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미식가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향기의 '과학적' 언어

향기 물질을 더 깊이 이해하면, 맛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BYESQUIRE2020.08.31
 
 

향의 언어를 모르는 미식가들 

 
“한국의 소주와 맥주는 왜 그렇게 맛이 없나요?” 이런 불평을 적잖이 마주한다. ‘대동강 맥주’ 이슈가 불거졌던 한동안은 꽤 자주 들었고, 요즘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맥주 맛이란 무엇일까요?” 반문하면, 정확히 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혀로 느끼는 맛 성분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과일이 단 것은 설탕이나 과당이 많아서, 식초가 신 것은 초산이 많아서, 음식이 짠 것은 소금이 들어가서, 감칠맛이 나는 것은 글루탐산이나 핵산이 풍부해서, 음식이 매울 때는 캡사이신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맥주나 소주가 맛이 없다고 할 때는 뭐가 부족해서 맛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 세상에는 수만 가지 음식이 있으니 그만큼 다양한 맛이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은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 쓴맛 이렇게 다섯 가지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향이다. 맥주가 맛이 없는 게 단맛이나 짠맛, 신맛, 감칠맛이 부족해서는 아닐 터. 결국 ‘좋은 향이 빠져서’라는 답을 내릴 수 있겠다. 그런데 진짜 맥주 맛을 좌우하는 게 향일까?
 
