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마음 새 뜻을 위한 멘탈 관리 7계명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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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 새 뜻을 위한 멘탈 관리 7계명

잡지 기사 하나로 우리가 지닌 모든 마음의 병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상황에나 유효한 지침은 존재한다. 아래 제시된 7개 항목을 하나씩 천천히 짚어보자. 가슴에 새기고 스스로를 잘 돌보다 보면,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오성윤 BY 오성윤 2021.12.31
 

① 상담을 두려워하지 마라

남자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만큼이나 쉽게 병든다. 그럼에도 많은 남자가 아직도 심리치료를 꺼린다. 왜일까? 심리치료는 엄살 같은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감정적인 부하를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처리하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심리 질환 발병률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팬데믹과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고립은 제아무리 스스로를 강하고 터프한 사람이라고 믿어온 이에게도 정신적 타격을 입혔다. 팬데믹은 결국 가장 강한 사람까지도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긴급조치를 취해야 할 시기인 셈이다. 심리 질환은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서 덜 진단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마음의 병에 덜 걸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일까? 여자가 남자보다 스스로의 병증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더 빠르게 전문적인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닐까? 겉보기에 경미한 통증이나 부상으로 병원을 찾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훨씬 적다는 사실은 이런 관점을 뒷받침한다. 수동공격성, 게으름, 피로, 적대성, 자아도취 같은 것들이 전형적인 남성적 특성으로 여겨지고, “우리 남자들은 원래 그래” 하는 말로 문제를 일축하면서 자기 객관화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이런 남성적 특성이 바로 심리 질환의 첫 번째 실마리이거나 명백한 증상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식사 자리에서 정신을 딴 데 둔 듯 무기력하게 앉아 있거나, 대낮부터 식사에 술을 곁들이는 아버지는 단순히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완전히 번아웃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침에 도통 일어날 수가 없어 자꾸 학교에 늦는 아들이 겪고 있는 것은 단순히 사춘기가 아니라 심각한 우울증일 수 있다.
 
의학은 이미 수십 년도 전에 남성이 여성만큼이나 심리 질환에 취약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1975년 5월, 베트남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을 때 많은 군인이 무기를 내려놓으면서도 전쟁의 기억은 내려놓지 못했다. 참전 용사들은 정신적 장애를 얻은 채 가족에게 돌아갔고,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속에서 괴로워하거나 그 고통을 알코올로 마비시키곤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라는 질병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물론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하는 사건은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해왔다. 다만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각종 연구와 미국 정신의학회 덕분에 그 증상이 공식적인 명칭과 과학적 진단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심리치료는 엄청난 진보를 이룩하게 된다. 새로운 치료 방식들이 체계화됐고, 그중에서도 통상적으로 잘 알려지고 국가의 인정을 받은 처치는 오늘날 보험 처리도 가능하게 됐다.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각자에게 맞는 심리치료 기관을 찾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아직 많은 남자가 심리치료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치료 과정에서 자신의 남성성이 끝났다는 선고를 받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많은 남자가 테스토스테론이 가득하다 못해 뚝뚝 흘러넘치는, 전지전능한 알파메일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세뇌 속에 자란다. 이런 남자의 부모에게 아들의 정신적 붕괴란 애정하는 축구팀이 리그에서 강등될 때 겪는 일시적 사건에 불과하다. 아직까지도 남자의 컨디션이란 기능적으로만 평가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성별 고정관념은 ‘남자는 태어나 단 세 번 눈물을 흘린다’는 식의 클리셰를 통해 어린아이의 머릿속에까지 각인되고 이어진다. 약하다거나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가가 그 무엇보다 두려운 것이기에, 남자들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자기 마음과 그 안의 악마를 마주하는 것만큼 용기 있는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심리치료는 연대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비전문가인 지인의 충고가 통하는 건 어느 수준까지만이다. 그 이상이 되면 우리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분석한 후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전문적이고 객관적이며 경험이 풍부한 시각을 필요로 한다. 심리치료란 나의 생각, 감정, 걱정, 불안을 사회적 평가나 손가락질로부터 보호해주는 안전 가옥 같은 장치다. 거대한 전쟁이 새긴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생활 속 간헐적인 감정의 혼란도 여기에 포함된다. 약해빠진 사람이나 받는 거라는 케케묵은 오해를 접어두고, 이제 심리치료가 그저 의학적 처치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자. 암 정기검진이나 치과 검진과 마찬가지로, 치부가 아니라 평범한 치료 과정 중 하나일 뿐이며, 남성성의 붕괴를 뜻하는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 심리치료는 ‘일상’이다.
 
 

② 양질의 수면을 취하라

건강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양질의 수면이다. 독일 에센시 루어대학병원 수면의학센터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토프 쇠벨 교수는 잠자리에 들기 전 심신을 충분히 이완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와의 일문일답을 옮긴다.



