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사진'과 '사진이 아닌 것' 사이 가장 미묘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섯 포토그래퍼

AI 제너레이터로 후보정을 하는 포토그래퍼부터 아예 '촬영' 자체를 하지 않고 사진을 만드는 포토그래퍼까지.

프로필 by 오성윤 2023.09.29
 
 

Daisuke Yokota

daisukeyokota.com
Daisuke Yokota, ‘Untitled’ from <Color Photographs>, 2015.Daisuke Yokota, ‘Untitled’ from <Matter/Burn Out>, 2016.Daisuke Yokota, ‘Untitled’ from <Matter/Burn Out>, 2016.
“저는 만 레이가 현상 과정에서의 실수로 ‘솔라리제이션’이라는 작업 방식을 찾아낸 일화를 좋아합니다. 아마 그런 결과물을 낸 사진가는 만 레이 이전에도 많았겠지만, 대부분이 그걸 그냥 실패로 여기고 눈여겨보지 않았겠죠.”
 
다이스케 요코타의 홈페이지에는 활자가 없다. 메뉴도, 심지어 별다른 레이아웃도 없다. 끝도 없이 스크롤되는 공간 속에 왼쪽 정렬된 이미지들만 계속 업데이트될 뿐인데, 모르고 본다면 그것들이 모두 ‘사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테다. 얼룩, 그래픽 디자인, 품질이 조악한 CCTV의 썸네일, 혹은 천체 사진처럼 보이는 것들. 이 천차만별의 이미지들 사이에 그리 낯설지 않은 구도와 색감을 가진 사진도 더러 섞여 있으니 혼란은 가중된다. 고의로 별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다이스케 요코타에게는 그 모든 게 사진인 것이다. “사람들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자신의 이상을 강요하고 거기서 벗어난 것을 실패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사진 자체의 입장에서는 실패도 성공도 존재하지 않죠.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제 이상을 사진에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는 사진학교에서 전문 교육을 이수한 사진가지만, 작업 과정에서 전문 사진 기술이나 정확한 절차는 철저히 배제한다. 그리고 엉터리(스스로의 표현이다) 방식을 폭넓게 탐색한다. 촬영한 필름에 빛을 가하고 훼손을 한다거나, 끓는 물이나 아세트산을 사용해 현상을 한다거나, 이미 촬영된 사진을 10여 번 재촬영해 열화시킨다거나. 그의 작업 중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건 심지어 카메라 없이 만드는 사진이다. 인화지와 빛, 약품의 반응만으로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필름 카메라부터 디지털 카메라까지 두루 사용하지만 현대적 방식의 사진 보정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동경하기는 하나, 솔직히 새로움이 자신과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다고. 하지만 AI 제너레이터와 사진의 경계에 대해 물었을 때는 단언하듯 답하기도 했다. “AI 기술에는 아직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만드는 이미지는 사진의 문제라기보다 회화에 속하는 문제로 보이니까요.” 다만 그 뒤에는 작은 단서도 붙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이 사람의 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그 결과로 사진을 해석하는 데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에는 관심이 있죠.”
 

 

