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인스타가 있기 전부터 인스타의 왕이었던 '앤디 워홀'의 전시가 열린다

앤디 워홀에게 인스타그램을 배워라.

BY박세회2021.11.05
 
〈앤디 워홀 : 앤디를 찾아서〉 전시장 안에는 보라색 가벽이 한 겹을 더 감싸고 있다. 가벽의 중간에 있는 두 번째 입구로 가는 길목에선 197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아트 딜러 루치아노 안셀미노가 위탁했던 작품 ‘레이디스 앤 젠틀맨(빌헬미나 로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앤디 워홀 : 앤디를 찾아서〉 전시장 안에는 보라색 가벽이 한 겹을 더 감싸고 있다. 가벽의 중간에 있는 두 번째 입구로 가는 길목에선 197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아트 딜러 루치아노 안셀미노가 위탁했던 작품 ‘레이디스 앤 젠틀맨(빌헬미나 로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15년 5월 13일 소더비의 컨템포러리 아트 데이 옥션에는 앤디 워홀의 폴라로이드 셀카 시리즈 두 조가 올라왔다. 앤디의 셀카 12장짜리가 한 조, 앤디의 드래그 셀카로 이루어진 6장짜리가 한 조. 이날 경매에서 12장짜리 보통 앤디 묶음은 41만8000달러에, 6장으로 이뤄진 앤디 드래그 묶음은 27만4000달러에 팔렸다. 같은 날 경매에서 이우환의 1979년 작 ‘점으로부터’ 시리즈 중 한 점이 43만 달러에 낙찰됐다. 이 경매를 앞두고 〈뉴욕 포스트〉는 이날 경매에 앤디 워홀의 폴라로이드 셀카가 올라올 예정이라는 기사를 내며 그 첫 줄에 이렇게 적었다.
킴 카다시안 씨, 미안하지만 셀카의 원조 마스터는 앤디랍니다.
자신을 찍고 그리는 일에서 앤디를 이길 자는 없다. 그는 SNS는커녕 인터넷도 없던 시절부터 바이럴 마케팅의 황제였고, 인스타그램이 있기 전부터 인스타그래머블한 사람이었으며, 킴 카다시안이 태어나기 전부터 셀카의 왕이었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 〈앤디 워홀 : 앤디를 찾아서〉에 바로 그 셀카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빌헬미나 로스)’에 호기심을 느끼며 서너 걸음쯤 걸어 가벽의 입구에 도착하면, 20년의 세월을 아우르는 앤디 워홀의 다양한 모습들이 당신을 바라본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빌헬미나 로스)’에 호기심을 느끼며 서너 걸음쯤 걸어 가벽의 입구에 도착하면, 20년의 세월을 아우르는 앤디 워홀의 다양한 모습들이 당신을 바라본다.

그러나 물론 이 폴라로이드 시리즈가 전시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게나 셀카 찍기를 즐겼던 앤디지만, 자신의 모습을 캔버스에 그다지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노스쇼어에 있는 앤디 워홀 뮤지엄은 개인 아티스트 전시관으로는 북미에서 가장 크다. 이 뮤지엄에는 대략 900점의 페인팅과 100점의 조각, 2000점의 드로잉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더 팩토리’라 불리던 공장에서 찍어낸 작품 수는 대체 몇 점일까? 그걸 파악하는 일은 평생을 바쳐야 할 숙제지만, 앤디가 자신의 모습을 캔버스에 옮긴 작품은 내 기억에 따르면 10종 내외에 불과하다.
 
이번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소장품 전시에서는 그중 4종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루이 비통 측이 설치한 비밀의 가벽 정면에 보이는 보라색 자화상이다. 마치 암실에서 섬광을 발하는 듯한 은색 가발 ‘프라이트 위그’의 짜릿한 전율을 느껴본다. 앤디 워홀은 1986년 여름 런던의 안토니오 도페이 갤러리에서 이 작품을 공개했고, 1987년 2월 21일 수술 후 항생제 알레르기 반응에 의한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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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조혜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