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프로필 by ESQUIRE 2022.10.10

덕다이브

이현석 / 창비
지난달 제주에 갔을 때, 처음으로 서핑을 배웠다. 초보자가 타기 적당한 잔잔한 너울이 규칙적으로 치던 날이었고, 나는 운 좋게 몇 번 부서지는 파도를 잡아타는 데 성공했다. 고개를 들고, 먼 곳을 응시하며 몸의 균형을 맞추고 물 위를 미끄러지는 그 느낌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어쩌면 소설을 쓴다는 건 파도를 타는 일과 비슷하다. 태움당하는 검진센터의 간호사와 그 태움의 현장에서 침묵했던 동료 직원이 훗날 발리의 한 서핑 강습 센터에서 수강생과 강사로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너울이 있다. 소설가 이현석은 열심히 패들링하며 이 너울을 잡아타고 롱라이딩에 성공한다. 소설의 어딘가에 있을 중심부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인과와 개연의 균형을 멋지게 맞추고.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의료계의 비극적 현상을 봐온 작가이기에, 그가 숙고하며 적어낸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의사로서 의료산업과 관련한 작품을 쓸 때 보여준 핍진함은 서핑 센터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도 여전히 살아 있다. 박세회


도박중독자의 가족

이하진 / 열린책들
‘가족’은 뭉클하지만 때때로 섬뜩하기도 한 단어다. 이 책 제목처럼 ‘도박중독자의’ 같은 단서가 붙는 경우가 꼭 그렇다. 섬뜩한 요소는 글에도 가득하다. 사람은 주식이나 코인 같은 투자 성격의 행위로도 도박중독자가 될 수 있다. 그건 윤리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작용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건실하고 선한 사람도 그리 된다. 한번 중독이 되면 주위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설득하고 구제하긴커녕 가까운 사이일수록 ‘공동의존증’에 걸려 함께 파멸할 공산이 높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처럼, 그 사람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반시체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절한 상담을 받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무엇보다 섬뜩한 부분은 이 모든 사실이 작가의 경험담이라는 형태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만화가 이하진은 투자를 공부한 시동생이 도박중독자가 되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의 삶을 산산조각 내는 과정을 만화로 그렸다. ‘가족에게 비극이 들이닥쳤을 때, ‘며느리’라는 경계선의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가?’ 도박중독이라는 주제 바깥에서 이런 메시지로 읽히기도 하는데, 그 답 역시 의미심장하다. 오성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김도훈 외 4인 / 푸른숲
글을 잘 쓰기 위해선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신경 써야 한다. 책의 저자이자 <허핑턴포스트> 편집장이었던 김도훈의 말이다. 공저자 주성철은 ‘라떼인 듯 라떼 아닌 라떼 같은 영화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로 프롤로그를 시작해 ‘참으로 다행이다’로 에필로그를 마무리했다. 감이 오지 않는가? <응답하라 1994> 시네필 버전이란 소리다. 30년 가까이 영화 밥을 먹은 5명의 저자 약력만 놓고 보면 영화적 문법에 대해 100분 토론을 벌이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들은 소름 돋는 영화평을 선보이는 쉬운 길 대신 자신들이 어떻게 영화에 빠지게 됐으며 그 지난한 삶은 어땠는지 소상히 풀어놓는 땀내 나는 길을 택했다. 비디오테이프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과 OTT를 이용해 손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현재를 비교하며 시대가 달라지면 영화평도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설교가 아닌 경험담에 빗대어 토로한 셈이다. 30대 중반은 되어야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의 연속이지만 솔직 담백한 글 덕에 킥킥거리며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등장하는 1980~1990년대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지는 건 덤이다. 박호준


세대 감각

바비 더피 / 어크로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MZ세대라는 표현은 이제 상식이 됐다.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를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기성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도 있다. 라떼다. 어느 시절이나 세대 격차는 있었다지만 이렇게 대놓고 꼰대라고 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러한 수직적 문화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제일 심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책의 저자이자 리서치 전문가인 바비 더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세대 간 갈등은 편견과 오류이다. 글로벌 여론 조사기관 IPSOS의 방대한 서베이를 토대로 작성한 통계 자료는 구세대와 신세대를 몇 개의 잣대로 구분하는 게 얼마나 근거 없는 획일화인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젊은 세대는 물질만능주의자다’라는 주장에 대해 1989년의 20대와 50대의 지출액이 동일했던 반면 2014년에는 50대가 약 20%가 더 많았다는 영국 자료를 들어 반박한다. 책 속 수많은 그래프와 표가 말하려는 건 하나다. 세대 갈등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송채연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 창비/열린책들/푸른숲/어크로스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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