Thomas Albd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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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Albdorf, ‘Very Beautiful Stuff At The Local Gift Shop! (1)’ from <A Miss Is As Good As a Mile>, 2018. Thomas Albdorf, ‘I Made This For You’ from <General View>, 2017.
“미래에도 사진이 유용한 매체라면 좋겠지만, 아마도 우리가 접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카메라를 사용해 만든 것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겠죠. 어쩌면 제 작업은 기존 사진이 다른 이미지들과 함께 계속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열망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토마스 알브도르프는 작업에 최신 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사진가 중 한 명이다. 디지털 후반작업, 화보용 3D 렌더링, AI 제너레이터까지. 재미있는 점은, 그가 이 툴들을 사용하는 이유를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저는 카메라가 사용자로 하여금 주변 환경과 소통하게 한다는 점을 좋아합니다. 무언가를 찍으려면 세상과 마주하고 담론을 시작해야 하니까요. 카메라를 든 사람과 피사체는 서로를 공동 제작하는 셈이죠. 제가 사진을 왜곡하는 툴을 다루는 건 사진의 이런 측면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촬영된 이미지와 디지털 프로그램이나 AI 생성을 거친 이미지를 나란히 놓고,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으며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거예요.” 그는 늘 카메라를 들고 목적 없이 거리를 걷는다. 마치 카메라와 산책을 하듯이. 그리고 평범한 환경에서 놀라운 ‘시나리오’를 찾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놀라운 ‘피사체’를 찾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를 찾는다는 것이다. 조각과 개념미술을 전공한 그의 사진에서는 조각 작품 같은 피사체가 자주 등장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은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쌓아 올린 박스들, 유리판, 기프트숍에서 구입한 물건들까지. ‘배우’와 그 ‘대역’이 스스로 중요하기보다 ‘무대’와 ‘제작 방법’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의 최근 시리즈 <Body Double>가 연기, 반투명 포일, 테이프처럼 투명하거나 일시적인 속성을 갖는 피사체들을 포착한 것도, 그리고 그것들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해 모순을 만들어낸 것도 같은 이유다. “AI 이미지에 대해 제가 가장 우려하는 건 그게 우리를 현실과 단절시킬 수 있다는 점이에요.” AI 제너레이터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물었을 때 그가 내놓은 답변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들이 이전에 존재했던 수십억 개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진을 만들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학습한 데이터 세트에 속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시각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점, 그래서 새로운 것을 보거나 구성하는 능력을 잃는 상황을 걱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대가 되기도 해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이런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제작하고, 나아가 이런 제약을 우회할 방법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하면요.” 어쨌든 아직까지는, 그의 작업이 우리가 가장 선명히 볼 수 있는 좋은 예시 중 하나다.
 

  

Tabitha So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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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itha Soren, ‘The World Is Upside Down’ from <Some Blows Are Heavy>, 2022.
“저는 더 이상 셔터를 누르는 ‘결정적인 순간’에 필름이나 센서에 진실이 고착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종류의 진실은 그렇게 포착하기에는 너무 미묘하고 복잡하니까요.”
 
타비사 소렌은 본래 TV 리포터였다. 빌 클린턴, 투팍,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초대 수반까지 인터뷰하며 성공적 이력을 쌓던 그녀가 돌연 사진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 과정에서 느낀 일종의 괴리 때문이었다. “저널리즘 분야에서 성공할수록 주류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어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어필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일은 점점 더 밋밋해졌죠. 저는 더 강렬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을 해야 했어요.”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 전공한 것은 사진이었으나, 무엇이든 깊이 탐구하는 그녀의 성격은 작풍에도 영향을 끼쳤다. 고대 동굴벽화의 손자국이 전하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현대인이 무심코 지나치거나 무시하는 장면을 선명하게 포커스해주는 대형 네거티브 필름 카메라의 속성, 낸 골딘이나 고든 파크스 같은 사진가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냈던 능력, 윌리엄 터너 같은 화가가 그림에서 경외감, 공포, 무한함, 신성함을 느끼게 했던 방식까지. 그녀가 자신의 사진에 구멍을 뚫고 손자국을 내거나 사진에 페인트를 칠한 후 레진으로 덮는 등 온갖 변형을 일으키는 건 (“화면의 평면적 픽셀이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존 사진 작업들에 지친” 탓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그녀의 내면에 조응하는 형태가 될 때까지 이미지를 모든 가능성으로 밀어 넣는 행위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다소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쫓아왔던 것, ‘특정 심리 상태의 시각화’를 좀 더 융합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추구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사진이 객관적 진실이라 믿는 경향이 있지만) 모든 종류의 사진은 세상을 탐구하는 시선입니다. 저에게 사진가가 된다는 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고, 자아를 보는 것이죠. 저는 ‘보는’ 것이야말로 창조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제 사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떠나서, 관람객들이 들어설 때보다 좀 다른 시선을 갖고 전시회장을 나설 수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Antony Cai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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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y Cairns, ‘LDN4_19’ from <IBM Computer Listing Paper Computer Punch Card Artworks>, 2018.
“사진이라는 매체는 한계가 있지만 동시에 가능성도 무궁무진합니다. 그중 어떤 것들은 한때 탐구되기도 했지만, 세상과 기술은 그걸 두고 그냥 나아가버렸죠. 저는 그 ‘잃어버린 가능성’을 찾아서 제가 원하는 미학을 창조하는 데에 쓰는 것뿐이에요.” 
 
