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름다운 공원들의 기억
」아브라샤 파크
이기선(여행 칼럼니스트)


역사가 4000년이 넘는 야파 항구는 예부터 지중해를 건너온 성지 순례자가 맨 먼저 발을 디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위쪽 고지대는 공원과 정원, 아브라샤 파크와 하피스가 가든이 조성되어 있다. 이른 시각이라 공원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17세기에 지은 세인트 피터스 교회 앞도, 신시가와 해변이 바라보이는 야외 원형극장도 고요했다. 지나치는 담벼락 그늘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고, 동네 주민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을 뿐. 그날 아침의 텔아비브는 맑았고, 공원은 정말 ‘완전히 안전’했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솟아 있는 에메랄드빛 모스크 탑을 보며 이 땅이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게 된 지 100년도 안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오호리 공원
김병진(일러스트레이터)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는 후쿠오카도 다른 어느 해외 도시와 마찬가지로 먼 곳이다. 아니, 가깝게 생각했던 곳이라 그런지 거리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가볼 수 없을 터이기에 나는 종종 후쿠오카를 갔을 때 느꼈던 편안함을 그리는 의식을 치르곤 한다. 가만히 앉아서 후쿠오카에서 봤던 풍경을 하나씩 머릿속에 재생하는 것이다. 마치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앨범을 넘겨보듯이. 그리고 그때마다 매번 빠지지 않고 떠오르는 공원이 하나 있으니 바로 오호리 공원이다.
사실 이 공원 자체에 아주 특별한 지점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바로 옆에 후쿠오카 성터가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지역의 내로라하는 성들에 비하면 덜 알려진 편이다. 탁 트인 평지, 널찍한 호수, 이를 둘러싼 산책로, 그리고 그 산책로를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공원의 전부다. 호수 위를 떠다니는 오리배도 사실 한강에서 볼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오리배의 광경이 이토록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정확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오리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때의 기억이.
그러고 보면 후쿠오카를 생각하는 건 다른 여행을 떠올릴 때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뭔가를 보고 사고 먹었던 강렬하고 컬러풀한 경험들보다, 은은한 것들이 그저 은은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딱히 스펙터클한 뭔가를 구경하고 온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자랑할 만한 일을 겪은 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해외여행을 그리워하다 보면 후쿠오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집 앞 편의점이라도 다녀오듯 아무 조바심 없이 훌쩍 떠나 느릿느릿 돌아보고 올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다시 편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날이 돌아온다면, 꼭 오호리 공원의 풍경을 가장 먼저 눈에 담고 싶다.
중산공원
오성윤(〈에스콰이어〉 에디터)

내가 좋아하는 공원 역시 그 존재의 목적을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공원이다. 시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며 행복해하는 공원. 상하이에서 내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공원이 인민공원이나 예원 같은 명소가 아니라 중심지에서 한참 벗어난 창닝구의 중산공원인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특정한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조성한 공원이 아니라, 베드타운 중심에 만든 지극히 사적인 공원이라서. 물론 내가 공원을 방문한 계절이나 시간대, 날씨가 이런 편견적 인식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중산공원에 갔던 건 연말의 일요일 아침, 세차게 비가 내린 직후였다. ‘또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이런 날씨에 사람들이 있겠어?’ 여독과 숙취에 절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짙은 체념이었으나 억지로 몸을 일으켜 공원으로 가보니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중산공원은 너르게 펼쳐진 형태의 공원이 아니다. 부지는 크지만 울창한 나무와 화단이 명확한 보행로를 만들어 광장보다는 미로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덕분에 걸을 때마다 계속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지는데, 길과 길이 마주치는 어귀마다 단체로 뭔가를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타이치나 검무를 배우는 사람들, 에어로빅을 하는 아주머니들, 왈츠를 추는 노인들…. 무엇보다 자주 맞닥뜨린 건 마작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마작판이야 상하이 시내의 골목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그 순간 어쩐지 그것이야말로 가장 ‘상하이 공원’의 정수를 담은 풍경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족히 1L는 되어 보이는 보온병이나 주전부리 삼아 챙겨온 듯한 귤 한 알, 오토바이를 아무렇게나 대놓고 헬멧도 벗지 않은 채 참전한 아저씨 같은 요소들이.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혼자 이곳저곳 흘끗대는 관광객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곁에 바짝 다가서든 사진을 찍든, 거의 투명인간이라도 대하듯 했다. 어느 벤치에서 담배를 태울 때 좀 생소한 감정을 맛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공원 곳곳에 저마다의 주말 아침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유유히 걸으며 그들의 삶을 구경했다. 그러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불현듯 그 아득한 타인들을 사랑스러워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주인장이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잡은 금붕어들을 갖고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정중히 사양했고 그는 그것을 타일 욕조에 다시 쏟아버렸으니,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나도 몰래 그 금붕어들을 마음에 담아 한국까지 갖고 돌아오게 될 줄은. 그의 손에 들린 봉지를 보는 순간 내가 이 도시의 아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따금 상하이 중산공원을 그리게 되는 건 사실 오직 그 한 순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레이니어 국립공원
방새미(그림책 작가)

공원 입구는 건물 3~4층 정도 높이의 거대한 창틀 모양을 띠고 있다. 양쪽을 떠받친 나무 기둥에 작게 입장권 판매소가 있고, 그 속에선 늘 탐험가 모자와 멋진 레인저복을 입은 사람이 입장권을 판다. 그의 말투와 태도가 산뜻해서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방문은 2007년 겨울, 아마도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겨둔 때였을 것이다. 공원 입구 바로 옆 여관에는 기념품 숍이 딸려 있는데 거기서 아름답게 장식된 트리를 보곤 설레어 했던 기억이 나니까. 공원은 입구부터 온통 탐색해볼 만한 곳이지만 우리는 늘 곧장 차로 한참을(아마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광활한, 바다 같은 호수가 부드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호수는 나무들에 가려진 부분이 조금씩 드러나면 다시 다른 부분이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 속은 마치 어떤 시간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바깥과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시공간을 걷는 느낌. 주변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고, 하늘 역시 그 어떤 색도 아닌 것 같았다. 무엇이든, 멀리 있는 것, 가까이 있는 것 모든 게 고르게 느껴졌다. 소리는 꾹꾹 제자리에서 먹혀 사라지고 다져놓은 좁은 보행로 외엔 인간이 전혀 닿지 않은 풍경이었다. 쏟아져 덮인 눈 속에는 원래의 모양이 가늠되지 않는 생경한 존재들. 죽어서 버석한 몸통만 남은 나무에는 누군가 촛농이라도 떨군 듯 둥그렇고 느린 눈이 덮여 꼭 성냥개비처럼 보였다. 어린 침엽수는 여린 머리 끝에 무겁게 눈을 뒤집어써 아래로 잔뜩 구부정한 채였고, 그 발치의, 입김에도 흐트러질 풀잎들에도 두툼한 눈 이불이 덮여 있었다. 소복하고 묵직한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새하얀 윈터 원더랜드.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은 제법 많았으나 원더랜드 트레일을 걷는 내내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대단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모두 다른 트레일을 택했던 걸까? 오직 그 공간과 내 가족뿐이었다. 그때도 나는 너무 좋을 때면 오히려 입을 다무는 편이었던 것 같다. 판타지 영화 속에 있는 것 같다는 둥 몇 마디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말로 뱉지 않고 그저 안에 두었다. 지금도 멀리서, 그 말이 되기 전의 감각과 느낌까지 더듬을 수 있는 건 오히려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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