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의 시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SNS 시대가 촉발한 자기애 사회를 음악이 받아들이는 방식. | 음악,플레이리스트,스포티파이

매거진이 얼마 전 리스트를 발표했다. 제목은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노래 100곡’. 리스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들은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21세기에는 대단한 음악이 수없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변화 덕분에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자유롭고 원 없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유의 리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순위다. 4위는 아웃캐스트의 ‘HeyYa!’다. 3위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SevenNationArmy’이고 2위는 M.I.A.의 ‘PaperPlanes’이다. “그때 저는 제이지와 막 데이트를 시작했어요. 앨범을 내기 직전 급하게 제이지에게 랩을 부탁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참여를 신께 감사해요. 이 노래는 아무리 많이 불러도 질리지 않아요.” 1위는 비욘세의 ‘CrazyinLove’다.자, 권위와 전통의 음악 매체 에서 또 하나의 리스트를 막 발표했습니다. 경배합시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리스트를 천천히 훑어보며 나는 내가 예전과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이런 유의 리스트는 언제나 흥미롭다. 하지만 그 정도가 예전만 못했다. 확실히 그랬다. 극단적으로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 시대에 이 리스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아니, 지금 내가 에 불경을 저지르고 있단 말인가. 왜 이런 괘씸한 생각이 드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생각이 드는 것 자체는 본능이지만 언제나 그 뒤에는 근거와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리스트라는 형식 그 자체였다.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접했던 수많은 음악 리스트가 의 리스트를 별것 아닌 양 보이게 했다. 너한테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너만 잘난 것이 아니라고, 지금 클릭 몇 번만 해도 너처럼 그럴듯한 음악 리스트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물론 이 글에서 의 리스트는 ‘맥거핀’에 가깝다. 그러나 의 리스트가 나를 음악과 리스트에 관한 다양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한 번 더 극단적으로 말해보자. 지금의 대중에게 의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노래 100곡’ 리스트가 더 중요할까, 아니면 스포티파이(Spotify)의 ‘당신의 인생을 바꿀 노래 20곡’이나 ‘여름 해변에서 듣기 좋은 노래 15곡’ 리스트가 더 중요할까. 스포티파이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으로 논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 가져올 맥락은 그들의 플레이리스트 시스템이다.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는 음악 산업을 뒤흔들어놨다. 이제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를 가리켜 하나의 문화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음악 산업의 새로운 법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음악을 이용한다. 이럴 때 음악은 목적보다는 도구에 가깝다. 지금 우리는 “좋은 음악을 모아놔야겠어!”가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알려줘야겠어!”를 지나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야겠어!”가 된 시대에 와 있다.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는 ‘Leanbacklistening’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번역하면 ‘편하게 기대어 듣기’ 정도가 될까. 하지만 편하게 기대는 건 몸뿐이 아니다. 사람들은 정신도 기댄 채 음악을 듣는다. ‘한 뮤지션의 앨범 수록곡 10곡을 연이어 듣는 행위’와 ‘다양한 뮤지션의 노래가 일정한 공통분모로 이어져 있는 플레이리스트 10곡을 연이어 듣는 행위’에는 보기보다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뮤지션에 대해 알아야 하고 앨범 콘셉트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 또 각 노래의 의도와 메시지가 무엇인지,각 노래가 앨범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이런 정신노동에 노출돼 있다.그러나 후자는 이런 스트레스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때 특정한 뮤지션에 대해 생각하거나 앨범 콘셉트에 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주도권도 듣는 이가 쥐고 있다. 뮤지션이 의도하고 설정한 것을 알아내야 하는 대신 나의 감정, 기분, 필요에 맞춰진 노래들을 내 본위로 즐기기만 하면 된다. 에런 길브리스는 라는 매체에 기고한 글 ‘DestroyingMusic,OnePlaylistataTime’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전학적으로 설계된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는 주의가 산만하거나 과로에 지쳐 있거나 스트레스로 가득 찬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의 리스트와 스포티파이의 리스트는 같은 리스트지만 이렇게나 다르다.드레이크는 이런 흐름을 재빠르게 자신의 창작물에 반영한 뮤지션이다. 그는 2017년에 발표한 (무려 22곡이 수록된) 에 앨범이 아니라 ‘플레이리스트’라고 이름 붙였다. 다음은 그의 인터뷰 일부다. “이 작품은 정규 앨범과 정규 앨범 사이를 메우는 노래 모음집이에요. 당신의 삶에 사운드트랙으로 작용할 플레이리스트죠.” 또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 디저(Deezer)의 에디터 도미닉 월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앨범 포맷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플레이리스트가 대체할 것 같느냐고요? 네, 아마 그렇게 될 거예요.” 앨범의 시대를 지나, 싱글의 시대를 지나,이제 플레이리스트의 시대가 도래하는 셈인가.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는 스포티파이가 제공하기도 하지만 사용자가 직접 만들기도 한다. 스포티파이는 플레이리스트의 공유를 구조적으로 장려하고, 사용자들은 열광적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생산하거나 공유한다(스포티파이에 대표성을 부여했을 뿐 대부분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리스트는 예전부터 있었는데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전 카세트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만 골라 담았는데요?”물론 맞는 말이다.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때의 리스트와 지금의 리스트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공테이프에 녹음을 하거나 시디를 굽던 시절, 우리는 자신을 위해 좋은 음악을 모았다. 나의 편의를 위해 하는 행동이었다. 설령 누군가에게 그것을 선물할 때도 좋은 음악, 혹은 좋아하는 음악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SNS 시대의 플레이리스트는 다르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음악을 이용한다. 이럴 때 음악은 목적보다는 도구에 가깝다. 지금 우리는 “좋은 음악을 모아놔야겠어!”가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알려줘야겠어!”를 지나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야겠어!”가 된 시대에 와 있다.노파심에 말하지만 이것이 비극이라거나 씁쓸하다는 말은 아니다. 언제나 모든 동시대는 과거의 성취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다만 SNS 시대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로 인해 우리가 더 훌륭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다른 사람의 리스트로 인해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되고 그 음악 덕분에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개인이 주체인 리스트 형식의 음악 콘텐츠가 공유될수록 훌륭함에 대한 논의는 차단된다. 사람들은 감상이나 설명 대신 온라인에서 목록을 내밀고, 이것은 내 취향이니 공감하거나 그렇지 않을 거면 그냥 지나가라고 말한다. 어쩌면 플레이리스트의 범람은 SNS 시대가 촉발한 자기애 사회를 음악이 받아들인 방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