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록 앨범을 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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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희 제공
록 앨범을 녹음한다는 건 정말 짜증 나고 힘든 일이다. 일단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 자체가 녹음하기가 아주 까탈스럽다. 특히 드럼은 제대로 녹음하려면 20개 정도의 각각 다른 종류의 마이크로 음을 받아 합쳐야 한다. 세팅 시간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걸 또 연주하면서 최고의 소리를 받아낼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조정하다 보면 4분짜리 곡 하나를 녹음하는 데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난다. 일렉트릭 기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듣기에는 그게 그건데, 기타리스트는 마음에 드는 톤을 내기 위해 시간과 싸운다. 거기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렇게들 쌈박질을 하는지 하이햇 하나 더 쳤다고 싸우고 덜 쳤다고 싸우고, 기타 멜로디에 음표 하나 더했다고 싸우고. 기타 음을 밴딩하는 방식 하나에도 시비를 따지며 사실상 곡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다섯 멤버가 인정해야 넘어간다. 워낙 까탈스러운 녹음에 민주주의적 만장일치의 의사 결정 방식까지 더해지니 시간이 줄줄 샌다. 녹음실에서 줄줄 새는 시간은 다 돈이다. 합주실에서 보내는 합주 시간도 다 돈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처음 곡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마무리까지 1년이 넘게 걸린 곡이 여럿 있다. 간혹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해외 유명 밴드가 “음악적 가치관의 차이로 해체합니다”라고 하면 거짓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돈 때문에 싸워서 헤어져놓고 멋지게 보이려고 ‘음악적 가치관’이라고 포장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음악 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밴드는 진짜로 음악적 가치관 때문에 싸우다 헤어진다. 물론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다퉈 헤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음반 작업 때의 예민한 감정 소모가 가장 큰 원인인 경우가 많다.
지금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혼자 음악을 만들고 여러 채널을 통해 공개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나도, 우리 밴드도 집에서 녹음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발매하고 싶다. 집에서 했다면 컴퓨터로 뚝딱뚝딱 만들 수 있다. 발달한 녹음 기술로 최고의 악기 소리를 녹음한 샘플 음원들을 박자에 맞춰 배열하고 자르고 잘라 편집하는 건 녹음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이런 쉬운 길을 버리고 굳이 사람 손발로 내는 그루브를 만든다며 편집 없이 수많은 트랙을 연주하고, 정말 자세히 들어야 알 듯 말 듯한 박자에 맞춰 베이스를 입히고 기타를 입히고, 이미 잘 녹음된 기타 트랙이 무언가 정말 조금 아쉽다고 지워버리고 새로 녹음하고, 발성이 마음에 안 든다며 언성 높여 싸우고 관전평에 따라 다시 부르고, 남들은 들어도 절대 알 수 없을 미묘한 음길이, 기타 혹은 보컬의 리버브, EQ값을 가지고 투닥투닥하며 녹음 시간을 견뎌낸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대체 돈도 안 되고 감정만 상하는 이 짓을 왜 하는가? 매번 앨범을 낼 때마다 내게 하는 질문이다. 나는 왜 록 음악을 하는가? 아니, 록 밴드를 하는가? 그 이유는 명확하다. 그렇게 싸우고 나면 결국 혼자서는 절대로 완성할 수 없는 멋진 곡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큰돈 들여 좋은 녹음실에서 실력 있는 엔지니어와 작업해야 내 마음이 흡족한 소리가 나온다. 이거야말로 천형이다.
게다가 옛날처럼 록 음악을 멋지게 보는 세상도 아니다. 지금의 록 뮤지션은 꼰대 소리나 듣는다. 무슨 음악을 하느냐고 물어봤을 때 록 음악이라고 답하면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할 때가 있다. 말이 통하지 않고, 목소리 크고, 예전을 얘기하는 사람. 그런데 이게 또 완전 틀린 얘기는 아니다. 록 음악이야말로 얼마나 개인주의적이고 아저씨 같은 음악이란 말인가. 자신의 에고를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마음, 내가 한 생각과 겪은 아픔을 가감 없이 드러내겠다는 마음. 록 음악은 말 그대로 ‘내 이야기를 들으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음악이다. 공감을 중요시하는 세상에서 꼰대 음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건 그런 록 음악이야말로 소통과 공감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는 점. 밴드 멤버들 사이에서 민주적 절차를 거쳐 완성되니 말이다.
다시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나는 왜 록 음악을 하는가? 꼰대 소리를 들어가며 왜 록 음악을 하는가?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정말로 록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마약 같은 희열을 준다. 음악을 연주할 때면 정말 다양한 감정과 기억이 나 자신도 모르게 솟구쳐 오른다. 어린 시절 훌륭한 명반을 들으며 느꼈던 슬픔, 분노, 외로움,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의 마음 등 여러 감정을 느꼈다. 이제는 우리가 만든 음악을 연주하며 일말이나마 이런 감정의 희열에 흠뻑 빠진다. 좋은 음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한다. 그건 정말 마약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우리 음악을 안 들어주느냐는 어리광이나 피울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마음은 이미 10년도 더 전에 버렸다. 세상 누구나 살면서 포기할 수 없는 그런 작은 고집이 있기 마련 아닌가? 하필 나는 그 버릴 수 없는 고집이 록 음악이었고, 드럼이었을 뿐이다.
Who’s the writer?
강대희는 여러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했고 현재 ABTB와 서울전자음악단에서 드럼을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