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여덟 명의 여행 애호가가 말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해외 공원의 기억 part.2

온 세상의 공원이 흐드러지는 5월. 여덟 명의 여행 애호가가 바다 건너 어느 공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털어놓았다. 직접 찍고 그린 이미지와 함께. 여전히 아름다울 그 공터들에 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BYESQUIRE2021.05.13
 
 

내 아름다운 공원들의 기억

 

아브라샤 파크

Tel Aviv, Israel
이기선(여행 칼럼니스트)
여행기자 경력에서 생긴 소소한 특이점이 몇 가지 있으니 그중 하나는 이스라엘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는 것이다. 2016년에 한 번, 2019년에 또 한 번. 첫 출장, 처음 텔아비브에 도착한 날은 오히려 그 후의 출장보다 더 선명히 기억난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텔아비브에 도착하기 불과 몇 시간 전 올드 시티 야파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범인은 팔레스타인인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카메라를 챙겨 신시가의 호텔을 나서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컨시어지를 붙잡고 혼자 돌아다녀도 괜찮을지 묻기도 했으나 역시 쾌활하고 자신감 넘치는 컨시어지다운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완전히 안전하죠."
 
이스라엘의 실질적 수도인 텔아비브는 이스라엘 여행의 관문이자 동시에 이스라엘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와 가장 동떨어진 도시다. 전차가 누비는 신시가는 서유럽 도시에 더 겹쳐 보이고, 힙한 비건 식당부터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까지 유행에 민감한 여행자를 위한 시설도 잔뜩 마련되어 있다. 물론 텔아비브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지역, 야파라면 얘기가 다르다. 야파를 향해 남쪽으로 차를 몰던 택시 운전기사 역시 텔아비브는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했다. 해안선 너머로 신기루처럼 솟은 성벽 도시를 가리키면서.
 
역사가 4000년이 넘는 야파 항구는 예부터 지중해를 건너온 성지 순례자가 맨 먼저 발을 디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위쪽 고지대는 공원과 정원, 아브라샤 파크와 하피스가 가든이 조성되어 있다. 이른 시각이라 공원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17세기에 지은 세인트 피터스 교회 앞도, 신시가와 해변이 바라보이는 야외 원형극장도 고요했다. 지나치는 담벼락 그늘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고, 동네 주민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을 뿐. 그날 아침의 텔아비브는 맑았고, 공원은 정말 ‘완전히 안전’했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솟아 있는 에메랄드빛 모스크 탑을 보며 이 땅이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게 된 지 100년도 안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에 갔을 때 처음 향한 곳 역시 야파였다. 다행히 그때는 총격 사건 소식 같은 건 없었다. 아브라샤 파크 역시 여전히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여전히 그늘에는 고양이가 누워 있었고, 누군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기도 했다. 한낮이라 좀 더 활기찬 느낌도 있었다. 기원전 19세기부터 가나안인이 살았다는 청동기시대 유적지에는 단체 소풍을 온 학생들이 활보했다. 여행자의 타고난 맹점은 여행지의 한 순간, 몇 가지 단면만으로 그곳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관광청에서 제공하는 일정대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여행기자에게는 익숙한 숙명. 그런데도 이스라엘에서 그 반쪽의 경험이 유달리 죄스럽게 느껴진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서안 지구에 인접한 검문소, 이방인을 압도하는 예루살렘의 종교적 에너지, 권위적인 현지 가이드. 하지만 그처럼 여행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이 또 다른 한 축의 사람들에게는 여행의 동력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낯선 문화에 대한 매혹과 호기심, 더 나아가면 세상이 좀 더 선한 곳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언젠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구를 세 번째 방문하고 싶은 것도 그래서다. 그때에도 아브라샤 파크는 응당 긴 여행의 서문이자 이 지역의 복잡한 정치·종교적 상황을 슬쩍 벗어난 안전지대일 것이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를 상상해본다. 수백 년 넘게 성스러운 땅을 찾아온 사람들이 마침내 다다랐을 항구를. 막상 변한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여행자의 복잡한 심경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오호리 공원

Fukuoka, Japan
김병진(일러스트레이터)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이따금 해외여행 난이도를 목적지별로 정리한 게시물을 마주치게 된다. 언어나 지리 조건,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기준으로 점수를 더하고 순위를 매긴 것인데, 나는 그런 걸 시니컬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늘 끝까지 읽어보곤 한다. 가기 어려운 나라들은 게시물의 기준에 따라 바뀐다. 하지만 가장 여행하기 쉬운 나라는 대부분 동일하니, 단연코 일본이다. 개중에서도 후쿠오카는 일본 본토에서 가장 한국 땅에 가까운 도시다. 부산에서 가까운 애플스토어를 검색하면 서울 매장보다 후쿠오카 매장이 상단에 뜬다고 할 정도니까. 날짜만 잘 맞으면 비행기 삯도 왕복 10만원이 되지 않았으니, 내게는 아무 부담 없이 휙 다녀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해외 여행지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는 후쿠오카도 다른 어느 해외 도시와 마찬가지로 먼 곳이다. 아니, 가깝게 생각했던 곳이라 그런지 거리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가볼 수 없을 터이기에 나는 종종 후쿠오카를 갔을 때 느꼈던 편안함을 그리는 의식을 치르곤 한다. 가만히 앉아서 후쿠오카에서 봤던 풍경을 하나씩 머릿속에 재생하는 것이다. 마치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앨범을 넘겨보듯이. 그리고 그때마다 매번 빠지지 않고 떠오르는 공원이 하나 있으니 바로 오호리 공원이다.
 