최근에 식품의 향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향기 물질을 맡아보도록 하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오늘날에는 맛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맛의 다양성을 만드는 향기 물질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였다. 리모넨이라는 향기 물질을 맡게 하면 다들 기분 좋아한다. 너무나 친숙한 오렌지 향. 오렌지 껍질을 눌러 짜면 튀어나오는 기름의 90%를 차지하는 바로 그 성분이다. 소나무의 주 향기 물질인 피넨을 맡게 하면 나이가 있는 분들은 소나무를, 젊은 분들은 ‘솔의 눈’이라는 음료를 먼저 떠올리고, 신남산알데하이드를 맡게 하면 누구나 쉽게 계피를 떠올린다. 이처럼 향이란 아주 간단할 수도, 아주 복잡다단할 수도 있다. 특정 물질의 역할이 강해서 하나의 향기 물질만으로도 그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여러 향기 물질의 미묘한 조합으로 만들어져 그 특징을 종잡기 힘든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콜라보다 맥주가 훨씬 어려운 향이다. 콜라는 자연 세계에 없는 독특한 향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은 오렌지, 레몬, 네롤리, 라임, 육두구, 계피, 고수의 오일을 혼합해 만든 것이라 실제로 집에서 이것들을 잘 혼합하면 그럴듯한 콜라 향이 만들어진다. 오히려 병에 따랐을 때 어떻게 탄산이 오래 유지되는지, 그것이 왜 인간이 마시기에 매력적인지를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맥주는 도대체 어떤 향이며, 어떤 향이 더 강해야 맛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문제는 식품의 매력이 꼭 향이 아닌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서양의 역사를 바꾼 향신료가 있다. 계피, 후추, 정향, 육두구 같은 것. 한때 이들은 정말 금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정향(clove)의 주 향기 물질은 유제놀이다. 정향의 냄새를 아는 사람은 유제놀에서 바로 정향을 떠올릴 정도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향을 다뤄본 적이 없는 젊은 사람들도 그 향을 잘 알고 있다. ‘치과 냄새’라는 것이다. 정향은 마취·진통·소염 효과가 있어 예로부터 치과에서 사용해왔다. 유제놀을 치과 냄새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과거 유럽 사람들이 그 향을 금보다 귀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납득 가능하도록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향은 지금도 많이 쓰는 향신료이지만 그 매력을 단순히 코로 느끼는 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사실 정향, 후추, 육두구의 강렬한 향 뒤에는 그 자체로 위험하거나 독을 품은 성분이 있다. 그것이 향신료의 매력을 구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드러운 과일에도 알고 보면 좀 살벌한 물질들이 들어 있다. 향기 성분은 단순히 냄새를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방어 수단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매실의 인기가 대단했는데, 아미그달린의 독성 논란 등으로 최근에는 인기가 한풀 꺾인 것 같다. 매실은 수확 시기에 따라 풋매실, 청매실, 황매실로 구분된다. 아직 익지 않아 핵이 단단하게 굳지 않은 상태가 풋매실, 껍질의 녹색이 옅어지며 과육이 단단한 상태로 신맛이 강할 때 수확한 것을 청매실, 노랗게 익어 향기가 매우 좋을 때 수확한 것을 황매실이라 한다. 매실도 과일이니 당연히 황매실일 때가 부드럽고 향이 좋다. 그런데 우리는 황매실은 거의 먹어보지 못하고 주로 청매실로 매실청을 만들어왔다. 매실의 새콤한 맛만 필요하고 향은 별로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매실처럼 속씨가 있는 식물에는 아미그달린이란 독성 물질이 든 경우가 많은데, 그 덕분인지 질병에 강해 농약 없이도 키울 수 있다. 식물은 곤충과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화학물질을 만든다. 그중 하나가 아미그달린이다. 페닐알라닌에서 유래한 벤즈알데하이드에 청산을 결합시키고 이것을 공기 중에 휘발하지 않고 물에 잘 녹아 있게 하기 위해 포도당 2개를 결합시킨 분자이다. 아미그달린 그 자체는 독도 향도 아니고, 단지 식물의 액포 속에 조용히 보관된 배당체의 하나인데, 애벌레가 식물의 잎을 갉아먹으면 별도로 보관되어 있던 분해 효소가 아미그달린을 청산과 벤즈알데하이드로 분해한다. 그렇게 청산이 배출되면 작은 벌레의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전달하는 헤모글로빈과 효소의 작동을 방해한다. 아미그달린은 냄새가 없지만 그것에서 분해된 벤즈알데하이드는 독특한 향을 가진다. 체리를 먹을 때 느껴지는 주 향기 물질이다. 체리와 매실뿐만이 아니다. 아미그달린은 대부분의 과일 속씨에 있다. 살구, 자두, 복숭아, 배, 사과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향기 물질 하나하나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런데 내로라하는 미식가 중에도 향기 물질을 공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인에게 막걸리 맛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가능하다. 향을 표현할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맥주 맛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향기 물질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맥주에서 특별한 원료는 홉이다. 홉에는 다양한 향기 성분이 들어 있지만, 다른 원료로 대체 불가능한 이유는 맥주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쓴맛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 탄산, 적절한 쓴맛이 맥주의 매력을 만드는 공통의 성분이고 여기에 4-비닐페놀, 아소아밀 아세테이트, 휴물린, 미어센, 터펜 등의 물질이 제각각 다른 구성으로 들어가면서 맛이 달라진다. 단순히 ‘이 맥주는 맛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보다 ‘이 맥주는 디아세틸 느낌이 강해 싫다’고 말하는 게 훨씬 명확한 맛의 언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향기 물질이 굉장히 어렵게 들리겠지만 분자의 측면에서는 고추의 캡사이신보다 쉽고 간단한 물질이다. 단지 생소해서 어려울 뿐이다. 물론 향기 물질이 쉬운 분야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지금까지 음식에서 발견된 향기 물질의 종류만 1만1000종류라고 하니까. 그러나 조향사 지망생이라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해야 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 향을 감상하기 위해 알아두면 유용한 물질은 그리 많지 않다. 악기를 잘 다루려면 많은 훈련을 해야 하지만 그 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맛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오늘날, 향에 대한 담론이 우리의 음식 세상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향기 물질이야말로 맛을 이해하고 묘사하는 결정적 언어(단어)니까 말이다.
 
WHO’S THE WRITER?
최낙언은 식품공학자이자 (주)편한식품정보 대표다. 식품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구조화, 시각화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 개발과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