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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 손열음과 함께 한 하루 Part.1

뜨거운 날이 시작되면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감독으로 변신한다.

BYESQUIRE2020.08.21
 

손 감독의 여름 

 
 
 
2018년의 이곳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심장이 벅차오르는 나는 영락없는 강원도 사람이다. 열 살 때 처음으로 구경 가본 미국 보스턴의 탱글우드 음악제.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저런 곳이 생길까 시무룩해하던 게 어제 같은데, 이곳에서 열리는 대관령 음악제도 어언 열 살이 넘었다.”
- 손열음의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중
 
손열음은 원주에서 자랐고 강릉에는 그의 외삼촌이 살았다. 두 도시 사이에 지금은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고속도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예전엔 ‘몸이 기울어질 정도로 굽은 고갯길’뿐이었다. 어린 손열음은 원주에서 일 년에 두 번 외삼촌을 만나기 위해 아빠 차에 몸을 싣고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이나 원주 사람을 만나면 하는 말이 있다. 강원도의 ‘강’은 강릉, ‘원’은 원주라고. 그 ‘강’과 ‘원’ 사이에 평창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원주에서 평창을 지나 대관령을 넘나들던 강원의 천재 손열음이 2018년부터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긴 장마가 시작되던 날 손열음을 만나러 평창으로 향했다. 축제의 시작과 끝에 두 번 대화를 나눴다.
 
백 커팅 드레스, 골드 이어링 모두 지방시.

백 커팅 드레스, 골드 이어링 모두 지방시.

 
피아니스트로는 무대에 세 번 서죠?
네. 7월 26일, 31일, 8월 8일에.
저 31일 공연 예매했어요.
진짜요? 감사해요.(웃음)
‘광클’해서 겨우 건졌죠.(웃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를 보니 평창대관령음악제를 맡기 전부터 어마어마한 애정을 갖고 계셨더라고요.
그게 〈중앙선데이〉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거잖아요. 아마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기 직전 해에 축제를 앞두고 쓴 글일 거예요. 원래 강원도에 이 정도 수준의 음악 축제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니 감개무량해서 쓴 글일 거예요.
이번 축제의 표제인 ‘그래야만 한다’에 대해 설명 좀 해주세요.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인 현악 4중주 제16번 op.135의 4악장 악보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해요. “그래야만 하는가?(Muss es Sein?)”라는 질문과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는 답변. 악장의 제목 밑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직접 써뒀고요. 저는 그게 베토벤이 살면서 제일 많이 생각한 프레이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남들한테 물어보고, 신한테도 물어보고 그랬을 것 같아요. 2018년에 처음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일을 시작할 때부터 2020년에는 ‘그래야만 한다’를 주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8년, 2019년도 축제 프로그램에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제목의 공연을 포함시킨 이유이기도 해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올해의 주제가 그 두 공연이 던지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도록요.
베토벤이 작곡한 9개의 교향곡 전곡을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하는 게 이번 축제의 콘셉트 중 하나죠. 이건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싶은 연주자 조합이 있었나요?
개인적으로는 교향곡 1번 전곡을 박종해 피아니스트가 독주로 연주한 걸 꼽고 싶어요. 프란츠 리스트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했는데, 이 넘버는 국내에서는 아마도 초연일 것 같고, 세계에서도 어디서 누가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매우 흥미로웠죠. 이지혜(바이올린), 김두민(첼로), 이진상(피아노) 트리오가 연주한 교향곡 2번도 정말 최고였어요.
저도 그 공연 봤는데 정말 숨이 멎을 뻔했잖아요.
이 트리오 넘버는 베토벤이 직접 편곡한 거라는 점에서 더 그랬어요. 베토벤이 편곡한 만큼 그가 자신의 교향곡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봤는지가 드러났죠. 조성현(플루트), 플로린 일리에스쿠(바이올린), 배지혜(첼로), 손정범(피아노)이 함께한 교향곡 4번은 훔멜의 편곡이었는데 엄청 흥미로웠어요. 8번 교향곡의 경우 오케스트라의 사이즈를 줄여서 연주했는데 역시나 좋았죠.
그냥 다 좋았다는 거네요.
(웃음) 사실 정말 다 좋았어요. 다른 풀 사이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프로그램도 다 좋았어요.
가장 인상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제가 원래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은 7번이거든요. 7번은 8월 7일 뮤직텐트 연주였는데, 그날 일기예보를 보니 비 올 확률이 100%였어요. 와보신 분은 알겠지만, 뮤직텐트는 콘서트홀처럼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공간이 아니에요. 교향곡 7번은 빗소리와 함께 감상하기 적당한 음악이 아니고요. 걱정이 많았는데, 마법처럼 연주 시작 전에 날이 개더니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공연도 공연이지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명물은 프로그램 북인 것 같아요. 무척 알차요.
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프로그램 북이에요. 음악제가 여름과 겨울에 있으니 2018년부터 한 해에 두 개씩 벌써 다섯 번째 책이죠. 제가 오기 전에는 사실 일반적인 음악제와 비슷하게 평면적인 곡 소개 정도가 실리는 형태였어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 고민을 좀 했죠. 클래식 음악은 추상적인데, 글이라도 그 추상성을 보완할 수 있게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아무리 그래도 메인 공연에서 연주하는 31곡의 소개 글을 전체를 총괄하는 예술감독이 직접 쓰는 건 좀 너무 힘들었을 것….
사실 이번에는 프로그램 북을 예전처럼 만들지는 못하겠구나 걱정했는데, 결국 나왔어요. 대부분 아이디어는 제가 냈고, 저희 디자이너와 브랜딩 매니저와 셋이 기획부터 마감까지 다 하다시피 했어요. 프로그램 노트는 혼자 이틀 만에 썼어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5~6시까지요.
 