사실 이 공원 자체에 아주 특별한 지점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바로 옆에 후쿠오카 성터가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지역의 내로라하는 성들에 비하면 덜 알려진 편이다. 탁 트인 평지, 널찍한 호수, 이를 둘러싼 산책로, 그리고 그 산책로를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공원의 전부다. 호수 위를 떠다니는 오리배도 사실 한강에서 볼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오리배의 광경이 이토록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정확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오리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때의 기억이.
 
그러고 보면 후쿠오카를 생각하는 건 다른 여행을 떠올릴 때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뭔가를 보고 사고 먹었던 강렬하고 컬러풀한 경험들보다, 은은한 것들이 그저 은은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딱히 스펙터클한 뭔가를 구경하고 온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자랑할 만한 일을 겪은 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해외여행을 그리워하다 보면 후쿠오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집 앞 편의점이라도 다녀오듯 아무 조바심 없이 훌쩍 떠나 느릿느릿 돌아보고 올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다시 편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날이 돌아온다면, 꼭 오호리 공원의 풍경을 가장 먼저 눈에 담고 싶다.
 

 

중산공원

Shanghai, China
오성윤(〈에스콰이어〉 에디터)
새로운 도시에 갈 기회가 생기면 지도에서 그 도시의 공원부터 찾아보곤 한다. 그리고 아무리 촉박한 일정에도 꼭 한 번은 다녀온다. “자연을 좋아하나 보네.” 누군가가 무심코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는데, 듣고 보니 놀랍게도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도시가 아닌 오지를 여행지로 택하거나 교외로 하이킹을 자주 갔겠지.”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 나는 ‘자연보호 구역’으로서의 공원보다는 ‘인위적 시설’로서의 공원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공원은 그 도시 사람들에게 휴식과 평화가 어떤 의미인지 물리적 형태로 구현해놓은 시설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공원 역시 그 존재의 목적을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공원이다. 시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며 행복해하는 공원. 상하이에서 내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공원이 인민공원이나 예원 같은 명소가 아니라 중심지에서 한참 벗어난 창닝구의 중산공원인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특정한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조성한 공원이 아니라, 베드타운 중심에 만든 지극히 사적인 공원이라서. 물론 내가 공원을 방문한 계절이나 시간대, 날씨가 이런 편견적 인식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중산공원에 갔던 건 연말의 일요일 아침, 세차게 비가 내린 직후였다. ‘또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이런 날씨에 사람들이 있겠어?’ 여독과 숙취에 절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짙은 체념이었으나 억지로 몸을 일으켜 공원으로 가보니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중산공원은 너르게 펼쳐진 형태의 공원이 아니다. 부지는 크지만 울창한 나무와 화단이 명확한 보행로를 만들어 광장보다는 미로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덕분에 걸을 때마다 계속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지는데, 길과 길이 마주치는 어귀마다 단체로 뭔가를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타이치나 검무를 배우는 사람들, 에어로빅을 하는 아주머니들, 왈츠를 추는 노인들…. 무엇보다 자주 맞닥뜨린 건 마작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마작판이야 상하이 시내의 골목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그 순간 어쩐지 그것이야말로 가장 ‘상하이 공원’의 정수를 담은 풍경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족히 1L는 되어 보이는 보온병이나 주전부리 삼아 챙겨온 듯한 귤 한 알, 오토바이를 아무렇게나 대놓고 헬멧도 벗지 않은 채 참전한 아저씨 같은 요소들이.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혼자 이곳저곳 흘끗대는 관광객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곁에 바짝 다가서든 사진을 찍든, 거의 투명인간이라도 대하듯 했다. 어느 벤치에서 담배를 태울 때 좀 생소한 감정을 맛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공원 곳곳에 저마다의 주말 아침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유유히 걸으며 그들의 삶을 구경했다. 그러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불현듯 그 아득한 타인들을 사랑스러워했던 것이다.
 
궂은 날씨의 영향이 있긴 했다. 중산공원 서쪽 끝에는 작은 놀이공원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부근은 사람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스산했다. 거의 폐공원처럼. 범퍼카 운행장 옆에 작은 금붕어 낚시터도 마련되어 있기에 변덕 부리듯 휙 들어서 보기도 했다. 나무 작대기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멍하니 앉아 운치나 즐길 요량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고기가 너무 잘 잡혔으며, 내가 맨손으로 물고기를 만지지 못한다는 것뿐. 한 마리 낚을 때마다 물고기 아가리에서 바늘을 빼달라 주인장에게 요청해야 했고, 결국 다섯 마리째 잡혔을 때 할당 시간을 한참 남겨두고 자리를 뜨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주인장이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잡은 금붕어들을 갖고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정중히 사양했고 그는 그것을 타일 욕조에 다시 쏟아버렸으니,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나도 몰래 그 금붕어들을 마음에 담아 한국까지 갖고 돌아오게 될 줄은. 그의 손에 들린 봉지를 보는 순간 내가 이 도시의 아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따금 상하이 중산공원을 그리게 되는 건 사실 오직 그 한 순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레이니어 국립공원

