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2> 우진역의 안효섭, 데뷔 6년차인 그의 고민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데뷔 6년 차, 26살. 안효섭은 목표를 정해두지 않고 살고 싶다.


안효섭의 고민



골드 폴로셔츠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by 무이. 블랙 데님 팬츠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골드 폴로셔츠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by 무이. 블랙 데님 팬츠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낭만닥터 김사부 2〉 촬영 끝난 지 얼마나 됐나요?
딱 2주 정도 됐어요. 거의 방송 당일까지 찍었거든요.
2주 동안 서우진 역할에서 좀 빠져나왔어요?
저도 모르게 빠져나오고 있어요. 극 후반쯤 (서)우진이 많이 밝아졌잖아요. 밝고 긍정적인 그 모습이 저한테도 한동안 유지됐어요.
원래는 긍정적인 편이 아닌가 봐요?
좀 현실적인 편이에요.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 맡았던 역할보다는 감정 소모가 컸을 배역이었어요. 서우진은 안효섭에게 어떤 역할이었나요?
제가 연기한 인물들은 다 각자의 아픔이 있었어요. 그에 비해 우진이는 상대적으로 시련이나 아픔이 더 많았다고 생각해요. 제게 우진이는 챙겨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은 아이였어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부터 정이 확 들더라고요. 그리고 궁금했어요. 고단한 유년 시절을 보낸 이 아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지요. 특히나 마음이 가는 친구였어요.
〈낭만닥터 김사부〉의 경우, 시즌 1의 시청률이 워낙 높았고 극 자체도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기존 팬층이 탄탄한 작품의 새 시즌에, 그것도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는 건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제작진, 감독님, 작가님, 심지어 출연진도 다 똑같은데 특정 인물만 바뀐 케이스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담이 많이 됐죠. 저도 〈낭만닥터 김사부〉의 애청자로서 시즌 1의 선배님들이 너무 잘하시는 걸 봤기 때문에 ‘내가 우진이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돌담병원에 잘 스며들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의사 역할이라 준비도 꽤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데뷔 이래 첫 장르물인데 부담은 없었나요?
있었죠. 의사라는 역할 자체가 도전이었어요. 펠로우 2년 차가 되려면 적어도 12년의 세월이 걸리잖아요. 저는 그걸 1~2개월 안에 준비해야 하니까 어려웠죠. 그래서 내린 결론이 ‘완벽하게는 못 해도 흉내라도 잘 내보자’였어요. 실제로 감독님, 선배님들이랑 병원 답사를 가서 의사들의 삶도 관찰했고요. 의사들의 행동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부분까지 배워보려고 했어요. 또 CPR(심폐소생술)도 기본적인 건 배웠고, 기관 내 삽관이나 봉합하는 법을 배워와서 계속 연습했어요. 집에서 고기 잘라놓고 꿰매는 연습도 했고요.
“절 얼마에 사시겠습니까?”라는 대사가 유독 인상 깊었어요. 서우진의 삶을 한 문장에 압축한 대사 같았거든요. 돌담병원에 처음 입성했을 당시의 서우진과 마지막 회의 서우진에게 값을 매긴다면 얼마로 매길 수 있을까요?
하하하.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요? “절 얼마에 사시겠습니까”라는 말은 우진이가 살아온 배경을 함축해놓은 대사잖아요. 초반에 천만 원이라는 값은 누군가에 의해 매겨진 것이었고, 마지막의 우진에게 값을 매긴다면…. 백지수표? 우진이도 자신의 가능성을 믿기 시작하고 자아가 생겨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에서요. 괜히 있어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얘기해봤어요.(웃음) 저도 이 대사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어떤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저도 똑같이 얘기했어요. “절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연기하기 힘들었던 장면도 있나요?
힘들었던 거요? 많았죠 사실. 저는 원래 좀 드라이한 편이어서 눈물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그 감정을 끌어내려고 고생했었고요. 또 암울한 삶을 살았던 우진이가 밝은 모습으로 변화하잖아요. 오글거리는 몸짓이나 대사를 하는 게 진짜 힘들었어요. 내적 갈등이 엄청났어요. 그런 모습은 제가 아니니까…. 근데 안 하면 일이 안 끝나니까요. 현준 선배(박종환이 연기한 선배 의사)랑 말다툼하고 라커룸에 돌아와서 오열하는 장면도요. 현준 선배뿐만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아닌 척했던 아픔을 폭발시키는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이 힘들었던 게 기억나요.
힘들었던 장면이 꽤 많았네요?
