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왜 드라마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을까?

마스크도 갤럭시도 문제가 아니야.

BYESQUIRE2020.12.01
 

마스크도 갤럭시도 문제가 아니야 

 
“드라마야, 왜 마스크를 안 쓰니?” 모 일간지의 주말판 기사 제목이다. 그러게 왜 드라마의 등장 인물들은 마스크를 안 쓸까? 〈에스콰이어〉 편집팀의 한 에디터 역시 기획안을 통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갤럭시와 아이폰의 최신 기종이 드라마에 등장해 시대를 특정할 수밖에 없는 현대물에서, 막상 등장인물들이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건 좀 이상하다”라며 “언제까지 평행 우주인 것처럼 눙치고 지나갈 텐가”라는 게 의문의 요지였다. 지상파 방송의 PD와 외주 제작사의 관계자를 꽤나 성실하게 취재한 해당 일간지의 기사는 업계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마스크 쓰고 코로나와 싸우는 등장인물은 결국 훗날 ‘응답하라 2020’ 같은 드라마가 나와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사를 굳이 다 읽지 않아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를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사전 제작인 경우가 많고, 앞으로 상당 기간 제작될 드라마의 대본 역시 코로나 사태 이전에 완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마스크는 등장할 수 없다. 이제부터 쓰일 대본에서 현실을 반영한다고 해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섣불리 등장시키기는 힘들고, 어렵게 캐스팅한 배우의 표정을 반이나 가린 채로 극을 끌고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게다가 드라마에서 환상을 보고 싶어 하는 대중에게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보여줘서는 실익이 적다. 그런데 정말 현실적인 이유뿐일까?
 
운 좋게 대화가 술술 통하는 상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12월호에 ‘서울 시티 하이커’로 서울의 하이킹 코스를 추천한 정영수 작가와 만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드라마에서 마스크를 써야 할까요?” 2014년에 등단해 이미 두 권의 소설집을 낸 작가에게 ‘드라마에 등장하는 마스크’는 그리 가벼운 질문이 아니다. 드라마도 넓게 보면 픽션이고 결국 소설처럼 이야기를 담는 예술이니까. 픽션 속에 특정한 시대, 그것도 ‘초현재’인 바로 지금 전 지구적으로 보편화된 무자비한 일상을 등장시킨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정 작가는 “저는 드라마에서 최신 유행어가 아무런 설명 없이 나온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오히려 핍진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요.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고, 단시간 유행이 지나면 사라질 수도 있는 말이니까요”라며 “마스크를 쓰는 것도 지나치게 빨리 따라가면 오히려 핍진성을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라고 답했다.
 
이야기는 결국 다 거짓말이다. 그럴듯하고 재밌는 거짓말을 남이 믿게 만드는 게 이야기 예술(혹은 놀이)의 핵심 기술 중 하나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도 독자가 재미있게 속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 모든 이야기 작가들은 최선을 다하는데, 그 전략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개연성을 지킬 것. 그리고 핍진성을 따를 것. 개연성은 작품 내적인 사건 안에서 일어나는 인과의 그럴듯함을 말한다. 드라마 속에서 사람이 총에 맞았다? 그럼 죽거나 크게 다쳐야 한다. 그런데 만약 주인공이 총을 맞고도 막 뛰어다닌다면? 개연성이 떨어진다. 핍진성은 좀 다르다. 작가가 설정하고 독자와 약속한 세계 안에서 그 약속이 얼마나 충실하게 지켜지느냐를 따진다. 주인공이 쏜 총에 맞은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핍진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영화가 좀비물이고 주인공이 사람인 줄 알고 총을 쏜 대상이 사실은 좀비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총을 맞은 좀비가 주인공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다고 해도 작가와 독자가 합의한 세계 속에서 핍진성은 살아남는다.
 
‘픽션’은 핍진성과 개연성으로 짓는 세계이지 현실 그 자체를 질료로 삼아 빚은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에서 오히려 중요한 건 계약의 성사 여부다. 현재 현실에서 대부분의 작가는 드라마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마스크를 씌우지 않겠다고 말한다. 넌지시 말하는 것도 아니다. 첫 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스크를 썼는지 안 썼는지만 보면 알 수 있다. 청자는 이 계약서에 ‘시청’이라는 행위로 날인한다. “마스크를 쓰는 것도 지나치게 빨리 따라가면 오히려 핍진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정 작가의 대답은 이런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마스크로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얼굴을 반이나 가려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도 읽지 못하고, 오히려 현실의 위화감을 강화할 뿐인 세계에 다수의 청자가 공감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마스크를 쓰게 하는 것이 오히려 핍진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사실 작가들은 그래서 계약서를 좀 벙벙하게 써두고 시작하기도 한다. 정 작가 역시 그렇다. 정 작가는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될 수 있는 한 연도를 잘 표기하지 않아야 유리해요. 언제든 미래의 청자가 보더라도 감정이입을 하기에 무리가 없게 숨겨두는 거죠. 이건 제 나름의 창작의 규칙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오히려 잘못된 서술 전략은 마스크가 아니라 아이폰이나 갤럭시일지도 모른다. 간접광고의 자본력으로 밀고 들어온 아이폰이나 갤럭시가 여포처럼 등장해 시간을 특정해버리니 오히려 ‘픽션적 자유’가 쪼그라든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이런 논의는 보잘것없는 말장난일 뿐이었다. 그날 식사 자리에는 모 브랜드의 마케팅팀 담당자도 함께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두 분 있잖아요”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얼마나 많은 드라마 간접광고 제안서를 받는 줄 아세요? 핍진성이니, 개연성이니를 따지기엔 이미 현대 한국의 드라마는 완성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오염되어 있어요. 마스크도 문제가 아니고 갤럭시만 문제인 것도 아니라고요.” 나는 잠시 먹물짓을 한 걸 참회하며 그의 마지막 말을 기다렸다. “드라마는요, 그냥 한 시간짜리 광고를 보게 하기 위해 서사적인 호기심을 제공하는 도구일 뿐인 거예요.” 아, 그렇지. 〈비밀의 숲〉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옥탑방에 사는 한여진 경위(배두나 분)의 재킷이 루이 비통이라는 걸 알고도 모른 척했었지. 〈사랑의 불시착〉을 재미있게 보고 싶어 리정혁(현빈 분)의 시계가 쇼파드인 걸 ‘작품 안에서 리정혁이 부잣집 아들이라 핍진하다’라며 넘어갔었지. 〈스타트업〉에서 구두 흠집에 매직을 칠하고 다니는 달미(배수지 분)가 메고 다니는 가방이 디올이라고 했던가? 핍진성이니 개연성이니 현실성이니, 마스크가 뭔 대수인가. 정영수 작가가 진지함을 지우고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닭은 달걀이 다른 달걀을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WHO'S THE WRITER?
박세회는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피처 디렉터이자 소설가다. 

Keyword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박세회
  • Illustrator 노준구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