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팬데믹으로 인해 좋아하는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다면

레스토랑들이 보내온 부고.

BYESQUIRE2020.07.11
 
 

레스토랑들이 보내온 부고 

 
© GOTHAM BAR & GRILL

© GOTHAM BAR & GRILL

팬데믹 기간 동안 자가 격리 기간을 오래 겪은 사람들은 평소와 다른 생생한 꿈을 꾼다고 한다. 얼마 전 나는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주말에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이고 멀리서 자동차 클랙션 소리가 들리는 거리 한편에 놓인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는 꿈을 꾸었다. 한낮의 햇빛은 따갑기보다는 따뜻했고 땀방울이 맺히기도 전에 이내 선선한 바람이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아이스 버킷에서 꺼낸 와인병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감각과, 햇빛이 초록색 와인병을 투과하며 테이블 위에 흩뿌려놓은 빛의 패턴이 너무나 생생해서 잠에서 깨어 눈을 떴는데도 손을 뻗으면 바로 옆 와인 잔에 손이 닿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깨어나고 보니 창밖으로 초여름의 햇살 대신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올해 봄은 내내 집에만 있기도 했지만 유난히 추워서 계절 감각이 더 마비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지가 벌써 2개월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레스토랑이 모두 문을 걸어 잠근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뉴욕에서는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레스토랑이 비필수 업종으로 분류되어 3월 16일부터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었다. 문을 열지 못하는 식당들은 테이크 아웃과 배달 메뉴를 준비했다. 뉴욕 팜 투 테이블(farm-to-table)의 상징적인 레스토랑 블루힐(Blue Hill)은 인근 농장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박스에 담아 판매하고 있고, 100년이 넘은 스테이크하우스 벤자민(Benjamin)과 피터 루거(Peter Luger)도 집에서 구워 먹을 수 있게 드라이 에이징한 고기를 배달해준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력이 없는 작은 레스토랑은 대부분 임시 휴업을 선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뉴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매일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조용한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대신 언젠가 문을 열었을 때 쓸 수 있는 선불 카드를 팔기도 하고 레스토랑들이 연합해 일자리를 잃은 스태프를 위한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모두가 돈의 농도가 희박해져가는 격리 사회의 공기 속에서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전쟁통에 서로 생사를 묻듯이 수시로 좋아하는 레스토랑들의 SNS 계정을 들여다보고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했다. 예전이라면 제목만 보고 휴지통으로 직행했을 레스토랑의 뉴스레터도 한자 한자 꼼꼼하게 읽어보게 되었다. 가끔 장을 보러 나가면 일부러 조금 우회해 문 닫힌 식당 앞을 지나가며 안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기로 한 레스토랑들의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모든 부고는 갑작스럽다. 뉴욕에서 한국의 대창구이가 그리울 때마다 찾았던 웨스트빌리지의 타카시(Takashi)가 문을 닫았다. 된장이나 간장 같은 소스를 과감하게 사용해 새로운 스타일의 파스타를 보여줬던 첼시의 레스토랑 모모후쿠 니시(Momofuku Nishi)도 영업 종료를 알려왔다. 뉴욕의 상징적인 레스토랑 중 하나인 고담 바&그릴(Gotham Bar& Grill)마저 36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날생선을 낯설어했던 1980년대 뉴요커들에게 처음으로 참치 다다키를 소개한 곳이다. 날로 먹을 수 있는 생선 자체가 드물었던 그 시절, 횟감 참치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담 바 & 그릴은 그때 처음 참치를 거래했던 도매상과 줄곧 거래했다고 한다. 지금 뉴욕 거리 곳곳에 자리한 스시집들은 이 레스토랑에 조금씩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안타까운 것은 뉴욕의 많은 레스토랑이 여전히 이런 생사의 기로에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팬데믹이 진정되고 나면 레스토랑 문을 열고 다시 손님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모든 레스토랑이 다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에서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으면 왠지 큰돈을 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칼날 같은 마진으로 아슬아슬하게 식당을 운영한다. 이스트빌리지 프룬(Prune)의 셰프 가브리엘 해밀턴은 레스토랑 사업에서 너무 이익이 나지 않아 ‘비영리’ 섹터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화려한 문신을 한 힙스터 서버가 서빙을 하는 캐주얼한 레스토랑이건 핏 좋은 이탈리아제 슈트를 입은 직원이 세련된 말투로 오늘의 메뉴를 설명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건 사정은 비슷하다.
재고를 쌓아둘 수 없고 대면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업의 특성상 인건비와 임대료 비중이 높다. 손님을 맞으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 공간을 운용할 사람이 필요하다. 공간 규모에 맞춰 테이블 수가 정해지면 매일 제공할 수 있는 총 식사의 수도 정해진다. 이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려면 배달을 하거나 분점을 내는 수밖에 없다. 음식값을 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임대료는 한계가 없다는 듯 매년 오른다. 그래서 팬데믹 이전에도 식당은 수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식당 운영을 어렵게 만드는 그저 또 하나의 새로운 요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을 두렵게 만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못하는 상황은 레스토랑 사업의 근간을 위협한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레스토랑에 가면 테이블이 나기를 기다리며 바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옆 사람과 어깨를 살짝 부딪힐 정도의 간격도 개의치 않았다. 자리가 나면 안내하는 직원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사람들로 가득 찬 다이닝 룸을 가로질러 준비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메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음식을 주문하며 어떤 와인을 마실지 서버와 함께 고민했다.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동행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술에 조금 취하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저녁 9시의 레스토랑은 그렇게 상기된 사람들의 대화 소리로 북적였다. 어느덧 디저트에 마지막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감사를 표하고 적당한 팁을 남기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모든 식사가 언제나 이렇게 물 흐르듯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백반집이든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든 좋은 식사 경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의와 환대로 채워져 있다. 기실 레스토랑은 환대를 전달하는 공간이고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이 쌓이는 장소이다. 레스토랑이 단순히 조리된 음식을 먹고 나오는 곳이었다면 우리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바퀴 달린 인공지능 로봇의 서빙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함께 있을 수 없다면 레스토랑에 차라리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레스토랑의 존재 이유이다.
좋아하는 레스토랑들을 떠나보내는 기분은 부고를 듣고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죽음에는 작별을 위한 적절한 의식이 필요하다. 미리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방문해서 그 레스토랑의 음식과 그곳에 남겨진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올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너무나 진부한 클리셰지만 레스토랑에서 도착한 부고를 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식당이라는 공간을 좋아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부고들은 지금 남아 있는 식당들을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WHO’S THE WRITER?
신현호는 뉴욕의 다국적 기업 본사에서 전략 부문 업무를 한다. 스스로 “주 40시간은 회사에서 가격과 가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 주 80시간은 레스토랑을 다니고 요리를 한다”라고 말할 만큼 미식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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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은희
  • WRITER 신현호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