Washington, USA
방새미(그림책 작가)
한여름에도 눈을 덮고 있는 높이 4392m의 활화산 레이니어. 고3 때 가족이 다 함께 이민을 가서 4년을 워싱턴에서 사는 동안, 이 거대한 산은 늘 곁에 있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도, 집 근처 공원에도, 마트 주차장에도. 세 번의 이사에도 상관 않고 어디로든 와주었다. 내 쪽에서 산을 찾은 것은 아마 지금껏 여섯 번 정도였을 것이다. 일본으로 대학 진학을 한 뒤로도 방학 때면 가족들을 방문해 다 함께 레이니어 국립공원을 찾곤 했다.
 
공원 입구는 건물 3~4층 정도 높이의 거대한 창틀 모양을 띠고 있다. 양쪽을 떠받친 나무 기둥에 작게 입장권 판매소가 있고, 그 속에선 늘 탐험가 모자와 멋진 레인저복을 입은 사람이 입장권을 판다. 그의 말투와 태도가 산뜻해서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방문은 2007년 겨울, 아마도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겨둔 때였을 것이다. 공원 입구 바로 옆 여관에는 기념품 숍이 딸려 있는데 거기서 아름답게 장식된 트리를 보곤 설레어 했던 기억이 나니까. 공원은 입구부터 온통 탐색해볼 만한 곳이지만 우리는 늘 곧장 차로 한참을(아마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광활한, 바다 같은 호수가 부드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호수는 나무들에 가려진 부분이 조금씩 드러나면 다시 다른 부분이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겨울이 깊어졌다. 눈이 조금만 와도 모든 학교가 휴교하고, 운전을 하던 사람들도 자연스레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도보를 택하는 동네였는데, 만년설을 머리에 덮은 레이니어는 과연 눈에 대한 대처가 달랐다. 차는 도로 가장자리로 치워진 거대한 눈의 벽 사이를 일말의 불편함 없이 달릴 수 있었다. 마침내 다다른 주차장에는 차들이 제법 세워져 있었다. 우리도 그 틈에 주차를 했고, 곧 다 함께 내려서 ‘원더랜드 트레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속은 마치 어떤 시간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바깥과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시공간을 걷는 느낌. 주변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고, 하늘 역시 그 어떤 색도 아닌 것 같았다. 무엇이든, 멀리 있는 것, 가까이 있는 것 모든 게 고르게 느껴졌다. 소리는 꾹꾹 제자리에서 먹혀 사라지고 다져놓은 좁은 보행로 외엔 인간이 전혀 닿지 않은 풍경이었다. 쏟아져 덮인 눈 속에는 원래의 모양이 가늠되지 않는 생경한 존재들. 죽어서 버석한 몸통만 남은 나무에는 누군가 촛농이라도 떨군 듯 둥그렇고 느린 눈이 덮여 꼭 성냥개비처럼 보였다. 어린 침엽수는 여린 머리 끝에 무겁게 눈을 뒤집어써 아래로 잔뜩 구부정한 채였고, 그 발치의, 입김에도 흐트러질 풀잎들에도 두툼한 눈 이불이 덮여 있었다. 소복하고 묵직한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새하얀 윈터 원더랜드.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은 제법 많았으나 원더랜드 트레일을 걷는 내내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대단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모두 다른 트레일을 택했던 걸까? 오직 그 공간과 내 가족뿐이었다. 그때도 나는 너무 좋을 때면 오히려 입을 다무는 편이었던 것 같다. 판타지 영화 속에 있는 것 같다는 둥 몇 마디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말로 뱉지 않고 그저 안에 두었다. 지금도 멀리서, 그 말이 되기 전의 감각과 느낌까지 더듬을 수 있는 건 오히려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끝까지 가지는 않고 중간에 돌아 내려왔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갔을 텐데, 이상하게도 내려온 기억은 없다. 기억은 내려오는 길에서 뚝 끊기고 별안간 방문자 센터로 다시 연결되는데, 그건 장면이라기보다 무거운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훅 끼쳐오는 묵직한 온기의 감각이다. 노르스름한 빛과 볼이 발간 사람들. 기념품 선반을 둘러봤고, 아마 따뜻한 코코아를 마셨던 것 같다. 아닐지도 모른다. 갑자기 따뜻하게 닥쳐온 현실감 없는 현실 앞에서, 그 뭉게뭉게 한 마음 사이로, 실제로는 없었던 코코아 한 잔쯤 내 기억이 뚝딱 만들어 쓱 밀어 넣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실한 기억. 그건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바퀴가 눈에 끼어 있었고, 결국 다 함께 한참 낑낑대며 차 엉덩이를 밀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여덟 명의 여행 애호가가 말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해외 공원의 기억 part.1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