안토니 케언스는 대도시의 밤을 촬영하는 사진가다. 자신의 고향인 런던부터 뉴욕, LA, 도쿄까지. 물론 도시의 거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포토그래퍼야 발에 치일 정도로 많겠지만, 유독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촬영의 결과물이 실상 해당 도시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다수의 사진이 무엇을 찍은 것인지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세계 곳곳의 메트로폴리스를 찾아 ‘추상 사진’ 작업을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의 작업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키워드가 더 필요하다. ‘역사’. 안토니 케언스가 여타 사진가들과 구분되는 핵심 지점은, 오늘날 대도시의 밤에 쏟아져 나오는 빛에서 추상적 이미지를 얻기 위해 그가 더듬는 것이 ‘사라진 도구들’이라는 부분이다. “저는 사진의 역사, 사진과 기술의 연관성, 사진이 기술과 함께 진보해나가면서 항상 사용되고 보여지기 위해 노력해온 존재라는 사실에 집착해요. 그러니 지금은 사라진 오래된 카메라나 촬영 기법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거죠.” 그는 사진의 역사에서 잔가지처럼 돋아났던 온갖 카메라와 촬영 기법을 깊이 있게 연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몇 가지를 취사 선택해 자신만의 미감으로 발전시킨다. 다게레오타입이나 콜로타입 같은 인화법을 색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거나, IBM 컴퓨터 펀치카드나 코볼 코딩 용지 같은 특수 용지 위에 사진을 전사한다거나, 전자 잉크 리더기를 해킹해 자신의 이미지를 추출한 후 스크린을 분해한다거나.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촬영자 각자의 미감에 집중하면, 모든 도구가 나름의 가능성을 품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사진의 미래’ 같은 질문도 큰 의미가 없었다. “사진은 기술에 적응하며 발전하는 매체죠. AI 제너레이터가 사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기는 했지만, 사실 사진은 탄생 이래로 줄곧 ‘가짜’를 생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잖아요. 사진 분야에서 이미 시도되지 않은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Valerie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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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rie Green, ‘Irregular Shapes’ from <Reprograph>, 2021. Valerie Green, ‘The NeverEnding Story’ from <Grey Area>, 2018. Valerie Green, ‘IMG6411’ from <Left To My Own Devices - ‘Screen Cleaners’>, 2015.
“우리는 이미지나 화면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의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제 작업은 사람의 시선에 대한 것이고, 카메라의 시선에 대한 것이며, 그 둘의 관계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1981년생인 발레리 그린은 스스로를 ‘제니얼(Xennial) 세대’라고 소개한다. X세대와 밀레니얼 사이 끼인 세대. 이 부분이 어째서 ‘사진가’ 발레리 그린에게 중요한가 하면, 아날로그적 경험으로 구성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디지털적 경험으로 구성된 청소년기를 보낸 독특한 세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적 취향은 대부분 성장기에 형성되기 때문에, 저는 저절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회색지대에 익숙해졌죠. 한 세대가 가질 수 있는 정말 특별한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작업은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둘을 중첩시켜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근작인 ‘Reprographs’를 예로 들자면, 그녀가 한 일은 컴퓨터 화면의 빛 위에 온갖 도형, 선, 색상 조각을 얹어놓고 촬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레트라셋(드라이 트랜스퍼 레터링 방식으로 아트워크 시트를 제조하는 회사) 제품을 비롯해 한때 혁신적이었던 아날로그 디자인 툴들의 다양한 속성을 활용해서. 거리감과 질감, 속성이 모호하게 표현되는 물건들을 오려서 늘어놓고 특정한 각도에서 촬영하면 위 이미지에서 보듯 아날로그와 디지털, 2차원과 3차원, 사진과 그래픽이 혼재되는 이미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제 이미지들은 첫눈에 사진처럼 보이지 않는 측면이 있죠. 이런 시각적 혼란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나마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의문을 품기를 바라는 거예요.” 물론 그녀의 작업물은 모두 사진이다. 엄밀히 말해, 그녀는 이 기사에서 소개하는 작가들 중 가장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제가 사진에 끌리는 건, 제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 스튜디오에서 직관적인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하죠. 그 과정 안에서 형식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정제된 무언가가 나올 때까지 카메라로 놀고 실험하는 거예요.”
 

Credit

  • EDITOR 오성윤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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