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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 손열음과 함께 한 하루 Part.2

뜨거운 날이 시작되면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감독으로 변신한다.

BYESQUIRE2020.08.21
 
 

손 감독의 여름

 
 
손열음은 약 5년간 〈중앙선데이〉에 연재한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라는 꼭지의 칼럼 글을 모아 동명의 단행본을 낸 바 있다. 그는 특수 교육기관이자 모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국제 콩쿠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데 주목하며 ‘예비 학교와 영재를 위한 특수 과정 그리고 차별화된 입학시험’을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넌지시 주장했다.
손열음의 주장이라 무게가 실린다. 그가 ‘연초에 입시곡으로 나온 네댓 곡은, 그것도 앞부분 몇 페이지까지만 연주하면 되기 때문에 그다음엔 음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전혀 모른 채 일 년 내내 주야장천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 현실’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매가 분리되는 독특한 디자인의 톱 코스. 와이드 팬츠 디올. 앵클부츠 지미추. 실버 링, 뱅글 모두 모니카비나더.

소매가 분리되는 독특한 디자인의 톱 코스. 와이드 팬츠 디올. 앵클부츠 지미추. 실버 링, 뱅글 모두 모니카비나더.

 
이번에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주변에서 말릴 정도였다고 들었어요.
(웃음) 아녜요. 오히려 이번에는 모든 분들이 저랑 똑같이 일을 많이 하셨어요. 2018년에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막 스케치부터 시작했어요. 열심히 더 많은 걸 준비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그 (코로나 19의) 환경에 던져지는 바람에… (웃음) 그렇습니다.
클래식 팬들이 평창에서 뭘 얻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심에 있는 콘서트홀도 너무 좋은 곳이 많지만, 저는 그런 공간은 우리 삶과 분리된 가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콘서트홀이라는 공간이요. 여기도 물론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자연이라는 건 인간이 만든 게 아니니까요. 음악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물론 작곡가를 거쳐서 전달되지만, 음악이라는 매체 또는 객체는 신이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도 그렇고요. 여기 와서 자연 속에서 음악을 느끼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어머니께서 2015년에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받으셨죠?
그렇게 오래됐나요?
제 세대에선 어쩔 수 없이 정 트리오의 이원숙 여사를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근데 좀 다른 게 있었어요. 어머니께선 “나는 희생한 거 없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거짓말이죠.(웃음) 왜냐하면 일도 하면서 저도 키워줬으니까요.
그러니까요.
엄마가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엄마가 국어 선생님이세요. 하루에 5개 수업을 쫙 몰아서 하고 저를 데리고 서울까지 왕복 운전을 했어요. 게다가 한참 엄마가 학생주임을 했어요. 교문 지도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꽤 오래, 3~4년은 했어요. 그때가 한창 레슨을 많이 다닐 때였거든요. 엄마는 그러고도 아침 7시 전까지 학교에 가서 교문 지도를 했어요.
고생은 하셨는데, 그걸 희생이라고는 생각 안 하셨나 봐요.
제가 엄마한테 교사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은 있어요. 저는 그냥 각자의 인생이… 엄마가 제 엄마로 사는 게 전 싫었거든요. 그래서 각자의 인생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엄마가 고생을 더 하게 됐죠.(웃음)
2위로 입상한 차이콥스키 청소년 콩쿠르에 초등학교 5학년 때 혼자 갔잖아요. 이후 엄마가 러시아로 찾아와 사흘간 함께 지냈고요. 그때를 술회하며 쓴 글 중에 “엄마의 품보다 강렬한 건 세상에 없었다”라는 대목에 감명받았어요.
맞아요. 감회에 젖게 되네요. 엄마는 사실 제가 어렸을 때도 방학을 일주일 이상 가져본 적이 없어요. 일주일 정도 방학하고, 다시 보충수업하러 가고 그랬어요. 우리 엄마 되게 훌륭하신 분이에요.
음악은 유전이라는데, 혹시 형제들은 어때요?
둘 다 음악성은 있고, 제 남동생은 취미로 작곡도 해요. CCM 작곡도 하고, 기타도 잘 쳐요. 근데 다들 프로를 할 생각은 없고… 다행이죠.(웃음)
 
열음이를 위해 제가 중간에 학교를 그만뒀다면 제가 희생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는 했어도 저는 저대로 제 일을 했으니 희생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 손열음의 어머니 최현숙의 말, 〈모노그래프〉 손열음 편 중
 
 
프린지 장식 재킷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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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드레스 지방시. 골드 장식 포인트 앵클부츠 알렉산더 맥퀸.

