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이 넘는 역사의 페이스 갤러리가 여전히 가장 새로운 현대미술 갤러리 중 하나인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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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이 넘는 역사의 페이스 갤러리가 여전히 가장 새로운 현대미술 갤러리 중 하나인 이유

프리즈 서울 참석차 내한한 페이스 갤러리의 수장 마크 글림처를 만났다. 그는 페이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은 지에 대해서. 동시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오성윤 BY 오성윤 2022.09.27
 
페이스 서울은 많은 변화를 거치고 있다. 지난해 확장 이전에 이어 이번에 공개한 오설록 티하우스 협업 공간까지. 직접 와서 보니 어떤가?
놀라운 예술가들의 창조물로 둘러싸여 있는 만큼 우리는 그 작품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도 놀라운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게 우리의 창조물이다. 문제는 뉴욕에 있는 갤러리를 그대로 여기에 데려올 것인가, 아니면 갤러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여와 한국에 맞게 구성하는가 하는 부분인데, 우리가 관심을 갖는 건 확실히 후자다. 훌륭한 한국인 건축가, 한국 브랜드와의 협업, 한국인 팀으로 구성된 것이 페이스 서울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 ‘확장’이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런 와중에도 절대 변해선 안 되는 것, 페이스라는 갤러리의 핵심은 뭘까?
페이스는 예술가를 위한 갤러리로 시작했다. 내 아버지는 갤러리를 만들면서 자신의 이름을 걸지 않았다. 페이스는 자신보다 예술가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페이스는 그때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되었다. 이제 페이스는 하나의 ‘발상’이 되었고, 아티스트들뿐 아니라 페이스의 일부가 된 모든 이들이 페이스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에 일조한다. 즉 페이스라는 아이덴티티의 첫째 요건은 ‘소속 작가들에 대한 끝없는 헌신’이다. 그리고 둘째는 ‘협업’이다. 내부적 협업이든, 외부와의 협업이든. 세 번째 요소는 ‘혁신’이다. 우리는 기존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다. 올해로 62년 차인 페이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현대미술 갤러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주요 임무라고 할 수도 있다. NFT처럼 이상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들, 다들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것까지가 우리 몫이다. 내가 어릴 때 장 뒤뷔페가 내게 이렇게 알려주었다. “누가 너에게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면 바로 그것에 주목하렴.” 그래서 페이스는 반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실리콘밸리가 미술에 관심 없다고 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로 갔고, 사람들이 디지털 아트는 진짜 예술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디지털 아티스트와 일하기 시작했다.
페이스의 창립자인 아니 글림처는 미술을 전공했으나 아주 가난하게 시작한 갤러리스트였고, 당신은 비전공자이지만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갤러리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온전히 그런 배경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마크 글림처의 페이스는 새로운 국면(phase)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세계 각지에 진출했고, 웹3.0 기반의 NFT 플랫폼 페이스 버소(Pace Verso)를 열었다.
정확히는, 페이스는 페이즈 3에 들어섰다. (웃음) 가난한 화가였던 아버지가 세우고 일군 페이스의 페이즈1은 굉장히 특별한 갤러리였다.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열정’이라는 자신의 종교를 바탕으로,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진정성을 갖고 페이스라는 DNA를 가꿨다. 다음 세대인 나도 그 DNA를 핵심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일궜다고 생각한다. 페이즈3는 한 사람의 비전이 아닌 페이스라는 커뮤니티의 비전, 페이스라는 ‘발상’을 더 넓은 세상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국면이다. 그게 가능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당신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전설적인 작가들에게 직접 미술 교육을 받았다. 그런 기반에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주 운 좋게 20세기 마지막 3분의 1의 미술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시대의 예술가들은 우리 역사에 굉장히 특별하게 남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처럼. 르네상스 때는 예술이 완전히 재창조됐고, 그 후 350년 동안 렘브란트, 고야, 벨라스케스, 카라바조 같은 놀라운 예술가들이 발전을 이뤄냈다. 20세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로버트 어윈, 제임스 터렐 같은 예술가들은 현상학적, 경험적 예술을 고안해냈고, 아그네스 마틴 같은 예술가는 명상적 추상화라는 개념을 일궈냈다. 루이스 네벨슨은 버려진 가구와 책상 등의 ‘발견한 물건들’로 추상 조각을 창조했다. 이들 모두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학자나 사상가들이 이런 발견들에 대해 나보다 훨씬 좋은 통찰력을 갖고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들과 함께한 경험을 통해 예술의 변화를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런 발전에 일조하기 위한 나만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렘브란트, 고야,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예술에 전혀 조예가 없는 사람이 봐도 놀라운 것이었다면, 로버트 어윈, 제임스 터렐,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들은 그런 직관적 설득이 비교적 어렵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장 뒤뷔페가 “내 그림 중 가장 좋은 걸 골라보라”고 했을 때 어린 당신이 “당신 그림은 다 못생겼어요” 하고 답했다는 일화처럼. 당신이 갖게 된 것, ‘감식안’이라는 능력의 요체는 뭘까?