어떤 잠이 좋은 잠인가?
신체, 정신, 영혼에 휴식을 주는 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떤 것이 실제적인 휴식을 주는지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숙면을 취하기 위한 조건이 있나?
다양한 측면의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당신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느끼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당연히 그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 온도, 밝기, 소리 같은 게 가장 자주 언급되는 변수인데, 가령 완벽한 어둠 속에서 잘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은한 조명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기본적으로 심신이 이완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말하는 조건을 아무리 완벽하게 갖춰도 쉽게 잠들 수 없을 것이다.
 
각자가 어떤 환경에서 잘 때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뜻인가?
현재 자신에게 수면장애가 없다면 굳이 사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 괜히 뭔가를 개선하려고 손을 댔다가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별다른 문제도 없는데 쓸데없이 신경을 쓴다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앱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여태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상 그전까지 수면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 요인들을 새롭게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더 나은 수면’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대나 의식은 오히려 잠들기 전에 사람을 더 긴장하게 한다. 긴장 상태야말로 편안한 수면의 적이다.
 
의학적으로 볼 때, 수면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
우리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척도다. 육체에 휴식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생리적·정신적 재생 과정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잠은 우리의 뇌를 청소하고, 어떤 것을 장기 기억으로 남기고 또 어떤 것을 잊어버릴지 결정하면서 기억이라는 것을 형성한다. 나아가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육체는 신경망을 아예 새롭게 구축하기도 한다. 신경가소성이라 불리는 이 현상을 통해 우리 몸이 면역체계를 구축해나가기 때문에 잠이 부족하면 자연히 감염에 쉽게 노출된다.
 
건강에서 수면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실제로 그렇다. 물론 건강을 지탱하는 다른 두 기둥인 식사와 운동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무려 인생의 3분의 1을 자면서 보낸다. 이런 견지에서 미국의 한 연구자는 “수면이 인간의 근간이 되는 생명 유지 기능과 무관한 것이었다면, 그건 인류 진화의 가장 큰 오점이 되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수면장애란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
단순히 잠을 잘 못 잔다고 해서 수면장애인 건 아니다. 불면증의 경우 일단 만성인지 급성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있었음에도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고, 그게 적어도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면 만성적 수면장애에 해당한다. 반면 급성은 특정한 스트레스 상황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푹 자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보통은 스트레스 레벨이 낮아지면 증상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느 시점에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불면증이 만성으로 악화되기 전에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 수면장애가 길어질수록 침대는 점점 이완과 휴식 공간이 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이 시점에서 수면에 대한 낮은 기대감 속에 잠자리에 들게 되고, 잠들어야 한다는 강박과 고통이 우리로 하여금 침대를 보기만 해도 긴장하게 한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행동 교정이나 심리치료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잠이 도저히 오지 않을 때는 어떤 조치를 취해볼 수 있을까?
일단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게 좋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와서 책을 읽는다거나, 되도록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 뭔가를 하는 거다. 그러다 다시 졸리면 침대로 돌아가면 되고. 가끔은 아예 반대로 마음을 먹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 절대로 잠들면 안 된다고 스스로 되뇌어보는 거다. 우리 몸은 간혹 우리의 의지와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스스로가 잘 자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문제는 당신이 ‘잘 자고 싶다’고 강하게 원하면 원할수록 수면의 질이 낮아질 거란 사실이다. 그럴 때는 밤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다음 날의 일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하지 말고 몸을 편하게 이완시켜라. 너무 많이 자지도, 너무 적게 자지도 말고.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
 
잠도 단련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방금 말한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잠을 의식하지 않고, 몸의 긴장을 푸는 것. 그게 수면에서 가장 중요하다.
 
낮잠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수면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추천한다. 나도 낮잠을 즐기는 편인데,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된다.
 
 

③ 명상을 습관화하라

깨어 있을 때에도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우리로 하여금 나 자신, 나의 육체, 주변 사람과 어울리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더군다나 그걸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지도 않다. 스스로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 전부다. 문제는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뿐.



외부 자극으로부터 감각이 덜 예민해지면서 몸 전체에 고요가 퍼져 나간다. 어쩌면 신진대사도 조금씩 느려질 수도 있다. 깊은 명상에 빠진 우리 몸은 마치 동면 상태의 곰과 같다. 명상은 스트레스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면서 타인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불안장애를 달래주는 한편 만성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는 그 아픔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때 한 가지 전제는, 그렇게 되기까지는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규칙적 반복

명상은 놀라울 만큼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본격적인 명상을 시작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수행 장소나 그곳에 피워둘 향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의 약속이다. 아침저녁으로 3분간 이를 닦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 되었을 때 명상은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다른 사람들이 아직 잠들어 있는 해뜨기 30분 전이든, 잠들기 15분 전이든,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선택 사항들

편안한 옷차림
명상을 방해하는 요소는 차고 넘친다. 굳이 거기에 꽉 끼는 청바지를 더할 필요는 없다. 잠옷같이 편안한, 그러면서도 약간 따뜻한 옷을 고르는 것이 좋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자연히 체온이 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 명상을 즐긴다면 운동복이나 편한 일상복 정도도 문제 없다.
 
