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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사치재가 된 '홈메이드 김치'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1kg의 포기김치는 식료품점에서 한화 약 1만6500원에 팔렸다.

BYESQUIRE2020.05.27
 

홈메이드 김치의 가격

 
뉴욕에 자택 대기 명령이 내려진 뒤로 점점 물건 구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5월 현재 뉴욕에서 문을 열 수 있는 상점은 필수 사업 분야로 제한되어 있다. 식료품점은 필수 사업 분야에 해당되어 문을 열 수는 있지만 물건이 없다. 화장실 휴지에서 시작된 사재기가 금세 식료품 코너로 번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집에서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이 동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소고기와 닭고기가 매대에서 사라졌다. 급기야 밀가루와 이스트도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뉴욕 사람들이 집에서 빵을 굽고 있다니, 대체 나는 어떤 평행 우주로 넘어온 걸까. 한국 식재료를 파는 곳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공급과잉의 시대에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원하는 물건이 있는데 그것을 살 수 없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헛된 희망을 품고 3월달부터 매주 온라인 스토어에서 쌀을 주문했지만 한 번도 배달되지 않았다. 결국 직접 매장에 가서 한참 줄을 서서 들어간 뒤에 쌀 한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올 수 있었다.
끝까지 구하지 못한 것은 김치였다. 김치는 이제 홀푸즈(Wholefoods) 같은 대형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뉴욕 사람들에게 익숙한 음식이다. 브루클린 힙스터들이 ‘장모님 김치(Mother-in-law Kimchi)’를 장바구니에 넣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뉴욕에서는 매우 흔한 풍경이다. 그럼 김치 공장도 이제 필수 사업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집에서 한식을 해 먹어야 하는 한국 사람의 밥상에서 김치는 실제로 필수재이다.
‘고향의 맛’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저장 음식이 있지만 김치만큼 확장성이 큰 음식은 흔치 않다. 일단 김치가 없으면 만들 수 있는 반찬의 가짓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김치의 존재는 한식에서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유독 신맛을 내는 음식이 적은 한식 밥상에서 잘 익은 신 김치는 굉장히 소중한 존재이다. 이 산미 때문인지 뉴욕의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김치를 찾으려면 피클 코너에 가야 한다. 부당한 대우다. 김치는 찜으로 먹기도 하고 조려 먹기도 하고 볶아 먹거나 부쳐 먹기도 한다. 심지어 수프, 곧 찌개로 끓여 먹을 수도 있다. 피클 찌개라니 생각하기도 싫다(하지만 피클 수프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집에서 김치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팬데믹 이전에도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가 떨어지면 집에서 조금씩 담가 먹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유가 달랐다. 그때는 사 먹는 김치가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지 지금처럼 김치를 구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김치가 이렇게 희소한 식재료가 되었다면 내가 만들어서 팔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홈메이드 김치 가격은 얼마여야 할까? 일반적으로 훌륭한 가격 전략은 경쟁품 대비 소비자가 느끼는 ‘상대적 가치’를 정확하게 찾는 데에서 시작한다. 팬데믹 이전의 세계에서 1kg의 포기김치는 식료품점에서 13.49달러(약 1만6500원)에 팔렸다. 우리가 만든 김치가 엄청나게 맛있다면 사람들은 이 가격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프리미엄을 지불할지도 모른다.
우선 원가를 계산해보기로 했다. 김치를 만들 때 들어가는 주재료의 가격은 배추가 kg당 3.99달러, 무가 개당 2.49달러, 파가 묶음당 2.49달러, 고춧가루가 kg당 38.99달러다. 여기에 생강, 마늘, 양파, 배, 새우젓, 액젓 같은 양념 재료, 그리고 찹쌀풀을 쑤기 위한 찹쌀가루, 다시마와 황태, 버섯 등등이 들어간다. 재료비를 계산해보니 5kg의 김치를 담글 때 대략 80달러 정도가 든다. 김치에 생굴 좀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굴 1개에 2달러(1봉지가 아니라 1알이다)나 하는 뉴욕에서는 아무래도 무리다.
2명 기준으로 전날 배추를 절이고(1시간), 당일 무를 채 썰고, 재료를 손질해 양념을 만들고(1시간 30분), 배추에 속을 넣고(1시간), 설거지하고 치우는 데(1시간) 적어도 5시간이 걸린다. 뉴욕 최저 시급 기준(시간당 11.80달러) 2명의 인건비로만 118달러가 필요하다. 대략 계산해봐도 재료비와 인건비에 200달러가 들어간다. 결국 이 김치의 원가는 1kg에 40달러인 것이다. 유통 비용은 아직 계산하지도 않았다. 다년간 김치를 만들어온 숙련공들(=아내와 나)에게 최저 시급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재료비와 최저 인건비만으로도 이미 기존에 팔리던 김치보다 3배 더 비싸다. 이 상황에서 마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자본주의 대량생산의 위대함에 잠시 패배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만든 김치 1kg에 200달러짜리 상상의 가격표를 붙였다. 지금 우리는 1kg에 13.49달러짜리 종가집 포기김치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장인의 수작업으로 한땀 한땀 만든 5kg 한정판 배추김치의 가격은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이건 바가지도, 배짱 장사도 아니다. 가격 전략 분야에서 다년간 종사한 전문가적 관점이다. 물론 이 김치를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내와 내가 먹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 가격의 당위성이 나온다. 이 김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다. 생산자가 아주 비싸게 만들어 소비자가 아주 비싸게 사는 특이한 상품인 셈이다. 사실 집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이 다 비슷하다. 그래서 집에서 만드는 음식의 가치를 낮게 책정하는 사람은 절대 생산자가 될 수 없다. 밖에서 사 먹는 경쟁품이 대부분 더 싸기 때문이다.
가격은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가격표에 적힌 숫자 뒤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종종 냉면이나 커피의 원가를 따지며 가격에서 옳고 그름을 찾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당위론적 접근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사실 별로 없다. 가격은 어떤 현상을 보여주는 징후이거나 현상의 원인을 지목하는 신호에 더 가깝다. 1kg에 200달러라는 이 홈메이드 김치 가격은 우리 부부가 뉴욕에서 먹는 한식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우리가 가사 노동을 얼마나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반영한 가치이다. 이 가격표를 다는 순간, 이 김치는 이 팬데믹 시기를 다채롭게 만들어준 호화로운 사치재가 되었다.
 
Who’s the writer?
신현호는 뉴욕의 다국적 기업 본사 전략 부문에서 가격과 가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