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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 그랑 퀴베 171 에디션을 맛보다

샴페인 애호가들이 편애하는 크루그. 크루그 그랑 퀴베 171 에디션과 로제 27 에디션을 세상 그 누구보다 먼저 테이스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프랑스 샹파뉴에서.

프로필 by ESQUIRE 2023.10.24
 
크루그 그랑 퀴베 171 에디션.

크루그 그랑 퀴베 171 에디션.

프랑스 랭스에 위치한 크루그 패밀리 하우스.

프랑스 랭스에 위치한 크루그 패밀리 하우스.

완연한 봄이건만 싸늘한 바람이 조금 남아 있던 지난 5월 9일 파리.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 지역의 중심 도시 랭스(Reims)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샹파뉴, Champagne, 샴페인. 열렬한 샴페인 애호가를 자처하는 1인으로서 샹파뉴로 향하는 그 순간이 무척이나 설렜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스팔트는 봄비에 촉촉히 젖어 더욱 까매 보였고 도로를 따라 한참 뻗어 있던 드넓은 유채꽃밭의 노란색은 훨씬 선명해 보였다. 차창에 매달렸다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하는 빗방울은 마치 샴페인의 버블 같았고,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안 가득 짜릿한 거품과 샴페인의 풍미가 느껴지는 듯했다.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크루그 패밀리 하우스. 전 세계 샴페인 애호가들이 편애하는 크루그, 그중에서도 유별난 사랑을 독차지하는 크루그 그랑 퀴베와 로제의 새로운 에디션을 소개하는 이벤트인 ‘크루그 비하인드 더 신 2023(Krug Behind the Scenes 2023)’이 시작되었다. 별도의 행사장이 아닌 저택의 거실과 응접실 곳곳에서 시작된 첫날 프로그램은 1843년 시작된 크루그의 브랜드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물론 다양한 에디션의 그랑 퀴베와 로제를 음미하면서.
다음 날은 크루그 샴페인 한 병이 완성되는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 시작은 샹파뉴의 포도밭이었다. 크루그는 와인 생산 농가와 긴밀하게 협업해 각 빈야드의 차별성을 강화하고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하는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크루그를 완성하는 기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2022년 수확분으로 생산한 베이스 와인과 리저브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크루그 테이스팅 커미티가 그랑 퀴베 178 에디션과 로제 34 에디션을 위해 진행한 작업을 간단하게나마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테이스팅 후에는 크루그 하우스의 셀러를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테이스팅 커미티의 심혈을 기울인 선별로 조합된 와인이 최종 결과물인 샴페인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7년여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다. 서늘한 지하 셀러의 조금은 엄숙한 분위기와 어마어마한 규모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셀러에서 체감한 감동을 안고 드디어 2023년 세상에 나오는 크루그 그랑 퀴베 171 에디션과 로제 27 에디션을 테이스팅했다. 그랑 퀴베 171 에디션의 중심 와인은 2015년 수확분으로 만들어졌다. 2015년의 상퍄뉴 지방은 전례 없이 폭염과 가뭄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포도의 생장이 늦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8월 중순에 단비가 내리고 일조량이 풍부해져 포도 열매가 충분히 성장할 수 있었다고. 이렇게 만들어진 2015년 수확분 와인을 베이스로 한 그랑 퀴베 171 에디션은 200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완성된 총 131종의 와인을 블렌딩해 완성했다. 로제 27 에디션은 2005년부터 2015년 사이에 생산된 38종의 와인을 조합했다.
“창립자 조셉 크루그에게 우리는 샴페인 생산에 대한 고유한 접근법을 물려받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세대 전 그는 기후변화에 관계없이 해마다 최고 품질의 샴페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전통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을 탄생시켰습니다. 그의 비전에 따라 오늘날 우리는 모든 빈야드의 와인 하나하나를 독립된 요소로 평가함으로써 와인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크루그의 원동력이 됩니다.” 셀러 마스터 줄리 카빌의 자부심 넘치는 설명을 들은 후에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38종의 와인 조합도 어려운 일인 텐데 131종의 와인 조합이라니? 하물며 그 와인의 단순 조합이 아닌 7년의 숙성 과정을 통해 재탄생하는 샴페인의 풍미를 예측해 선택해야 하는 일이 가능한가’라는 의구심과 호기심이 일었다. 셀러 마스터 줄리 카빌에게 직접 물어봤다.
 
크루그 셀러 마스터 줄리 카빌.

크루그 셀러 마스터 줄리 카빌.

