보도가 인분으로 더럽혀져 있기도 하다. 어두워지면 삼성의 장비를 건물 안으로 들여놓아야 했다. 곤잘레스와 동료들의 임무가 건물과 건물 안에 있는 제품을 지키는 일로 바뀌는 것이다. 매일 밤 포스트에 경비원을 세워 강도 높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한편, 차량을 보내 그 너머까지 순찰했다. 그 어둡고 긴 시간 동안 곤잘레스에게는 생각할 틈이 너무 많았다. 그건 마치 전투 전초기지가 있는 건물 옥상에서 경계를 서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이 허공에 떠돌던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소리쳤다. “거기 누구야!” 아무런 답이 없었으나 소리는 점점 가까이서 들려왔다. 다시 누구냐고 소리쳐 물었다. 여전히 답이 없었다.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곤잘레스는 몸을 낮추고 손전등을 찾았다. 곧 어둠 속에서 형체가 드러났다. 사제 폭탄을 들거나 자살 폭탄 조끼를 입은 반란군은 아니었다. 마트 카트를 끌고 다니는 노숙자였다. 노숙자는 곤잘레스 바로 앞까지 다가와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 곤잘레스는 속으로 웃으며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부가 집중된 곳일 것이다. 이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대부분의 국가보다 높다. 그러나 이 예외적인 지역에서 일어나는 낙수 효과는 매우 불공정해 보인다. 샌프란시스코의 주거 비용은 끝없이 치솟았고 결국 돈 많은 외지인들이 지역을 모조리 차지했다. 몇 대에 걸쳐 이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 대부분의 슈어폭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실리콘밸리가 있는 도시에 살지 못하고 그 인근인 헤이워드, 포스터시티, 샌타크루즈 등지에 도넛 모양으로 흩어져 산다.
출퇴근길이 멀다 보니 가끔은 집 근처에 있는 체육관을 찾기보다 회사 부지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브라질 주짓수 고단자로 월드 타이틀, 팬앰 타이틀 보유자인 제시카 재스퍼는 항상 빅테크펌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다.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보안 업무를 시작해 실리콘밸리로 직장을 옮겼다. 그녀가 할리우드에서 배운 건 고객보다 고객의 측근들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었다. 고맙게도 실리콘밸리에는 측근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빅테크펌의 체육관에서 재스퍼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일반적인 체육관에 흐르는 새벽 정육 시장 같은 분위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다. 그녀는 낮 시간에는 벤치 프레스 무게를 최대치로 올려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빅테크펌의 남자 직원들이 턱이 빠진 듯 쳐다봤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실 세계 속에서 ‘던전스 앤드 드래곤스’류의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는 괴짜들을 보고도 웃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단련해야 하기도 했다. 그들이 마법사나 기사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녀와 달리, 동료들은 가끔 자제심을 잃기도 한다. 그녀의 동료 중 하나는 체육관에서 스티로폼으로 된 칼과 방패로 가득 찬 무기고를 발견했다. 그는 체력 단련을 중단하고 자신의 친구와 〈브레이브하트〉의 한 장면을 재현하며 한참을 놀았다. 슈어폭스의 다른 직원 중 하나는 체육관에서 빅테크펌 직원 중 하나가 샌드백에 마법을 걸기 위해 주문을 외우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맹세하기도 했다. “여긴 정말 풍족해요.” 재스퍼가 외교적인 태도로 말했다. “우리도 여기까지 오는 데 꽤나 힘들었어요. 우리 고객들은 디지털 세계에서 번창하고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번창하는 거죠.”
재스퍼는 24시간 내내 실리콘밸리의 주요 인물들을 전담하는 임원관리팀에서 일한다. 임원관리팀은 부지를 지키는 다른 팀보다 인원이 적다. 임원의 지위가 높을수록 그들을 수행하는 보안 요원의 자격 조건도 까다로워진다. FBI의 스왓(SWAT) 팀이나 CIA, 미국 연방보안국 출신의 재원들이 인생 전환기 이후에 찾는 두 번째 커리어가 테크업계 임원 전담 보안 요원이다. 이들은 담당 임원의 출장길까지 따라나서기도 한다. 출장이 잡히면 사실 출장 기간 자체보다 그 전에 해둬야 하는 일이 더 많다. 임원 전담 팀은 차량 탑승 및 하차 지점을 확인하기 위한 모의 훈련을 하고, 교통 흐름을 파악하며, 다양한 경로의 비상구와 피난처를 확보해둔다.