사실 매 장면이 아쉬워요. 만족하는 장면이 없어요. 연기라는 게 답이 없잖아요. 제가 한 게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한 걸 모니터링하다 보면 디테일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한 장면이 아쉽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부족함을 인지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아쉬운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쉬워야 발전이 있고, 안주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모니터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떤 배우들은 자기 출연작을 도무지 못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모니터링 잘하는 편이에요?
잘 못 봐요. 저는 술 먹고 보는 편이에요. 술 먹으면 조금 관대해지잖아요. 사실 〈낭만닥터 김사부 2〉 1화부터 5, 6화까지는 술 마시면서 봤어요. 일부러. 맨정신으로는 못 보겠더라고요.
술 좀 하나 봐요. (웃음)
좋아하는 편이에요.
이번에는 한석규 씨와 함께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어요. 대선배와 함께 일하는 건 어떤 기분이었나요? 그 만남 자체로 큰 힘이 됐을 것 같아요.
한석규 선배님 이야기가 시작되면 할 말이 너무 많아요. 저한테는 최고의 선배님이자 인간으로서도 본받을 게 너무 많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는 사실 무서웠어요.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TV에서 봐왔던 선배님인데 함께 찍는 장면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근데 막상 딱 뵀는데 환하게 웃어주시더라고요. 모든 장면에서 연기 지도도 많이 해주셨고 실제로 겪은 경험담이나 노하우도 디테일하게 알려주셨고요. 가르친다기보다는 도와주려고 하시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 이렇게 해!”가 아니라 “난 이랬는데, 넌 어떻니?”라고 물어보시면서 제 연기의 해석도 존중해주시고 제가 더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인간 한석규’에게는 아빠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실제로 아버지랑 연배가 비슷하지 않나요?
제 나이랑 비슷한 아들이 있으시대요. 저는 선배님만 보면 계속 웃음이 났어요. 포근하고, 후광이 비친다고 해야 하나? 저한테 길잡이 역할을 해주셨어요. 연기자뿐만 아니라 인간 한석규로도요.
데뷔 6년 차인데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이 많아요. 신인 배우로서는 꽤 빨리 주연이 된 편이죠. 활동 초기와 지금, 주연으로서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나요?
확실한 건 그거예요.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최선을 다했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조금밖에 몰라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는 아는 게 많아지니까 더 많은 게 보인다는 것. 드라마를 하나둘씩 더 찍고 성장해가면서요. 하면 할수록 해야 할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극에서 큰 비중을 가진 사람으로서, 극을 어느 정도 끌어가야 하는 사람으로서요. 점점 생기더라고요. 모르는 게, 몰랐던 게.
지난 6년간 찍은 작품 중 안효섭의 대표작은 뭐라고 생각해요?
뭐 하나 꼽을 수가 없어요. 찍고 있는 작품이 대표작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출연했던 모든 작품을 다 똑같이 아끼거든요. 물론 조금 더 힘든 현장이 있고 더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지만요. 대표작으로 하나를 꼽는 건 다른 작품들한테 미안해요.
평소에 드라마는 자주 보는 편인가요?
한국 드라마는 잘 안 보는 편이고요. 미드 많이 봐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미드가 있는데, 〈브레이킹 배드〉예요. 혹시 보셨어요? 정말 완벽한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거짓말하는 게 아니고 시즌 1부터 5까지 정주행을 하고 시즌 5 마지막 회를 다 보잖아요? 그럼 바로 1화부터 다시 봐요. 그렇게 열 번을 봤어요. 심지어 나이가 들어서 보면 또 다르더라고요. 극본, 연기, 편집, 연출, 음악. 다 최고예요 저한테는. 너무 흥분했나요.(웃음)
팬심이 드러나네요. 살면서 가장 처음 본 드라마는 기억해요?
〈야인시대〉! 〈야인시대〉였어요.
〈야인시대〉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 있어요?
등장인물들이 싸울 때 원을 도는 장면요.(웃음)
처음 연예계에 발을 들인 게 17살 때라고 들었어요. 캐나다에 살 적에 국내 기획사에 캐스팅됐다고요.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외국 살면 한국 TV 프로그램을 오히려 더 많이 보게 되잖아요. 드라마, 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연예인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는데 막상 기회가 왔을 때는 잡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연예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연예인보다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같은 말이긴 한데 의미가 조금 달라요. 누군가한테 알려져서 명성을 얻고 싶다기보다는 일 자체를 해보고 싶었어요.


