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종말은 아닐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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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종말은 아닐까?

오성윤 BY 오성윤 2023.06.09
 
‘뉴 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린 미국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 톰 울프가 내러티브 기법을 적용한 마지막 기사는 〈에스콰이어〉 1983년 12월호에 실린 ‘로버트 노이스의 땜질-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떠올랐는가(The Tinkerings of Robert Noyce-How the Sun Rose on the Silicon Valley)’였다. 당시 미국은 거대한 기술 혁명의 중심에 있었고, 인텔 코퍼레이션 설립자 로버트 노이스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이 만든 실리콘밸리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참이었다. 디지털 혁명은 그 후로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해왔고,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으며 그 정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러고는 조금씩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거인’들도 갑자기 석양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리콘밸리는 정말 이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혁신을 주도했던 핵심들이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것뿐일까? 톰 울프가 〈에스콰이어〉에서 실리콘밸리의 부상을 이야기한 지 정확히 4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한번 짚어보기로 했다. 과연 오늘날 인류의 미래가 발명되는 곳은 어디일까?
“당신의 스타트업은 주차장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CEO는 늘 재킷이나 넥타이 대신 카키색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나는, 지위 구분이 없는 일종의 커뮤니티가 돼야 했다.” 1983년 〈에스콰이어〉 기사에서 톰 울프는 트랜지스터, 마이크로칩, 컴퓨터, 정보 기술에 대해 두루 언급하며 실리콘밸리의 기원과 이데올로기를 자세히 설명했다.
아직 1960년대도 되기 전부터, 샌프란시스코만의 남쪽 끝과 팰로앨토, 마운틴 뷰 사이에는 공격적인 IT 스타트업(지금은 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휴렛팩커드 같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다. 그들은 베이 에어리어의 배, 살구, 자두 과수원을 점령해나갔다. 그 안에서는 오늘날 이스트코스트의 회사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 기업 문화도 생겨났다. 슈트와 넥타이 차림, 기사가 딸린 리무진, 높은 층의 사무실 같은 것들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수평적인 문화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 세대의 발상지이자 히피족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이런 변화가 시작된 것은 사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서퍼들, ‘이지 라이더’라 불리는 바이커들, 형형색색의 불꽃 무늬 커스터마이징을 한 핫로드(튜닝 스포츠카)가 주류문화인 그곳에서는 말이다.
실리콘밸리의 신화가 태동한 건 방금 말한 캘리포니아 신화가 탄생한 해와 동일했다. 실리콘밸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이 지역의 반문화적 측면을 포용했다. 당시로 말하면 존 페리 발로 같은 히피 출신 저술가가 록밴드 그레이트풀 데드의 가사를 쓰거나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을 작성했고, 역사적 잡지 〈Whole Earth Catalog〉를 만든 스튜어트 브랜드 같은 반문화적 유력 인사들이 존재하던 때였다. 사이키델릭 문화와 초기 해커 운동을 결합해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청년도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스티브 잡스라는 청년.
그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트랜지스터에서부터 최초의 맥에 이르기까지, 웹에서부터 스마트폰, 소셜 네트워크에서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실리콘밸리 특유의 혁신적 추진력은 멈춘 적이 없었다. ‘닷컴 버블’ 같은, 베이 에어리어의 IT 기업들이 처했던 가장 큰 위기조차도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아마존(시애틀에 기반을 두고 있어 실리콘밸리보다는 북쪽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베이, 야후,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이 등장할 수 있었던 분수령이었다.
그리고 쇼클리 반도체(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 1956년 베이 에어리어에 처음 상륙한 트랜지스터 제조업체)가 마운틴 뷰에 세워진 지 60년이 지난 현재. 실리콘밸리의 기술 변화의 무한한 잠재력은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말이다.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1990년대 사이버펑크에서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발굴해, 일종의 디지털 트윈을 생성하려고 했다. 벤처 투자자들은 이 ‘Web 3.0(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을 활용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데이터 소유를 개인화하는 3세대 인터넷)’ 기반의 스타트업에 3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쏟아부었다. 운송, 배송, 업무, 교육, 의료 등 생활의 거의 모든 부문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 이 계획의 가치 평가는 끝을 모르고 상승세를 탔다.
