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뉴트로 시장들’ 서대문 영천시장 편

요즘 시장은 세대 구분 없이 놀러갈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 힙스터와 5060 세대가 공존하는 시장 이야기 첫 번째는 서대문 영천시장이다.

BY이충섭2020.10.27
가장 따뜻한 떡갈비 최가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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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장에서 최가상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환한 조명과 함께 활력 넘치는 점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가게를 중심으로 기역자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면 이미 최가상회를 찾은 것이다. 최가상회는 7년 전, 영천시장에 2030 젊은 손님을 끌어들였던 선술집 더풍년의 최한수 사장의 두 번째 가게로서 현재, 떡갈비를 전문적으로 판매한다. 술집을 그만하고 시장에서 또 다른 재미있는 것을 해볼까 고민하던 최한수 사장은 집에서 간편하게 먹는 ‘밥 반찬’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떡갈비를 만들게 됐다. 술집을 운영하면서도 시장에 오는 대부분의 손님들을 파악해 본 결과, 저녁 찬거리를 사러 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계기였다.
최가상회의 떡갈비는 조리 과정 내내 정성이 들어간다. 국내산 돼지 고기의 앞다리살과 뒷다리살을 주로 사용하고 부추, 당근, 생강, 마늘, 간장, 미림, 청주, 물엿, 후추 등 다양한 식재료를 일일이 손질해서 준비하지만 전분, 밀가루, 빵가루, 달걀물 등은 들어가지 않고 반죽한다. 오로지 손으로만 반죽을 치대는 이유는 다른 불순물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고기의 식감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다. 고기와 지방의 비율을 7:3으로 유지한 채, 테니스공만하게 크고 두껍게 빚어서 중불에 20분 이상 천천히 구워내는데 그 사이 지방은 녹고 촉촉한 육즙은 그대로 남도록 하려는 이곳만의 노하우다. 떡갈비 한 판을 새로 구울 때마다 최소 20분이 걸리는데 팔리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다. 손님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최한수 사장의 가게답게 되도록 많은 손님이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손님 1인당 1팩(5개 1만원)만 사는 것으로 제한을 뒀다. 또한 긴 시간 기다리는 모든 손님에게 여름에는 차가운 생수병을, 겨울에는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는데 이 때 손님들에게 말을 걸어서 지루할 틈이 없도록 하는 동시에, 줄에 끼어드는 손님 또한 기분 나쁘지 않게끔 해서 마지막 순서로 돌려보낸다.  
그렇다면 떡갈비의 맛은 어떨까. 달콤하면서도 적당히 간이 밴 떡갈비는 번만 있으면 빵 사이에 끼워서 먹고 싶은 햄버거 패티였고 조금씩 잘라서 먹으면 떡갈비였으며 집에 가서 구운 채소와 달걀 프라이, 그리고 데미 글라스 소스와 함께 먹으면 함박 스테이크와도 같았다. 동양의 맛과 서양의 맛 중 어느 하나의 맛이라고 선택하기 힘든 만큼 조화로운 맛이었다. 사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식감이었는데 각 재료의 작은 입자들이 잘 반죽 돼서 부드러운 와중에, 고기의 쫄깃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크게 한 입 베어 물었지만 이내 사르륵 녹는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목 넘김이 부드럽다. 현장에서는 1인 1팩이지만 배달 주문을 하면 한꺼번에 5팩까지 주문 가능하다. 최한수 사장은 계속해서 밥 반찬 신 메뉴를 개발할 예정인데 다음 메뉴는 언제 어디에서나 ‘이것’ 하나만 넣으면 요리 초보도 맛있는 반찬을 만들 수 있다. 바로 맛간장이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길 56 문의 010-5029-5069
 
