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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피딕이 만든 시간의 철학이 담긴 위스키들

글렌피딕이 컴퓨테이셔널 아트와 사운드 비주얼 아트의 세계로 위스키가 품은 시간을 재해석했던 아주 특별한 날의 기록.

프로필 by 박세회 2023.03.28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의 공개 행사 ‘Time Re:Imagined’에 전시된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30년, 40년, 50년의 모습.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의 공개 행사 ‘Time Re:Imagined’에 전시된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30년, 40년, 50년의 모습.

커머셜이 아트와 절묘하게 만났을 때 간혹 탄식이 새어 나오곤 한다. 이번 글렌피딕 ‘Time Re:Imagined’ 컬렉션의 패키징을 만났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컬렉션은 3개의 제품으로 이뤄져 있다. ‘SIMULTANEOUS TIME(동시적 시간)’이라는 이름의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50년’, ‘CUMULATIVE TIME(축적된 시간)’이란 의미의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40년’, ‘SUSPENDED TIME(간직된 시간)’을 구현한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30년’이 그 주인공이다. 그중 220병밖에 생산되지 않았고, 대한민국에는 단 한 병만 들어온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의 정점인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50년’의 디자인은 마누엘 지메네스 가르시아가 맡았다. “글렌피딕으로부터 동시적 시간을 형상화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거야말로 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가르시아의 말이다. 지메네스의 전공 분야는 컴퓨테이셔널 아트다. 즉 수치화된 정보를 컴퓨팅해 아트 형태로 만드는 것이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글렌피딕이 공개한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50년의 패키지는 50개의 분절된 부분이 나선형으로 소용돌이치며 엮여 올라가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50개의 부분은 증류소의 1년 동안 일어난 기후 데이터들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각각의 부분은 또다시 3개월간의 습도, 기압, 온도 데이터에 따라 다른 형태를 이루죠.” 즉 랜덤하게 보이는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50년의 디자인은 글렌피딕 50년의 원액이 만들어지고 숙성된 곳의 기후 데이터를 예술적인 폼(form)에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탄성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시리즈의 주제는 시간이에요. 위스키에서 시간이 갖는 의미보다 중요한 것은 없죠. 30, 40, 50년의 럭셔리 라인업을 시간에 대한 글렌피딕의 철학에 따라 원액부터 패키지까지 완벽하게 재해석해낸 것이 이번 타임 시리즈입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 글렌피딕 앰배서더인 배대원 차장의 말이다.
서로 다른 캐스크의 원액을 섞어 안정화하는 작업을 ‘매링’(marrying)이라 한다. 결혼과 같은 단어를 사용할 만큼 중요한 작업이다.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50년은 수천 개의 오크통 중 3개의 아메리칸 오크 캐스크에서 숙성된 원액을 2년 동안 같은 기후를 가진 숙성고에서 안정화하는 과정을 거쳐 매링했다. 50년 이상 된 위스키 원액은 사람으로 따지면 110세가 넘은 진귀한 존재나 다름없다. 합치는 과정에서도 극도의 조심스러운 자세가 필요한 법이다. 배 앰배서더는 “50년이라는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글렌피딕의 전설적인 몰트 마스터 해미시 로버트슨을 비롯해 그 후대인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지금의 몰트 마스터 브라이언 킨스만의 보살핌을 받은 원액들이 매링된 기념비적인 위스키”라고 밝혔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는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를 최초로 공개하며 디지털 사운드 및 비주얼 아티스트 료이치 쿠로카와에게 영상을 맡겼다.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30년, 40년, 50년의 철학적 주제인 동시적 시간, 축적된 시간, 간직된 시간이 식물의 포자처럼 터지는 유기체적 폭발(30년), 등고선을 연상케 하는 닮은꼴의 랜덤한 곡선들(40년), 직선과 곡선이 맞물리며 입체적 형태로 솟아나거나 꺼지며 마치 동시성과 역사성을 간직한 평행우주(50년)를 그린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국내에 단 한 병 들어온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50년은 부드럽고 달콤한 오렌지 껍질과 제라늄의 복합적인 풍미가 이어지며, 더프타운 숲을 연상케 하는 그래시하고 어시(earthy)한 매력이 두드러진다. 글렌피딕 40년은 ‘렘넌트 배팅’이라는 글렌피딕 특유의 기법으로 더욱 축적된 풍미를 자랑한다. 이 기법은 마치 씨간장을 남겨 다음 장을 담글 때 균형을 잃지 않고 더 깊은 맛을 내도록 하는 것처럼 올해의 40년 원액을 남겨 다음 해의 40년 원액의 베이스로 섞는 것을 말한다. 40년에 ‘CUMULATIVE TIME(축적된 시간)’이라는 표현이 붙은 이유다.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30년의 철학을 통칭하는 단어는 ‘SUSPENDED TIME(간직된 시간)’이다. 6대 몰트 마스터인 브라이언 킨스만의 주도로 섬세한 병입 결정의 순간을 담아냈으며, 달콤하고 은은한 셰리 노트와 묵직한 오크 향이 균형을 이룬 것이 특징이다. 글렌피딕의 타임 시리즈를 발표한 ‘Time Re:Imagined’ 행사에서 윌리엄그랜트앤선즈의 김종우 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위스키 중에서도 럭셔리 위스키 시장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 존재 자체만으로 어떤 철학을 상징할 수 있는 초희귀 위스키 시장은 대중 위스키 시장과 분리되어 있다. “한국의 싱글 몰트 시장을 선도해왔을 뿐 아니라 럭셔리 위스키 시장에 진입해 단기간에 이미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진정한 럭셔리의 세계로 글렌피딕이 들어섰다는 얘기다.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50년의 상세한 모습. 휘말려 올라가는 나선형 모양은 증류소의 기후 데이터를 형상화한 것이다.료이치 쿠로카와가 글렌피딕 타임 시리즈 30년을 위해 제작한 영상의 일부.이날 행사의 코멘테이터를 맡은 글렌피딕의 앰배서더 배대원 차장과 김해현 아나운서의 모습.

Credit

  • PHOTO 김성룡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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