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오너 셰프의 전투는 경매에서부터 시작된다

셰프의 전투는 경매부터 시작된다.

BYESQUIRE2021.04.13
 
 

셰프의 전투는 경매부터 시작된다 

 
셰프의 전장은 부엌이 전부가 아니다. 전투는 시장에서 시작된다. 저녁 10시께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에 들려는 찰나 전화기가 울렸다.
 
형님! 돗돔 나왔습니다! 40kg밖에 안 됩니다. 잡아놓겠습니다.
 
노량진에서 이름난 중매인 동생 ‘노 사장’이다. 내가 원하는 생선을 맡아주는 중매인은 새벽 전투에서 나를 대리하는 지휘관인 셈이다. 전국에는 180여 개의 위판장(경매장)이 있는데, 서울에서 가장 큰 곳은 물론 노량진이다. 경매사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수산물을 경매에 내놓으면,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이 생선을 사서 나 같은 사람에게 대주려는 중매인들이 모여든다. 중매인들이 야구의 포수처럼 수지로 호가를 날리는 장면을 보자면, 흡사 영화에서나 보는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의 증권거래가 떠오른다.
 
여기에 참여하는 중매인과 친해야 좋은 생선을 맡을 수 있다. 돗돔이라니.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노 사장에게 말한다. “당연하지. 잡아라. 그게 어디고. 알았데이… 키로에 얼마까지 오르든, 잡아라.”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 10년간 요리사로 일했다. 그 세월 동안 돗돔은 다뤄본 적도 맛본 적도 없었다. 일본에서도 1m가 넘는 크기의 돗돔이 낚시로 가끔 잡히지만, 신성한 물고기 취급을 받아 시장에 상품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 일본 어부들이 시장에 내다 파는 대신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요리를 배운 것은 일본이지만, 시장의 전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건 한국에 와서다. 돗돔을 한국에서 처음 본 날이 떠오른다. 150kg이 넘는 괴물이었다. kg당 2만원만 잡아도 어체 하나를 통째로 사려면 300만원이 넘었다. 이 어마무시한 놈을 해체하는 작업은 요리사에겐 축복이다. 돈 생각 않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고, 겸허하고 진지하게 신의 장막에 들어서는 제사장의 마음으로 칼날을 집어넣었더랬다. 새벽 3시에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171번 중매인 누나였다. 나와 함께 전투에서 싸우는 중매인은 물론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이 누나도 내 편이다.
 
쿠마야 놓쳤다. 아예 없다. 벌써 누가 먼저 잡았나 보다. 아이고.
 
이게 무슨! 심장이 뛰다 못해 숨이 막혀 욕도 나왔다. 올해 처음 나온 돗돔을 놓치다니. 다시 생각했다. 누나는 놓칠 수 있다. 생선 가격이 너무 올라가자 ‘싸게 사서 줘야 한다’는 생각에 실수를 했을 수 있다. 그러나 29번 중매인이자 노량진에서 화주 대리인으로 2대째 일하고 있는 동생 노 사장, 내게 ‘돗돔이 나왔다’고 알렸던 그 녀석은 시장 물건 30% 이상을 책임지고 경매한다. 적어도 내가 알고 지낸 20년 동안엔 그런 큰 고기를 놓친 적이 없다. 그런 놈이 실수를 했을 리 없다. 또 그 한 번의 실수가 오늘 일 리가 없다. 전투의 승패를 확인하는 장수의 심정으로 차를 몰아 노량진으로 향했다.
 
무작정 노량진 시장을 돌며 익숙한 번호 29번을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전화기를 들었다. 애꿎은 신호만 수십 번 울릴 뿐 답이 없었다. 정말 실수를 해서 그 돗돔을 놓쳤나? 그 때문에 잠수를 탄 걸까? 노량진 전투를 책임지는 나의 두 지휘관이 정말 돗돔을 놓쳤는가? 차라리 지난밤에 전화라도 안 했으면 설레발은 안 쳤을 텐데, 이게 무슨 상상도 못 한 막장인가. 그때 저 멀리서 담배를 물고 휘적휘적 걸어오는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노 사장이 전리품을 안기듯 포장으로 겹겹이 쌓인 돗돔을 내놨다. “좀 작습니데이.” 그가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고, 그제야 안심한 나는 괜히 큰소리를 냈다. “전화를 와 안 받노!”
 