방석이나 깔개
바닥에 오래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한다면 방석이 도움이 될 것이다. 명상용 방석은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타이머
선불교에서는 ‘매일 1시간, 바쁘다면 매일 20분만이라도 명상을 하라’고 권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10분마다 시계를 들여다본다면 좋은 명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각종 명상 앱은 소리 신호로 시작과 끝을 알려준다. 원한다면 중간에도 신호가 나오도록 할 수 있다. 그때마다 잡념의 연쇄를 끊고 다시 지금, 이 공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만 눈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감고 있도록 하자.
 

명상은 정신을 위한 일시정지 버튼이다. 이 시간만큼은 모든 생각을 멈추도록 하자. 처음에는 진입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고, 어떤 이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명상 앱은 타이머 기능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익숙지 않은 세계로 조금 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자세 잡기

가부좌
자세 담요나 방석에 앉은 채 다리에 힘을 빼고 교차한 후 무릎은 바닥을 향하게 한다. 양손은 앞으로 모아 포개고 양 엄지끼리 서로 닿게 한다(상상이 잘 안 된다면 인터넷 검색창에 ‘다야나 무드라(Dhyana Mudra)’를 검색해보라). 손등을 아래로 향한 채 양 허벅지 위에 올려도 무방하고, 무릎이 아프다면 그냥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된다. 중요한 건 척추를 똑바로 세우고, 어깨의 힘을 뺀 채 골반을 약간 앞쪽으로 기울이는 것이다. 눈은 감거나 먼 곳에 초점을 맞춘다.
 
금강좌 자세
무릎을 꿇고 엉덩이는 발뒤꿈치에 붙이고 앉는 자세다. 다리 사이,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쿠션을 끼우면 발목과 무릎에 부담이 덜하다. 그래도 쥐가 난다면 가부좌 자세로 돌아가자. 
 

초심자를 위한 팁

참선
호흡 수를 세어가며 명상하는 방식이다. 코로 천천히 호흡하며 숨을 들이마실 때 ‘하나’, 내쉴 때 ‘둘’을 센다. 10까지 도달하면 다시 1부터 센다.
 
만트라 명상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단어나 문장을 의미하는 만트라를 명상 중에 말로 내뱉거나, 노래하거나, 머릿속에서 되뇌는 방식이다. 가장 유명한 단어는 ‘옴’이며, ‘나는~(이다)’를 뜻하는 ‘소함’도 자주 쓰인다. 산스크리트어가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자신만의 만트라를 만들어도 좋다. 예를 들어 들이마실 때 “나는”, 내쉴 때 “나와 함께 있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중요한 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몸 살피기
매트에 가만히 누워 몸의 감각을 느끼는 방식으로, 신체 각 부위를 돌아가며 하나씩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발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내 몸의 어느 부분이 바닥에 닿아 있나? 종아리는 얼마나 피로가 쌓인 것으로 느껴지는가? 허벅지는 뭉쳐 있지 않은가? 경직되어 있는 신체 부위로 의식적으로 숨을 돌리도록 한다. 이 명상법은 사무실 의자에서 잠깐 숨 돌리면서도 할 수 있다. 눈만 감고 있지 않는다면 동료들 눈에 당신은 무언가를 깊이 숙고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명상 FAQ

✔ 잡생각을 떨치기가 힘들다면?
그 또한 명상을 익혀나가는 과정이다. 정신이 일시 정지하도록 단련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다. 생각이 휴가를 떠나는 상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면 괜히 자책하지 말자. 그저 더 중요한 것에, 즉 호흡과 만트라에 다시 집중하도록 하자.
 
✔ 좀이 쑤신다면?
재미있는 건, 사실 요가 동작은 오랜 시간 가장 편하게 앉아 있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척추나 무릎이 결리다면 잠깐 그 부위에 주의를 기울였다가 다시 명상에 집중하면 된다. 계속 불편하다면 자세를 좀 바꿔보는 것도 좋다.
 
✔ 자꾸 잠이 온다면?
척추를 곧게 편 자세를 취하거나 눈뜬 상태로 다시 집중해보자. 사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해결책은 따로 있다. 바로 수면을 충분히 취하는 것이다.
 
 

④ 숨을 제대로 쉬어라

굳이 어떻게 내쉴지 고민하지 않아도, 우리는 상황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조절한다. 물론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트레스와 분노를 다스리거나 감정이나 생각을 외부로부터 단절시키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되는 팁 몇 가지를 알아보자.



