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와 LIV가 벌이고 있는 골프전쟁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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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와 LIV가 벌이고 있는 골프전쟁

지난해 LIV(리브)가 날린 ‘오일머니’ 어퍼컷에 PGA는 영구 제명과 랭킹 제외 원투 펀치로 응수했다. 그러자 리브는 대회 규모를 2배 가까이 늘리며 PGA를 코너로 모는 중이다. DP 월드 투어와 아시안 투어까지 참전하며 판이 더 커졌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3.06.08
 
더스틴 존슨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해를 묻는다면 2016년을 꼽을 가능성이 높다. PGA가 선정한 ‘2016년 올해의 선수’에 뽑혔으며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US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계 골프 랭킹 1위에 오르는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으니 말이다. 이후로도 2022년까지 약 6년간 줄곧 세계 랭킹 5위 안에 머무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2023년 5월 기준, 그의 세계 랭킹은 81위다. 고작 1년 만에 랭킹이 곤두박질쳤다. ‘케빈 나’로 알려진 나상욱과 루이 우스트히즌도 사정은 비슷하다. 2022년 시즌을 28위로 시작한 나상욱은 117위, 11위로 시작한 루이는 163위에 랭크되어 있는 상태다. 세 선수가 함께 교통사고라도 당한 걸까?
리브 골프 인비테이셔널(LIV) 탓이다. 리브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신생 투어로 2022년 6월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과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3개 대륙에서 총 8회 개최됐다. 문제는 세계 랭킹을 산정하는 ‘Official World Golf Ranking(OWGR)’이 리브를 정식 투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앞서 언급한 3명의 선수 외에도 LIV로 이적한 거의 모든 선수의 랭킹이 시즌을 거듭할수록 하락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2022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리브로 이적한 캐머런 스미스는 “세계 랭킹 시스템이 ‘구식’이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타이거 우즈와 같은 시대를 풍미했고 명예의 전당에까지 이름을 올렸던 필 미컬슨 역시 미국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골프 랭킹이 포괄적이지 않다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OWGR이 리브를 정식 투어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리브가 컷오프 없이 3라운드 54홀로 경기를 치른다는 사실과 ‘인비테이셔널’ 대회, 즉 초대받은 선수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폐쇄성을 문제 삼는 것이다. 하지만 2022년 말, 멕시코 투어는 54홀로 대회를 진행했는데도 포인트를 인정받았다. 또한 지난 2월 열린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 7개월 만에 필드에 복귀한 타이거 우즈는 공동 45위를 기록하며 자신의 세계 랭킹을 1294위에서 985위로 단숨에 309계단이나 끌어올렸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PGA와 리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힘겨루기 때문이다. 리브는 2020년부터 유명 프로 골퍼들에게 이적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리브가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의 계약금과 대회 상금을 준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지만 그때까지도 PGA는 리브를 위협적인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역사와 전통을 상징했던 PGA를 등질 선수는 없을 거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초, 거물급 선수들이 하나둘 리브로 이적을 선언하면서 PGA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결국 PGA는 리브에 출전하는 선수는 PGA 투어에서 영구 제명한다는 초강수를 두기에 이른다. 지난해 5월의 일이다. 리브에서 얻은 성적을 반영하기는커녕 축구로 치면 ‘1부 리그’와 같은 PGA 투어에 참가조차 할 수 없으니 더스틴 존슨의 랭킹이 앞으로도 쭉쭉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약 1년이 지났지만 갈등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DP 월드 투어(옛 유러피언 투어)까지 PGA의 편에 서는 모양새다. DP 월드 투어가 리브로 옮긴 선수들에게 벌금을 부과하자 이언 폴터, 리처드 블랜드, 헨리크 스텐손이 자진 탈퇴를 선언했다. DP 월드 투어를 탈퇴한다는 건 미국과 유럽 간의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 컵’에도 나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라이더 컵은 4대 메이저 대회에 속하진 않지만, 1927년 시작된 국가 대항 토너먼트로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 대결로 불린다. 특히 스웨덴 출신의 헨리크 스텐손은 라이더 컵에 다섯 번 출전해 세 차례 유럽 팀 우승에 기여해 단장으로 뽑혔던 인물이다.
심지어 OWRG는 1986년부터 유지하던 랭킹 포인트 부여 시스템까지 뜯어고쳤다. PGA 투어 우승은 24점, 일본 투어는 16점, 아시안 투어는 14점을 부여하던 기존 방식 대신 투어에 참가한 선수 수준을 고려해 점수를 산출한다. 랭킹이 높은 선수들이 다수 출전하면 그만큼 받을 수 있는 포인트도 확 올라간다. 이렇게 하면 PGA 투어에 참가하지 못하는 리브 소속 선수들은 포인트를 얻기 더 어렵다. 일례로 지난 3월 PGA 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욘 람은 67.19점을 챙겼지만 비슷한 시기 아시안 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카타르에서 우승한 앤디 오글트리는 고작 7.21점을 받았다. 예전 규칙이었으면 두 우승자가 얻는 점수 차이가 1.7배였으나 규정이 바뀌어 9배 이상 벌어지게 된 것이다.
PGA가 리브를 경계하는 이유이자 리브가 급속도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던 비결은 다름 아닌 돈이다. 얼마나 큰돈을 벌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더스틴 존슨은 2008년부터 14년간 PGA에서 활약하며 약 7500만 달러를 상금으로 벌었다. 그런데 2022년 리브로 옮긴 후 4개월 만에 약 3500만 달러를 챙겼다. 이를 월급으로 단순 환산한다면, 매달 6억원을 받던 사람이 이직을 한 후 월 120억원을 번 셈이다. 참고로 더스틴은 상금 외에도 4년치 계약금으로 1억2500만 달러를 받았다. 그렇다고 리브의 상금 배분 구조가 ‘승자 독식’ 체제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컷을 통과하지 못하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PGA 투어와 달리 리브는 꼴찌에게도 12만 달러를 지급한다.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참가만 하면 3일 만에 약 1억5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데 꿀 아닌가?’
리브는 골프 중계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F1 중계를 떠올리게 하는 톡톡 튀는 스타일이다.