나는 왜 이렇게까지 큰 생선에 집착하는가? 이날은 대물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10kg짜리 참숭어에는 상당한 가격이 붙었지만, 나는 샀다. 이렇게 대물을 꾸준히 찾는 덕에 크고 귀한 생선이 들어오면 중매인들은 나를 먼저 찾는다. 오랜 거래의 결실이다. 나조차도 가끔은 이런 내가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스승의 영향이다. 나를 이 길로 이끈 어르신은 일본 신주쿠 요정의 오너 셰프였다. 당신은 나를 매일 새벽부터 때리고 깨워서 츠키지 어시장에 데리고 갔다. 하는 말은 늘 같았다.
 
큰 고기! 늘 가장 큰 고기!
 
그 큰 고기를 다루는 어른 솜씨는 화려한 칼춤 같았다. 기술은 눈으로는 배울 수 없다. 손으로 배워야 했다. 큰 고기는 작은 생선보다 다루기 힘들다. 스승이 살점을 다 발라내면 남은 생선뼈로 연습하곤 했다. 그 살결과 큰 뼈에 내 칼이 닿는 감촉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뼈에 붙은 살을 작은 연잎처럼 도려냈다. 손가락 살이 같이 나간 적이 수없이 많았다. 이 일을 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대물을 보면 바로 각이 선다. 이쯤에는 뼈가, 이쯤에는 힘줄이, 이쯤에는 창자가 있을 것이 눈에 들어온다. 큰 고기가 주는 한 모양의 살점은 크고 부드럽지만, 대물의 장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작은 고기에서는 따로 다듬어낼 수 없는 부위까지 상에 낼 수 있다. 2kg짜리 참돔 5마리와 10kg짜리 참돔 한 마리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큰 참돔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전체 고기 양이 작은 참돔 다섯 마리에서 발라낸 살보다 15% 정도 더 나온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큰 생선을 잡아야 더 맛있는 살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늘 같은 시장, 늘 보는 사람들, 그러나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는 바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엔 산지에서 연락이 하나 왔다. 자연산 흑점 줄전갱이가 서울로 올라온단다. 8년 만에 처음 보는 생선이다. 아마 또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귀한 고기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나만 들은 것은 아닐 테니까.
 
자연산 흑점 줄전갱이는 일본 츠키지 시장에서도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도착해보니 5성급 호텔, 압구정이나 청담동의 레스토랑에 물건을 대는 중매인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다. 그들이 이 전투에서 나의 가장 큰 적이다. 이들은 좋은 물건에 큰돈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좋은 물건을 꾸준히 잡아야 호텔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물건을 계속 댈 수 있어서다. 적들은 경매가가 뛰든 말든 계속 호가를 높여 부른다. 거대 세력과 맞서 싸우는 작은 일식집 오너 셰프의 대결 구도가 형성된다.
 
이날 경매에 참여한 내 편 중매인 누나가 슬며시 나를 본다. 나는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여기서 질 순 없지.’ 이쯤 되면 욕망이 자본주의의 논리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싸게 사야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장사꾼의 마음이 저 멀리 사라진다. 자연산 흑점 줄전갱이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다. 저 물고기는 내 것이다. 결국 낙찰을 받았다. 손에 넣었으나, 손해뿐이다. 아무리 비싼 줄전갱이를 내놔도, 올려 받을 수 있는 오마카세 가격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오는 차 안에서 개선장군처럼 중얼거렸다. “오늘 찾아온 손님은 진짜 대박이겠네. 좋겠다!” 벨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Who's the writer?
김민성은 여의도에서 일식집 ‘쿠마’를 운영하는 오너 셰프다. 매일 수산시장에서 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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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이은호
  • WRITER 김민성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