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한국의 거리가 못생긴 이유

공짜라는 이름의 투머치 토커.

BYESQUIRE2021.03.14
 
 

공짜라는 이름의 투머치 토커

 
한국의 거리가 못생겼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못생긴 거리의 주범으로 가장 빈번하게 지목되는 건 바로 한국 빌딩의 자기주장 강한 간판들이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게의 멋과 주인의 개성을 담은 간판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노포의 정신을 명확하게 상징하는 간판은 그 자체로 멋스럽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런 간판이 거리를 어지럽히는 정비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겐 그렇지 않을 터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간판과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을지로에 대한 수많은 사람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황홀한 고백’의 가사처럼, 네온이 불타는 거리도 그 나름의 멋이 있고.
 
좋은 간판이란, 손님이 가게 분위기나 느낌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진 간판이라고 생각한다. 즉 간판은 어떤 식으로든 가게를 상징하고 호기심을 유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판 개선사업’을 거쳐 정형화된 간판만이 남은 거리를 보라. 가게의 멋과 주인의 개성을 알 방법이 없지 않은가. 물론 모든 디자인이 그렇듯 간판 역시 취향의 영역이다. 간판 개선사업을 통해 설치된 간판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간판 개선사업으로 한국의 거리가 아름다워졌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텍스트를 한 자 한 자 떼어 입체적인 조형으로 만드는 ‘채널사인’ 간판, 개선사업에서 주로 이 간판을 선호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불쾌하게 시선을 강탈하거나, 건물 외벽 전체를 다 가릴 기세로 과도하게 난립하던 ‘불법’ 간판을 ‘합법’ 간판으로 정리한 게 간판 개선사업이니 이런 반응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간판에 매력이 있다는 말에 동의할 사람은 적다. 주인의 자세와 가게의 멋과 맛 등 그 어떤 것도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판 개선사업의 진행 방식과 재원 구성을 살펴보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간판 개선사업은 사실상,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사유재산인 간판을 공짜로 바꿔주는 것이다. 그렇게 이어진 게 10년이다. 수많은 가게 주인들은 이제 ‘간판’을 단순히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공짜 서비스 정도로 인식하게 됐다. 결국 이런 공짜 간판이 수많은 가게의 멋을 망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몇 년간 거리의 간판을 보며 가장 씁쓸했던 때는 필동면옥 외벽에 달려 있던 네온사인이 철거되는 순간이었다. 출입구가 있는 전면 3층과 측면 외벽에 달려 있던 필동면옥의 큼직한 네온사인은 노포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간판이었다. ‘필동면옥’이라는 문자를 철재로 만들고, 그 프레임 내부에 네온사인을 매입해 만들어진 이 간판은 과거 간판을 밝히는 광원으로 네온사인을 주로 사용하던 시절 보편적으로 볼 수 있던 구조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철재 프레임에는 녹이 슬고 네온사인은 투박해졌지만, 그럴수록 노포의 개성은 빛났다.
 
중구청은 2016년 간판 개선사업을 통해 필동면옥의 간판을 개선했다. 네온사인이 사라진 자리에 달린 새로운 간판은 아무리 봐도 필동면옥의 관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어제 문을 열어 손님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초보 사장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간판이었다. 단순히 장사를 오래 한 가게가 아니라 ‘냉면’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아이콘과도 같은 노포에 이런 간판은 난센스다. 그렇다고 필동면옥의 간판을 바꾼 덕분에 거리가 아름다워지기라도 했을까?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아뇨!”
 
얼마 전 충무로 근처에 외근을 나간 김에 다시 한번 필동면옥 간판을 보러 갔다. 여전히 그 간판은 필동면옥과 어울리지 않고 어색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몇 년 사이 적당히 때가 타 초보 사장이 차린 가게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이 글의 청탁 의도인 ‘한국의 거리는 왜 못생긴 걸까’라는 문장을 곰곰이 생각했다. 문득 현수막과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답을 얻은 것 같았다. 점포 정리를 하는 드러그스토어를 지나는데, 요사스러운 문구를 적은 빨간 현수막이 익스테리어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현수막은 마치 ‘투머치 토커’ 같았다. 이만하면 알아들었는데도 계속해서 쓸데없는 정보까지 붙여가며 주절거리는.
 
이런 ‘투머치’가 망친 사례는 핫 플레이스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핫 플레이스에는 기본적으로 예쁜 간판이 많다.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가게들이 많고, 공짜 간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동네에 현수막이 붙어 버리는 순간, 거리는 못생겨지고 만다. 정말 예쁜 가게인데 출입구 위에 붉은 바탕과 노란 글씨로 ‘점심 특선’이라고 강조한 현수막이 붙은 걸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현수막은 간판 개선사업 대상지에서도 골칫거리다. 공짜로 새 간판을 얻었지만, 가게 주인은 이전 간판이 훨씬 크고 가독성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아쉬움을 메우기 위해 현수막을 걸고 배너를 세운다. 불법을 합법으로 개선하기 위해 간판 개선사업을 진행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게 주인은 현수막 등 불법 광고를 덕지덕지 붙이는 황당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개선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공짜 간판’이 결국 거리를 못생기게 만들고 있는 이유다.
 
이런 간판 개선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못생긴 거리들을 보고 나면 힘이 빠진다. 이럴 때의 ‘힐링 스폿’이 바로 성수동이다. 모닝커피를 마시는 ‘커피식탁’은 5년의 세월이 쌓여 적당히 녹슨 작은 철재 간판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작은 입간판은 그저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리는 정도로 무심하게 서 있다. 그런 무심함에 오히려 매일 출근길에 입간판이 밖에 놓여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빵의 정석’ 역시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간판이 측면에 달려 있다. 간판에는 ‘빵의 鄭昔/빵의 정석’이라고 같은 문구가 두 줄 쓰여 있다. 윗줄에 한자로 표기한 ‘정석’은 가게를 처음 열었던 파티시에 두 사람의 이름 중 한 글자씩을 따서 적은 것으로, 두 사람이 제대로 된 빵을 만들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말 멋진 간판이다.
 
성수동에는 이런 간판이 많다. 현수막으로 불쾌하게 시선을 강탈하지 않고, 투머치 토커처럼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는 간판들. 과묵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딱 필요한 말만 수줍게 건네는 듯한 느낌의 간판들로 가득하다. 이런 간판은 성수동을 다양한 취향의 영역을 고려해도 그리 거슬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매년 끊임없이 진행되는 간판 개선사업을 통해 달리는 ‘공짜 간판’에는 영혼도, 멋도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긴 시간을 해봤으면 이젠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닐까. 공짜 간판이 없는 거리가 훨씬 예쁘고 멋지다는 걸 말이다. 공짜라는 이름의 투머치 토커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공짜가 없는 거리엔 개성과 예쁨이 넘쳐흐른다.
 
Who's the writer?
노유청은 월간 〈사인문화〉 편집장이다. 한때 아웃도어 잡지와 IT 잡지도 어슬렁거린 적 있지만, 결국 간판 구경이 천직이란 걸 깨닫고 〈사인문화〉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