근육 만들기
나이와 훈련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은 하루에 대략 2만 번의 호흡을 한다. 하지만 호흡하고 있다는 걸 의식할 때는 육체적인 힘을 쓰느라 숨이 거칠어졌을 때뿐이다. 폐에는 딱히 알려진 통증수용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흡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인 횡경막이 수축하면서 산소를 채워 넣기 위해 폐를 확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갈비뼈와 복부 주변 근육들이 이를 보조한다. 호흡 기능을 개선하는 데에는 특히 다음의 다섯 가지 운동이 도움이 된다. (전력 질주 구간을 포함한) 달리기, 스피닝, 자전거 같은 운동은 횡경막 근육을 단련해주고 새로운 모세혈관이 잘 생성될 수 있도록 해 근육이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게 돕는다. 수압을 이겨내며 호흡해야 하는 수영은 몸통과 복부의 근육을 단련하고, 노 젓기는 가슴 근육을 강화해주는 동시에 반복 동작을 통해 근육을 더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더 긴 호흡도 가능하게 한다.
 
몸을 유연하게 하기
유연한 신체는 호흡에 더 많은 공간을 마련해준다. 요가의 고양이 자세는 어깨와 가슴 근육을 이완한다. 무릎을 꿇고 네 발로 서 있는 듯한 자세에서 손은 바로 어깨 아래에, 무릎은 골반과 일직선이 되게 한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면서 부드럽게 몸이 움푹해지도록 허리를 아래로 내리자. 고개는 편안하게 아래로 떨구고, 어깨를 귀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는 느낌으로 벌린다. 그리고 숨을 내쉬면서 등을 둥글게 끌어올리면 된다. 이 동작을 다섯 번 반복하자. 다음은 중간 늑골 근육을 늘리기 위한 자세다. 두 다리를 약간 벌린 채 서서 오른손을 가볍게 배 위에 올려놓는다. 왼쪽 팔은 귀 옆을 지나 반대편으로 넘긴다. 그 상태로 천천히 다섯 번 호흡한 뒤 팔을 반대로 바꿔서 반복하면 된다.
 
코를 활용하기
코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입자와 미생물의 50%를 걸러준다. 동시에 공기를 폐로 보내기 전에 미리 습도와 열기를 더해주는 역할도 한다. 우리의 코는 이 작업을 영하 10℃에서도 순식간에 해낸다. 따라서 되도록 구강 호흡은 보조적으로만, 가령 운동할 때처럼 호흡이 모자랄 때만 사용하도록 하자. 뭐, 섹스할 때도 허용해주는 걸로.
 
완전호흡 연습하기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을 동시에 하는 완전호흡은 이완된 상태라면 서서든 앉아서든 언제나 연습할 수 있다. 익숙해지기 위해 가슴 위에 한 손을 올려놓고 매 호흡 가슴이 오르내리는 걸 느껴보자. 이때 흉곽이 앞으로 확장될 때 어깨가 함께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다른 쪽 손은 배 위에 올려놓고, 숨을 들이쉴 때 살짝 눌러주도록 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양 옆구리에 손을 올리는데 엄지와 검지는 맨 아래쪽 갈비뼈에 대고 있다가 숨을 들이쉴 때 약간 바깥쪽으로 밀어내듯 눌러주자. 완전호흡으로 흉곽, 배, 옆구리까지 이어지는 모든 동작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이 흐름에 따라 호흡은 위에서 아래로 (들이쉴 때) 그리고 다시 반대로 (내쉴 때) 흘러가게 된다.
 
진정하기
정신과 호흡은 서로 영향을 끼친다. 투쟁-도피 반응 등의 활동을 담당하는 교감신경은 들숨에, 휴식을 담당하는 부교감신경은 날숨에 연결되어 있다. 부교감신경이 우위가 될 때 우리 몸은 재생이 더 용이하다.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쉬는 시간을 좀 더 길게 하는 것이다. 즉 두 박자 동안 들이쉬고 네 박자 동안 내쉬면 된다. 이를 통해 우리 몸에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청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환기하기
어제 있었던 짜증스러운 일이나 내일 해야 하는 큰 업무가 당신을 괴롭히는가? 오직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면 당장 해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가 호흡을 활용하는 것이다. 딱 세 번만 코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어보자. 마음챙김 전문가들은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기 전에 이렇게 의식적으로 호흡을 정돈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집중하기
몇십 분째 주차 공간을 못 찾고 있는 상황에서, ‘4444’는 당신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긴급 번호이다. 마음속으로 4까지 세면서 숨을 들이쉰 후 잠시 숨을 멈춘 채 4를 센다. 다음 4까지 세면서 숨을 내쉬고, 완전히 숨을 다 내뱉은 상태에서 다시 한번 4를 세자. 그대로 숨을 쉬지 않고 4분간 유지하는 것이다. 미 해병대는 심각한 상황에 대비해 ‘전투 전술적 호흡’이라는 명칭 아래 이 호흡법을 연습하는데, 스트레스 상황이나 제안서 발표 같은 상황에도 꽤나 도움이 된다.
 
두근거림 완화하기
‘발자바 훈련’은 병원 처치에서 쓰이기도 하는 방식으로, 입을 다문 뒤 코를 막고 몇 초간 부드럽게 숨을 밀어내듯 뱉으면 된다. 이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먹먹해진 귀를 압력을 이용해 맞추려고 할 때처럼 말이다. 흉곽에 압박이 커지면서 순간적으로 심장으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면 심장박동 수가 떨어진다. 여담으로, 이 방식은 딸국질에도 효과적이다.
 