팬데믹과 록다운은 최근 몇 년 동안 디지털 기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효용을 사상 최고치로 만들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거기가 정점이었다. 그렇게 맹렬히 타오르던 캘리포니아의 태양은 갑작스러운 토네이도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2022년 4분기, 미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63% 감소했고, 거대 IT 기업들의 주식 가치 역시 급락했다. 2021년 가을 최고치를 기록했던 메타(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큰 전환을 예고하며 사명까지 ‘메타’로 바꿨다)는 불과 1년여 만에 주가가 60% 하락했다. 테슬라의 주가 하락은 70%에 육박했으며,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주가 역시 50% 가까이 하락했다. 단순히 금융 가치 하락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노동시장에까지 여파가 미쳤다. 구글(1만2000명), 메타(1만1000명), 아마존(1만8000명), 마이크로소프트(1만 명)를 비롯해, IT 기업에서만 수십만 명이 직장을 잃었다.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 스트리밍 서비스, 거의 모든 종류의 배달 서비스, 화상회의 소프트웨어에 그 어느 때보다 탐닉하고 의존했던 팬데믹 동안, 분명 디지털 거인들은 그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자 갑작스러운 일몰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점진적인 감소가 아닌, 말 그대로 급락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실리콘밸리의 종말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확실히 어떤 관점에서는 그게 사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가짜 뉴스, 개인정보 남용, 러시아 트롤 부대와 같은 이슈에 오염되며 눈앞에서 늙어가고 있다. 틱톡 같은 중국산 소셜 네트워크는 이제 압도적 위협이 되었고, 아마존이나 구글처럼 한때 ‘혁명적’이라 칭송받던 기업들은 경쟁을 부추기는 수준을 넘어 ‘질식’시킬 정도의 착취 기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메타버스와 Web 3.0의 최신 기술에 대한 ‘베팅’에 가까운 투자는 마케팅 특수효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IT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를 고집하는 대신 오스틴(텍사스), 포틀랜드(오리건), 덴버(콜로라도) 같은 다양한 장소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펼쳐지고 있는 형국이다. 선전(Shenzhen)에서 텔아비브까지, 베를린에서 벵갈루루까지, 토론토에서 라고스까지, 실리콘밸리(이때 ‘실리콘밸리’는 ‘IT 스타트업 밀도가 높은 지역’을 말하는 관용 표현이다)는 전 세계에서 생겨났다.
하지만 단정은 이르다. 세계 곳곳에서 ‘글로벌 실리콘밸리’가 생겨나고 있지만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를 연결하는 베이 에어리어는 여전히 디지털의 미래를 그리는 메카다. 최근 몇 달 동안 차세대 기술을 대표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는 것도 캘리포니아의 그 유명한 회사, 애플이다. 이들은 올해 안에 최초의 증강현실 스마트 글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방금 가상현실은 마케팅 특수효과일 뿐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우리를 완전히 디지털 환경으로 이동시키려던 가상현실, 메타버스와 달리 증강현실은 실제 세계에 디지털 요소를 입혀 사용자의 눈에 보이는 세상 위에 문자, 그래픽 같은 가상 정보를 실시간 중첩해 제시하는 기술이다. 구글 맵을 눈앞으로 끌어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눈앞에서 알 수 있도록 하거나, 눈앞에 보이는 건물에 어떤 기업이나 상점들이 입점해 있는지 알려주고, 투명하게 표시된 아스팔트 너머의 적합한 주차 위치를 알려주거나, 걸으면서 소셜 네트워크나 이메일 알림을 눈앞에 펼쳐 투명하게 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스마트 글라스와 증강현실은 그리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이미 2016년에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게임, ‘Pokemon Go’의 중심에 있던 것이 바로 증강현실 기술이다. 그보다 더 이른 2013년에도 이미 ‘구글 글래스’라는 최초의 증강현실 뷰어가 판매된 적이 있다. 물론 그 악명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 프로젝트가 막대한 실패로 돌아갔다는 걸 알고 있겠지만. 높은 가격(1500달러), 착용자와 주변 사람들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비실용적 디자인, 결정적으로 이 기기가 스마트폰보다 낫다는 점을 어필할 ‘킬러 앱’이 없다는 게 치명적 단점이었다.
