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부터 6월까지가 중요하다. 이 시기엔 안 그래도 맛있는 꽃게가 더 맛있다. 겨우내 깊은 바다에 숨어서 자던 꽃게는 2월부터 슬슬 연안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5월에서 8월 사이 담수와 해수가 섞이는 연안의 모래 지역에 알을 낳기 위해서다. 이 시기의 꽃게는 알집(아직 수정을 하지 않은 상태의 알집)을 키우기 위해 먹이 활동을 엄청나게 활발하게 한다. 따뜻해진 바다에서 먹이를 잔뜩 먹으며 6월에 있을 산란을 준비한다. 작은 오해가 있다. ‘봄에는 암게 겨울엔 수게’라는 오해다. “꽃게는 암수 구분 없이 무리 지어 다니면서 같이 성장해요. 암게도 수게도 봄에 살이 가장 통통하고 맛있어요.” 인어교주해적단에서 꽃게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곽준수 팀장의 말이다. 가을에 잡힌 꽃게든 봄에 잡힌 꽃게든 오래 살아남은 꽃게가 큰 것이지 제철이라 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봄 꽃게를 두고 ‘제철’이라 말하는 이유는 꽃게들이 봄에 엄청 먹어대기 때문이다.
유명한 만큼 오해도 많이 받는다. 대표적인 게 바로 ‘북쪽 꽃게가 크다’는 설이다. 한동안 한국 미식의 바이블처럼 여겨졌던 음식 프로그램 〈수요미식회〉는 지난 2015년 방송에서 “제주에서 태어난 꽃게가 북상하며 한 달에 한 번꼴로 허물을 벗으며 성장한다. 그래서 연평도 쪽에서 잡히는 꽃게가 제일 크고 맛있다”라는 내용을 내보냈다. 지금껏 아무도 정정해주지 않은 이 정보는 거짓이다.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연구사인 김맹진 박사는 꽃게 박사로 유명하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북쪽 꽃게’가 더 크다’는 말을 듣는 순간 코웃음을 쳤다. “게의 이동 반경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꽃게 박사님이 말했다. “게다가 게는 남북으로 이동하지 않아요. 다만 깊은 바다에 있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연안으로 이동할 뿐이죠.” 게의 이동을 결정하는 것은 온도다. 겨울 기온의 영향을 받아 얕은 바다의 온도가 점차 내려가면 따듯한 물을 찾아 깊은 바다로 들어가고, 날이 따듯해지면 다시 얕은 바다로 돌아온다. 그러니 특정 지역의 꽃게가 크고 좋다는 말은 무시해도 좋다.
보름에 잡힌 게는 껍질이 무르고 살이 적다는 말 역시 정확하지 않다. 곽 팀장에 따르면, 일단 탈피 중에는 꽃게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잘 안 잡힌다고 한다. 껍질을 갓 벗은 무른 게들이 잡히면서 많이 죽고 선별 과정에서 다 걸러지는 셈이다. 그러니 물렁게가 유통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간혹 껍질을 막 벗은 꽃게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튀김으로 주로 먹는 ‘소프트셸 크랩’인 줄 아는데, 아예 종이 다르다. 꽃게의 크기는 오직 수온과 연수가 결정한다. 따듯한 물일수록 빨리 성장하고 차가운 물일수록 느리게 성장한다. 꽃게는 3년을 살고 죽지만, 우리가 먹는 건 보통 1년 혹은 2년생이다. 꽃게를 비롯한 많은 해산물은 kg당 마리 수인 ‘미’로 크기를 가늠한다. ‘3미’라 하면 3마리에 1kg짜리 크기라는 뜻이다. 만약 어떤 꽃게가 kg당 1미나 2미라면 운 좋게 2년 이상 살아남은 개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좋은 꽃게는 어디에 있는가? 가장 좋은 게는 전문점에 있다. 한우와 비슷하다. 그 흔한 투플러스 등급 말고 마블링 넘버 나인 급의 한우를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가 먹어도 호불호가 갈릴 리 없는 고기를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유통 채널을 꽉 잡고 있는 전통의 ‘큰손’을 찾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다. 벽제갈비든 삼원가든이든 우래옥이든 고기 대주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거래처에 좋은 고기가 있을 확률이 높다. 마찬가지다. 톱 꽃게를 먹으려면 큰손이 찾은 꽃게를 먹는 게 제일 쉬운 법이다. 게방식당의 방건혁 대표는 “좋은 꽃게를 선점하기 위한 과정이 흡사 전쟁”이라고 말했다. 방 대표는 “매년 5월이면 대형 게장 집들은 난리가 나요. 수매로 배를 잡든 배를 많이 잡아둔 유통업자를 잡든 5월에 최대한 좋은 암게를 사둬서 냉동해둬야 하기 때문이죠. 결국 돈이에요. 3억~5억원 많게는 10억원씩을 선매해요.” 방건혁 대표의 말이다. 특히 간장게장은 무조건 전문점이다. 수매로 싸게 꽃게를 미리 사두기 때문에 양념값을 감당하고도 그 가격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게장 전문점에서 나오는 3미 정도 크기의 암게가 3만~4만원대라면 적당한 가격이다. 만약 이 크기에 살이 꽉 찬 암게장이 2만원대 이하라면 가을 암게를 냉동해 쓰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만하다. 11월의 암게는 봄 암게에 비해 80%가량 살과 알집이 차 있어 이 게를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논현동 게방식당, 장안동 일미게장, 공덕동 진미게장, 마장동 목포산꽃게, 발산동 맹순이꽃게아구찜 등이 서울의 큰손이다. 지방에서는 군산 계곡가든, 궁전꽃게장, 군산꽃게장 강화도 쪽 편가네한식당, 서산의 서산꽃게장 등이 떠오른다.
모든 꽃게 요리를 제철에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간장게장의 경우 5월에 잡은 게라도 냉동해 장에 담근다. 그래야 살이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전문점에선 사시사철 5월에 작업한 최상의 꽃게장을 먹을 수 있다. 반드시 제철에 먹어야 하는 꽃게 요리는 찜 종류다. 꽃게의 찜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각종 해산물과 콩나물 등을 넣어 아구찜처럼 내는 빨간 찜을 보통 ‘꽃게찜’으로 칭한다. 순수한 형태로 꽃게만 찜기에 넣고 찌는 요리는 ‘꽃게 백숙’이라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이 두 요리는 살이 꽉 찬 제철에 먹어야 환상이다. 부들부들 결대로 찢어지며 혀를 스치는 5월 활게의 단맛은 냉동 게와는 확연히 다르다. 탕 역시 그 맛이 확연히 다르지만, 굳이 활게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좋다. 국물은 냉동 꽃게도로 충분히 우러나기 때문이다. 다만 꽃게탕도 살맛으로 먹는다고 하면 활게를 추천한다. 그러나 어차피 활게를 먹을 거면 찜으로 먹어라. 가장 좋은 방법은 냉동 꽃게탕과 활 꽃게찜을 같이 시켜 다 먹는 것이다. 1년에 30억원가량의 해산물을 유통하는 원꽃게 및 시프렌드 김종암 대표는 “찜이나 탕을 먹으려면 직접 경매를 통해 구입해 파는 포구의 상인들에게 사는 걸 추천해요”라며 “운치도 있고, 아무래도 가까워서 게가 좀 더 실하죠”라고 말했다. 포구 옆 요리집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백숙이나 찜을 먹는 봄을 애타게 기다려보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