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어떻게 다시 부흥을 맞이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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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한 데다가 열심히 살기까지 하는 대학생들의 일상은 나도 궁금했다. 그들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 나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았는데, 우선 스토리를 엄청 많이 올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패스. 다음으로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프로필 사진 아래 하나의 링크를 걸어두고 있었다. blog.naver.com/으로 시작하는, 네이버 블로그 URL이었다.
블로그는 2000년대의 유물이었다. 지금은 인플루언서가 있지만 그때는 파워블로거가 있었다. 파워블로거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공짜 음식이나 물건을 요구하는 이들을 저격한 ‘파워블로거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모두 2010년 이전의 일이다. 2010년대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싸이월드가 망했고 페이스북이 등극했으며 곧 인스타그램이 모든 SNS를 집어삼켰다. 블로그는 무례한 파워블로거들과 실질적인 정보 하나 없이 ‘킹받는’ 이모티콘만으로 점철됐다는 오명을 남긴 채 존재감을 잃어갔다. 2020년대 들어서는 요즘 대학생들은 모든 검색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하며, 포털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세대를 가르는 표식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도시괴담처럼 떠돌았다. 언론들은 글보다 영상이 익숙한 세대가 등장했다고 대서특필했고, 앞으로는 긴 글 대신 숏폼만 살아남는 등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그런데 블로그라니? 브이로그(V-log)가 훨씬 친숙할 것 같은 20대들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맞팔까지 한 끝에 이번 달부터 우리 피처팀의 새로운 어시스턴트가 된 신동주 씨 역시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블로그 URL을 달고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가 처음 탄생한 시기와 출생 연도가 비슷할 21세기의 사람이 왜 블로그를 하고 있단 말인가? “인스타그램은 사진 위주에 글은 짧게 써야 하는데, 블로그에는 긴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의외였다. 긴 글을 읽기도 쓰기도 싫어하는 세대가 아니었던가. 블로그를 선호하는 건 그 세대가 아니라, 동주 씨처럼 에디터 직무에 관심이 있는 일부의 특징은 아닐까? “그렇지 않아요. 딱히 커리어 개발을 위해 블로그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정말 내밀한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봐요.” 동주 씨는 여자인 친구들이 더 많이, 더 열심히 블로그에 글을 쓰긴 하지만 남자인 친구들도 제법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관심 직무나 성별과는 큰 상관 없이 블로그의 인기는 계속되는 중이다. 2023년 20주년을 맞이한 네이버 블로그가 공개한 ‘2023 마이 블로그 리포트’에 따르면, 2023년에만 126만 개의 블로그가 새로 생겼다. 포스트는 약 2억4000개가 발행됐다. 이용자들의 연령대도 어려졌다. 2023년, 방문한 장소를 블로그에 기록하는 ‘체크인 챌린지’에 참여한 이들의 80%는 이른바 ‘MZ세대’였다. 한준 네이버 아폴로 CIC 책임 리더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서비스가 오래되면 이용자층도 함께 늙어가기 마련인데,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클럽하우스’나 ‘반디’ 등 수많은 SNS가 삼일천하도 누려보지 못하고 사라진 것과 대조되는 롱런이다. 이유가 뭘까?
“실제로 블로그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는데, 대부분 일상 기록에 대한 갈증이 있었거든요. 근데 다이어리는 손으로 직접 써야 하니 귀찮잖아요. 휴대폰으로 쉽게 쓸 수 있는 일기장으로 블로그를 택한 거죠.” 지난 2년간 <에스콰이어> 피처팀 어시스턴트로 일하다 회사를 떠나기 전 드디어 인스타그램 맞팔을 허락해준 송채연 씨의 말이다. 누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 하루를 기록하고 싶어 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 몇 장으로 남길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좀 더 세밀하게 글로 감정까지 남기기에 가장 좋은 포맷으로 그들은 블로그를 선택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20대 직장인 노정환 씨 역시 취업을 준비하던 2년 전부터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직접 일기를 써볼까 싶기도 했는데, 일기장은 물리적으로 자리를 차지하잖아요. 다시 돌아보기도 어렵고, 언젠가 짐이 될 거란 말이죠. 블로그는 보관도 어렵지 않고, 검색만 하면 제가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 돌아보기도 쉬우니까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동주 씨는 ‘내밀한 마음속 이야기’를 쓴다고 했고, 채연 씨와 정환 씨는 ‘일기장’을 언급했다. 블로그는 누구나 검색해서 볼 수 있는데,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적 웹에 전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오히려 인스타그램보다 폐쇄적일걸요?” 채연 씨에 따르면 방문자 수가 아주 많지 않은 이상, ‘이웃’이 아닌 사람이 블로그를 찾아 들어오기는 어렵다고 했다. 블로그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환 씨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다들 행복한 순간의 사진만 게시하잖아요. 그런데 블로그에서는 실패한 경험도 진솔하게 쓸 수 있어요. 그걸 다 읽는 이웃은 뭔가 더 친밀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렇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어 하면서도 또 숨겨둔 마음이 누군가에게 공감받기를 원한다.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라도 누군가 공감해주면 우리는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인스타그램이 아닌 블로그에 굳이 ‘진심’을 전하는 이유다. 동주 씨는 사진 정렬 방식도 블로그를 쓰게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면 일단 피드에 ‘박제’되잖아요. 굳이 제 프로필을 클릭하지 않아도, 피드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으니 괜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블로그는 직접 접속해서 보지 않는 이상, 이웃이라고 해도 모든 사진이 피드에 뜨는 게 아니니 부담이 덜해요.”
인스타그램에선 매일매일이 프롬 데이고 모두가 셀레나 고메즈다. 누가 좋은 와인을 마셨는지, 누가 더 비싼 레스토랑에 갔는지, 누가 럭셔리 브랜드의 신제품을 걸쳤는지가 중요하고 그런 게시물에 ‘좋아요’가 찍힌다. 인스타그램의 단순하고 피상적인 ‘좋아요’가 싫은 건 아니다. 그러나 프롬 데이를 살지 않는 일상의 ‘우리들’ 역시 공감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 모두가 셀레나 고메즈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이 블로그를 찾는다. 프롬 데이는 1년에 한 번이고, 셀레나 고메즈는 수억 명 중 한 명이다. 대다수의 나머지를 위한 블로그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블로그의 부흥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사실 나는 블로그가 쇠퇴해가던 지난 2010년대 내내 혼자 일기장 삼아 블로그를 열심히 써왔다. 오랜만에 다시 접속해보니 며칠 전 누군가가 10년 전 내 글에 공감의 하트를 눌렀다. 20대 초반에 자기 연민과 자기 우월감이 버무려진 끔찍한 혼종 자아 상태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 글이었다. 내 블로그엔 그런 글들이 가득했다. 싸이월드가 폐쇄되었다고 우리의 흑역사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블로그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블로그를 폐쇄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도 내 마음이 어째서 이렇게 움직이는지 모르겠다만, 그래서 블로그는 영원할 것 같다.
김현유는 <에스콰이어 코리아> 피처 에디터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현유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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