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사실을 말해줘' 호텔 VS. 모텔

호텔 갈래요, 모텔 갈래요?

BYESQUIRE2019.08.07
 
“내 기준에 호텔과 모텔의 차이는 1층에 화장실이 있냐 없냐뿐인데 말이야.” 권헌준 씨의 섹스관을 듣다 보면 입을 닫을 틈이 없다. “같은 값이면 모텔이 더 넓고. 어메니티도 더 많고. 모텔이 가성비가 좋잖아.”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가성비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는 권헌준 씨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권헌준 씨가 모텔을 더 좋아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숙박비는 다 내가 내는데.” 가성비는 돈 내는 사람에게 더 절실한 개념이다.  
 
우리는 호텔과 모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때처럼 잡담을 하다가 ‘호텔이 숙박계의 iOS이고 모텔이 안드로이드 아닐까’ 싶어졌다. 호텔은 조금 더 깔끔하고 비싼 대신 제약이 더 많다. 앱스토어 정책처럼. 안드로이드는 조금 더 다양성이 보장되고 저렴하지만 뭔가 조금 덜 세련되고 불안한 느낌이다. 해킹의 위협처럼. 100% 들어맞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제게 호텔과 모텔의 차이는 창문이 있냐 없냐의 차이예요. 모텔은 창문이 없어서 답답해요.” 제약 회사 회계팀에서 일하는 28세 김현지 씨가 말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모텔은 창문 앞에 덧창을 하나 더 두어서 100% 빛을 차단한다. 빛이 전혀 없기 때문에 사우나 수면실이 수면실 느낌이 나듯 모텔 역시 빛이 없어서 섹스실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섹스실 같은 느낌이 더 섹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현지 씨의 의견이 다수일 것 같다.
 
“창문이 있고 자연광이 들어서 호텔이 좋아요”라는 김현지 씨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모텔은 창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열린다 해도 옆 모텔의 창문에 손이 닿을 정도로 건물이 가깝게 붙은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호텔의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생각만 해도 상쾌하다. 권헌준 씨라면 어차피 하러 가는 건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다. 티파니만 해도 쇼핑백이나 박스를 열 때의 기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모텔도 좋다니까?” 여자들 중에서도 호텔 선호와 모텔 선호의 의견이 갈렸다. 36세 신미영 씨는 호텔과 모텔을 두루 가보고 요즘은 오히려 모텔을 찾는다고 했다. “훨씬 편하잖아. 배달 음식도 시키면 바로 문 앞까지 오고, 요즘은 넷플릭스도 다 나오잖아. 세상에 이런 호텔이 어디 있어?” 신미영 씨 말 역시 사실이었다. 모텔처럼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가 있다면 무조건 전 세계 서비스 1위를 할 것이다. 일 때문에 다른 나라의 호텔을 가봐도 이용 편리성 면에서 한국의 모텔 같은 데는 없다. 나는 신미영 씨의 의견에 더해 모텔의 올인원 리모컨이야말로 한국이 두루 자랑할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만다린 오리엔탈이라 해도 덥거나 추우면 내가 공조기 앞까지 가서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신미영 씨는 오래된 연인과 종종 모텔에 간다고 했다.  
 
다만 이 상황에서는 신미영 씨가 연애를 오래 했다는 점이 변수다. 연애를 오래 했으니 모텔에 가도 오해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똑같은 걸 하러 간다 해도 호텔에 가면 사랑을 하러 가는 것 같고 모텔에 가면 불륜을 하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하는 임수린 씨의 말이 좋은 예다. “호텔은 로비도 밝고 다 열려 있잖아요. 모텔은 골목 안쪽에 있고 들어갈 때도 뭔가 가려진 걸 열고 들어가야 하고요. 저는 그 느낌이 싫어요.”  
 
물론 임수린 씨의 말은 틀렸다. 호텔에서도 불륜을 하고 모텔에서도 사랑을 한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김지웅 씨가 명확하게 정리해주었다. “제게 호텔과 모텔은 침구와 가운, 어메니티의 차이가 더 큰 것 같아요. TV는 모텔이 케이블TV까지 다 나오지만 역으로 품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고요. 호텔과 모텔을 비교하는 건 인종 비교와 비슷해요. 원래 인종 사이에는 급이 없지만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급을 나누기도 하잖아요. 호텔과 모텔 역시 실제로 기능은 같지만 묘하게 급이 나뉘어 있는 거죠.” 그러고 보니 ‘호캉스’는 있어도 ‘모캉스’는 없기도 하고.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모텔을 가자는 남자는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가본 적도 거의 없고요. 혼자 사는 집이 있거나 호텔에 갈 수 있는 남자를 만났어요.” 임수린 씨의 말을 듣다가 좋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둘 다 고를 수 있다면 아무래도 호텔 편이 더 쾌적하니까. 임수린 씨의 다음 말이 그래서 흥미로웠다. “그렇지도 않아요. 호텔이 iOS이고 모텔이 안드로이드라고 했죠? 아이폰 쓰는 남자가 좋은 남자이고 갤럭시 쓰는 남자가 나쁜 남자인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거랑 내 행복은 별 상관이 없어요.” 이 말이야말로 정답이었다. 역시 섹스 칼럼은 교훈적으로 끝나야 하나. 교훈적 이야기는 교훈적이라 맥 빠지는 구석이 있다.
 
이야기를 하던 임수린 씨 옆에 아이폰이 놓여 있었다. 백숙을 다 먹고 일어나기 전 혹시 안드로이드 폰을 쓸 거냐고 물었다. “아니죠. 절대 아니에요. 저는 아이폰을 포기할 수 없어요. 안드로이드 폰을 쓰자마자 느껴지는 그 촌스러움. 그건 어떻게 하지도 못해요.” 이쯤 되면 안드로이드와 모텔의 다음 목표는 성능 향상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향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성능은 모두 증명했으니까.
 
“아, 하나 더 있다. 호텔과 모텔의 차이.” 며칠 후 권헌준 씨가 전화로 말해주었다. “나에게 호텔과 모텔의 차이는 콘돔이 있냐 없냐야. 호텔 가면 콘돔이 없어서 따로 사야 하잖아. 늘 차에 콘돔을 두지만 거기에 있는 걸 까먹고 올라갈 때도 많거든.” 그러게. 세상엔 모텔 콘돔이라는 게 있었지. 말 그림 같은 게 인쇄된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기본형 콘돔. 그 콘돔과 항상 함께 있는 종마 크림도 챙겼는지 궁금했지만 그것까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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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 김은희
  • WRITER | 박찬용(매거진 에디터)
  • ILLUSTRAROT | 최성민
  • WEB DESIGNER |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