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불경기에 집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는?
2년 전 ‘벼락거지’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뜨겁게 타올랐던 ‘영끌’은 지난해 금리 인상으로 차갑게 식었다. 그런데 올 들어 집값이 다시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영끌족들의 말처럼, 집값이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 신호일까?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채상욱 전 부동산 애널리스트와 함께 2023 대한민국 부동산 현황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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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1~2%로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합니다.” 지난 8월 24일,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 말이다. 그가 이러한 발언을 한 배경에는 16주 연속 상승하고 있는 서울 집값과 부동산 관계 대출의 증가에 대한 우려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 이어서 그는 “지난 10여 년간 금리가 굉장히 낮았고 지금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다시 낮은 금리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을 샀다면 조심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창용 총재의 말처럼, 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한 2030들의 접근이 뜨거운 건 사실이다. 올 상반기 전국 아파트 매매거래 중 39세 이하의 구입 비중을 살펴보면 전국 평균이 28%, 서울이 30%였다. ‘그게 높은 건가?’ 싶겠지만, 코로나 이후 ‘영끌’ 열풍이 불었던 2020~2021년도의 비율이 30% 언저리였던 것을 떠올리면 예사롭지 않은 수치다.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던 2022년엔 39세 이하의 구입 비율이 21%까지 하락했지만, 올 초부터 다시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 돈이 넘쳐나 주식과 부동산이 전부 호황이었던 2020~2021년도와 달리 2023년 하반기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암초투성이다. 먼저, 중국의 부동산 개발 업체 ‘벽계원’(Country Garden)이 부도 사태에 직면하며 중국 부동산 시장이 전체적으로 침체에 빠졌고, 미국에서도 8월 잭슨홀 미팅 이후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전망이 나오면서, 그렇지 않아도 금리 인상 압박을 받던 한국의 시장금리가 더욱 궁지에 몰린 모양새다. 여기에 한국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 모두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소폭 하락 조정되면서 먹구름이 꼈다.
여기서 자연스레 등장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이 다시 집을 구매하는 이유는?’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거래량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택 가격의 상승과 별개로 거래량은 평년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 상반기 서울의 주택 거래량은 월 3000건 수준으로 2022년의 월 700건에 비하면 대폭 늘었다. 그러나 보통 우리가 ‘영끌 광풍의 시기’라고 하는 2020~2022년까지의 월 7000건 수준에 비하면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집값과 거래량이 반등한 건 맞지만, 부동산 광풍이나 영끌이 돌아왔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
그보다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심리적인 요인과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은행은 시장에 충격을 주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맹목에 가까운 영끌족의 이러한 믿음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면 한국 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까지 닿는다. 올해 초 연준은 은행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방은행의 부실 사태를 해결했다. 한국 역시 부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자 시행사들의 채무 연체를 눈감아주는 식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나라 살림을 보살펴야 하는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 있으나, 이러한 행보는 영끌족에게 ‘정부는 결국 자산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항상 받쳐줄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남기는 결과를 낳았다.
구조적인 요인으로는 지난 1월 30일 발표한 ‘특례보금자리론(이하 특례론)’이 있다. 1주택 기준 9억원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지 않으며, 50년 만기 대출을 허용해주면서 그전까지 적용되던 DSR 규제를 피할 구멍을 특례론이 제공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시 9일 만에 10조원의 신청이 몰렸다. 대한민국 부동산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인 44조원짜리 프로젝트인 특례론에 시중 은행까지 40~50년짜리 장기 대출 제품을 속속 도입하면서 영끌족은 다시금 주택 구입에 뛰어들 든든한 ‘총알’을 장전하게 됐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한국은행 총재는 퍽 강경한 어조로 부동산 구입 자제를 요청했다. 반면, 정부는 특례론이라는 매력적인 카드를 제시하며 주택 구입의 길을 열어줬다. 이 두 가지가 상충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정부는 자산 가격이 폭락해 영끌족이 집을 싸게 내놓아도 팔리지 않아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한 은행이 줄줄이 파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부동산 가격 경착륙 작전을 쓸 수밖에 없다. 경착륙을 실현하기 위해선 누군가 물량을 받아줘야 하는데 금리 인상과 경제 불황 예측으로 시장 구매력이 한껏 얼어붙었으니 이를 타개할 방법으로 2030의 미래를 담보로 자금을 끌어온 꼴이다.