 
스웨이드 트렌치코트 알렉산더 맥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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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링 포인트 재킷 니나리치 by hanstyle.com. 데님 팬츠 리던 by hanstyle.com. 스퀘어 토 펌프스 지미추. 진주 장식 반지 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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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에 얽힌 그런 뒷얘기까지 어떻게 다 아세요? 찾아서 쓴다 해도 뭘 알아야 찾을 텐데 말이죠.
저도 다 외우고 있는 건 아니고, 한 번씩 더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쓰는 거죠. 아예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음악 학자가 쓴 글을 존중하고 존경하지만 제가 읽기도 어려워요. 처음 기획 때부터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거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써야 할지를 생각하자는 마음이었죠. 내가 쓰는 노트를 읽고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를, 좀 더 쉽게 음악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런 내용으로 써요.
제가 소속사에 섭외 전화를 했을 때가 생각나요. “손 감독이 이번 축제를 위해 플랜 A부터 F까지 철저하게 세워두었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했더니 매니저분께서 약간 울먹이며 “저희 지금 플랜 G예요”라고 답했죠.
(웃음) 맞아요. F까지 갔다가 그다음에 또 생겼어요.
플랜을 바꾸는 게 힘들진 않았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전 엄살 떠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번에는 정말…. 사실 축제를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잖아요.
축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충격받은 순간은 언제였나요?
마지막에 플랜이 F에서 G로 바뀔 때요. 그 전까지 변경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정말…. 예년에는 2주를 쭉 연달아 했어요. 일부 아티스트를 비롯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숙식도 해결하는 방안으로 예년과 비슷하게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죠. 2주였던 전체 공연 일정을 3주까지 늘리고 새로운 포맷을 다시 정했어요. 그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뮤직텐트 셋업도 서라운드 형태로 바꿨다고 들었어요.
보통 오케스트라는 악기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있잖아요. 이번에 뮤직텐트는 악기를 객석 한가운데에 내리고 무대 위에도 객석을 설치했어요. 원래 저의 야심 찬 계획은 관객을 가운데 두고 오케스트라가 그 주위를 감싸 두르는 형태였어요. 그런 걸 꿈꿨는데, 언택트라야 하니까 아쉬운 대로 이렇게라도 해보는 거죠.
공연을 보러 가면 일반적인 콘서트홀에서 어느 자리를 가장 좋아해요?
전 맨 뒤요. 오페라는 표정도 보고 싶고 그러니까 좀 다르겠지만요. 근데 지금 처음 생각해봤어요. 이런 질문받은 게 처음이라. 굳이 다른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아요. 맨 뒤인 이유는… 그냥 더 자유로우니까? 뒤에 있는 사람한테 방해를 안 하게 되니까요.(웃음)
음악제뿐 아니라 원주와 강원도에 대한 애정도 정말 어마어마하죠.
그냥 뭐, 제가 여기서 나왔으니까요. 그 책에 강원도 얘기가 되게 많이 나오죠.(웃음) 생각해보니 되게 많이 썼던 것 같아요.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울컥하더라고요.
어머, 고맙습니다.
평창도 고향인 원주만큼 가까운 고장이죠.
책에도 썼지만, 강릉에 삼촌네가 살아서 어렸을 때 평창을 자주 넘어다녔어요. 그땐 이 (새로 뚫은) 길이 아니었지만요. 평창이 대관령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니까요. 저는 강원도에 대해서 애착이라기보단 고마운 마음이 커요. 제가 만약 서울 도심에서 자라고 그랬으면 음악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저 같은 성격이면 서울의 경쟁적인 분위기에선 음악을 안 했을 것 같아요. 근데 여기서 그냥 자유롭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주변에 막 같이 경쟁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강원도가 제겐 선물이었다고 생각해요.
서울의 예중, 예고를 나왔다면 지금처럼 자유로운 피아니스트가 되진 못했을 거라는 얘긴가요?
네, 못 됐을 거 같아요.
유튜브 채널 ‘카이클래식’에서 〈중앙일보〉 김호정 기자랑 대화하는 걸 봤어요. 농담으로 ‘문체부 장관감’이라는 식의 얘기를 하더라고요.
(웃음) 진짜 농담이더라도 그런 건 내보내지 말아달라 그래야겠어요. 전 (정책 수행자가 되는 건) 정말 너무 싫어요.
너무 싫어요? 근데 전 진짜 가능성 있다고 봐요.
교육이나 문화 정책에 다들 관심이 굉장히 많으세요.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명암이 갈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솔직히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 손열음과 함께 한 하루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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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CONTRIBUTING EDITOR 이경은
  • PHOTOGRAPHER 김보성
  • HAIR 김귀애
  • MAKEUP 이숙경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