이번 비하인드 신 행사를 통해 크루그 테이스팅 커미티가 작업하는 방식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어 굉장히 좋았다. 놀라운 점은 매년 400여 종의 베이스 와인 중에서 최적의 와인을 선별해 그 조합을 탄생시킨다는 것, 게다가 7년 후 샴페인으로 재탄생한 상태를 예상하고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매번 완성된 그랑 퀴베를 확인할 때 그 예상이 적중하고 결과에 만족하는가?
크루그 그랑 퀴베의 생산을 위해 우리는 400여 종의 와인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해 4000개에 달하는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한다. 각각의 와인은 싱글 빈야드의 정수를 포착해낸 귀한 것들이다. 배합이 진행될 시점이 되면, 우리는 각각의 와인이 지닌 면모에 대한 세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합 방법을 신중하게 고민한다. 이를 통해 크루그 그랑 퀴베의 새로운 에디션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우연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 꼼꼼한 접근법으로 의사결정을 진행한다. 모든 에디션은 저마다의 개성이 넘치는 배합으로, 늘 그렇듯 7년간의 셀러 숙성을 거치며 경이로운 발견을 선사한다.
지금까지의 작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디션은 어떤 것인가? 그랑 퀴베와 로제에서 각각 꼽는다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샹파뉴 지방의 작황이 좋지 않은 연도의 생산분으로 그랑 퀴베와 로제를 만드는 데는 특별한 기술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최적의 풍미와 아로마의 스펙트럼을 완성하려면 리저브 와인 라이브러리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2006년 수확분을 중심으로 만든 크루그 그랑 퀴베 152 에디션을 꼽는다. 내가 크루그 하우스에 입사한 연도가 바로 2006년이기 때문이다.
테이스팅 커미티에서의 의사결정 방식이 궁금하다. 커미티의 구성원들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도 궁금하다.
우리는 6인으로 구성된 팀으로, 고른 성비와 다양한 연령대가 특징이다.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발언권을 갖는다.
400여 개의 와인에서 최종 베이스 와인을 고를 때 미각과 후각 그리고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이나 생각이 개입되기도 하는가? 예를 들어 앞으로의 미식 문화의 변화라든가 기후변화 또는 문화 전반적인 트렌드처럼 말이다.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기준이 아닌 이성적이고 수치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테이스팅을 할 때는 우리의 관찰 결과가 중심이 되지만, 이와 더불어 ‘육감’에 가까운 일종의 직관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
최근 15년 중 작황이 가장 좋았던 2022년. 수확이 풍성했던 만큼 고민도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크루그 그랑 퀴베 178 에디션과 로제 34 에디션을 위한 모든 결정을 내린 지금의 소감은 어떤가?
풍성한 수확으로 다양한 와인을 확보한 덕분에, 2022년 수확분을 중심으로 한 샴페인을 만들 때 선택지가 넓었다. 또한 이렇게 풍성하게 확보된 2022년 수확분 와인은 크루그의 방대한 리저브 와인 라이브러리를 보충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향후 크루그 그랑 퀴베와 로제의 새로운 에디션 생산에 그만큼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크루그의 셀러.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크루그의 셀러.

크루그 가문 6대손이자 현재 크루그 디렉터인 올리비에 크루그.

크루그 가문 6대손이자 현재 크루그 디렉터인 올리비에 크루그.

 
크루그 가문 6대손이기도 한 크루그 디렉터 올리비에 크루그에게도 궁금한 것을 물었다.
 
크루그의 디렉터로서 테이스팅 커미티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가? 셀러 마스터 줄리 카빌과의 협업 또는 최종 의사결정 방식도 궁금하다. 베이스 와인 선별 시 각자의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합의점을 찾는지도.
모든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공동 작업 과정이다. 모두의 목표가 동일하기에, 의견 일치 여부는 핵심이 아니다. 크루그 그랑 퀴베의 새로운 에디션으로 창립자 조셉 크루그의 꿈을 재창조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목표다.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모두가 직감으로 알게 된다.
크루그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individuality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와인 생산 농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2022년에는 각 빈야드의 차별성을 강화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러한 진전을 이루어낸 구체적인 방법과 사례가 있는가?
실제로 우리는 파트너 농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파트너 농가를 방문해 영농 기법, 수확 시기 등 다양한 내용을 논의한다. 크루그만의 특별한 점은 저마다의 구획이 각각 단일 와인으로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파트너 농가를 초청해 본인이 만든 와인을 마셔보게 하고, 한 해 동안 각자 내린 의사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비하인드 신 프로그램을 통해 크루그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었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다양한 에디션을 테이스팅해 보면서 역시 샴페인의 진정한 본질은 즐거움이라는 조셉 크루그의 생각에 다시 한번 동감했다. 그 누구보다 모든 에디션에 대한 이해가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그랑 퀴베 171 에디션과 로제 27 에디션만이 가진, 다른 에디션에선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즐거움은 오롯이 개인적인 경험이다. 크루그 샴페인이 경이로운 점은, 방대하고 풍성한 풍미와 아로마 구성 덕분에 누구나 저마다의 감성을 건드리는 요소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시는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샴페인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긴 하지만 새로운 에디션이 셀러에서 세상으로 나오고 또 그 자리에 7년을 기다리기 위해 새로운 에디션을 채우는 일. 이번 비하인드 신을 통해 굉장히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랑 퀴베 171 에디션과 로제 27 에디션을 맞이했고, 그랑 퀴베 178 에디션과 로제 34 에디션을 7년의 기다림으로 보낸 현재의 심정은 어떤가?
크루그는 창립자 조셉 크루그의 꿈을 올해도 꾸준히 지켜내고 있다. 새로운 에디션을 발표하는 순간은 언제나 자랑스럽지만, 무엇보다도 세계 전역의 크루그 애호가들과 이 샴페인을 하루빨리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크루그 로제 27 에디션.

크루그 로제 27 에디션.

Credit

  • EDITOR 민병준
  • PHOTO 크루그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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