비대칭 드레스 지방시. 골드 장식 포인트 앵클부츠 알렉산더 맥퀸.

 
손 감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인터뷰와 글을 읽었는데, 아버님 얘기는 에세이에 딱 한 번 나와요. 강원도 삼촌네 갈 때 운전하는 모습으로요.
네, 맞아요.(웃음) 저희 아빠 되게 재밌는 스타일이에요. 엄마한테는 객관적인 시각을 많이 배웠거든요. 그런 거에 비하면 아빠는 ‘하, 저렇게 주관적인 시각도 있구나’라는 걸 배웠어요. 너무 자유로운 스타일의 사람이에요. 근데 전 엄마, 아빠를 딱 반반 닮고 배워서 이 직업을 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손 감독의 현재 음악 스승인 아리에 바르디 선생도 그러셨다면서요. 넌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이라고. 그게 엄마, 아빠를 닮은 건가요?
사실 태어날 때는 아빠를 훨씬 많이 닮았대요. 객관적 시각과 이성적 사고는 엄마한테 배운 거죠. 근본은 아빠를 더 닮은 거 같아요.
아빠는 네이처고, 엄마는 너처인 거군요.
예, 맞아요. 어떻게 그런… 제가 앞으로 그 표현 써도 되나요? 너무 잘 표현해줘서.(웃음)  
그나저나 지난 독주회 공연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오열했다는 리뷰를 봤어요.
23일에는 앙코르 소개할 때 약간 울컥했고요, 진짜 오열했던 건 5월 30일에 김해에서 했던 공연이에요. 진짜 마지막엔 거의 울면서 쳤어요. 무대에 오랜만에 서서 그런것이기도 하고, 또 마지막 곡의 테마와도  관련이 있어요. 슈만이 판타지 마지막 3악장이 끝날 때쯤에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라는 가곡의 멜로디 선율을 넣어뒀어요. 그 테마를 치는데 뭔가 향수에 젖게 되더라고요.
이번 슈만 앨범 속지에 있는 소개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나요. 앨범 속지도 직접 썼죠?
네, 그렇습니다.
이번 음악제의 주제인 베토벤과 앨범에서 표현한 슈만에 대한 애정의 차이를 설명한다면요?
올해가 모차르트나 슈만을 기념하는 해였으면 전 이 음악제 못 해냈을 것 같아요. 베토벤이 가진 ‘극복의 정신’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다른 작곡가들을 좋아하는 감정이 개인적인 애정이라면 베토벤에게는 경외심과 존경심이 있어요. 그러나 그 경외심도 너무 멀리 있는 누군가를 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고마움의 감정이에요. 이런 힘든 삶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이런 음악을 전해줘서 고맙다. 베토벤에겐 고맙다는 감정이 맞아요.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음악가는 많지 않아요. 제가 슈만도 좋아하지만, 슈만에 대한 감정은 슈만과 제가 단둘이 얘기하는 느낌에 더 가깝죠. 베토벤은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음악가였어요.
이번 앨범은 자비로 녹음했다고 들었어요.
네, 이번엔 그랬어요.
예전에는 레이블에서 아티스트를 발굴해서 프로듀서도 붙여주고 녹음비도 다 투자하고 그랬잖아요. 이젠 그런 시스템이 아니군요?
꽤 많이 아니게 됐어요. 사실 클래식 음악은, 공간이 되게 까다롭거든요. 어쿠스틱이 중요해서 그 공간에 따라 소리가 너무 크게 달라져요.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도 더 적고. 전문가 그룹도. 그래서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고 알고 있어요, 가요보다. 그런데 당연히 수익은?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니까. 클래식 쪽은 음반사에서 먼저 투자해서 녹음하는 경우가 이젠 거의 없죠.
보통 클래식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부잣집 출신이라는 선입견이 약간 있죠. 제가 알기론 소울메이트인 강주미 씨도 그렇고 손열음 씨도 그렇고, 그런 편견을 완전히 깨부순 케이스로 알고 있어요.
저희 둘뿐만이 아니고 제 주변만 봐도 그런 (부유한 집안 출신의)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시작할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남는 사람은 오히려 저희 같은 사람이 훨씬 많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끼친 영향도 좀 있지요?
큰 것 같아요. 제가 다닌 학교에는 그런, 속칭 금수저는 거의 없었어요.(웃음)
강주미 씨와 같이 연주할 때의 느낌을 설명해준다면요?
결국 무대에 올라가는 게 일이고, 일에는 피로감이 있잖아요. 근데 주미랑은 그게 없어요.
이제 곧 있을 두 사람 연주회의 관람 포인트를 하나 짚어준다면?