재킷, 쇼츠, 반지 모두 보테가 베네타.

재킷, 쇼츠, 반지 모두 보테가 베네타.


스카프 디테일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팬츠 모두 디올 맨.

스카프 디테일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팬츠 모두 디올 맨.


어릴 적 장래 희망은 뭐였나요?
어려서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꿈을 정하잖아요. 처음에는 외교관이 꿈이었어요. 어떤 부모님이신지 알겠죠. 그러다 컨설턴트, 회계사… 근데 결국에 누나가 회계사로 일하게 됐고 저는 한국에 왔죠.
부모님 말 잘 듣는 아이였나 봐요.
저는 그냥 착한 아이였어요. 부모님 속 안 썩이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름의 자기 계발도 계속했고요.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17살에 혼자 돌아왔군요. 한국말도 서툴렀다고 들었는데 적응하기 힘들었겠어요.
솔직히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에요. 생긴 건 토종 한국인인데 행동이 너무 다르니까요. 처음에는 문화 차이 때문에 조금 힘들었죠. 그걸 극복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발음 고치는 데도 꽤 걸렸고요.
오래 써온 영어 대신 한국어로 감정을 전달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제일 어려웠던 게 억양이었어요. 예를 들어 ‘I don’t love you’라는 대사가 있다면 저는 그걸 머릿속에서 번역해요.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뜻이잖아요. 이 뜻을 강조하려면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해야 하는데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하는 식이죠. 제일 큰 문제는 제가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거예요. 사실 지금도 조금 헷갈릴 때가 있어요. 감독님들이 디테일하게 잡아주시는 경우도 있고, 제가 공부하고 있기도 해서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영어, 한국어 둘 중에 어떤 게 더 편해요?
사투리 쓰는 사람들은 사투리 쓰는 친구들이랑 있으면 사투리를 쓰고, 서울에 있으면 서울말이 편하다고 하잖아요. 저도 비슷해요. 지금 친형이랑 같이 사는데 집에서는 거의 영어로 얘기해요.
혼자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혼자 살았는데 형이 쳐들어왔어요.(웃음) 캐나다에서 대학원 졸업하고 한국에 일하러 와서요.
데뷔작이 음악 예능 〈바흐를 꿈꾸며 언제나 칸타레 2〉(2015)예요. 연예인으로서 사실상 가장 먼저 각인된 게 바이올린 연주였잖아요. 이 프로그램이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완전 처음부터 보셨네요? 저 거의 안 나왔는데. 이 프로그램이 배우 안효섭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냐고 한다면, 사실 배우의 삶과는 큰 연관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맛을 본 느낌이었어요. 근데 진짜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한 기억은 있어요. 카메라 안 돌고 있을 때도 따로 만나서 연습도 많이 했고요.
2016년 출연한 〈가화만사성〉 첫 리딩 때는 집에 가고 싶었다면서요. 그런 긴장감은 여전해요?
요새 긴장감은 별로 안 들어요. 그때는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 같아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제가 〈야인시대〉 봤다고 했잖아요. 거기 출연하신 김영철 선생님도 저 끝에 앉아 계셨고요. 아직도 그 당시가 기억나요. 제 대사가 3화까지 작품에서 딱 하나 있었어요. “네.” 새로운 환경이었고 원래 성격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잘해야지’하는 부담감도 있었고요. 그래서 집에 가고 싶었던 기억이 나요.
결국 그 “네”라는 대사는 잘했어요?
못했어요. 나중에 김영철 선생님이 얘기까지 하셨어요. “네” 그렇게 하지 말라고요. “네”라는 대사 하나를 하더라도 정확한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해주셨는데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근데 돌이켜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그럼 배우로서 처음 받았던 칭찬은 기억나요?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촬영할 때였던 것 같아요. 항상 의기소침해 있었거든요. 부족하다는 걸 심하게 자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는 했지만요. 한 장면을 찍고 어디선가 “효섭아, 너 잘해”라는 말이 들리더라고요. 누가 해준 말인지 기억은 안 나요. 세종이 형이었나? 그 한마디가 진짜 위로가 됐어요. 물론 빈말일 수도, 위로해주려고 한 말일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진심이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괜찮아 보일 수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연기를 잘한다’ 또는 ‘못한다’ 스스로 평가하는 편인가요? 그 잣대는 뭘 기준으로 해요?
네, 스스로한테 냉정한 편이에요. 이 감정이 개연성 있는지, 그걸 충분히 폭넓게 표현했는지를 중요하게 봐요. 누군가 저한테 칭찬을 해줬을 때 딱 거기까지만 믿어요. 내가 더 잘했다면 다른 칭찬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칭찬이라는 게 ‘야, 너 잘했다’와 ‘너 진짜 너무 잘했어’라는 말은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그런 미세한 차이를 관찰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연기하고 감독님이 ‘컷’ 하실 때 ‘컷’ (쉬고) ‘오케이’ 하시면 마음이 엄청 불편해요. ‘컷, 오케이! 다음 신!’ 하시면 마음 놓이는 거 있죠.