1976년, 자크 마욜이라는 프랑스인이 의학적으로 우리 신체에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던 목표에 도전했다. 수심 100m 아래까지 무호흡 다이빙으로 도달하는 것. 영상 기록에 따르면 이 프리 다이버는 시도에 앞서 수영복 차림으로 가부좌를 튼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장 어떤 일이 얼마나 망해가고 있든 간에, 당신이 호흡만 잘 유지하고 있다면  잘못되는 것보다 제대로 되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분자생물학자 겸 마음챙김 전문가 존 카밧-진
 

⑤ 남자답게 울어라

눈물이란 감정의 용량이 초과되면 작동되는 장치로 카타르시스 그 자체다. 이건 성별과 무관한 사실이지만, 〈에스콰이어〉 독일판 에디터인 필립 쾹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는 평생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기억이 시작된 이래로 나는 늘 아버지를 우러러보았다. 아버지를 두려워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기엔 학창 시절 나는 기가 너무 셌고, 반대로 아버지는 권위 의식이 없었다. 오히려 주변 친구들의 터프한 아버지들과 달리 늘 상냥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존경해왔던 것이다. 잘 단련된 몸과 그 위를 덮고 있는 문신은 아버지의 또 다른 측면을 짐작케 했지만, 아버지는 내게 단 한 번도 구닥다리 사고방식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 대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늘 옆에서 응원해주셨다. 이처럼 나의 아버지는 특별했지만, 다른 아버지들과 공통점이 있기도 했다. 그건 바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들은 적도 없다. 아주 작은 훌쩍임조차도. 그럴 만한 일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가령 어머니와 이혼하셨을 때라든가 말이다. 두 분의 이혼은 내 세계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삶도 뒤흔들어놓은 일이었다. 환상 속의 단란한 가족상이 깨지면서 감정의 파편이 수북이 쌓인 채 남았다. 내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호흡이 힘들 정도로 눈물을 쏟아낼 때, 아버지는 그저 딱딱히 굳은 표정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토록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이 커다란 슬픔 앞에서 나는 그저 갈 길 잃은 소년이었고, 그런 나에게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주기 위해 아버지는 감정을 자제하고 계실 거라 넘겨짚었던 것이다.
 
10년 뒤에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할머니를,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었다. 목사님이 추도사를 읊는 동안 우리 두 사람은 함께 공동묘지에 서 있었다. 눈물이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고, 나는 숨을 참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참아보려 했지만 내 인내심은 추도사와 거의 동시에 끝나버렸고, 참았던 만큼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자, 그는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 그냥 모두 흘려버려.” 겉으로는 눈물 때문에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하세요!’ 아버지께서 당신의 조언을 스스로도 받아들이고 눈물을 흘리기를 바랐다. 나는 아버지가 힘들 때 기대 울 수 있는 어깨가, 힘들게 짓누르는 감정들을 쏟아낼 수 있는 장소가 되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그때도 변함이 없었다.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슬픔을 내보이는 일은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내게 늘 당부했다. 하지만 스스로는 왜 조금의 눈물도 내비치지 않는 걸까? 이 이유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보았는데, 아마도 아버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아들에 대한 보호본능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나는 언제까지고 아버지의 작은 악동이자, 당신께서 진정 악한 존재로부터 지켜야 하는 어린 아들일 뿐인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큰일이 닥치면 나의 아이를 두 팔로 감싸 안아 숨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울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버지의 이 조건 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조금이나마 갚아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아버지가 우는 걸 본 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몇 년 전, 우연히 할머니 댁에서 펼쳐 본 낡은 앨범 속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한 장 본 적이 있다. 여섯 살 정도 되었을까. 금발 바가지 머리의 꼬마는 양손을 단단히 말아 쥐고는 입을 앙다문 채,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 아마도 형들이 놀려서 잔뜩 화가 났었겠거니. 아이의 뺨을 자세히 보니, 그 위에는 마침 작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가는 중이었다.
 
