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숨은 '해외 여행지' 5
언젠가 가려고 캡처만 잔뜩 해둔 곳들, 필자가 저장함에 쌓아둔 여행지 5곳을 대신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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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보다 내륙이 궁금해진 이탈리아 장수 마을의 섬, 사르데냐
- 은빛 정어리 떼 영상 보고 저장한 필리핀, 모알보알
- 이비자보다 조용하다는 스페인 발레아레스, 메노르카
- 포트와인이 태어나는 곳이라는 포르투갈 계곡, 도우로 밸리
- 아직 여행 리스트에도 잘 없는 코카서스 산악 마을, 조지아 스바네티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마다 자꾸 켜보는 폴더가 하나 있다.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만 해둔, 정작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을 모아놓은 폴더다.
유튜브 브이로그를 보다가, 누군가의 사진을 보다가, 혹은 그냥 검색하다가 '어, 여기 좋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저장부터 하고 본다. 문제는 저장만 하고 실제로 떠나는 건 늘 뒷전이라는 것. 그래서 이번엔 그 폴더를 그냥 열어봤다. 아직 발을 들여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어서 남겨둔 다섯 곳을 소개한다. 직접 가본 사람의 후기가 아니라, 아직 가보지 못한 사람의 순수한 동경에 가깝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해변 말고 내륙이 궁금하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이탈리아 사르데냐 / 이미지 출처: @sardiniadolcevita 인스타그램 게시물
이탈리아 사르데냐 / 이미지 출처: @aperitivo.journal인스타그램 게시물
사르데냐 하면 다들 코스타스메랄다의 에메랄드빛 바다부터 떠올린다. 요트가 잔뜩 정박한 포르토체르보, 여름마다 밀라노와 로마의 부자들이 몰려든다는 그 해안 말이다. 그런데 이 섬을 저장함에 넣게 된 진짜 이유는 바다가 아니라 섬 안쪽이었다. 우연히 다큐멘터리에서 이 섬 중부 이야기를 보고 나서부터다.
섬 가운데 있는 '바르바자(Barbagia)'라는 산골 지역은 전 세계에서 장수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었다. 100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옆집 사람처럼 마주칠 수 있는 동네라고. 이유로는 양을 키우며 먹는 소박한 음식, 매일 산을 오르내리는 생활, 가족과 이웃끼리 끈끈하게 지내는 분위기 같은 것이 자주 언급됐다. 오르고솔로, 마모이아다 같은 작은 마을 사진을 보면서, 관광지에서는 느끼기 힘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 화면 너머로도 전해졌다.
물론 바다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같이 찾아봤다. 코스타스메랄다 대신 동쪽에 있는 '오글리아스트라(Ogliastra)' 해안이 눈에 들어왔다.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칼라골로리체라는 해변은 좁은 절벽 사이 틈을 지나야 비로소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사진만 봐도 그 등장이 꽤 극적이었다. 저녁엔 다시 마을로 돌아와 향 좋은 페코리노 치즈와 이 섬에서만 만든다는 미르토라는 술을 곁들인다는 코스까지 짜두고 저장을 눌렀다.
언제 가면 좋을까: 찾아보니 5~6월 또는 9월이 좋다고 한다. 내륙은 여름 한낮이 꽤 덥다니, 이 시기에 트레킹과 마을 산책을 계획해봐야겠다.
은빛 태풍을 만나러, 필리핀 모알보알
이곳은 다이빙하는 친구가 보내준 영상 한 편 때문에 저장함에 들어갔다. 세부 본섬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작은 해안 마을인데, 시아르가오처럼 화려하지도, 보홀처럼 개발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신 판다논 해변 근처에 수백만 마리의 정어리 떼가 상시 존재한다는 게 이 마을의 정체성이라고. 원래 정어리 떼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데, 이곳 정어리들은 특이하게 산호초 지형에 눌러앉아 일 년 내내 볼 수 있다는 설명을 읽고 바로 저장 버튼을 눌렀다.
필리핀 모알보알 / 이미지 출처: @jjuuu_sea 인스타그램 게시물
스쿠버 자격증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스노클링 장비만 있으면 해안에서 몇 미터만 헤엄쳐 나가도 하늘을 가릴 만큼 촘촘한 은빛 물고기 떼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영상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필리핀 모알보알 / 이미지 출처: @gwakleebubu 인스타그램 이미지
찾아보니 이 여행지의 진짜 매력은 아직 대형 리조트 체인이 들어오지 않은 로컬한 분위기에 있는 것 같았다. 저녁이면 해변 바에서 산미겔 한 병을 앞에 두고 다이브 마스터들과 그날 물살 이야기를 나눈다는 후기들을 여러 개 읽었다. 일정은 페스카도르 섬 다이빙과 카와산 폭포 캐녀닝을 하루씩 넣고,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오슬롭에서 고래상어 스노클링까지 묶어보면 좋을 것 같아 메모까지 해뒀다.
언제 가면 좋을까: 3~5월 건기가 파도도 잔잔하고 시야도 가장 좋다고 한다. 정어리 떼는 연중 볼 수 있다니 시기 부담은 덜한 편이다.
