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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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럭셔리를 얘기하려면 조미김이 대중화되기 이전을 짚어봐야 한다. 사실 조미김의 대중화가 언제였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대략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김은 굴비만큼은 아니어도 소고기장조림과 계란말이 사이 어디쯤엔가 놓일 수 있는 찬이었다. 절대 존엄까지는 아니지만, 도시락을 사면 사은품으로 한 봉지를 주는 지금의 김보다는 서열이 꽤 높은 편이었다. 당시엔 밥반찬으로 재운 김을 먹으려면 말린 재래김을 사야 했다. 재래김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찬으로 올리는 과정 자체가 번거로웠다. 겨울철 김 수확철이 되면 재래김 100장을 한 묶음으로 포장한 1톳을 사서 한 장 한 장 펼쳐 참기름을 바르고 맛소금을 뿌려 약한 불에 앞뒤로 두 번 구워내야 했다. 식탁 한가운데를 차지할 만큼의 요리도 아닌데 100장을 구워내자면 그 시간이 탕 요리의 곱절이나 들었다. 수고로움으로 따지자면 잡채 못지않았다. 그렇게 힘겹게 식탁에 오른 김을 보면서 겨울이 왔다는 느낌에 설렜던 기억이 있다.
언제부턴가 김은 봉지만 뜯으면 입속에 바로 넣을 수 있는 찬이 되어 나타났다. 찬이 변변치 않을 때, 안주가 시원찮을 때, 혼자 즐기는 식사의 구색을 위한 훌륭한 ‘깔맞춤’용 카테고리로 모자람이 없어졌다. 양식 방법이 발전해 생산량이 많아지고, 조미 가공 기술과 보관 방법이 나아졌기 때문이리라. 어찌 보면 내 세대는 운 좋게도 ‘찬의 혁명’을 목격한 셈이다.
김이 혁명적으로 공산화된 이유는 당연히 맛에 있을 것이다. 김은 ‘단짠의 혁명’이자 ‘식자재의 끝판왕’이라는 표현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김은 풍미가 강하다. 바다의 향이라고 단정 짓고 싶은데, 그럴 만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김은 고단백 식품이다. 마른김 5장은 달걀 1개분의 단백질을 담고 있다. 비타민 A는 마른김 1장에 달걀 2개분의 양을 가지고 있다. 다른 비타민은 물론, 미네랄도 다양하게 품고 있다.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가 가질 수 있는 성분들이 모두 버무려져 있는 식품인 것이다. 간미하지 않더라도 입속에 들어가면 감칠맛을 비롯한 단짠의 향연이 펼쳐진다. 여기에 참기름을 바르고 맛소금으로 간을 더하니 한국 식탁의 아이덴티티인 ‘단짠’이 김 하나로 완벽하게 이루어진 셈이다. 김 하나만으로 찬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식재료와 함께 버무려지더라도 김의 존재감은 숨겨지지 않는다. 김밥처럼 볶고 찌고 지진 식재료를 감싸는 경우도, 채소와 고기를 우려낸 국물 요리에 띄워 먹을 때도, 찬과 밥을 모두 팬에 붓고 볶은 음식에 올릴 때도 김은 어떤 식재료보다 입안의 첫맛을 결정한다. 묘한 건, 김은 간이 부족한 요리에도 더할 수 있고 간이 강한 요리에도 얹어 먹을 수 있는 식품이라는 것이다. 좀 과장하자면 해안도로 어딘가에서 차창을 열었을 때 훅 들어오는 바다의 짠 내음과 비슷하다. 그만큼 존재감이 강한 셈이다. 이쯤 되면 가장 한국적인 맛의 기준이 되는 식품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이런 김 중에서도 ‘제철’에 먹는 지주식 김이 럭셔리로 남았다. 김을 양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부유식과 지주식이다. 부유식은 말 그대로 물속에 띄워 양식한다. 항시 물속에 잠겨 있어 성장 속도가 빠르다. 수확하는 방법도 부유식이 비교적 수월하다. 유통되는 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말린 재래김부터 온갖 조미김과 가공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에 비해 지주식 김은 전체 생산량의 1%도 되지 않는다. 양식이 까다롭다. 지주식은 썰물에는 물 밖으로 드러나고 밀물에 잠긴다. 하루 중 반은 성장을 멈춘다. 썰물 때는 물 밖에 드러난다. 날씨의 영향에 따라 수확량도 크게 달라 질 수 밖에 없다.
어려운 양식 환경은 지주식 김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든 이유가 되기도 한다. 부유식처럼 잡태를 제거하기 위해 염산으로 소독할 필요가 없다. 하루 중 반은 햇빛에 노출되기 때문에 자연광 소독은 물론 얼다 녹다를 반복하며 식감과 색, 그리고 풍미 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사실 그 차이를 누구나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증명하라고 하면 할 길이 없다. 다만, 양식 환경의 차이와 더불어 하나 더 내세울 게 있다면 품종이다. 지주식으로 양식하는 잇바디돌김이라고도 부르는 품종은 약 400여 년 전 처음 양식이 이루어진 재래종이다. 다른 말로는 곱창김이라고도 한다. 곱창처럼 구불구불 자라기 때문이다. 고르게 펴지는 김이 아니다 보니 마른김 한 장, 또는 1톳의 무게가 부유식 재래김에 비해 지주식 곱창김이 약 30% 더 많이 든다.
곱창김은 수확 횟수에 따라 가공하는 방식이 엄격하게 나뉜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시기부터 이듬해 2월, 또는 3월 초까지 여섯 번 딴다. 처음 수확하는 김은 초벌김이라 부르며 마른김으로 가공하지 않고 물김으로만 출하한다. 원초가 너무 부드럽고 가늘기에 마른김으로 가공하면 식감도 떨어지고 약한 불에도 그대로 타버리기 때문이다. 마른김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두벌김부터 네벌김까지다. 김 양식 농가에서는 두 번째 수확하는 두벌김을 최고의 김으로 친다. 조미하지 않고 굽지도 않은 마른김 상태로 먹어도 씹기 좋은 식감과 맛이 일품이다. 12월 중하순에 수확하여 마른김으로 출하되는 김을 두벌김으로 보면 된다. 다섯벌김부터는 김밥용김으로 가공된다. 원초 그대로 말리는 것이 아니라 잘게 갈아 두껍게 말려 출하된다. 이때부터 원초가 굵고 질겨 마른김으로 가공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곱창김 중에서도 아주 소량만이 마른김이 되는 셈이다. 수치로 따지자면 전체 김 중에서 0.1%나 될까?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갯벌에 지주가 되는 말뚝을 박는다. 모든 공정에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400여 년이란 긴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1%라는 희소성을 품고 있다. 이쯤 되면 ‘럭셔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나 용례에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을까? 올겨울에는 유난히 추운 날이 많다. 얼어붙은 도시에서 지주식 곱창김을 구우며 럭셔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Who`s the writer?
김영진은 전시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했다. 〈식당의 발견 제주도〉, 〈식당의 발견 울릉도〉 등의 책을 썼고 식품 콘텐츠 기획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