불시에 ‘결정적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당신은 과연 그 순간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지 못한다. 그게 본능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순간의 상황에 판단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그것 역시 본능이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 라울 델라 페냐가 “회사 건물 중 하나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는 무전을 들은 건 지난가을 초,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그는 한달음에 여러 업체의 경비원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바로 앞 빌딩 발코니에 서서 뛰어내리겠다며 호언하고 있는 남자를 보며 빠르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페냐는 본래 진지하고 조용한 사람이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나서야 되겠다고 직감했다. 단순히 그가 속한 슈어폭스가 위급 사고 대응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페냐는 빌딩으로 들어서 남성이 있는 층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가구를 난간 위로 집어 던지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가 텅 빈 시선으로 페냐 쪽을 바라봤고 그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녹아 내리고 있었다. 페냐는 경찰학교에서 훈련한 자살을 막는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대화를 시작했다. 일단은 중요하지 않은, 작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햇볕이 강한 날이었고, 페냐는 남자에게 물을 권했다. 남자는 사양했다. 그러고는 난간을 넘더니, 등이 바깥쪽을 향하도록 조심스럽게 돌아섰다. 페냐는 남자에게 이쪽으로 다시 넘어오라고 말했다. 남자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등을 젖혔다. 이제 그를 지탱하는 건 난간을 잡은 두 손과 난간 바깥쪽 좁은 바닥에 딛고 있는 두 발뿐이었다.
페냐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코로 내뱉었다. ‘훈련받은 대로 하자.’ 그는 남자에게 배가 고프냐고 물었다. 남자는 대답 대신 난간을 잡은 두 손을 놓아버렸고 그의 몸이 뒤로 쏠렸다. 하지만 페냐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가 손을 뻗어 다시 난간을 잡았다. 작은 희망이 보였다. 남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말했고, 페냐는 다시 별것 아닌 이야기를 시작하며, 경찰이 도착해 상황을 인계할 때까지 버텼다. 경찰은 현장에 도착한 이후에도 페냐에게 주변에 머물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남자는 다시 난간을 넘어왔고, 안정을 되찾았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당신은 행동할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마지막 날, 나는 일찍 빅테크펌을 떠나 북쪽의 샌프란시스코로 향할 계획이었다. 목적지는 스테판 커리가 소속된 농구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홈구장이 있는 체이스 센터. 그날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르브론 제임스가 소속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경기가 있었고, 슈어폭스는 경기 티켓을 갖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남은 티켓 몇 장만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 회사는 이번 시즌 경기장의 ‘울트라 VIP 클럽 스위트’를 샀다. 회사가 스포츠 경기장의 초호화 부스를 사는 건 성공의 척도이자 지위의 상징이고, 직원들의 수고에 보상하는 훌륭한 방식이다. 물론 고객을 접대하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크롬 컬러의 친환경 자동차로 가득한 빅테크펌의 거대한 주차장에서 나는 내 크롬 컬러 친환경 렌터카를 찾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그래놀라와 태양광 패널로 가득 찬 이 지역에서는 아주 보기 드문 기괴한 물체였다. 나는 마치 처음 보는 동물을 발견한 듯 그 물체에 이끌렸다. 거대한 검정 픽업트럭이었다. 오클라호마 번호판을 달고, 실제로 물건 운반에 사용된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짐칸에 흠집이 잔뜩 난 닛산의 타이탄 프로 4X 픽업트럭. 5000cc에 달하는 이 거대한 차의 뒤 유리창에는 “당신의 지역 총잡이를 지지하세요”라든지 “현대의 건슬링어들” 같은 터프한 문구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유리창의 다른 쪽 구석에는 라틴어로 “수아 스폰테(SUA SPONTE)”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의 의지에 따라’라는 뜻으로, 미국 조지아주에 본부를 둔 특수부대 제75 레인저 연대의 모토다.
슈어폭스가 빌린 농구 경기장의 스위트 박스는 광고에서 보던 것 이상이다. 케이터링 음식이 깔려 있고, 멋지게 차려입은 은발의 종업원이 맥주와 와인을 서빙한다. 어느 순간 나는 한발 물러서 그 순간의 장면을 감상해본다. 전직 군인들이 이제는 슈어폭스 직원이 되어 앞이 탁 트인 경기장 좌석에 앉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다. 직원들이 데리고 온 애인들이 이미 수없이 들었을 법한 옛날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는다. 스위트 박스 중앙의 테이블에서는 임원 전담 팀원 두 명이 술잔을 기울이며 새 잠재 고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방 뒤쪽에는 스웨이가트가 기둥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슈어폭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숙고 중이라고, 나는 상상해본다. 슈어폭스는 군대 문화를 실리콘밸리에 접목시켰다. 지금 실리콘밸리가 그 호의에 보답을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코트에서 스테판 커리가 중거리 점프 슛을 꽂아 넣는다. 관중은 환호하고, 앞자리에 앉은 슈어폭스 직원들이 한 칸 건너 스위트 박스에 앉은 중년의 백인 남성과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대반란전의 또 다른 교범이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적응하고 극복하라(Adapt and overcome).”
그 누구도 첨단 기술의 세계 중심, 실리콘밸리를 폭력적 수단으로 해할 수 없다. 탄탄한 근육의 전직 군인들이 이 거대한 테크 단지를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