놀랍게도 이 불명예스러운 역사는 10년이 지난 후에도 반복됐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망하고 야심 찬 신생 기업, 매직 리프에 의해서. 이들이 2019년 내놓은 첫 번째 기기 ‘매직 리프 원’은 시장에서 구글 글래스보다 더 심각한 실패를 맛보았다. 출시 후 6개월 판매 예상치는 50만 개였으나 실제로는 6000개 정도가 팔렸다. 크기가 지나치게 컸고, 가격은 너무 비쌌고(2300달러), 무엇보다 이 거대하고 비싼 제품을 소비자가 구매하도록 설득하기에는 응용 프로그램 수가 너무 적었다. 과도한 부피로 이동 중에는 사용할 수 없었고, 앉아서 쓰고 있으면 사이보그라고 놀림받기에 딱 좋을 뿐이었다. 차라리 그전에 출시된 가상 뷰어들이 훨씬 착용하기 편하고 저렴했다.
기업들은 앞서 언급한 스마트 글라스보다 더 쉽게 착용할 수 있도록 기능을 다소 축소한 모델들을 내놓기도 했으나, 모두 유사한 운명을 맞았다. 자사의 음성 비서 서비스인 알렉사와만 호환되도록 한 아마존의 ‘에코 프레임즈’, 룩소티카와 메타가 협업해 만든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이 가능한 안경 ‘레이밴 스토리즈’, 스냅챗의 ‘스펙터클즈’가 그 예다. 디자인에 중점을 둬 정상적인 안경처럼 쓸 수 있도록 했지만, 대신 증강현실 기술의 효용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렇다면 계속되는 실패에도 이 유명 거대 기업들이 이 분야에 계속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기기의 크기와 증강현실 기술의 효용 사이의 적절한 균형만 찾아낸다면 스마트 글라스의 폭발적 보급은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증강현실 뷰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물리적 환경과 디지털 환경 간의 융합을 실현할 것이며,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가 말한 ‘onlife(온라인과 라이프의 합성어)’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많은 이가 애플의 증강현실 뷰어를 기대하는 것도 동일한 이유다. 이 거대 기업은 아이팟, 아이폰, 애플워치 같은 전례를 통해 품질이 검증됐을 때만 제품을 판매한다는 일종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구글, 메타, 오픈AI(챗GPT를 만든 스타트업)의 연구실에서 디지털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디지털 혁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바로 딥 러닝에 기반한 인공지능이다. 딥 러닝은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재처리함으로써 텍스트와 이미지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소프트웨어(번역, 이미지 인식, 비디오 개선에 사용됨)에 적용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딥 러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장치를 ‘지능형’으로 만들어 점점 더 정확한 방식으로 장치와 통신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키보드가 없는 스마트 글라스’의 성공을 위한 열쇠 역시 쥐고 있다.
‘딥 러닝 혁명’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최근 등장한 ChatGPT나 Dall-E 2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기술의 잠재력은 이제야 극히 일부만 드러난 상황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의료까지, 수동적 기능에서 자율적 기능까지, 창의성과 관련된 영역부터 방대한 정보를 다루는 영역까지, 인공지능은 제한 없이 거의 모든 영역에 투입되어 인간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어시스턴트로서의 능력을 증명했다.
인공지능이 언젠가 우리를 완전히 대체할 거라는 불안도 존재한다. 아직 이런 시나리오는 공상과학소설에 불과하지만, 딥 러닝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놀라운 속도로 처리해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걸 보면 막연한 두려움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런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결국 결과를 평가하고 최적화하고 최적의 방법으로 활용하고 실행에 옮기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질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도약할 것이라는 점을 배제할 수는 없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거대 기업들이 베팅하고 있는 또 다른 기술 혁신, 양자 컴퓨터가 그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 컴퓨터가 정보를 0과 1의 비트 단위로 처리하고 저장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는 정보를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 단위로 처리하고 저장해 성능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증강현실이나 딥 러닝과 달리, 이 기술은 이제야 첫걸음을 디딘 수준으로 현재로서는 어떤 실용적인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 구글, 엔비디아, 캘리포니아 버클리 소재의 리게티 같은 신생 기업의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양자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의 기술은 곧 암호학, 기상학, 의학, 금융과 관련된 지능 분야에서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혁신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일몰이 현실인지 착시인지는 이런 기술들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혁신들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실리콘밸리는 결국 여전히 세계 어느 곳보다 인류의 미래가 만들어지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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