힙스터의 선술집 더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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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시작한 더풍년은 올해로 벌써 7년째다. 당시만 해도 광장시장, 통인시장 정도 제외하고는 2030 젊은 사람들이 찾는 시장은 거의 없었고 시장은 중장년층 이상은 돼야 어색하지 않게 물건을 사는 곳이었다. 그 때 영천시장에 등장한 더풍년은 폐업 처리된 쌀 가게 자리를 그대로 인수해서 그대로 둘 것은 두고 복고풍의 오브제를 쌓아둠으로서 자신들만의 뉴트로 스타일로 내부를 꾸몄고 우니, 큐슈 방어처럼 일식집 아니고서야 보기 힘든 메뉴들로 구성된 선술집 콘셉트 덕분에, 젊은 세대는 꽉 사로잡게 됐고 현재 더풍년은 힙스터들이 꼭 가 보고 싶은 선술집이 됐다. 대표 메뉴로는 풍년 해물 모듬이 있는데 단새우, 멍게, 개불, 키조개 관자, 통가리비, 피꼬막, 골뱅이 등 9~10개의 제철 해산물로 구성돼, 조금씩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은 손님들에게 최고의 메뉴로 자리잡았다. 그 밖에도 해물 단품 메뉴와 문어초회, 참소라찜 등 스페셜 메뉴, 해물제육볶음, 짜파구리 등 추가 메뉴가 있다. 더풍년에는 정말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한 수산물 가게와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밤 노량진, 미사리, 인천 등 수산물 시장을 뛰어 다니면서 싱싱한 해산물을 사온다. 그리고 가게에 가져와서도 무조건 이틀 안에 소진하는데 혹시 다 팔지 못했다면 전량 폐기 처리할 만큼, 신선함과 위생에 있어서 철두철미하다. 올 2월부터는 최한수 사장과 함께 일했던 안태규 사장이 가게를 인수해서 운영 중이다. 안태규 사장만의 개성은 가게 곳곳에서 묻어나는데 각 메뉴의 그림부터 메뉴판까지 직접 그릴 만큼 가게 인테리어에 대해서 굉장히 꼼꼼한 편이다. 현재는 손님들이 좀 더 다양한 해산물을 제철에 즐길 수 있도록 고민 중인 그는 메뉴를 계속 개발 중이다. 11월부터는 대방어, 줄무늬 전갱이, 석화, 해삼, 총알 오징어 등을 선보일 것이고 우니의 경우는 현재 통관이 쉽지 않은 캐나다산 대신 비슷한 퀄리티의 맥시코산을 들여올 예정이다.
주소 서대문구 영천시장길 56 1층 문의 0507-1325-5069
 
시장의 사랑방 도깨비 손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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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손칼국수는 문을 여는 오전 10시 30분부터 문을 닫는 오후 9시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뜨끈한 칼국수의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평일에는 시장 근처 직장에서 식사하러 나온 사람과 저녁 찬거리를 사러 온 사람으로 북적거린다면 주말에는 안산에 등산하러 온 산악 동호회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손칼국수, 왕만두, 물냉면, 비빔냉면 4가지 메뉴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메뉴는 손칼국수다. 밀가루 반죽을 12시간 이상 냉장 숙성 시킨 다음, 홍두깨로 밀어서 직접 썰기 때문에 국수 가락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마저도 정감 있게 느껴진다. 멸치, 새우, 다시마를 넣고 끓인 육수가 베이스인데 사실 멸치 육수의 칼국수나 잔치국수는 먹기 전에 향까진 좋아도 실제 국물을 떠먹었을 때 다소 강한 바다향과 칼칼함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러나 이곳의 칼국수는 국물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간도 적절해서 그냥 떠먹어도 자극적이지 않고 양파, 호박, 들깨 가루를 적절히 섞어서 떠먹으면 양파, 호박 특유의 달콤함과 들깨 가루의 고소함이 더해져 완벽한 국물 맛을 느낄 수 있다. 가격은 한 그릇에 2천5백원이니 1만원이면 칼국수 두 그릇에, 왕만두 한 접시를 먹어도 1천원을 거슬러 받을 수 있다. 가격을 이처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반죽을 납품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반죽해서 칼국수를 썰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소 서대문구 통일로 189-1 문의 02-364-9981
 
현지 느낌 그대로 베트남 시장 쌀국수
베트남 시장 쌀국수베트남 시장 쌀국수베트남 시장 쌀국수
노란색 페인트를 칠한 외벽과 천장에 홍등이 달린 베트남 시장 쌀국수는 영천시장의 수많은 점포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베트남 다낭의 호이안에 있을 법한 이국적인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역시 베트남 음식이다. 쌀국수, 월남쌈, 분팃느엉의 식사 메뉴와 짜조, 돼지 양념 구이, 해물 볶음 등의 안주 메뉴로 구성돼 있는데 역시 대표 메뉴는 쌀국수다. 이곳의 쌀국수는 시장이라는 지리적 위치답게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이 어우러져 즐기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손님이 쌀국수를 주문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한 육수에, 풍성한 고기 양 덕분에 어르신들의 입맛에도 충분히 맞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국수 면과 숙주, 양파의 양도 고기 만만치 않게 많은 데다, 고수는 손님이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충분하다. 그럼에도 가격은 5천원에 불과하다. 노량진 컵밥 거리의 서서 먹는 쌀국수도 3~4천원인데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 바람, 겨울엔 따듯한 히터 바람을 쐬면서 먹을 수 있는 가게 안에서 5천원이라니 놀랍다 못해 고마웠다. 
주소 서대문구 영천시장길 30 문의 070-5442-9865
 
