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이 어느 정도는 필요한 이유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는 다 막장이 필요하다

BYESQUIRE2021.03.30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는 다 막장이 필요하다

 
막장이 없었다. 부산 출신인 내가 서울에서 처음 순대를 사 먹은 날이었다. 먼저 소금이 나왔다. 당황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주머니 막장 주세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막장이 뭔데?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 먹었다. 부산에서는 순대를 쌈장과 비슷한 막장에 찍어 먹는다. 부산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보다 좀 더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부산 사람들은 새우젓만 넣은 서울 김치를 심심해한다. 김치란 자고로 온갖 젓갈과 해물이 잔뜩 들어가서 적당히 익으면 ‘콤콤한’ 맛이 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20여 년 만에 순대를 막장 없이 먹어야 했던 내 기분을 한 번 상상해보시라. 그건 팥이 들어가지 않은 붕어빵이나 와사비가 들어가지 않은 스시를 먹는 것과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막장 드라마 이야기를 할 참이다. 막장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서 순대 막장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쉽고 흔해빠진 비유라는 거 잘 안다. 다만 나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내 취향을 말할 필요를 느낀다. 막장 드라마를 비판하는 건 꽤 재미없는 이야기다. 개연성은 없고 캐릭터는 얄팍하고 이야기는 자극적이다. 이 한 마디면 끝날 일이다. 나는 막장 드라마를 좋아한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화려하고 번드르르한 아름다운 것은 대개 막장이다. 막장 드라마는 극단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치닫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욕망을 건져 올리는 장르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는 다 막장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서 막장은 슬그머니 사라져갔다. 시작은 영화였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영화계에는 웰메이드 시대가 도래했다. 2003년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박찬욱의 〈올드보이〉, 이재용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와 김지운의 〈장화, 홍련〉이 동시에 등장했다. 모두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잘 만든 영화들이었다. 조폭 영화와 허허실실한 코미디 영화들이 지배하고 있던 한국 영화계에 2003년에 동시다발적으로 개봉한 영화들은 확실히 진화한 영화였다. 갑자기 모두가 ‘웰메이드'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건 일종의 시대정신 같은 것이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케이블 시대, CJ E&M 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작됐다.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던 CJ는 tvN과 OCN 등 자사 채널들을 통해 영화적 성공을 드라마의 세계로 확장시킬 꿈을 꿨다. 지상파의 능력 있는 PD들을, 그리고 영화계의 인재들을 어린아이가 딱지를 모으듯 쓸어 모았다. 그렇게 지상파에서는 어림도 없던, 사전 제작 시대가 열렸다. 〈응답하라〉 시리즈, 〈밀회〉 〈시그널〉 〈미생〉 등 2010년도 중반부터 등장한 드라마들은 드디어 한국 방송계에도 웰메이드라는 시대정신이 기본이 되었다고 외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만드는 드라마의 시대는 끝났어.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의 유효 기간은 지났어. 막장 드라마의 양대 산맥이던 임성한 작가와 김순옥 작가는 점점 빛을 잃었다. 〈인어 아가씨〉와 〈하늘이시여〉라는 가히 컬트적인 막장 드라마를 만들어낸 임성한은 2015년 은퇴를 선언했다. 〈아내의 유혹〉을 쓴 김순옥의 날은 점점 무뎌졌다. 아쉬웠지만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다.
 
막장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더 강력하게 돌아왔다. 웰메이드 드라마에 밀려 죽어가던 SBS가 무슨 원한이라도 맺힌 듯 토해낸 〈펜트하우스〉가 증거다. 시청률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드라마는 기묘한 부조리극이다. 무대는 헤라팰리스라는 한국 최고가 아파트와 엘리트 음악 교육을 하는 청아예고다. 헤라팰리스에 사는 심수련(이지아)과 주단태(엄기준)는 부부다. 주단태는 성악 선생인 천서진(김소연)과 내연 관계다. 학창 시절 천서진 때문에 성악을 그만둔 싱글맘 오윤희(유진)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한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 정도 시놉시스로도 이후 전개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펜트하우스〉는 보통의 드라마가 아니다. 모든 캐릭터에게는 음습한 범죄의 기억이 있다. 모든 등장인물에게는 누군가를 짓밟고 위로 올라가겠다는 욕망이 있다. 다른 드라마에서라면 최소한의 인간적 윤리와 정의를 지닌 인물이 결국 후련한 복수극을 펼치며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던져주겠지만 〈펜트하우스〉에서는 어림도 없다. 나는 시즌 2의 첫 회를 보고 너무 진한 막장 맛에 거의 혼절할 지경이었다. 김순옥은 마치 시청자의 뺨을 후려치듯이 죽음을 전시했다. 그러나 〈펜트하우스〉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죽은 자들은 어떻게든 바득바득 살아서 돌아온다.
 
〈펜트하우스〉는 2021년의 우리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드라마다. 코로나19로 인공의 무균실에 갇힌 우리에게는 자극이 필요하다. 삶은 더욱 건조해졌다. 정치와 경제는 더할 나위 없이 축축해졌다. 우리에게는 내면의 분노를 터뜨릴 대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부동산으로 수백억의 재산을 끌어모은 정치인들을 혐오한다.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사들인 LH 직원들을 증오한다.
 
니들이 아무리 열폭해도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며 다니련다
 
는 글을 블라인드에 올린 LH 직원에게 분노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는 잘해봐야 오윤희다. 헤라팰리스에 사는 주민들을 역겨워하면서도 내부 정보와 사채를 이용해 마침내 헤라팰리스에 입성하고, 예비합격 1순위인 딸을 위해 다른 합격자를 살해하려고 시도하는 오윤희다.
 
당신은 이 피카레스크적인 악의 일대기에서 누구에게도 감정을 이입할 수 없을 테지만 사실 당신은 헤라팰리스에 사는 모든 사람이다. 〈펜트하우스〉는 겉으로는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간절하게 비윤리적인 기회와 부동산을 통한 계급 상승을 원하는 당신을 촌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화면 속에서 철저하게 까발린다. 우리는 사실 뺨을 맞기 위해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회 여러 대씩 연속해서 뺨을 맞는 기분은 기묘할 정도로 시원하다. 〈펜트하우스〉는 그런 우리의 숨겨진 마조히즘적 욕망에 기꺼이 봉사한다. 웰메이드 시대에도 우리의 욕망은 여전히 막장의 뜨거운 맛을 원해왔고 또 언제나 원할 것이라는 증거로 〈펜트하우스〉는 드라마의 역사에 남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욕망을 따르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하루키와 한강의 소설이 필요하지만 라이트 노벨의 한없이 가볍고 자극적인 맛도 필요한 법이다.
 
혹시 당신이 아직 순대를 막장에 찍어 먹어본 적 없다면 지금 당장 마트로 가시길 권한다. 쌈장과 다진 마늘과 사이다를 구입하시라. 셋을 적당히 섞으면 막장이 된다. 따끈한 순대를 막장에 푸욱 찍어서 입안에 넣는 순간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왜 이 맛을 몰랐지? 타고난 서울내기인 당신은 그래도 순대는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이 깔끔하고 세련되다고 생각하겠지만 가끔은 막장의 들큰한 맛을 몰래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자면 막장에는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어도 순대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가히 뺨을 얻어맞는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장한다.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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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이은호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