코트 하이더 아커만 by 10 꼬르소 꼬모.

코트 하이더 아커만 by 10 꼬르소 꼬모.


코트, 팬츠 모두 하이더 아커만 by 10 꼬르소 꼬모.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 팬츠 모두 하이더 아커만 by 10 꼬르소 꼬모.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간 ‘풋풋한 꽃미남 배우’로 조명받아왔어요. 사실 그런 수식어가 연기자에게는 고정관념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게 제 고민 중 하나였어요. 활동 초반에는 얼굴이 돋보여야 하는 역할을 많이 맡았잖아요. 오히려 저는 꽃미남 연기를 잘 못해요. 저는 그렇게까지 자기애가 크지 않거든요. 그런 게 연기에서도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는데 답답하다, 빨리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이번 작품에서 그런 마음이 조금 해소됐겠어요.
여전히 아쉬워요. 근데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시더라고요. 얼굴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고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유독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더라고요. 주목받으면 긴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기까지 하고요. ‘연기할 때는 저렇게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 캐릭터를 벗어나면 어쩌면 저렇게 낯을 가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능과 드라마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그 역할의 감정만 생각하면 되는데 예능은 오롯이 저잖아요. 정해진 게 없단 말이죠.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그런 성격으로도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네요?
적응이 조금씩 되더라고요. 배우라는 게 평생 사람들한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인데 우물쭈물하면 안 되잖아요. 결국 내 직업인데. ‘철판 깔아야겠다’, ‘내 성격이 그렇지 않아도 일은 해야 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억지로라도 여유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꽤 어릴 때 어른이 됐군요.
남들보단 조금 이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일탈해본 적은 없어요?
일탈이라면 피아노 학원 안 가고 오락실 간 것 정도? 근데 그때도 많이 혼나서 그 정도 일탈을 하면 인생이 끝나는 건 줄 알았어요.
요즘은 어떤 생각 하면서 살아요?
얼마 전에 SBS 연기대상 신인상을 시상하러 다녀왔는데, 2018년에 같은 상을 받았던 제가 생각나는 거예요. 당시에 심하게 많이 떨었거든요. 내가 왜 그렇게 많이 떨었을까? 도대체 이 떨림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생각해보니까 결국 이거였더라고요. 안효섭이라는 사람이 대중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대한 걱정. 남이 날 어떻게 볼까, 날 나쁜 시선으로 보면 어떻게 하지? 살면서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고 있었어요.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양보하고 맞춰가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생길지언정, 내 인생을 나대로 살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요즘 드는 생각이에요.