〈에스콰이어〉 독일판 디지털 디렉터인 알렉산드라 링크는 그녀의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딱 두 번 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의 감정을 더 표현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자제력 덕분에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남자는 강해서 울지 않는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그녀는 아버지들에게 요구한다. 당신들은 좀 더 많이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내 아버지는 아주 엄격한 사람이고, 기분이 안 좋을 때가 많은 사람이다. 화도 곧잘 낸다. 그런 측면을 보면 아버지가 감정이 부족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그의 감정 표현은 상대방을 위축시킨다. 학창 시절 내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걸 무서워했다.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실 때면, 인사를 건네긴커녕 제대로 된 시선조차 주는 일이 드물었다. 남자애인 경우에는 더 심했다. 나조차도 아버지를 경외감을 가지고 대했다. 예나 지금이나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전형적인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요즘 나나 내 여동생 때문에 조금씩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중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흘러오기까지는 정말 기나긴 여정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걸 지금껏 딱 두 번 봤다. 처음 그를 울린 것은 나, 정확히는 사람 신경을 제대로 긁던 청소년기의 나였다. 두 번째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이 두 번으로 끝. 아버지의 엄격함과 딱딱함이 그의 보호구라는 걸 이해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무척이나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어머니보다 더. 아버지의 부드러운 면모는 80세가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세가 많아지면서 순해졌다고나 할까. 나는 어릴 때 아버지의 이런 면모를 경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간혹 생각해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남자들이 우리 아버지처럼 강하고, 감정 표현 측면에서 과묵해야지만 남자답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연애를 더 힘들게 만들면 만들었지, 결코 더 편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예전 남자 친구 중 한 명이 내 앞에서 울면서 “너는 감정이라는 게 대체 있긴 한 거냐”고 소리 지를 때, 나는 정말 벙쪘다. 그때까지 남자도 감정적 패닉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하는 건지는 고사하고, 대체 뭘 해야 할지조차 모른 채 나는 굳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아버지께 드리는 나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제발 말씀해달라. 당신도 상처 입을 수 있다는 걸 알려달라. 가끔은 눈물도 흘려주고. 어린 세대들에게는 그게 필요하다. 그 모습을 보여줘야만, 당신의 아이들은 타인의 감정에 어떻게 대응하면 되는지 배울 수가 있을 테니까. 그래야만 그들 또한 비로소 진정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배우게 될 테니까.
 

⑥ 타인의 경험에서 배워라

누구나 자기만의 싸움을 갖고 있다. 그 사실 자체가 당신에게 위안을 준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싸움을 어떻게 끌고 갔는지 들여다보는 건 좀 더 실용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제바스티안 폴머는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즈 팀의 오펜시브 태클 포지션에서 8년을 뛰었고, 두 번이나 슈퍼볼을 거머쥔 뛰어난 미식축구 선수다. 그러나 이 인터뷰에서 그와 나눈 건 그가 스포츠 세계에서 느낀 압박감, 불안과 우울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신의 책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에서 당신은 큰 시합을 앞두고서도 거의 긴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특징이 미식축구 선수로 성공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을까?
다른 방식으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뭐라 답하기가 어렵다. 그 대목의 전제는, 내게 긴장이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어떤 훈련을 더 해봤어야 했는데’ ‘더 많이 연습해야 했는데’ 하는 생각들. 내가 긴장이란 걸 아예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후회나 걱정은 거의 하지 않는다. 모든 선수에게는 시합을 위한 동일한 양의 준비 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앞에 서 있는 내 시합 상대가 나보다 더 많이 연습했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준비 기간부터 긴장을 덜 하면 잠도 더 잘 자고, 처치도 더 잘 받고 더 푹 쉴 수 있다. 조바심을 내는 대신 최선을 다하고, 잠들기 전에 자신에게 떳떳이 말하는 것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NFL은 정말 육체적인, 일면 난폭하기까지 한 스포츠 리그다.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육체적 활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물론 미식축구 선수에게 근력, 잘 관리된 육체, 근육 단련은 필수 요소다. 하지만 정신적인 압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른다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크게 성공하긴 힘들다. 물론 그건 프로 스포츠의 영역뿐 아니라, 어떤 직업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직업을 뺏어갈 수 있는 선수가 항상 내 옆에 대기하고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선수 각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따라서 다를 것 같다. 오랜 시간 선발 자리를 지켜온, 슈퍼볼을 거머쥔 적도 있는 베테랑이라면 당연히 3순위 혹은 4순위쯤에 서 있는, 언제라도 팀에서 방출될 수 있는 신인보다는 덜 불안하겠지. 하지만 그 누구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팀은 선수를 언제든지 방출할 수 있지만, 반대로 선수는 마음대로 팀을 떠날 수 없으니까. NFL에서는 그런 식으로 계약 한다. 굉장히 일방적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까지도 NFL 선수가 견뎌내야만 하는 압박감이다.
 
당신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즈 팀의 일상적인 훈련을 “압박과 불안으로 짜인 망”에 비유했다. 훈련은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가?
압박감이 어마어마하다. 직업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더해, 당신이 일을 제대로 해내는지 TV로 감시하듯 지켜보는 사람이 1억 명이나 있다는 압박감까지. 개중에는 스스로가 전문가인 줄 착각하고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사람들도 있다. 상대 선수가 주는 물리적인 압박도 빼놓을 수 없다. 150kg에 육박하는 거구가 나를 박살 내버리려고 금방이라도 돌진할 자세로 서 있는 거다. 선수로 활동하면 늘 듣게 되는, 지금 기량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주변의 목소리도 큰 압박이다. 나는 분명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있고, 이 포지션에서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인데 말이다. 여기에 손수 쌓아 올리는,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치도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 숱한 압박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는 과거와 달리 이제는 운동선수들이 좀 더 솔직해져도 된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그는 운동선수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지닌, 동시에 이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한 명의 사람일 뿐이라는 걸 알렸다. 그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숨길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였다.
 