굉장히 좋은 질문이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20세기의 예술이란 꽤나 획일적인 문화 속에서 배양된 것이었다. 가장 좋은 것이라면 두 눈을 감고도 골라낼 수 있었지만, 세상의 다른 부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을 뜨는 데는 실패했다는 뜻이다. 아주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술을 이해하는 열쇠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보고 “이게 뭐야? 이런 건 우리 애도 그리겠다”라고 할 것이다. 그건 감식안의 정반대되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지. 그만큼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니까. 예술은 역사와 미술에 대한 감상이다. 그 안에 있는 아름다움, 고통, 영웅담, 비극을 보기 위해 우리는 눈을 뜨고,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단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감수성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걸 이미 가지고 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지 않는가.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놀라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다만 거기서 시작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역사를 이해하려 노력하면 눈을 뜨게 되고, 예술적 발견이 이루어졌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것이 만들어진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열린 눈으로 예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는 MoMA에 있는 잭슨 폴록 작품 앞에 가면 그 작품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작품을 보려면 길게 늘어선 인파 때문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당신의 궁극적 지향점은 예술이 ‘상위 문화’라는 인식이 허물어지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맞다. 우리는 예술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곳, 더 많은 연결점, 더 폭넓은 사회층에게 의미를 갖도록 만들고 싶다. 실제로 지역적, 경제적 영역에 걸쳐 더 멀리 도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상업적 혁신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창조적인 공동체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거기에 있고 싶어 할 것이다. 물리적 세계든, 가상 세계든. 그래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샛길로 새지 않고, 우리의 비전을 전 세계에 전달하게 해줄 똑똑한 사업가들이 필요하니까.
세계적 갤러리, 대중에 익히 알려진 갤러리로서의 부담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대치도 그만큼 높을 테니까. 이번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서 페이스 갤러리가 서울 관람객에게 어떤 인상을 안겨주기를 바라는가?
맞는 말이다. 우리가 진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존경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스가 서울에 온 지도 벌써 5년이나 됐다. 그리고 프리즈 서울은 우리가 5년 전에 서울에 온 것과 같은 이유로 여기에 왔다.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숙한 예술 공동체 중 하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페이스가 서울에서 보여주는 행보의 핵심은 여전히 존경심을 쌓는 것이다. 최고의 관객을 위해 최고의 사람들, 최고의 예술, 세계 최고 수준의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고, 모두가 환영받았다고 느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만약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 하나를 구매하고 싶은 사람이 20명이라고 치자. 작품 구매에 실패한 사람은 실망할 테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작품은 모두 팔렸고 당신은 리스트에도 못 들어갔어’ 하고 답하는 대신 그 모든 사람들이 결국 모두 그의 작품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페이스는 그렇게 하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들을 위해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믿게끔 만들려 노력한다. 그 사람이 세계적 컬렉터가 됐든, 다국적기업의 회장이 됐든, 미술 학도가 됐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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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PHOTOGRAPHER 조혜진
    TRANSLATOR 김재현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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