“그래서 지금 집을 사야 한다는 거요, 말아야 한다는 거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답할 수 없다. 애널리스트는 예언가가 아니다. 투자는 개인의 몫이다. 유명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어빙 피셔조차 시장을 예측하지 못했다. 특히 피셔는 대공황이 올 줄 모르고 공격적인 주식투자에 앞장섰다가 재산을 모두 날리고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처지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서울 집값은 결국 우상향한다’는 말과 ‘버블이 터질 것이다’는 양쪽 주장 모두 나름 일리가 있다.

그 대신 당신이 주택 구입 전 참고할 만한 지표를 제시할 수는 있다. 첫 번째는 주택 가격과 GDP다. 대한민국 역사상 주택 가격이 GDP 대비 초과 상승한 시기는 딱 두 번이다. 2000~2007년, 2017~2021년 말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전자보다 더 크고 가파르게 상승했다. 주택 가격 상승이 GDP 상승을 넘어서면 ‘일(생산활동)을 하는 것보다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 힘을 얻으며 양극화가 가속된다. 이때 자산과 소득은 적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이용해 정보 습득이 빠른 젊은 층일수록 영끌 동참 유혹에 이끌리기 쉽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부채 비율이 높던 39세 이하 구매자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이후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장기간 주택 가격이 횡보 혹은 하락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는 가계대출이다. 가계대출을 참고하라는 말이 원론적이고 특별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작 금융위원회가 발행하는 보도자료를 꼬박꼬박 모니터링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게다가 다른 지표와 달리 가계대출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지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다.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하는 기간에는 가계대출이 월간 10조원 규모다. 반면 하락장일 땐 5조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올 1분기 가계대출은?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였다. 대출보다 상환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특례론과 50년 주담대가 작동하며 2분기에는 다시 플러스로 전환됐고 지난달에는 6조원 정도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계대출이 플러스로 바뀐 시점과 서울 집값의 연속 상승이 시작된 시점이 맞물린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가계대출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면, 1분기엔 마이너스이던 가계대출이 2분기 들어 플러스로 바뀌는 것을 보고 ‘당분간 집값이 오르겠구나’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21년, 주택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중개사무소를 찾았던 때가 기억난다. 아파트 상가 1개 층에만 8개의 중개사무소가 있었고 한 개의 중개사무소마다 최소 3명 이상의 중개보조인이 있었다. 2023년 9월 현재, 그중 남아 있는 중개사무소는 세 곳뿐이며 그마저도 직원 없이 대표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론 또는 부동산 관련 업자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인 것처럼 묘사하기 일쑤지만, 지난해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 이후 시장의 에너지와 열기는 차갑게 식었다.
겉으로 봐서 멀쩡한 다주택자들도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2021년 자고 일어나면 올라 있는 매매 가격에 취해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을 섭렵하고 끝내 꼬마빌딩까지 매수한 지인이 있다. 그는 자본금 20억원에 대출금 80억원을 더해 100억원짜리 빌딩을 매입했는데 임차수익으로 이자를 갈음하고 버티다가 빌딩 가격이 120억원으로 오르면 되팔 작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 모르고 올라갈 것만 같던 상승곡선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금리가 6%로 오른 지금 80억원에 대한 이자는 연 4.8억원이다. 임차수익인 2억원을 한참 뛰어넘는 금액이다. 더 큰 문제는 빌딩을 팔더라도 대출금을 갚지 못한다는 것이다. 100억원짜리 빌딩은 어느새 70억원으로 주저앉았다. 그는 매월 4000만원에 해당하는 이자를 낼 여력이 없어 깨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가지고 있던 다른 부동산을 줄줄이 처분 중이다. 영끌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영끌의 이유가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유동성 증가이든 정부 정책이든 개인의 욕망이든 전례 없는 수준의 영끌은 이미 벌어졌고 현재 진행형이다. 중요한 건 정부와 중앙은행과 가계의 대처다.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위해 특례론을 선보였고 중앙은행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리 인상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남은 건 부동산 구매를 고민 중인 개인이다. 노파심에 첨언하자면, 40년 대출로 4억원을 4%의 이율로 빌렸을 때 원리금균등을 기준으로 총 대출이자만 4억이다. 4억을 빌려 8억으로 갚는다는 이야기다. 인생을 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결정을 ‘카더라 통신’에 맡기는 대신 최소한의 지표를 참고하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다.
WHO’S THE WRITER
채상욱은 하나금융투자 건설/부동산 애널리스트로 10년간 일했으며 한국경제가 주관하는 애널리스트 폴에서 3년 연속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는 유튜브 <채상욱의 부동산 심부름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야 할 집 팔아야 할 집> <부동산 공부는 처음이라> 등을 집필했다.
Credit
- EDITOR 박호준
- WRITER 채상욱
-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 ART DESIGNER 김동희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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