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부터 두 아이의 아빠가 되기까지 흘러온 닌텐도 '동물의 숲'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너굴 빚은 다 갚았어요?



너굴 빚은 다 갚았어요?


© nint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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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시 25살이었던 나는 매달 월세 명목으로 돈을 약간 내면서 두 후배가 함께 사는 전셋집에 얹혀살고 있었는데 연말이 되자 전세 임대 기간이 끝났고, 두 후배는 서로를 견딜 수 없었는지 각자 따로 집을 얻기로 했다. 나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돈 한 푼 없이 빈손으로 상경해 3년째 게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는 변변한 집을 구하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 결국 내 예산에 맞는 집을 찾았는데, 다세대 빌라의 주차장 한편에 있는 창고 같은 곳을 적당히 개보수해서 세를 놓은 곳이다 보니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다. 원룸에 전기 열선을 깔아서 난방을 했는데 아무리 난방을 켜두어도 추웠고 전기세가 얼마나 나올지 몰라 오래 켜지도 못했다. 샤워기가 딸린 화장실이 붙어 있었는데 보일러가 없어 온수가 나오지 않아 아침마다 물을 끓여서 세수를 했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주차장에 주차하는 차들의 엔진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이 잠을 방해했다. 셋이서 매일 밤 술판을 벌이며 웃고 떠들고 지내다가 갑자기 혼자 살려니 회사를 가지 않는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곤 했다.
그해 겨울에 나는 그 추운 방에서 처음으로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했다. 한국에는 정식 발매되지 않은 게임이어서 영어판을 어렵게 구했는데, 사전에 알아보기로는 닌텐도에서 만든 이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은 주인공이 동물들이 사는 마을로 이사 가서 함께 살아가는 게임이며, 보통의 다른 게임처럼 누구와 싸우거나 죽이거나 이기거나 하는 것 없이 낚시나 하면서 사사로운 일상을 즐기는 게임이라고 했다. 항상 같은 대사만 반복해서 읊어대는 다른 게임의 NPC와 달리 주민들과 정말로 대화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친해질 수 있고, 주민들에게 편지를 보내면 놀랍게도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동물의 숲’에서의 시간은 현실 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간다. 현실에서 아침이면 게임 속에서도 아침이고 현실에서 가을이면 게임에서도 가을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야근 후 집에 와서 게임을 켜면 게임 속 세상은 항상 추운 겨울밤이었다. 게임 속 세상도 춥고,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내 방 안도 추우니 몰입감이 뛰어난 것은 장점이랄까? 게임 속 동물의 마을에서도 내 집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았다. 너굴 사장님에게 돈을 빌려 집을 얻었고, 물고기를 낚거나 곤충을 채집하거나 나무에서 과일을 따다 팔아 돈을 벌어 너굴 사장님에게 돈을 갚아야 했다. 게다가 영어판으로 게임을 하다 보니 교과서 위주의 영어 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 구어체로 던지는 동물 주민들의 농담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편지를 써볼까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다들 동물인 이 세계에서 사람인 나만 이방인이었고, 말없이 계속 돈 벌고 대출을 갚았다.
그렇게 한 달쯤 살던 중 아침에 일어나보니 변기 물이 얼어서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이게 돈 받고 임대해도 되는 집이냐고 집주인에게 항의해서 한 달 만에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와서 학교 선배들이 사는 집에 사정을 말해 한동안 얹혀살았다. ‘동물의 숲’도 그때쯤 그만두었다.
10년이 지나 2013년에 나는 두 번째로 ‘동물의 숲’을 플레이했다. 이번에는 정식으로 한국어 버전이 발매되어 이제 더 이상 말 안 통하는 외노자가 아니었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운이 좋아 돈도 좀 모으고 결혼도 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첫째 아이는 아직 한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 동물의 숲속 마을에서 이런저런 것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했고, 나는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는 생각으로 상어나 참치 등 대형 어종이 잘 잡히는 새벽 시간에 게임 속에서 낚시를 해 수족관에 전시물을 채워나갔다. 계절마다 잡히는 물고기가 다르기 때문에 나의 새벽 낚시는 봄,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계속되었다. 겨울이 되면 물고기 도감을 100% 완성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는데, 이쯤 되자 아이를 기쁘게 해준다는 것은 단지 핑계일 뿐 내 욕심으로 계속 낚시를 했던 것 같다. 그걸 아이가 알았는지 어쨌는지 어느 날 보니 게임 데이터가 모두 날아가버려 초기화되어 있었다. 아이가 한글을 모르니 대충 아무거나 눌렀나 본데 어떻게 초기화 메뉴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지…. 두 번째 ‘동물의 숲’은 그렇게 그만두었다.
2020년이 되어 두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이 되었다. 아니, 될 예정이었다.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가야 하는데 방학이 끝나지 않는다. 초등학생에게 끝나지 않는 방학처럼 좋은 게 또 있을까.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었다. 1월 초에 시작한 겨울방학이 3월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언제 방학이 끝나는지는 부모도 선생님도 모른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방학이라고 어디 놀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종일 집에만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 집의 두 초등학생은 그저 방학이 늘어난 것이 신날 뿐이다. 집 안에도 휴대폰, 태블릿, 게임기 등 재미있는 것이 넘쳐나는데 밖에 좀 못 나간다고 대수인가? 학교를 안 가도 된다는데! 그러던 와중에 3월 중순에 닌텐도 스위치로 새로운 ‘동물의 숲(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출시되었다. 나는 밖에 나가지 못하고 계속 체중이 불어나는 아이에게 줄넘기 200번 하면 ‘동물의 숲’ 30분 플레이, 300번 더 하면 추가 30분 플레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이에겐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동물의 숲’이 하고 싶어 매일 줄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웃기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다.
이번 ‘동물의 숲’은 이전 시리즈와 달리 여러 명이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게임 속에서 가족들에게 코로나 조심하라는 편지와 함께 마스크 아이템을 보내주었다. 낚시로 잡은 물고기와 화석들로 게임 속 박물관을 채우고,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랑어도 참치고 청새치도 참치인지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면서 나중에 바이러스가 없어지면 진짜 수족관에 가자고 약속한다. 줄넘기 500번으로 얻어낸 한 시간의 게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리곤 하지만 가끔은 엄마가 선심 쓰듯 보너스 타임을 주기도 한다. 방학도 끝나지 않는데 게임 시간이 너무 빡빡할 게 뭐 있을까?

Who’s the writer?
최문영은 2000년에 넥슨에 입사해 ‘마비노기’, ‘허스키 익스프레스’, ‘런웨이스토리’ 등의 게임을 개발했다.
너굴 빚은 다 갚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