이비자보다 조용하다는, 스페인 메노르카
스페인 여행지로 마요르카나 이비자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만, 이 두 섬은 이미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다 발레아레스 제도 안에 이비자와 정반대 성격의 섬이 있다는 글을 보고 저장해둔 곳이 메노르카다. 1993년에 섬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해안 개발에 엄격한 제한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사진 속 해안선이 반세기 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스페인 메노르카 / 이미지 출처: @soramsoram 인스타그램 게시물
스페인 메노르카 / 이미지 출처: @uhyeu 인스타그램 게시물
섬 북단 카발예리아 등대에서 보는 일몰 사진 한 장 때문에 이 섬을 완전히 마음에 담게 됐다. 붉은 절벽과 짙은 청록빛 바다, 인공조명 하나 없는 하늘. 섬 곳곳에 기원전 1000년경 지어졌다는 신석기 유적 '탈라이오트'가 안내판도 없이 해안 절벽 위에 서 있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스페인이라기보다 지중해 어딘가에 잊힌 섬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식 정보도 같이 저장해뒀다. 마요네즈의 어원이 된 항구 도시 마온에서는 신선한 해산물과 랍스터 스튜 '칼데레타 데 랑고스타'를 먹을 수 있다고 하고, 18세기 영국 통치 시절의 유산이라는 메노르카산 진(gin)도 이 섬만의 특산품이라고 한다. 진에 레몬 소다를 섞은 '페가다'라는 칵테일은 여름 오후 카페 테라스에서 마시기 딱 좋을 것 같아 위시리스트에 따로 적어뒀다.
언제 가면 좋을까: 6월 또는 9월이 성수기를 살짝 비껴간다고 한다. 7~8월엔 유럽 관광객들로 붐빈다니 참고할 것.
포트와인이 태어난다는, 포르투갈 도우루 밸리
리스본과 포르투는 이미 다녀온 사람이 주변에 많아서, 다음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본 곳이 도우루 밸리다. 포르투에서 기차나 차로 두세 시간, 도우루강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계단식 포도밭 지역인데, 사진 몇 장만 봐도 이건 꼭 가봐야겠다 싶었다.
포르투갈 도우루 밸리 / 이미지 출처: @damien.bozzini 인스타그램 게시물
포르투갈 도우루 밸리 / 이미지 출처: @damien.bozzini 인스타그램 게시물
이곳 포도밭은 단순한 농경지라기보다 하나의 건축물에 가깝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화강암 지형의 급경사면에 수백 년에 걸쳐 사람 손으로 돌담을 쌓아 만든 테라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1756년에 세계 최초로 공식 지정된 와인 원산지 통제 지역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보르도보다도 역사가 앞선다니 흥미로웠다.
핀탕 같은 마을의 소규모 킨타(포도원)에 묵으면서, 아침엔 강 위 크루즈로 계곡을 조망하고 오후엔 도보로 포도밭을 걸으며 시음 여행을 하는 게 이 지역을 즐기는 기본 코스라고 한다. 서울에서는 접하기 힘든 로제 포트나 20년 숙성 토니 포트를 밭 바로 앞에서 맛본다는 후기를 읽으면서, 이건 진짜 언젠가 직접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9월 말에서 10월 초 수확 철에 가면 포도를 발로 직접 밟는 전통 축제 '빈뎅마'까지 볼 수 있다니, 이 시기에 맞춰 휴가를 짜보고 싶다.
언제 가면 좋을까: 9월 말~10월 초, 수확기와 축제 시즌이 겹치는 시기가 가장 좋다고들 한다.
코카서스가 감춰뒀다는 마을, 조지아 스바네티
마지막으로 저장해둔 곳은 조지아, 그중에서도 코카서스산맥 깊숙이 자리한 스바네티 지역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걸쳐 있으면서도 어느 쪽 여행 리스트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 오히려 눈에 띄어 저장하게 됐다. 조지아는 최근 와인과 미식으로 조금씩 알려졌다는데, 대부분의 여행 후기는 수도 트빌리시에서 끝나 있었다. 거기서 차로 아홉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스바네티까지 다녀온 후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조지아 스바네티 / 이미지 출처: @tripsoda_official 인스타그램 게시물
조지아 스바네티 / 이미지 출처: @sunsun_bbb 인스타그램 게시물
메스티아와우쉬굴리라는 마을에는 중세부터 이어져 온 돌탑 '스바네티 타워'가 마을마다 수십 채씩 남아 있다고 한다. 3~5층 높이로 쌓아 올린 이 탑들은 외부 침입과 눈사태로부터 가문을 지키기 위한 방어탑이자 동시에 주거 공간이었다고. 마을 전체가 이런 탑으로 뒤덮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정말 다른 시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중 우쉬굴리는 해발 2,200미터로, 유럽에서 사람이 상시 거주하는 마을 중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며 조지아 최고봉인 슈카라산의 만년설이 마을 바로 앞에 보인다고 한다.
이 지역이 특히 궁금했던 이유는 관광 인프라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메스티아에서우쉬굴리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보통 이틀에서 사흘 정도 걸리는데, 큰 숙소 대신 현지 가정집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고 한다. 하루 도보여행을 마치면 집주인이 흙 항아리 '크베브리'에서 8개월 이상 발효시킨 앰버 와인을 내준다는 후기를 보고, 조지아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치즈 가득한 빵 '하차푸리'와 만두 '킨칼리'까지, 이 산골 마을의 저녁 한 끼가 어떤 도시 레스토랑보다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저장함 맨 위에 올려뒀다.
언제 가면 좋을까: 6~9월. 겨울엔 폭설로 산악 도로 대부분이 막힌다고 하니, 7~8월이 등반하기에 가장 안전할 듯하다.
산과 섬, 계곡과 오지까지, 다섯 곳 모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아직 브랜드가 되지 않은 풍경이라는 것. 이 글을 쓰면서 저장함을 다시 정리했으니, 다음 휴가는 이 다섯 곳 중 한 군데로 진짜 잡아볼 생각이다.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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