화면에 비친 모습보다 더 진중한 편이네요. 인간 안효섭도 배우 안효섭과 비슷한가요?
비슷해요. 대중에 비치는 모습보다는 조금 더 재미없어요. 진지한 편이거든요. 말도 많이 안 해요. 집에 있을 때 사나흘 동안 아무 말도 안 한 적도 많고요.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 예능에 출연한다면 시청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 같아요?
재미없는 애?(웃음) 저는 재밌는데…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는 않아요. 혼자 있는 걸 즐겨서 거의 집에 있는 편이에요. 책이랑 친해져서 책을 많이 읽고 있고요. 제가 원래 책이랑 거리가 멀었거든요. 디테일하게 얘기해 드릴까요? 요즘은 9시에 일어나서 침대에 한 5분 동안 누워서 핸드폰 잠깐 보고 씻으러 갔다가 집 청소를 해요. 그다음에는 집 밑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랑 커피를 사서 올라와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보고, 다 먹으면 샤워를 해요. 조금 빈둥대다가 운동 다녀오고요. 집에 와서는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조금 하고, 고양이 ‘바울이’랑 놀아요. 바울이 간식 챙겨주고 나면 오후 7시 정도 되거든요. 그때 밥 먹을 걸 시켜요. 술안주로 뭐가 좋을지 고민도 하고요. 혼자 간단하게 술 자주 먹거든요. 밥 먹고 살짝 취기가 올라오면 자러 가요.
단골 주종은요?
소주요. 제 일상 정말 재미없죠?(웃음)
요즘 일 말고 가장 열심을 다하는 게 있나요? 휴식이나 연애라든지요.
전 저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잖아요. 살아가면서 모르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어디서 이런 생각이 기인하고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는지 생각을 계속하는 편이에요.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생각만 하면 답이 안 나오잖아요. 근데 책에서 답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게 즐겁다고 했는데, 26살이 된 지금 몇 퍼센트 정도 찾은 것 같아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갈 길이 멀다는 것? 아직 많이 몰라요. 그리고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100%는 절대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인터뷰 끝나고 뭐 먹을지? 또, 이사 어디로 갈지? 이사 가야 하는 데 고민 중이에요. 동네를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동네를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너무 바쁘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되도록 여유로운 동네?
내년이면 처음 캐스팅된 지도 10년째가 돼요. 17살이었던 안효섭이 그린 10년 뒤 자신의 모습에 어느 정도 다가갔다고 생각해요?
저는 목표를 정해두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서른이 되면 뭘 하고 있겠지’라거나 ‘이 나이가 되면 뭘 해야지’라는 생각은 잘 안 하고 현재에 충실한 편이에요. 그래서 생각해본 적 없어요. 저한테 중요하지도 않고요.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해요.
데뷔 6년 차, 26살. 안효섭은 목표를 정해두지 않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