영천시장의 명물들
 
원조의 원조 원조꽈배기

원조꽈배기

원조꽈배기

영천시장의 명물은 뭐니뭐니 해도 꽈배기다. 여러 가게에서 꽈배기를 만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집은 원조꽈배기다. 무려 40여년 동안 영천시장을 찾은 많은 손님들에게 찹쌀 꽈배기 하나로 든든한 기쁨을 안겨준 가게다. 비교적 달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쫄깃한 꽈배기도 인상적이지만 찹쌀꽈배기 1천원에 4개, 그냥 꽈배기 1천원에 5개라는 가격은 더욱 놀랍다.
 
생선 지키는 고양이 가을이네 집
가을이네집

가을이네집

이름만 들었을 땐 영유아 관련 옷이나 제품을 파는 가게 같지만 실제로는 싱싱한 수산물을 판매하는 가게다. 가을이는 이 곳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인데 가을이는 파리가 생선에 앉기도 전에 귀신같은 실력 덕분에 이미 영천시장의 스타로 잘 알려져 있다. 가을이네 집 만큼은 고양이에게 믿고 생선을 맡겨도 된다. 
문의 02-312-1065  
 
1인 가구 맞춤 식빵 청춘식빵 
청춘식빵

청춘식빵

오직 식빵만 고집하는 청춘식빵은 생긴지 3년 만에 영천시장의 명물로 자리매김 중이다. 혼자 하는 작은 베이커리에서 각기 다른 빵을 만드는 것보다 한 가지 빵을 잘 만드는 것이 좋겠다 판단한 가게 사장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1인 가구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서 식빵의 크기 또한 다른 곳에 비해 작은 편이다. 대신 우유 식빵, 밤 식빵, 초코 식빵 등 약 8가지의 식빵을 맛 볼 수 있고 가격 또한 약 3천원대로 큰 부담이 없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길 32 문의 070-8845-7817
 
취재를 하고 나서…
베트남 시장 쌀국수의 쌀국수를 먹으면서 문득 원래 베트남 현지에서 먹던 2천원 쌀국수의 가격이 떠오르니 씁쓸했다. 최근 국내에서 베트남 음식의 위상은 대단하다. 성수동, 연남동, 이태원 등 핫 플레이스에는 꼭 고급 베트남 음식점들이 있고 번화가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점심, 저녁에 쌀국수를 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만큼 베트남 음식은 우리 식탁에 제대로 연착륙했다. 급기야 신사동 모 음식점에서는 쌀국수 한 그릇을 2만원에 판매 중이다. 실제로 먹어보니 충분히 맛있지만 들어가는 재료들이 대단히 획기적으로 다른 쌀국수는 아니었다. 현지에서 평균 2천원 하는 서민들의 든든한 한 끼 음식이 2만원에 둔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시장을 취재하면서 한 상인이 "'가성비'라는 말 때문에 상인들은 다 죽어나요"라고 말했다. 요는 음식의 종류, 경제 상황, 지리적 조건 등 여러 요인에 따라 가성비를 맞출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언론 매체들이 모두 가성비, 혜자스러운 맛집 찾기에 혈안이 되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내리거나 재료를 빼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저마다의 취향 차이는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베를린,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김치찌개가 먹고 싶을 때 각각 10유로(약 1만4천원), 12달러(약 1만4천원)쯤 하는 한식당을 찾으면 기분이 어떨까. 참고로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www.price.go.kr)’에 공개된 9월 기준 서울 김치찌개 백반의 평균 가격은 6천692원이다.
베트남 시장 쌀국수의 쌀국수 한 그릇 5천원은 수익을 내면서도 손님을 만족스럽게 대접할 수 있는 최고의 접점이다. 그들의 이유 있는 ‘가성비’가 달리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