9월에 주미랑 하는 콘서트 말씀하시는 거죠? 모리스 라벨, 스트라빈스키 디베르티멘토,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 어떻게 하다 보니까 레퍼토리가 다 20세기 초반 작품들로 나왔어요. 제가 그 테마를 워낙 좋아해서 〈모던 타임즈〉란 앨범도 냈거든요. 근데 그 4곡이 다 다른 스타일이어서 재밌게 들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중에서 ‘물리적으로 볼 때 피아노 연주자는 오직 현을 때리는 해머의 속력만 조절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머의 속력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기계가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일 수 있는가?’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낸 글이 있죠. 혹시 그 뒤로 피아노 연주자의 의미에 대한 더 자세한 답을 찾았나요?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보면 신기루와 싸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음과 음을 이을 수 없다는 점, 그게 피아니스트의 숙명이죠. 음악에서 음을 잇는다는 건 매우 중요한데 음을 잇지 못하니 피아노는 가장 음악적이지 못한 악기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 또 피아노는 가장 종합적이라 오케스트라의 집합체라고도 하거든요. 결국 피아니스트는 (어떤 면에서) 가장 음악적이지 못한 악기로 가장 음악적인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어요. 연주자에게 모든 걸 아우르는 사고방식을 갖게 하는 악기이기도 해서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피아노 연주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죠.(웃음)
마에스트로 중에 피아니스트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겠어요.
그렇죠. 지휘자 중에 피아노 연주자가 많아요.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오래 머물게 되었어요. 혹시 이 시기가 더 길어지면 서울에 거처를 마련할 생각은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전 원주에서 지내는 것도 괜찮거든요. 사실 전 도시가 싫어요. 하노버도 딱 제 (일상의) 리듬이랑 맞아서 사는 거거든요. 사람들은 다 왜 베를린으로 안 가느냐고 하는데, 저는 그런 데 싫어요.
음악제 끝나고, 주미 씨와의 콘서트도 마치고 나면 다시 떠나나요?
네. 원래는 그 바로 다음 주에 핀란드로 가는 거였는데, 그건 다음으로 미뤄졌어요. 그다음 주에 스위스로 갈 계획이에요.
다 일정이 있군요. 생각만 해도 너무 아쉽습니다. 한국에서 투어를 몇 번 안 했어요.
못 했어요. 다 없어졌어요. 생기다 없어지고, 생기면 또 없어지고.
혹시 내년의 표제를 위한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나요?
아직은 사실 머리가 돌아가질 않아요.(웃음)
그동안 평창대관령음악제 제목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그 전에 정경화, 정명화 선생이 하실 때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묶어서 ‘BBB자로…’라는 기획도 있었죠. 참 어려워요.
진짜 테마 정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그냥 일반 공연과는 달리 전체를 아우르는 걸 정해야 하니까요.
올해가 완전 딱이었군요.
그렇죠. 옛날부터 준비했던 거니까요.
250년 전부터 준비돼 있던 거기도 하고요.
네, 맞아요.(웃음) 운명.
 
손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그가 스태프들과 약속한 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날의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인 듯했다. 비가 많이 왔고, 하필 그날은 콘서트홀이 아닌 뮤직텐트에서 공연이 있었다.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준비하고 실행하며 그는 몇 번의 회의를 했을까? 내 손에는 A4 용지 5장 분량의 질문지가 있었지만, 질문지를 그대로 접었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 손열음과 함께 한 하루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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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CONTRIBUTING EDITOR 이경은
  • PHOTOGRAPHER 김보성
  • HAIR 김귀애
  • MAKEUP 이숙경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