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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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2.06.08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을유문화사
3년 전 윤효윤 교수의 〈나보코프의 영어소설 : 구조층의 연구〉라는 책을 5만원가량 주고 샀다. 1999년에 발행된 이 책을 찾는 이는 극소수였지만,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수량이 거의 0에 가까웠기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탓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 한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일수록 반드시 두 권씩 사둘 것.’ 인기 없는 책은 헌책을 구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내 경우 정말 소중한 책은 문고본과 양장본으로 다른 판형을 각각 한 권씩 사둔다. 독서는 들고 다니기 편한 문고본으로 하고, 양장본은 책장에 고이 모셔 먼 미래의 독서를 위해 아낀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가 양장본으로 나왔을 때 덥석 집어 든 이유다. 2012년에 나온 문고본이 이미 집에 있지만, 그건 독서용이고 이번에 나온 양장본이 소장본이 될 예정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나보코프가 웰즐리와 코넬 등의 대학 강단에서 미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그 정도로 소중한 텍스트다. 박세회


1000년

발레리 한센 / 민음사
세계화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예일대 역사학 교수 발레리 한센은 그 시기를 꽤나 명료하게 짚는데, 그 숫자가 놀랍다. ‘기원후 1000년’. 인류사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기에 무슨 기술 혁신이 있었던가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발레리 한센의 답도 동일하다. 별일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기껏해야 동물이 끄는 수레나 나무배를 타고 다녔고, 다만 농업 생산 기술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면서 농업에서 손을 떼고 잉여생산물을 교역하거나 새로운 곳을 탐험할 인구가 생겨났을 뿐이다. 책은 그렇게 11세기부터 시작된 국제 교류를 폭넓게 조명한다. 그린란드부터 안데스 지역, 신장 위구르에 이르기까지. 교역, 종교 확산에서부터 싸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산발적 사건들은 묘하게도 일련의 흐름을 만들고,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러 발레리 한센은 주장한다. 이 책의 핵심은 ‘우리가 생소한 환경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반응이 최선인지를 선조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딱히 의미 부여 없이 읽어도 굉장히 재미있고 풍성한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성윤
 

뭐든지 가뿐하게 드는 여자

정연진 / 달
역도, 철인3종경기, 크로스핏 중 가장 힘든 운동은 뭘까? 종목 간 싸움을 붙이려는 게 아니다.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운동 세 종목을 전부 섭렵한 사람이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30대에 처음 운동을 시작해 현재 50대에 접어든 저자는 전국생활체육 역도대회에서 1등을 하고 스위스에서 ‘아이언맨’ 칭호를 받았으며 물구나무 걸음으로 체육관을 누빌 만큼 체력이 좋다. 처음엔 ‘여자가 무슨 근육이야’라는 시선에 주눅 들기도 했지만 이젠 어린아이가 불끈불끈한 팔을 갑자기 만져도 “신기하지? 아줌마 운동해!”라며 웃어 보인다. 용상과 인상 기록을 더해 142kg을 들어 올리는 그녀지만, 정작 바벨보다 더 무거웠던 건 독일 유학까지 다녀오며 25년간 매진했던 피아노를 내려놓는 일이었다. 왜 피아노를 그만두었냐는 간단한 질문에 “잘 못 쳐서요”라는 답을 뱉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방황과 고뇌를 운동으로 풀어낸 셈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건 역도화를 고르는 요령이나 철인3종경기 훈련 루틴이 아니라 절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에 일단 부딪혀보는 용기다. 박호준
 

고기에 대한 명상

벤저민 A. 워개프트 / 돌베게
2013년 배양 고기 햄버거가 처음 등장했다. 배양 고기는 대체 고기와 다르다. 식물성 단백질을 뭉쳐 만들지 않고 동물의 근육세포를 배양하고 증식해 만든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과도한 육식 문화가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배양 고기 개발과 활성화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일반 고기를 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낯설기 때문이다. 부엌이 아닌 차가운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배양 고기에 대한 혐오감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자가 책까지 내가며 배양 고기를 장려하는 이유는 경제 논리나 과학적 담론을 넘어 자연 안의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성찰하고 바람직한 삶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까지 닿아 있다. 인문학자답게 인문학의 관점에서 육식의 역사와 변화, 방향에 대해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롭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러미 벤담, 이마누엘 칸트 등 여러 철학자들의 시각을 함께 버무려 담아냈다. 우리가 매일같이 먹는 고기에 얽힌 이야기가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다.  송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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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호준
    PHOTO 을유문화사/민음사/달/돌베게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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