NFL 라스베이거스 레이더스 소속의 칼 나십 선수도 비슷한 업적을 이뤘다. 지난 6월에 커밍아웃함으로써 그는 현역으로 뛰는 최초의 동성애자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고, 팀과 대중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런 일이 15년이나 10년 전에도 가능했을까?
내 답변은 ‘NO’다. 예전 패트리어즈 팀에도 동성애자인 동료가 있었다. 그는 이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우리도 전혀 몰랐다. 은퇴 후에야 그는 우리에게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때 그는 미식축구가 자신에게는 도피처와 같은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 친구는 미식축구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양립할 수 없었다. 그는 미식축구를 사랑했고, 선수 생활이 끝나면 목숨을 끊을 거라고 남몰래 다짐했다고 했다. 다행히도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은 그는 다른 활로를 찾았고, 오늘날 연인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아마 그 친구도 자신의 커밍아웃이 가져올 결과나 직업에 미칠 영향, 대중의 반응 등을 상상해봤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면 결과가 어땠을지는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그가 최초의 1인이 되었겠지. 칼 나십 선수는 스스로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정말 용기 있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
 
선수 생활 내내 많은 부상을 겪었는데, 그런 때에 어떤 부담을 느꼈는가?
어느 순간부터 부상도 일상적인 사건이 된다. 나는 총 열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이외에도 재활 처치만 받은 부상들도 있었다. 내가 겪은 첫 큰 부상은 청소년 시절 소속 팀이었던 뒤셀도르프 팬서에서의 다리 골절이다. 그 당시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경력은 이제 끝장났다는 생각에 그저 부모님 댁의 계단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이제야 내가 사랑하는 스포츠를 찾았는데, 모든 게 끝나버렸다니! 하지만 6개월간의 재활이 끝나고 나는 다시 그라운드 위에 있었다. 그 첫 경험과 비교하자면, 이후 대학이나 프로 리그에서의 부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대처한 건가?
우리는 경험과 함께 성장한다. 좋든 나쁘든 간에 각종 경험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무지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여유 시간이 많아질수록 머릿속 생각은 복잡해지고,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망상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사고는 엄청난 에너지 낭비다. 그래서 나는 항상 최대한 빨리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런 정신 훈련은 선수 시절 동안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2014년에도 당신은 부상과 싸워야 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슈퍼볼을 쟁취했는데, 기분이 어땠나?
그때 느낀 것은 전무후무한 감정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양 손가락에 근섬유와 힘줄 파열 부상을 입었고, 시즌이 끝난 뒤에는 무릎과 어깨 수술도 받아야 했다. 부상과 고통 속에서 그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랬는데 우승자가 되어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그것도 단일 스포츠 중 가장 큰 규모의 세계대회에서. 그런 순간이 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정도 부상은 충분히 값진 것’이었다고 말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건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그라운드까지 뛰어 내려온 아내는 내 품에 있었고, 모든 게 환상적이었다. 수많은 팀이 슈퍼볼을 탐내지만 오직 하나의 우승자만이 존재한다. 팀원 모두가 수많은 것을 포기해가면서, 결국에는 해냈던 것이다.
 
당신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톰 브래디는 지금까지 총 7번의 슈퍼볼을 따냈고, 44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수준 높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사고방식의 차이가 스포츠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로 그를 꼽을 수 있을까?
그는 존경받아 마땅한 운동선수이자, 내게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최고의 선수이기도 하다. 물론 재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팀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톰은 주변의 다른 이들까지도 더 좋은 선수로 만들어준다. 그는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를 이기고 싶다면, 다른 건 모두 포기하고 덤벼. 난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에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다른 모든 건 그다음이다. 많은 운동선수가 그렇게 하지도,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이른바 엘리트 그룹에, 최상위권에 들고자 한다면 단순히 자신의 재능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도 대회에서의 그 짧디짧은 순간을 위해 몇 년에 걸쳐 훈련을 했다. 최고의 운동선수들은 모두 다 그렇게 하고, 의심의 여지없이 톰 브래디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만의 훈련 스타일이 있으며, 먹고 자는 것까지도 모두 오직 미식축구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방식에 맞춰져 있다. 그에게 그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당신은 2016년에 은퇴했다. 매일같이 느끼던 압박감이 사라지니까 어떻던가?
그 당시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서 최선의 것을 쥐어 짜내야 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훈련에 훈련, 또 훈련을 반복한 거다. 미식축구는 몸을 많이 쓰는 운동이기 때문에 골절, 힘줄 파열, 연골 마모와 같은 부상조차 그 스포츠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연쇄는 아내가 임신하면서 처음으로 깨졌다. 내 일이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자각한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교제해온 아내는 나와의 관계를 선택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감당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버지를 고를 수가 없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면, 나는 이 길을 더는 걸어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도 서서히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나는 은퇴를 택했다.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았고, 그래서 밤잠을 설칠 일도 없다.
 
