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로고가 등장했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패션 브랜드들이 큼지막하게 로고를 내세우는 이유에 관하여. | 패션,브랜드,로고

옷의 로고는 사용자의 취향을 나타낸다. 또 로고라는 단서로 그 사람의 지갑 사정을 가늠할 수 있고, 패션에 대한 입장과 시각을 짐작할 수 있다. 로고를 통해 심리적 소통과 공감대가 생겨나고 때로는 배타적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하지만 로고를 대담하게 드러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도 고급 콘텐츠는 아니었다. 로고를 감추고 은유적으로 브랜드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하이패션이 지향하는 가치였으니까. 최근까지도 로고를 유난스럽게 드러내는 건 천박하고 속물적인 것이었다.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스포츠웨어, 스트리트 패션, 하위문화의 영향으로 직설적이고 때론 과시적인 로고 패션이 젊은 층을 잠식했고, 미니멀리스트들의 시대였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로고는 다시 사라졌다.스트리트 패션 신의 일부로 잠잠히 존재하던 로고는 스트리트 패션이 패션의 메인 스트림으로 거세게 유입되던 5~6년 전 전면적으로 재등장했다. 하지만 2017년 로고를 쓰는 방식과 태도는 5~6년 전과는 다르다. 로고를 희화화하고 패러디하는 로고 플레이 수준에서 벗어나 하이패션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식적 요소로 등극했다. 베트멍은 챔피언과 쥬시 꾸뛰르, 칼하트의 로고를 가장 동시대적이면서 예술적으로 활용한 옷을 소개했다. 또 다양하게 변모한 베트멍의 자체 로고도 장식으로 훌륭하게 기능하며 베트멍 신드롬의 중추가 되었다.구찌는 고리타분한 GG 로고와 웹 디테일을 맹렬하게 활용하며 최고 유행 콘텐츠로 바꿔놓았다. 발렌시아가의 로고를 수놓은 단순한 캡은 지금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고샤 루브친스키는 필라, 카파, 세르지오 타키니의 로고를 크게 넣은 복고적인 트랙 슈트와 스웨트셔츠등 갖가지 옷을 선보였다.“제 예전 기억과 감정을 불러왔죠. 하지만 이 옷들로 1990년대로 되돌아가려는 건 아니에요. 복고적인 형식에 가장 동시대적인 가치를 집어 넣었어요.” 고샤의 한 인터뷰를 통해 로고는 단지 재료일 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읽어내야 할 서브텍스트는 현상의 질량을 훌쩍 뛰어넘는다. 먼저 경제적 논리에 대입하자면 계속되는 불황 속에서 로고라든지 브랜드의 상징을 가열하게 적용한 옷이 가성비의 잣대에서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게다가 인스타그램에 구찌 로고가 박힌 47만원짜리 빈티지 티셔츠 사진 한 장 찍어 올리는 건 구구절절함 없이 간편하게 당신을 쇼잉(showing)해줄 수도 있다.1990년대 복고풍의 유행?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게으른 답변이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추하다고 생각됐던 것들을 역설적으로 장식화하는 디자이너들의 동시대적 성향이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는 것처럼 패션을 향유하는 젊은 세대의 문화에 순식간에 스며들면서 로고를 대하는 태도가 기존의 관념이나 맥락과는 달라지게 된 것.로고 패션의 속물적이고 천박한 속성마저도 솔직하고 패셔너블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는 패션의 전통적 기준을 거부하는 안티 패션의 광풍과도 맞물린다. 자극적이고 즉흥적이면서 통념에서 비켜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즐기는 태도, 그리고 거기서 얻게 되는 일탈적 쾌감.로고 트렌드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며 하이패션의 중심에까지 침투하게 된 건 이 같은 요즘 정서가 반영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