리브는 골프 중계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F1 중계를 떠올리게 하는 톡톡 튀는 스타일이다.

“이유도 묻지 말고 가지 마라.” 작년 6월 열린 KPGA 선수권대회의 기자회견에서 최경주가 한 말이다. 한국 남자 골프계의 맏형으로 통하는 그의 발언 때문일까? 아직 리브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세계 랭킹 18위인 임성재 선수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리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PGA에 전념할 겁니다”라고 못 박았다. 좀 더 많은 의견을 듣고 싶어 PGA 투어 참여 경험이 있는 선수들에게 접촉을 시도했지만,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부했다.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골프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필드에 서고 플레이를 하는 것 자체가 선수 개인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줍니다. 도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리브의 성장세가 매서운 건 맞지만 PGA의 유구한 역사를 무너뜨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KPGA 투어 프로 출신으로 ‘룩앳더볼’ 골프 아카데미의 대표 강사를 맡고 있는 강상혁 프로의 말이다.
그러나 JTBC골프의 김지한 골프 전문기자는 조심스럽게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아직은 눈치를 보는 분위기지만, 2년 안에 리브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가 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봇물이 터지길 기다리는 걸 수도 있어요.” 국내 프로 선수들이 놓인 열악한 상황을 비추어볼 때 리브라도 진출하는 것이 실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한국프로골프의 자료에 따르면, 상금 수익만으로 훈련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선수는 전체의 1% 미만이다. 스폰서 지원을 더하더라도 2%를 넘지 못한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30대 KPGA 투어 프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리브에 가지 않을 이유는 없어요. 설사 PGA 투어에 진출한다고 한들 높은 상금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니까요.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죠”라며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올 초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풀스윙〉 역시 PGA와 리브의 충돌을 주제로 다룬다. 타이거 우즈를 필두로 한 ‘친PGA파’는 리브로 이적한 선수들을 향해 ‘배신자’ ‘속물’ ‘명예롭지 못한 자’와 같은 독설을 내뱉는다. ‘친리브파’는 리브가 제안하는 더욱 역동적이고 젊은 분위기의 골프를 ‘혁신’이라고 말한다. 빡빡한 일정의 PGA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과거와 달리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돈보단 명예’라고 말하는 쪽과 ‘명예보단 가족’이라고 말하는 쪽 모두 전용기와 고급 SUV를 타고 투어를 누빈다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골퍼는 이미 수십, 수백억을 번 상위 랭커들이다. 다시 말해, 코로나 이후 치솟은 캐디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연습 시간을 쪼개 ‘레슨 알바’를 뛰어야 하는 98%의 우리나라 프로 선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천상계’에서 명분과 실리를 두고 벌이는 논쟁과 잣대를 당장 다음 달 수입을 걱정해야 하는 대다수 골퍼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앞서 PGA의 편에 섰던 강상혁 프로 역시 “리브가 달콤한 유혹인 건 부정할 수 없어요. PGA에 갈 가망이 없다면 리브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데에는 동의합니다”라며 현실적으로 어려운 후배 선수들을 걱정하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해 화려한 데뷔전을 마친 리브는 올해 규모를 더 늘려 총 14번 대회를 연다. 그중 PGA 투어가 열렸던 골프장이 3곳이나 포함됐다. PGA 투어가 열렸던 장소를 섭외한 것으로도 모자라 PGA 투어와 같은 기간, 같은 지역에서 대회를 열 계획이다. PGA와의 대결에서 물러설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24년부턴 리브 참가 선수를 늘리기 위해 아시안 투어와 파트너십을 맺고 승강제를 도입한다. 리브를 1부 리그, 아시안 투어를 2부 리그처럼 운영하겠다는 의중이다. 지난해 아시안 투어에 참가한 한국 선수는 총 21명이다. 김지한 기자의 예측대로 2년 후 리브에서 한국 선수를 마주하는 날이 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리브의 등장으로 굳건했던 PGA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으며 그 균열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밈에 빗대어 표현하면 “PGA, 타이거 우즈, 최경주 그리고 리브 렛츠 고!”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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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박호준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리브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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