 

⑦ 솔직하고 용감하게 인정하라

〈슈피겔 온라인〉의 CEO를 거쳐 모질라사의 혁신대표를 지내고 있는 카타리나 보르헤르트는 스무 살 이래로 계속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 너무 아파서 도무지 일을 할 수조차 없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직장에서 공개적으로 심리적 부담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야기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기를 독려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일어난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사건 중 하나는 심리 질환이라는 주제가 드디어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팬데믹은 우리 모두를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이 논의가 정점을 찍은 것은 지난여름, 각각 테니스와 체조 분야의 유명 선수인 오사카 나오미와 시몬 바일스가 가장 큰 세계대회인 올림픽 출전을 고사했을 때였다. 그것도 콕 집어서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운동선수들을 본받아 심리적인 이슈에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서 더 움츠러들고 입을 다물어버리게 될까?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인구의 27.8%가 매년 불안장애나 우울증 같은 심리적 질환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 산적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사회가 침묵하면 환자는 외로움 때문에 이중의 고통에 놓이게 된다. 이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어린 시절 나는 심각한 강박증에 시달렸지만, 그건 1980년대 독일의 소도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약간 특이한 아이로 취급했고, 그런 건 더 크면 다 없어지기 마련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나의 강박증은 생명을 위협하는 거식증과 우울증에 자리를 내어주었으니까.
그 시절만 해도 다달이 말라비틀어져 가는, 삶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나를 보면서도 어떤 이도 걱정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지인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나는 내 병을 주변 사람들에게 교묘하게 잘 숨겼고, 숱한 날들 동안 나를 장악하려 드는 이 내면의 고통을 정작 나 자신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양질의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았고,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그때의 나를 구한 건 두 가지, 인터넷과 훌륭한 심리치료사였다. 하필이면 인터넷이 내 생명줄이었다니. 소셜미디어가 심리에 끼치는 부정적인 문제들을 둘러싼 토론이 한창인 요즘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종 온라인 포럼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과 익명의 대화를 나누는 건 당시의 내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나아가 제대로 된 병명과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데에도.
 
다행히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현저히 올라가고 있지만, 아직도 심리치료사의 숫자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두려움이나 주변의 시선 때문에 이미 주어진 치료 기회조차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정신이나 심리와 관련된 질환을 대할 때, 우리는 아직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나 또한 오랫동안 내 문제를 가장 가까운 친구 몇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아팠기 때문에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심지어 나는 직업적으로 성공하고자 했다. 그 와중에도 ‘우울증 환자’로 취급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내가 가진 병에 대해 동료들 앞에서 훨씬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갓 입사했던 때와 달리 직업적으로 더 안정된 위치에 오른 것도 물론 크겠지만, 직장이라는 곳이 심리 질환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 장소인지를 자각한 것이 큰 요인이었다.
 
각 회사의 문화, 구성원의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회사의 대응 방식은 개인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닌다.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며, 직업이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심리 질환은 직장에서 여전히 굉장히 금기시되는 주제 중 하나다. ‘까다로운’, 혹은 ‘비우호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혀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열린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당장 병을 앓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픈 사람들에게 당장 이러한 변화의 시작을 열어젖히라고 요구하는 건 지나친 처사일 것이다. 조직을 변화로 이끌어야 하는 것은 수뇌부의 역할이다. 진정으로 열린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그들이 먼저 자신들의 취약함을 내보일 수 있는 솔직함과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특히 책임자의 위치에 있을 때야말로 구성원들에게 개인적인 경험이나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는 것,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계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소통에서 상당히 도움이 된다. 나는 이런 사실을 몸소 느꼈다. 이로 인해 우리 팀은 더 빠르게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었고, 다른 갈등이 생겼을 때도 더 수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더불어 이 글을 빌려, 그 당시 나에게 개인적으로 상담을 요청했던 모든 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당신들이 스스로에 대해 의심할 때, 적절한 도움을 찾는 데에 내가 지원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나의 긴 투병 역사는 나를 굉장히 민감한 사람으로, 그리고 다른 이들에 비해 더 솔직하게 마음과 정신의 문제에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없어도 모두가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우리 손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소통과 더 배려하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든 개인적인 영역에서든 말이다.
 
처칠은 아무리 심각한 위기라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순간을 그저 흘려 보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빌려 지금의 위기에서 최선을 만들어내보자. 최고의 운동선수들과 유명 인사들이 하는 행동에 감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에서도 좀 더 솔직해져보자는 뜻이다. 그리고 그 솔직함으로 친구, 이웃과 동료들에게 다가가보자. 우리 모두는 결국 저마다 마음의 짐을 하나씩 품고 있기 마련이니까. 삶의 환경을, 직장의 분위기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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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PHILLIP KOPP
    Illustrator MIKE HADDAD
    TRANSLATOR 박윤혜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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