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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들려주는 불과 재와 유령의 이야기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는 불과 불에 탄 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건 종종 떠나간 것들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사이의 관계가 만드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3.02.22
 
그림들이 현대의 신화 같아요.
전시 타이틀이 <이미지, 상징, 기도 Image, Symbol, Prayer>죠. 어떻게 보면 그런 주제에 맞춰 신화적인 느낌을 강조한 면도 있어요. 예를 들면 불의 이미지, 태양이나 달의 레퍼런스가 떠오르는 빛이 나는 헤일로 등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그렇죠. 신화 중에서도 ‘현대’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팝 컬처나 비디오 게임이 차용하는 이야기, 심지어 마블의 영화가 현대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것들은 예전의 어떤 신화의 개념에 그 바탕을 두고 있지 않고, 스토리텔링의 도구로도 차용되고 있지요.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신화는 결국 듣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언제든 재해석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도구라는 면에서는 현대 ‘신화’ 같다고 느낀 해석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제가 ‘현대 신화’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고 신화가 활용되는 행태적 요소를 차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제가 관심을 두는 영역은 오히려 신화가 아니라 신화가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즉 신화와 인간의 심리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영역입니다. 신화 그 자체를 만들려는 시도라기보다는 과거의 시간에 갇혀 있는 신화를 현대로 다시 끄집어내 그것들이 인간의 심리와 욕망 또 감정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소설은 모두 개인의 신화”라는 얘기를 하는 소설가들이 있어요. 전 그 말을 좀 다르게 해석합니다. 신화에서 드러나는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개인의 서사에 적용하면 개인의 작은 이야기도 신화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요. 그 방법론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맞아요. 제 작업 방식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다만 특정한 신화적 요소를 가지고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해당 신화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고 이를 변형하게 됩니다. 아주 단순한 경우를 예로 들면 마블에서 만든 토르는 북유럽 신화를 차용했지만, 이를 완전히 재해석해 사람들이 북유럽 신화를 바라보는 인식과 관점에 변화를 주었죠. 저 역시 제 작품이 사람들의 인식과 관점을 바꿔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면, 또 신화만큼 사람들의 심리적 측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에게 마음껏 차용하고 변형하고 왜곡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내 우주, 나 자신과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을 포함하는 우주뿐입니다. 제 작품이 개인적인 서사로 보이는 이유죠. 예술가로서 더 개인적일수록 더 거대한 것들, 사회, 국가 혹은 우주와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아예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주제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저와 죽어가는 제 할아버지의 관계를 다룬 영상 작품 ‘Songs for Dying’(2021)은 태국 민주화 운동과 제주의 바다 신과의 관계를 다룹니다. 개인적 서사에서 나타나는 요소들을 통해 좀 더 큰, 거대한 주제로 연결할 때 작품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풍성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국제 갤러리의 전시 <이미지, 상징, 기도 Image, Symbol, Prayer>에는 평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지요. 방금 얘기한 것과 비슷한 방법론으로 해석이 가능하겠군요.
제게 ‘서양적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누구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뜻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정체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서구에서 발생한 ‘추상회화’ 영역의 작품을 창조하면서 주된 소재로 ‘데님’을 활용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데님은 서구 자본주의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습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자본주의적인 재료인 셈이죠. 사실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그 메시지 자체가 사실이 아녜요. 물론 제가 그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은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사진을 쓰는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당신이 2010년부터 계속해온 이 작품들을 보통 ‘역사회화 시리즈’라고 묶지요. 이 시리즈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건 ‘불교’라는 콘텍스트입니다. 아까 해나 달로 해석할 수 있다는 원형의 헤일로는 여래의 후광으로 보이기도 하고, 데님을 태워 남은 ‘잔여물’로 그린 그림 역시 불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순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혹은 순환을 끊어내는 행위로 해석할 여지도 있고요.
제 회화를 불교 회화라고 정의할 순 없지만, 불교의 콘텍스트 안에서 태우는 행위를 해석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한국의 불교와 제게 익숙한 태국의 불교는 다르죠. 쉽게 얘기하면 주황색 승복을 입는 불교와 회색 승복을 입는 불교 사이에는 교리상에 큰 차이가 있어요. 제게 익숙한 불교에서 ‘태운다’는 것은 이생에 속한 것과 그 영혼을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어 화장을 하면 남은 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고 저세상에 속한 영혼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분리됩니다. 즉 제 불교의 문화에서 ‘불’은 순환의 매개지요. 그런데 제가 불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런 불교의 교리가 태국에서는 정부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프로파간다처럼 사용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대합니다. 제가 오래 생각한 건 뭔가를 태우고 남은 재입니다. 제겐 그 재가 마치 유령처럼 느껴졌어요. 생을 다했지만, 떠나지 못하고 이생에 남아 있는 유령들. 태우면서까지 떠나보내려고 했지만 떠나지 못한 존재들. 천사는 하늘에서 내려왔지만, 유령들은 이 땅에서 남은 것들이죠. 이 재라는 작은 개념을 역사적 사건으로 확장하며 사고해왔어요. 예를 들면 제주 4·3 사건 등을 떠올렸지요.
전 당신의 작품에서 요동치는 불길을 보면서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의 앨범 커버에 실린 베트남 승려 틱꽝득의 소신공양(자신의 몸을 불살라 공양함)이 떠올랐습니다.
<불길에 휩싸인 세상의 불의 정치>라는 책을 읽으면서 일부를 제 전시의 보도자료 앞단에 레퍼런스로 언급하기도 했죠. 책의 앞단에도 그 스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 책은 그런 불과 재를 가지고 인간의 믿음과 정치 그리고 그 관계가 어떻게 역사를 형성하는지 빗대어 얘기합니다. 저는 재라는 것이 이 책이 얘기하는 것처럼 어떠한 것의 결과라든지 그 영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타고 남은 잔여물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소망을 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세계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전시를 하다 보니 이념이 가진 상대적 측면들이 두드러져 보이기도 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선 ‘단기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단기라면 몇 년이죠?
4335년이네요. 그런데, 저 역시 그 숫자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어요.
재밌네요. 예를 들면 태국은 불교 기반의 나라이기 때문에 부처가 열반에 이른 때부터 불기를 계산합니다. 서력을 쓰는 국가에서 지금은 2022년이지만(본 인터뷰는 2022년 말에 있었다.) 태국에서는 2565년이지요. 우리가 굉장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시간’이라는 개념을 표기하는 일 하나에도 스토리텔링이 개입하고 스토리텔링이 개입하는 순간 정치적인 콘텍스트가 되지요. 태국의 불기나 한국의 단기 혹은 서양권의 서기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저희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억압을 느낄 때면 예술가인 저는 저를 억압하는 것, 혹은 그런 세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어떤 욕망을 품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려 들어요. 그런데 그 본질을 계속 파고들다 보면 자신 안에도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다른 사람을 억압하려는 얄팍한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성룡
  • TRANSLATOR 이승민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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