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극장, 돌아오지 못한 한국영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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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극장, 돌아오지 못한 한국영화

김현유 BY 김현유 2023.06.02
 
“인구가 5000만 명인 나라에서 어떻게 1000만 영화가 나올 수 있죠?” 한국을 찾은 해외 영화인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이 질문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은 극장 가는 것 말고는 딱히 놀 게 없나요?”라는 추가 질문을 겁 없이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영화진흥위원회 결산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4.37회로 무려 미국의 4.2회를 넘는다. 당당한 세계 1위였다.
한국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극장만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건 세상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인 건 맞다. 1년 내내 극장에 안 가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평소 ‘영화 보는 게 취미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수치상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극장에 꼭 간다고 보면 된다. 덕분에 한국영화시장 규모는 바로 그 2019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북미, 중국, 일본 영화시장에 이어 당당하게 세계 4위로 등극했다.
수치 얘기를 좀 더 해보자. 한국 극장가는 2013년 처음으로 연 관객 수가 2억 명을 돌파했고 이후 2019년까지 무려 7년 연속 2억 명을 돌파했다. 심지어 2019년에는 역대 최다인 2억2364만 명까지 기록했다. 게다가 그 안에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넘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인 2012년부터 8년 연속이었기에 ‘한국영화를 보는 한국인’이야말로 한국영화계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모든 것이 뒤집혔다. 2020년에는 5952만 명으로 관객 수가 거의 70% 가까이 감소했고, 2021년에도 관객 수는 6053만 명 정도에 그쳤다. 물론 한국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생한 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극장 의존도’다. 한국은 영화산업 전체 매출에서 극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5%가 넘을 정도로 절대적이어서, 다른 나라보다 피해가 더 컸다. 한국인의 ‘영화 사랑’은 그야말로 ‘극장 사랑’의 다른 말이었다.
거기에는 낮은 영화 티켓 가격이 큰 역할을 했다. CGV 자체 집계에 따르면, 한국영화 관람객의 85%가 2인 이상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극장은 가장 가성비 좋은 데이트 혹은 가족 나들이 장소였던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극장이 손실을 만회하려는 방편으로 매년 1000원씩 무려 세 차례에 걸쳐 관람료를 올리면서, 현재 극장 관람료는 주말 기준 1만5000원 수준까지 올랐다. 티켓 가격이 한 달치 OTT 구독료보다 비싼 수준으로 오르자, 사람들은 영화를 선택하는 데 훨씬 까다로워졌다. 주변에는 신작이 OTT에 뜰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사람들도 꽤 많다. 나 또한 언제부턴가 ‘극장에서 볼 영화’와 ‘OTT에서 볼 영화’를 구분하게 됐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그 까다로운 선택 기준을 충족시킬 만한 한국영화들이 있었느냐는 점이다. 지난해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다. 반갑게도 3년 만의 1000만 영화 〈범죄도시2〉가 등장했고, 1761만 관객으로 한국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던 〈명량〉의 속편 〈한산: 용의 출현〉도 726만 관객을 동원했다. 서둘러 ‘극장 정상화’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들기만 하면 1000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언제나 박스오피스를 쥐락펴락한 두 감독 최동훈과 윤제균의 두 영화 〈외계+인 1부〉와 〈영웅〉이, 각각 153만과 326만 관객을 기록하며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냈다. 선두에서 한국영화 박스오피스를 끌어주길 바랐던 두 영화의 부진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각각 초현실적 판타지 액션과 안중근 의사라는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라는, 중견 감독으로서 야심 차게 새로운 시도에 나선 것이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2023년은 더욱 암울하다. 지난 4월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황정민과 현빈 주연 〈교섭〉이 유일하다. 4월 5일 개봉한 〈리바운드〉는 언론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했다. 영화감독으로서는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배우가 아닌 영화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MBC 〈전지적 참견시점〉과 SBS 〈미운 우리 새끼〉 등의 예능에 출연한 장항준 감독의 노력에 비하면 절망적인 기록이다. 이어 4월 26일 개봉한 〈드림〉은 1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전작 〈극한직업〉(2019)으로 1626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과, 아이유와 박서준이라는 스타 캐스팅을 고려하면 한없이 부족하다. ‘노숙자 월드컵’이라는 사회비판적 소재를 활용했으나, 앞서 얘기한 최동훈, 윤제균 감독처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상업적으로는 좌절됐다는 게 역시 치명적이다. 기존 서사와 스타일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속편을 만든 김한민 감독만 성공하고, 궁극적으로 한국영화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변화를 시도한 다른 세 감독은 그러지 못한 것이 어쩌면 현재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손실이자 비극이다.
비슷한 시기, 상대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각각 500만 관객을 돌파하고, 그에 육박하는 흥행을 기록한 것으로 2023년 상반기 극장가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반기가 다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한국영화 관객점유율은 30%도 되지 않는다. 한국영화 관객점유율은 지난 10년 가까이 언제나 50% 이상이었다. 즉 극장에서 보는 두 편의 영화 중 한 편은 꼭 한국영화였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서둘러 걱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오랜만에 해외 영화가 큰 격차로 한국영화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3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개봉 3주 차에 접어들며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미 지난 1편의 134만, 2편의 273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었다. 사실상 팬데믹 이전의 블록버스터 흥행세와 같다. 〈드림〉과 같은 날 개봉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도 200만 관객을 넘었다. 현재 〈드림〉과 〈리바운드〉를 제외하고 10만 관객 언저리에 자리한 한국영화는 24만 관객의 〈옥수역 귀신〉과 7만 관객의 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 뿐이다. 지난 20년 동안 영화기자로 일하면서 한국영화가 아무리 개봉영화에 따라 일희일비한다고 해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이처럼 처참한 흥행성적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극장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한국영화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어쨌건 스스로를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극장이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아가는 가운데 한국영화만 뒤처지는 것 같은 이 기분이 그저 일시적이길 바랄 뿐이다. 공교롭게도 이 와중에 주변의 많은 이가 지금 위기의 한국영화계를 주성철이 구해주길 바란다며 인사를 전해오고 있다. 팬데믹 시기 유일한 1000만 한국영화였던 〈범죄도시2〉의 속편 〈범죄도시3〉가 5월 31일 개봉하는데 지난 시리즈의 배우 윤계상, 손석구에 이어 3편에서는 이준혁이 주성철이라는 이름의 빌런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제작발표회 때부터 지겹도록 인사를 받아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범죄도시3〉가 다시 극장가를 뒤집어놓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국영화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멋지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주성철은 영화평론가다. 영화 잡지 〈키노〉 〈필름 2.0〉을 거쳐 〈씨네21〉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책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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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주성철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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