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국힙이 <쇼미더머니>를 탈출하고 있다

국힙, <쇼미더머니>를 탈출하다!

BYESQUIRE2020.11.25
 

국힙, 〈쇼미더머니〉를 탈출하다! 

 
‘〈쇼미더머니〉(이하 ‘쇼미’)가 곧 국힙’이던 때가 있었다. 아니, 적어도 쇼미에 나가는 게 국내 힙합 신에서 성공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받는 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 열풍은 눈과 귀를 닫아도 느껴질 만큼 대단했으니까. 나는 그 ‘쇼미 열풍’을 온몸으로 받으며 자란 세대다. 특히 2013년 방송된 〈쇼미더머니3〉는 자아가 막 성립되어가던 질풍노도의 인생들에게 국가가 허락한 최고급 사탕이었다. 우리는 하루종일 쇼미라는 사탕을 같이 돌려가며 물고 빨고 즐거워했다. 시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내 기억 속에서 학창 시절의 월요일 아침은 언제나 〈쇼미더머니〉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 덕인지 혹은 탓인지,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힙합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문득 느꼈다. 우리가 어느새 쇼미의 테두리를 넘어 더 깊이 빠져 있다는걸. 학생 시절과는 달랐다. 어느덧 우리는 ‘요즘 힙합 신’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어느 시점 이후로는 오히려 〈쇼미더머니〉에 등장하지 않은 뮤지션들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들의 작업물이나 SNS 활동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말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쇼미에서 탈출한 게 나뿐일까? 시청률을 보면 쇼미 시즌3는 7주 연속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찍었다. 그때는 케이블 시청률이 지상파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고시청률 1.8%는 대단한 결과다. 쇼미 시즌9의 1화는 1.1%로 시작했고, 4화에 겨우 1.5%를 넘겼다.
 
공개되는 데이터가 많지 않으니 뇌피셜로 개연성을 최대한 그럴듯하게 꾸며볼 수 있다. 일단 쇼미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떨어진 큰 이유 중 하나는 시즌을 거칠수록 ‘나올 만한 래퍼’가 적어지는 당연한 사실 때문이다. 작년에 나온 애가 또 나오고 몇 년 전에 우승한 애가 또 나오고 이제는 심사위원이던 애가 참가자로 나오고, 목소리만 들어도 아는 애가 가면을 쓰고 나오고, 레이블 임원이 심사위원으로 있는데 레이블 사장이 나오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나올 만한 래퍼’가 줄어든 이유가 한국 힙합 신에 인재가 점점 없어지고 있어서는 아니다. 답은 힙합 신의 흐름 안에 있다. 〈쇼미더머니〉가 가장 빛났던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힙합의 멋에는 확고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었다. 묵직한 트랩 사운드 위에서 자신만의 랩 스킬을 펼치는 레시피가 만연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스타일이 자신만의 멋과 실력을 함께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 안과 밖의 간극도 좁았다. 경연에서 선보이는 음악과 실제 힙합 팬들이 즐겨 듣는 음악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2016년 언저리를 기점으로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 어떤 장르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힙합이 급작스럽게 팔레트를 넓힌 것이다. 국외 힙합 신의 흐름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리스트 중 하나인 ‘XXL 프레시맨 클래스’의 2016년 명단을 보면 이는 명백하다. 릴 우지 버트, 릴 야티, 21 새비지 등 기존 힙합 팬들이 질색하던 돌연변이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다. 텐타시온, 릴핍 등 본격적으로 얼터너티브 요소를 끌어안은 래퍼들도 트렌드의 선봉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국내 힙합 신 역시 이 즈음 진화를 감행했다.
 
DPR 라이브는 퓨처 베이스 스타일을 통한 세련된 이미지와 함께 대중적인 팬덤을 형성했고, 그룹 XXX는 인더스트리얼한 사운드로 각종 해외 매체와 국내 팬들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힙합과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경계에 걸친 딘 역시 이 즈음 첫 EP를 발표하며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이 시기에 파장을 일으킨 쇼미 바깥의 뮤지션들은 대부분 ‘경연’이라는 콘셉트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으로 인기와 지지를 얻었다.
 
이후 해가 갈수록 쇼미의 무대가 필요로 하는 야무진 플로우와 발성, 리리컬함이 딱히 안중에 없는 힙합 뮤지션의 비중이 늘어만 가고 있다.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퓨처리스틱 스웨버를 필두로 한 국내의 ‘트래퍼’들은 방송으론 송출되지 못할 가감 없는 표현, 한껏 번지르르하게 꾸며낸 기믹과 함께 청중에게 판타지를 제공한다. 제대로 된 방송 출연 없이 국내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창모의 대표곡들 역시 경연 무대에서는 완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멜로디컬한 트랙이다. 이들 모두 각자의 속도는 달랐지만, 방송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도 선배 뮤지션들과 대중의 선택을 받는 데 성공했다. 트렌드의 변화에 힘입어 한국 힙합 신이 점점 자생력을 갖추기 시작한 셈이다.
이와 동시에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SNS 활동이 완전히 일상 속에 녹아든 세대가 주체적으로 문화를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리스너들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하던 방식으로 손쉽게 서로의 음악 취향을 공유하는 일상을 누렸다. 이제는 아예 사운드 클라우드 등지에서만 활동하다가 입소문만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뮤지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물론 스타일과 채널의 변화가 다는 아니다. 국내 힙합 뮤지션들을 좀 더 친근하게 다루는 유튜브 콘텐츠들의 부흥과 국내 힙합 레이블들의 전략적인 움직임 역시 큰 역할을 했다. ‘마이크 스웨거 시즌2’ 등 힙합 팬들을 위한 유튜브 콘텐츠의 시장 안착, 국내 흑인 음악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상식 ‘한국힙합어워즈’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등 신을 향해 커진 관심은 결국 더욱더 많은 콘텐츠를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특히 국내 주요 힙합 레이블들과 차례로 협업한 ‘딩고 프리스타일’의 영상 시리즈는 신의 주역들을 일반 유튜브 유저들에게까지 효과적으로 닿게 했다. 〈쇼미더머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매력과는 거리가 먼 재키와이, 염따 등의 뮤지션들이 되레 대중의 선택을 받으며 ‘멜론 1위’를 달성한 건 그 덕분이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맞물려 결국 한국 힙합 신은 약 10년간 명맥을 이어온 ‘그 방송 시리즈’에 의존하는 모습을 점점 지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라도 빨리 쇼미에서 독립하는 신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이유는 딱히 없다. 쇼미로 스타덤에 오른 래퍼들은 대부분 발전을 멈추지 않고 각 레이블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또 일부는 독자적인 레이블을 설립한 뒤 후배 래퍼들을 직접 양성하기도 한다. 쇼미가 정말 힙합 문화를 망치는 해악이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그럼에도 그 마지막이 보이는 걸 애써 외면할 필요도 없다. 방송이라는 건 결국엔 수명을 다하게 될 운명이니까. 다만 방송국의 자본이 이 문화에서 발을 빼게 되었을 때도 이미 힙합이 족적을 이어갈 준비를 끝마쳤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으며 발 뻗고 자면 그만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적어도 내가 지난 몇 년간 이 신을 살펴봤을 때는 그렇다. 쇼미 없는 세상을 독립군의 마음으로 꿈꾸는 건 아니지만, 쇼미 없는 세상에서도 이 신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WHO`S THE WRITER?
유지홍은 흑인음악 플랫폼/미디어 〈힙합엘이〉의 에디터다. 국내외 흑인음악 신을 다루는 피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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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유지홍
  • illustrator 노준구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